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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동계 중국 귀주 여행기 >
일시 : 2019. 12. 03(화) ∼ 12. 09(월) ∼ 12. 16(월) : 13박 14일
장소 : 중국 귀주 및 계림 양삭 일원
참가자 : 김상득, 안창성, 윤한석, 이병용, 정성철, 한경호. (6명)
< 2019년 동계 중국 귀주 여행 일정 및 예산 >
1. 일정 : 2019. 12. 03(화) ∼ 12. 09(월) ∼ 12. 16(월) : 13박 14일
2. 참가자 : 김상득, 안창성, 윤한석, 이병용, 정성철, 한경호. (6명)
3. 항공편 : 중국 동방 항공 (왕복 250,000원)
10월 29일 10시 30분 ∼ 18시 00분(상하이 경유, 10시간)
11월 11일 18시 55분 ∼ 06 10분 (상하이 경유, 9시간)
4. 예상 경비 : 비자 : 55,000원
항공료 : 250,000원
경비 : 한스투어 예약금 300,000원
한스투어 나머지 금액 4,500위안(765,000원) 계 137만원
5. 일정 : 부산(12. 03 총원 6명 출국) → 상해(환승) → 귀양 → 카이리 → 전웬 → 안순 → 황과수 폭포 → 싱이 → 귀양(12. 09 귀국. 부산팀 4명) → 계림 → 양삭 → 귀양 → 상해(환승) →부산(12. 16 귀국. 청도팀 2명)
< 귀주에 대하여 : 다음 백과 인용 >
1. 위치 : 중국 서남부
2. 인구 : 34,746,468명 (2010)
3. 면적 : 176,167 k㎢
4. 언어 : 중국어
북으로는 쓰촨 성[四川省], 서로는 윈난 성[雲南省], 동으로 후난 성[湖南省], 남으로는 광시좡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와 경계를 이룬다. 지형이 험준하고 왕래가 적어서 고립지가 많고,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다. 성도는 구이양[貴陽]이다. 지형이 험준하고 왕래가 적어서 고립지가 많다. 고속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철도망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 하상운송은 곳곳에 있는 암초와 급류 때문에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덜 중요시되고 있다.
구이저우 성은 오랜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고원의 일부분으로 티베트 대고원과 후난·광시의 구릉 산지 사이에 놓여 있다. 한족이 이곳 인구의 3/4을 차지하지만, 매우 많은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그들은 한족과 섞여 살며, 적어도 30여 개의 다른 종족이 공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주요종족은 먀오족[苗族]·부이족[布依族]·수이족[水族]·둥족[侗族]·이족[彛族] 등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다. 구이저우에는 대도시가 많지 않은데, 그 가운데 제1도시는 구이양[貴陽]이고 쭌이[尊義]가 제2도시이지만 구이양에 비해 그 크기가 훨씬 작다.
공업용 작물로는 평지씨·건조담배·땅콩·면화·사탕수수·깨 등이 생산되며, 목재와 다른 임업생산물도 풍부하다. 또 중국의 모든 성들 가운데 칠원료와 동백유의 대규모 생산지로 손꼽히며, 밀로 빚은 마오타이주[茅苔酒]와 국제적으로 우수한 술로 평가받고 있는 가오량주[高梁酒]의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광물자원이 풍부하여 금속광물로는 수은·망간·아연·납·안티몬·알루미늄·구리·철·금 등이 생산되고, 비금속광물로는 석탄·석유·석유혈암·인산염·석고·비소·석회·형석 등이 생산된다. 광공업은 구이저우의 주요산업으로 손꼽힌다. 그 밖의 공업으로 철강·기계·시멘트·식품가공·피혁·양잠·면사가공·화학비료·산성소다,기타 화학공업 등이 있다.
