10월 첫 주일-눈이 시리도록 하늘이 파란 가을이 왔다. 11월 첫째 주일 창립 2주년을 즈음하여 이연길 목사님(달라스 빛내리 교회 원로)이 5월에 이어 다시 오셔서 주일 예배와 주일 오후 3시, 7시, 월-화 저녁 7시에 네 차례 8시간에 걸쳐 히브리 문학으로 성경읽기 세미나를 해주셨다. 개척교회를 돕고 포항-경주 지역을 섬기시기 위해 강사비를 받지 않으시고. 70대 후반이시지만 청년처럼 건강하시다. 이 특강 소개를 위해 내가 포항 극동방송, CBS 라디오에 대담 방송도 하고, 직접 이목사님 강의도 들으며 최고 수혜자는 나와 우리 교회이다. 성령운동에 말씀의 깊이를 더하게 되었으니. 또 감사한 것은 금주 이 세미나 시간에 교회 리모델링을 한 분이 무상으로 해주기로 하셨다(사진 그림처럼). 이제 중간 파티션(칸막이)을 치우고
100명 이상이 모일 수 있는 예배실로 전환한다. 이를 위해 사택을 먼저 교회밖으로 내보내 주시고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 귀한 세미나와 귀한 섬김의 일꾼을 동시에 예비해주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친히 교회를 세워가신다. 할렐루야! 한 주간도 행복하세요.
성자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엡1:7-12)
1. 수요 저녁예배 에베소서 말씀을 함께 나눕니다.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론을
함께 공부합니다. 11월 첫째 주일 개척 2주년을 앞두고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가
무엇인지 나누고, 이런 교회를 친히 세우시는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순종함으로
참여합시다. 에베소서는 “풍성과 충만의 편지”에요. 오늘도 에베소서 말씀을 듣
는 동안 저와 여러분의 삶에 풍성하고 충만한 삶이 연속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론 및 인사말을 통해서 은혜와 평강의 풍성함과 충만함에 대하여 말씀을 나
눴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풍성하고 충만한 삶을 누리고 있지요?
이제는 에베소서 본론의 말씀을 나눕니다. 에베소서 첫 본론은 “신령한 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4-6절은 성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 7-12절은 성
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 13-14절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
에 대해 말씀합니다. 신령한 복에 대한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우리 모두 삼위일
체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을 풍성하고도 충만하게 받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신령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신령한 복은 세속적이고
땅에 속한 것이 아니에요. 신령한 복은 영적인 복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주시는 것으로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2. 성부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은 선택이고, 성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구속
이며,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복은 기업입니다. 지난 시간까지 성부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 선택에 대하여 말씀을 나눴습니다.(두 차례에 걸쳐) 오늘부터 세 번
나눠 성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을 배우고, 또 누리기를 바랍니다. 성
자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은 7절,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
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성자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은 구속, 죄 사함입니다. 오늘 저녁에 나오신 여러분은 성자께서 주시
는 신령한 복, 구속-죄 사함을 다 받으셨습니까?
여러분 모두 죄 사함 받은 확신이 있습니까? 우리가 평생 살아가면서 결코 잊지
말고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확신이에요. 세상 모든 일을 다 이루고, 세상 모
든 것을 다 소유해도 이것을 놓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도
눅9: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성자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 구속함을 받지 못하면 온 천하를 얻고
도 자기를 잃은 자가 됩니다. 천하를 얻었지만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든 것을 잃고 실패한 인생일 뿐입니다.
3. 성자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을 말할 때 사도 바울은 두 가지 용어를 병행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 말이 무엇입니까? 구속이란 말과 죄 사함입니다. 구속은 헬라
적 표현이고, 죄 사함은 히브리적 표현이에요. 당시 기독교인들은 이 양대 문화,
헬라문화와 히브리 문화 속에서 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두 가지 용어를 병행해
서 전합니다. 구속은 속량이란 말과 같습니다. 그 의미는 이렇게 설명하면 쉽습
니다. 어느 선량한 로마 시민이 길을 가다가 한 노예가 모진 매를 맞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을 불쌍히 여깁니다. 매를 때리는 주인에게 다가가더니 그 노예
를 자기가 사겠다고 합니다. 당시 노예 한 사람은 말 한 마리보다 쌌으니까요.