구이저우 성은 남서쪽이 올라가는 경사지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계곡, 경사가 급한 골짜기, 절벽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전체적인 지형은 중앙에서 북쪽·동쪽·남쪽으로 급하게 경사져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데, 시베리아의 찬 기류를 산맥들이 막아주기 때문이다. 강수량이 매우 일정하고 풍부한 이 지방은 유형적으로 습기가 많고 구름이 많이 끼며, 비오는 날이 길고 일조량이 적은 편이다. 한번 비가 오면 사흘 정도는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 여행의 출발 >
♠제 1 일 (2019. 12. 03. 화) 청도 → 김해 → 상하이 → 귀양
8시 30분 택시로 청도역에 도착, 58분 무궁화 열차로 구포역에 9시 46분 도착해 3호선과 경전철을 타고 김해공항에 도착하니 부산 팀 4명은 이미 체크인 중이다. 중국동방항공(MU 5044) 비행기로 김해 12시 35분 출발해 상해 푸동공항에 13시 30분에 도착했다. 기내식으로 샌드위치가 나와 임시 요기는 한 셈이다. 화물은 자동으로 구이양으로 간다고 하니 그건 다행이다. 3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16시 35분 환승(MU 5445)해 구이양 롱동바오 공항에 19시 55분에 도착해 짐을 찾아 나가니 한스가 웃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1번 공항버스를 타고 구이양 북역에 내려 걸어서 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 식당에서 꼬치와 요리를 시켜 소맥 한잔 마셨다. 한스가 오늘은 환영주라면서 자기가 술값을 낸단다.
< 환승한 비행기 기내식은 새우 토마토케첩이 들어간 파스타여서 그럭저럭 저녁까지의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
< 호텔 앞 식당의 다양한 꼬치 요리. 값도 싸고 맛도 좋다. >
< 꿈 몽(夢)자 가운데 부분을 줄여서 적어 처음엔 무슨 자인지 몰라 한스에게 물으니 몽자라 한다. 몽지익(夢之翼-꿈의 날개)이란 로맨틱한 이름답잖게 허름하고 낡은 느낌이다. >
호텔로 돌아와 여행비 잔액으로 1인당 4,277위안씩 모아 한스에게 주고 1,300위안은 내가 보관해 공동 경비로 쓰기로 했다. 여행 출발 전 주문한 홍경천과 흑구기자를 각자 주문 수량대로 받고 한스가 여행 전 권해서 정가 600위안 마오타이를 광군절(光棍节) 할인 행사 덕분에 300위안에 샀다. 광군절은 1990년대 난징(南京) 대학생들이 11월 11일을 ‘광군절’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 중국에서 가지나 잎은 자식이라는 의미가 있기에 광군(光棍:광곤)이란 ‘가지나 잎이 없는 몽둥이’란 뜻으로 독신자나 애인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학생들은 숫자 ‘1’이 혼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해 1이 네 번 연속되는 11월 11일을 광군제라 칭한 것이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처럼 중국 인터넷 상거래 회사인 “알리바바”가 대규모 할인행사를 계획해 지금은 중국을 넘어 세계적 행사가 되었으니 나도 세계적 행사의 덕을 본 셈이다. 각자 주문 만큼 금액을 지불하니 어느 듯 밤이 깊었다. 호텔방에서 간단히 한잔 더하고 피곤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제 2 일 (2019. 12. 04. 수) 귀양 → 카이리 → 서강 천호묘채
6시 반에 일어나 씻고 7시 반에 호텔 조식뷔페로 갔다. 손님이 별로 없는 듯 조식이 평범하다.
< 아침 식사는 단출하되, 콩국이 조금 특별하다. >
어젯밤 호텔 올 때 오래 걸은 기억을 떠올리며 가방을 단단히 정리하고 8시 50분에 호텔을 출발해 지하도를 오르락내리락 한참 걸어 구이양 북역에 도착했다. 광장이 엄청나게 넓었다. 안선생과 나는 부산 팀을 보내고 우리끼리 계림 구경이 계획 되어 있어 나중에 우리 힘으로 북역을 이용해야 하므로 공항버스 타는 곳과 개찰 방법 등을 잘 보아 두었다. 그리고 한스의 도움을 받아 12월9일 구이양 북역에서 계림 서역으로 가는 기차표와 12월 15일 계림 서역에서 구이양 북역으로 오는 기차표를 636 위안을 주고 예매를 했다. 역무원이 일처리가 빠르지 않아 몇 번이고 이름을 새로 불러 주어야 했다. 우리나라라면 민원 들어갈 정도이니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왕복 기차표를 구입한 것은 큰 걱정거릴 던 셈이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갔는데 역 안은 또 왜 그리도 넓은지 개찰구까지 가는데 시간이 걸려 9시 50분 고속열차 타기가 빠듯하였다.
< 귀주의 중심도시는 귀양(貴陽)이고 이곳은 귀양 북참(北站)으로 우리로 보면 북역이다. >
< 북참 안은 어마어마하게 넓어 우리나라 역 생각하고 시간에 맞추어 왔다가는 100m 정도는 달려야 한다. 평상시에는 지금처럼 한가하지만 명절이 되어 민족 대이동 때에는 이 넓은 역이 발 디딜 틈이 없이 찬다고 하니 좁은 나라에 태어난 것이 가끔은 편할 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좌석이 깨끗하고 고속철이라 속도도 상당하여 254km/h라고 적힌 것이 자랑하는 것으로 보인다. >
< 개리(凱里 – 카이리) 남역의 전경으로 앞 건물이 이곳 건축물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단다. >
카이리의 버스터미널에서 서강천호묘채로 가는 여행사 버스를 탔다. 버스로 1시간 걸려 도착하니 온통 60° 이상의 가파른 산비탈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래도 조금 넓은 곳에 광장을 만들어 매일 무료로 전통 공연을 한다. 문자가 없는 먀오족은 자신들의 수천 년의 역사를 새긴 옷을 입고, 화려한 은 장신구를 착용하고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대나무로 만든 악기 ‘루성(芦笙)’과 ‘망퉁(莽筒)’을 흥겹게 연주하며 여행자들과 어우러진다.
< 손님에 대한 접대가 극진하여 27명의 은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전통복장의 여인들이 노래를 부르며 14층 양 갈래 폭포처럼 술잔을 따라 손님을 환영한다. >
이렇게 한 잔 마신 후 올라가면 다시 12도의 술잔이 기다리니 1도(一道)는 공희주(恭喜酒)라 적혀 있는데 묘족 늙은이가 물소 뿔로 된 잔에 술을 권한다. 이런 식으로 12도까지 가면 술 귀신이 되고 말 지경이다. 귀주는 예부터 평평한 땅은 세 평이 없고, 사람은 세 푼 가진 놈이 없고, 맑은 날은 사흘 가지 않는다는 곳이다. 편편한 땅 한 평이 귀한 곳에서 손님 대접이 이렇게 극진한 것이 대단히 이상했다. 흔히 인심은 쌀독에서 난다고 하지 않는가. 귀주(貴州)란 지명이 고귀한 곳이란 의미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너무 없어 모든 것이 귀한 곳, 궁벽지(窮僻地)란 의미라 한다. 성도인 귀양(貴陽)이란 지명도 볕이 귀하다는 뜻이니 역시 실제로 흐린 날이 235일이나 되어 사흘 볕 보기가 힘든 곳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리 접빈에 호사를 부릴까? 한참을 생각한 후 궁벽한 곳이라 오는 손님도 귀하니(貴賓) 그럴 것이란 합리적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옛날 이곳은 그야말로 중국의 최변방이니 바깥소식을 들을 수 있는 손님은 그야말로 귀한 존재였을 터 엄청난 대접을 하고 마을 사람 모두 모여 바깥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지금 여기 광장에서 행사에 참여하는 백여 명의 주민들이야 중국정부가 관광을 유도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어느 정도 직업적 측면이 있겠지만 이러한 손님에 대한 전체 주민의 환영 행사는 실제 몇몇 작은 마을에서는 아직도 지켜지고 있다고 하니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일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문명과는 상관없음을 알겠다.
< 물소 뿔잔은 술이 가득 찬 것은 아니고 소주잔 반잔 정도의 백주(白酒)를 담아 입에 대어 주는 것이다. 이 술 한잔을 마시고 올라가면 아래 사진에서처럼 아직 11도가 기다리고 있으니 실제로는 손님이 마시기를 강권하는데 그런 경우 그냥 입에 대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라 한다. >
< 앞의 12폭포주의 여인들도 그렇고 여기 여인들도 평균 키가 145cm정도로 작았다. 혹시 이들의 이런 폭음 행사의 목적이 외부 손님이 만취한 것을 기화로 씨도둑을 하려한 것이 아닐까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곧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문명인의 합리적이며 타산적 추론이란 생각에 들어 스스로가 비천하게 느껴졌다. >
한스가 우리 여행 가방을 미리 숙소에 보내고서야 비로소 홀가분한 차림으로 서강천호묘채 구경에 나섰다. 서강(西江)은 '시장'이라 발음하는 지명이고 천호(千戶)는 '천 채의 집'이란 뜻이니 막연하게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 이곳의 집 수는 천 채에서 조금 넘는다 한다. 묘채(苗寨)란 '묘족의 성채'란 뜻이니 이름에서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이곳의 지형은 등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가파른 산들이 중첩된 형세이니 이곳 주민들은 산에서 뭔가를 얻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이곳에서는 좋은 약초가 많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약초를 캐기 위해 가파른 산을 오르는 대신 이들은 일찍이 상업화에 눈을 떠 2008년에 자신들의 마을을 대대적으로 정비해 입장료를 받는 관광지로 만들었다. 채(寨)가 붙은 이름을 듣고 산적들이 살던 첩첩 산골의 오지 마을을 상상했지만 숙박 시설, 식당, 상점 등이 잘 갖춰진 관광지였다.