이 노예가 새 주인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그 다음에 일어났어요.
새 주인이 아무 조건 없이 자기를 자유인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자기를 노예로
사고, 노예증서를 찢어버렸어요. 그리고 너는 이제부터 자유인으로 잘 살아보라
고. 이 사람은 아무 대가없이 한 선량한 사람을 만나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것
이 구속입니다. 좋은 사람만나서 그 사람의 긍휼로 말미암아 자유인이 되었으
니, 이 사람이 받은 은혜는 평생 보답해도 갚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하
나님의 은혜가 바로 이와 같아요.
4. 죄 사함은 히브리인들의 제사제도에서 나온 말입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성막을 통한 제사제도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에
자세히 말씀하지요.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이 제사제도를 통하여 그들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죄를 용서받기 위해 성전에 옵니
다. 그 사람은 빈손으로 성전에 오지 않고 자기가 드릴 제물을 가지고 옵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송아지나 양을 가져오고 가난한 사람은 비둘기를 가져옵
니다.
제사하러 온 사람은 제사장 앞에서 짐승 위에 자기 손을 올려놓고 자기가 지
은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면 그 죄가 짐승에게 전가되고 죄를 대신 진 짐승은
피를 흘리고 죽어요. 그 짐승의 피를 뿌리고 제물을 불사름으로 지은 죄를 하
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이것이 제사제도였습니다. 이 제사제도로 말미암아
사람을 살리고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도 지킬 수 있었지요. 구속과 죄 사함의
공통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노예에서 해방된 사람(구속받
은 사람)이나 죄사함 받은 사람 모두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에요.
자신이 대가를 지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5. 자기를 구속해준 주인이 대가를 지불함으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짐승이
대신 희생당함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구원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진리
가 이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아요. 사람은 의인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직 인간 밖으로부터 구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산이나 바다에서 조난당한 사람이 외부로부터 구조를 받아야 살아날 수 있듯이.
인간 밖에서 구원자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짐승제사와 예
수님의 희생제사의 차이를 생각해봅시다. 짐승제사는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해야 하는 한계성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죄로 인해 죽은 짐승의 수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셀 수 없는 짐승들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죽어갔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단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었습니다. 모든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십자가에서
의 단 한 번의 희생제사로 다 용서하셨습니다. 주님의 단 번의 희생 제사로 이
후에 또 다른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죄사함
은 7절,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이
뤄졌습니다.” 에베소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씀이 “풍성과 충만”이라고 했는
데, 여기 풍성이란 말이 드디어 나왔네요.
6. 은혜는 선물이란 뜻입니다. 우리가 구속, 죄 사함을 받은 것은 주님의 풍성한
은혜라는 말씀이에요. 곧 풍성한 선물, 공짜로 거저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2:8-9은 우리의 구원 사건에 대하여 좀 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인 구속 역시 우리가
값없이, 거저, 공짜로 받았습니다. 6절에 성부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 선택도 거
저 주신 것이에요. 우리가 선택도 구속도 이렇게 값없이 받았습니다.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값없이 받은 이 은혜를 값싼
것으로 전락시킵니다. 거저 받아서 그 가치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처음에 받을 때는 미안해하고 쑥스러워 하지만, 계속해서 받으면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사울왕이 그랬잖아요. 처음에 왕으로 세움 받을 때는 얼마나 부끄러
워하고, 자기 같은 사람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왕 맛을 본 다
음에 자세가 점점 교만해졌어요. 하나님도 무시하고 사무엘 선지자도 무시했습
니다. 자기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불순종하기 시작했어
요.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을 사무엘 선지자에게 들었지
만, 그는 끝내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불행한 인생을 마쳤습니다.
7.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주지 않으면 주지 않
는다고 덤벼들어요.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
는 진리입니다. 기독교의 기본 진리이지만 이것을 아는데 그치면 아무 소용 없습
니다. 이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단지 객관적인 사실일 뿐입니다. 은혜의 가치를
알고, 바로 살아야 합니다. 객관적 사실로 그치는 것 아니라 바로 내 것이 되어
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알고 간직하며 살고 있습니까? 오
늘 성자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에 대해서 말씀 1/3을 나눴습니다. 주님께서 우
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를 깊이, 가치 있게, 그리고 뜨겁게 간직하며 사는 우
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말씀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