< 실제 이곳은 산비탈에 겨우 집들을 지어 살아가는 깡촌 산골짝 마을인데 비해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웅장하다. >
들어가는 입구부터 자신들의 마을에 있는 볼거리를 입간판처럼 소개하여 개울을 따라난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볼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마을을 구경하는데 전체적으로 산에 기대어 지은 목조건물의 높이가 상당하다. 우리로 보면 5층 정도의 높이이다. 묘족 여인들이 은 장신구를 많이 애용해서인지 빗과 주전자와 찻잔, 은그릇 그리고 묘족여인들이 머리에 모자로 쓰는 화려한 장식의 은모자 등, 은(銀)을 가공하는 상점이 많다. 그러다가 수류탄처럼 생겼다할까, 해삼처럼 생겼다할까? “야생화삼과(野生火蔘果)”라는 과일을 1개 10위안에 팔고 있다. 1,800원이나 하는 과일의 맛은 어떨까 해서 2개를 사서 나누어 먹었는데 패션 플루트 비슷하게 올챙이 알 같은 과육이 들어 있고 빨대를 꽂아 빨아 보니 전체적으로는 달달하고 향기로운,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맛이다. 나름의 향도 있지만 과일 향을 어떻다고 표현한다는 건 언어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 정말 생김새가 독특한 과일인데 과거에 운남의 리장고성 만고루(万古楼) 부근 상점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 때는 생김새가 생경하여 사먹지 않은 것이 기억나 이번에는 사먹어 봄으로써 또 다른 과일의 기억 하나를 보탰다. >
< 또 다른 “혈등과”라는 색다른 과일이 있었는데 1근에 58위안(우리 돈으로 만 원 정도)이나 해서 못 사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근이 600g인데 여기서는 500g이 1근이다. 아마 사진의 과일 하나 정도가 한 근이 될까? 중국에서는 과일을 팔 때 그 과일의 잎도 곁에 두는 관습이 있다. >
< 같이 간 이병용 선생은 차에 관심이 많아 찻집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을 하니 고양이 닮은 찻집 아가씨가 차를 대접한다. 판매를 목적으로 맛보기로 내는 차인데다가 공짜로 마시는 차 맛이 어찌 나쁠 수 있으랴? 게다가 다탁(茶卓)이 고풍(古風)스럽되 실용적이어서 눈길을 끈다. >
이병용 선생은 몇 종류 차를 샀지만 나는 아무 것도 사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느껴지는 차 맛을 입 안에 잔뜩 숨기고 밖으로 나왔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산에 살던 사람들이 무언가라도 들고 와 장바닥을 빽빽이 메우고 있다. 시장 구경을 하다가 점심때가 되어 근처 묘족이 경영하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는데 식당 안에 소림파니 무당파니 아미파, 화산파 등의 무협지에서 자주 보던 용어들로 붉은 등을 달아 두었다. 아마 주인이 김용(金鏞)의 의천도룡기의 열혈 팬인 듯 명교(明敎)의 붉은 등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무슨 음식인지 이름도 모르지만 한스가 알아서 잘 시켰거니 하고 맛있게 먹었다. 옆 슈퍼에서 백주 두 병을 사와 맥주에 간을 해 마시니 지금까지 다닌 여러 세상은 거기서 거기인 듯 비슷해진다. >
< 기초공사를 돌로 했는데 그 쌓는 방식이 평지에 사는 한국의 가로 방식과 달리 높은 건물의 하중을 아래로 고르게 분포시키려는지 뾰쪽한 돌을 세로로 꽂는 듯 쌓은 것이 눈에 띄었다. >
<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바이수이허(白水河)를 중심으로 1,200채의 조각루가 계단처럼 이어진다. >
< 향촌농가분면관(鄕村農家粉麵館)이라 적힌 간판의 국수 면자가 멋지다. >
식사 후 피곤하여 묘족 마을 꼭대기에 있는 숙소로 오는데 경사가 거의 등산 수준이다. 숙소 도착 후 낮잠을 자다가 4시 30분에 다시 아래 세상으로 하산해 민속박물관을 구경했다. 사람 사는 모습이야 대강 비슷하여 크게 볼만한 것은 없었다. 묘족마을의 야경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건너편 전망대로 향했다. 산등성이에 지은 집들이 밤이 되면 전부 불을 밝혀 큰 등불산을 만드니 옛날 부산의 집을 보고 외국인이 놀랐다는 것이나 온산 국가산업단지의 굴뚝과 조명이 만들어내는 야경을 보고 아파트 불빛이라 생각하고 이런 시골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마을이 있다니 하며 깜짝 놀랐던 내가 생각났다.
♠제 3 일 (2019. 12. 05. 목) 서강 → 진원
6시에 일어나 씻고 가방 정리한 후 8시에 숙소에서 나왔다. 연장자인 정선생, 안선생과 나는 가방을 가지고 SUV를 타고 거의 15분 가까이 걸려 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나머지 4명은 걸어서 도착했다. 차량을 한 대 더 수배해 같이 타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현지 사정을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버스터미널 주변은 시장 겸 식당가여서 아침을 이곳에서 해결했는데 사진 오른쪽의 보라색 나는, 기름에 튀긴 빵과 얼큰한 쌀국수를 주문했다. >
< 이 비법의 국수를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서민 갑부”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될 것이다. 오묘한 맛이다. 서로가 살짝살짝 도우며 완성하는 한 그릇의 예술이다. >
9시 버스를 타고 카이리 터미널에 도착하여 바로 10시에 진원(鎭遠) 행 버스를 타니 12시경에 진원에 도착했다. 강변의 식당을 찾아가다가 이병용 선생이 배낭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기에 한바탕 소동 후 버스 터미널 사무소에서 다시 찾았다. 아직 동양에서는 분실물을 찾을 확률이 서양보다 훨씬 높으니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물질을 숭배하지만 서양보다는 아직까지는 더 도덕적이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경우 분실물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도덕적이라기보다는 곳곳에 깔린 CCTV 때문일 거란 생각도 해본다. 고성묘향우육관이란 거창한 이름의 식당에서 젊은 부부가 차린 점심식사를 했는데 음식이 우리 입맛에 맞아 어떻게나 맛나게 먹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음식사진도 찍지 않은 것이었다. 안선생도 마찬가지여서 겨우 찍은 사진이 아래와 같으니 이곳을 다음에 다시 들릴 맛집이라 해도 되겠다.
< 남은 것이 별로 없이 싹싹 긁어 먹어 접시가 다 비었다. 여행할 때 식사의 경우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
< 외관과 의자가 나무로 된 독특한 시내버스를 타고 숙소를 향했는데 강변의 경치와 시가지가 어울린 것이 대단한 경치라서 왜 이곳을 진원 고성 경구(景區)라 하는지 알겠다. >
< 숙소 3층에서 바라본 river view. 산을 배경으로 강을 바라보니 호쾌한 기상이 절로 생기겠다. >
< 무양하의 무자를 춤출 무(舞)에 삼수변을 붙인 것이 재미있다. 햇볕이 귀한 곳이니 아마 햇볕이 물결처럼 춤추는 강가라는 뜻이리라. 앞에 선 아가씨의 자세가 나부끼는 양 오성기와 더불어 당당하다. >
< 승선을 위해 한참 걸어가는데 곳곳에 위험 표지판이 있고 한국 관광객을 위해 친절히 한국어로 풀이를 해 두었는데 이것이 기가 막힌다. 5와 6번의 영어와 그 해석을 보면 아마 구글 번역기를 돌려 그걸 그대로 적은 듯하다. >
곳곳에 가늘고 긴 폭포수가 떨어지고 어부의 배도 가끔 눈에 띄는데 어부는 어디가고 빈 배만 묶여 있다. 흔히 우리 시조에도 어부의 배가 나오면 항상 어부는 없는 걸로 나오는데 도대체 어부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어딜 다닌단 말인가? 고려가요 서경별곡의 경우라면 대동강 사공은 자기 각시 바람난 줄도 모르고 샛서방을 배에 태워 대동강 건네주는 오쟁이 진 사내로 나오는데 내가 볼 때 가여운 그 사공만 자기 본업에 충실할 뿐이다. 사공들은 앞으로 빈 배를 방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헛소리는 술 한 잔 없이 나올 풍류가 아니거니와 맑은 물에 배 띄우고 좋은 경치 앞두니 나의 인생도 그리 험하고 속되지 않음을 알겠다.
< 공작개병(孔雀開屛) - 공작이 꼬리를 편 바위라는데 술 취한 눈에는 차라리 꼽추 낙타 바위라는 게 나을 듯. >
< 진원의 강변 밤경치가 가히 환상적이다. >
< 밤풍경을 위해 의도적으로 불빛을 배치한 것이 고맙다가도 저 불빛으로 인해 투발루 같은 섬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좀 더 불편해도 되는데, 불편할 필요가 있는데. >
< 시내로 들어와 훠궈 식당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소맥까지 곁들이니 상당히 괜찮다. >
강변 산책을 더 하고 다리 위에서 야경을 더 구경하다가 방으로 돌아와 안선생, 김상득 선생과 소주 한잔 더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제 4 일 (2019. 12. 06. 금) 진원 → 안순
아침에 일어나 세면과 면도를 마치고 8시에 숙소 앞에 모여 아침식사를 할 식당으로 가는 길에 강변 산책을 했다.
< 잔잔히 흐르는 무양하 강변에는 이런 돌판으로 난간을 대신한 것이 눈에 띄었다. 맹하무수(초여름 물결이 춤추고)의 무라고 적힌 자가 무양하의 무와 같아 이 글자의 근거나 연원을 설명하는 듯했다만 글이 짧은 나로서는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이런 돌난간은 진원고성의 문화적 품격도 돋보이게 하거니와 시간이 흐르면 자체가 예술품이 될 듯하다. >
아침식사는 두부전문점에서 했는데 두부요리가 생각도 못해본 것도 있고 두부를 이렇게도 먹을 수 있구나하는 신기한 것도 있었다. 첫 번째 보인 메뉴가 소끽(小喫)의 두부뇌(豆腐腦)였는데 찬 것과 더운 것이 있었고 5위안이었다. 소끽은 간단한 요기니까 두부뇌는 아마 흐물흐물한 우리의 순두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 식당 메뉴표인데 중국 한자 공부하는 데는 메뉴판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글자를 찾아보고 그걸 다시 상상해서 음식을 머릿속으로 그려내야 훌륭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
나는 입 구(口)에 빌 걸(乞)이 붙은 글자를 처음에는 ‘소걸’로 읽었는데 왜 ‘작은 구걸’로 적었을까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게 걸이 아니라 먹을 끽(喫)의 간체자라는 것을 알고 나니 그제야 소끽이 간식이나 스낵 정도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조찬(早餐) 첫 번째 메뉴 “腊肉豆花面”을 ‘납육두화면’으로 읽을지 ‘석육두화면’으로 읽을지 헛갈린다. 아마 두 번째의 석육이 옳을 듯 한데 그 뜻은 포(脯 저며 말린 고기)와 같기 때문이다. 중국은 돼지고기를 소금간해 처마에 달아두었다가 건조시켜 요리재료로 쓰는데 그게 바로 腊肉이니 포와 같은 느낌이 아닌가. 그렇다고 한들 두화면은 또 무엇일까? 면의 종류인데 콩꽃 모양이란 건지 콩꽃을 재료로 했다는 건지, 콩꽃 모양이라면 콩꽃은 또 어떻게 생겼더라? 의문이 꼬리를 이어 일어나니 자동으로 공부가 되지 않겠는가! >
< 순두부에 인절미, 유과와 국수 같이 생긴 것으로 아침을 먹었는데 재미있는 맛이었다. >
< 진원 고성의 마을길을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모택동 주석의 포스터 비슷한 것도 있었고 한참 공산주의가 성할 때의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꾸는 법이고 빛은 어둠을 걷어내는 법이어서 어제 저녁 보았던 불빛의 화려함에 가려진 모습보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불편이 간절하게 와 닿았다. >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니 10시 반이 좀 넘었다. 룸에서 가져간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12시 쯤 되어 체크아웃 후 시내버스로 진원 역에 도착했다. 역 앞 식당에서 식사 후 근처 상가에서 기차에서 필요한 것도 좀 사고 어떤 분은 4위안으로 구두도 닦고 어슬렁거렸다. 3시 40분경에 침대차에 탑승한 후 소맥으로 한잔하니 어느 덧 안순 역이다. 봉고 차로 호텔에 도착해 부근 식당에서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 한잔 더하고 취침하니 하루가 짧다.
♠제 5 일 (2019. 12. 07. 토) 안순 (황과수 폭포) → 싱이
6시 30분에 기상한 걸 보니 어제는 좀 피곤했던 모양이다. 8시에 호텔 조식 뷔페로 식사를 마치고 9시에 체크아웃했다. 전용차로 황과수폭포 풍경구로 출발해 10시에 도착했다. 황과수(黃果樹) 폭포는 18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군락을 이루어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군’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 입구에서 어느 정도 가니 나타난 두파당 폭포(陡坡塘瀑布) 풍경구. ‘가파르고 비탈진 언덕’이란 이름처럼 황과수 대폭포의 상류 1km 지점에 있다. 높이가 21m로 황과수 대폭포의 3분의 1도 되지 않지만, 폭은 105m로 황과수 폭포군 중에서 폭이 가장 넓은 폭포다. 이 멋진 경치에 빠져 여기서 천성교 폭포 풍경구가 얼마나 멀지 우리는 몰랐다. >
< 이것이 중국의 과학적이며 창의적 짝퉁 솜씨다. 대단하지 않은가! 동파육을 저렇게 만들어 팔고 계란과 옥돌도 만들어 판다. 나중에는 보니 천성교 폭포 풍경구로 가는 길가에서 바위 꿀인 석청(石淸)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심지어 꿀벌 서너 마리를 삐끼로 고용해 자발적으로 석청 주변을 날아다니도록 한 디테일에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꿀벌은 짝퉁이 아닌 진짜였다. 게다가 맛을 보니 진짜 꿀맛이 났다. 그러나 사지는 않았다. >
천성교 폭포는 두파당 폭포에서 2km정도 떨어져 있는데 주요 볼거리는 천연 분경구(天然盆景区), 천성동(天星洞), 수상 석림(水上石林) 세 가지로, 약 3.5km 이어진다. 천연 분경구에는 얕은 물 위에 돌로 된 징검다리 365개가 놓여 있다. 다리마다 월 · 일이 표시되어 있어 사람들은 자신의 생일 돌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천성동은 규모는 작지만 첫인상이 강렬하다. 종유석이 하도 많아서 귀신이 튀어나올 것처럼 으스스하다.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면 생김새가 각양각색이다. 수상 석림에는 기이하게 생긴 돌과 작은 폭포, 희한하게 생긴 나무들이 밀집해 있다.
< 천성교 풍경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련추담 폭포(银链坠潭瀑布). 둥근 바위를 타고 수많은 물줄기가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이름 그대로 은구슬로 만든 발이 못 아래로 떨어지는 듯하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이라도 지닌 듯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지켜보다보니 내 몸이 저 아름다운 구슬과 같이 폭포로 떨어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
천성교 폭포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많이 걸어 다리가 아프다. 여기서는 케이블카를 탄다고 하니 다행이라 여겼는데 타는 길이가 사람이 다니지 못할 곳만 연결해주는 정도로 짧았다. 옥수수빵을 사서 요기를 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그리고 또 대폭포를 향한 걷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저러나 이제 남은 것은 대폭포 뿐이다. 중간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으며 슬슬 걸어가니 어느덧 대폭포가 위용을 자랑한다. 폭포 뒤에 있다는 수렴동까지는 너무 멀게 느껴져 자신 있는 사람들만 가고 나와 안선생 등 몇몇은 아래로 내려와 쉬다가 합류해 관람을 마쳤다.
< 대폭포의 하이라이트는 수렴동(水帘洞)으로 폭포 뒤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인데 폭포의 40~47m 지점에 있으며 총 길이는 134m에 달한다고 한다. >
4시 20분 경에 출발해 싱이시(興義市)로 향해 7시 경에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 후 식당으로 가는데 식당가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보니 거의 녹초가 되었다. 푸짐한 안주에 이과두주와 맥주로 피곤한 몸을 달래고 숙소에서 술 한 잔 더하고 취침. 가장 피곤한 하루였다.
♠제 6 일 (2019. 12. 08. 일) 흥의(만봉림, 마령하대협곡) → 귀양
8시에 호텔 조식 뷔페로 식사를 한 후 9시 30분에 전용차량으로 만봉림 풍경구로 갔다. 운남(雲南)에 흙기둥이 빚어낸 토림(土林)과 석회암 바위가 숲을 이루는 석림(石林)이 있다면 귀주에는 카르스트 지형으로 수많은 산봉우리가 숲을 이루는 만봉림(萬峰林)이 있다. 만 개라지만 실제로는 이만 개도 넘는다고 한다. 입구에서 전기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전망 좋은 포인트마다 차를 세워 주면 내려서 사진을 찍었다.
< 여섯 개의 산봉우리가 줄지어 선 것이 이채롭다. >
< 여기서는 팔괘전(八卦田)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카르스트 지형에서 가끔 보이는 형태의 밭이다. 돌리네(doline)라 하며 석회석이 주로 분포하고 있는 지역에서 화학적으로 침식되어 나타나는 지형을 말한다. 싱크홀이 있어 배수가 잘되어 밭농사에 주로 쓰인다고 한다. 여기저기의 가옥에는 농지를 개간한 부이족(布依族)이 살고 있다.
< 전망대 옆에 잘 찍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그걸 다시 찍어 보았다. >
< 이것도 사진작가가 잘 찍은 사진을 다시 찍은 것이다. >
< 만봉림 마을에서 부이족 민속박물관과 생활사 박물관을 관람한 후 달리는 차에서 찍어도 이 정도니까 캘럭시 10은 대단하다. >
< 12시에 만봉림 관람을 마치고 출발해 어제 저녁 먹었던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오늘은 잉어가 희생되었다. >
점심식사 후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라고 불리는 마령하(馬岭河) 대협곡을 향했다. 매표소 입구에서 걸어 내려가니 승강기가 기다린다. 승강기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 협곡의 바닥에서 협곡관광을 시작했다. 지상에서 약 200m 아래 땅이 갈라진 틈새로 74.8km의 협곡이 이어지는데 관광지로 개발된 7km 구간의 양쪽 절벽에서는 총 13개의 폭포가 쏟아진다. 그래서 길바닥이 미끄러워 오르내리기가 힘들었다. 걷다 보니 협곡 절벽을 메운 고동색 물체가 거대한 영지버섯처럼 보이는데 폭포수가 탄산칼슘과 결합해 생겨난 결과물이라 한다. 그러나 출발해 조금 가다가 안선생과 나는 힘도 들고 별 흥미가 없어 휴식을 취하며 일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 25층 정도 되는 승강기가 보이는 옆에 슬쩍 보이는, 안경 쓴 사람은 한스이고 그 옆의 보이는 것은 계단이다. 이 높이를 계단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해 두었다는 말이다. >
< 그래도 온 김에 마령하 협곡 사진은 한 장 찍었다. >
< 마령하 협곡 입구 과일가게에서 과일 하나하나를 종이에 싼 과일을 샀는데 태어나 처음 보고 처음 먹어본 과일이다. 이름도 못 알아봤는데 맛은 상당히 좋다. 알고 보니 비닐 안에 과일을 싸고 있는 것이 종이가 아니라 원래 과일을 싸고 있는 껍질이란 것이다. 희한한 과일이다. >
일행과 만나 입구에서 전용차량을 타고 싱이공항 근처에 오니 시간이 어중간해서 발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1시간에 88위안(우리 돈으로 15,000원 정도)을 주고 며칠 간 고생한 발을 위로해 주었다.
< 저녁식사 시간. 한스와 운전기사가 보인다. 이 집은 음식 수준이 약간 높은 집이라서 격이 있어 보였다. >
식사 후 싱이공항에 도착해 기사와는 작별하고 보안검색 후 9시10분 비행기로 귀양에 도착하니 10시다. 내일 부산 팀 4명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한 방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일 5시 따로 인사 못 드린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헤어져 방으로 돌아와 골아 떨어졌다.
∼ 1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