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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건국 설화 모음 - 혁거세, 김알지, 석탈해, 알영 등등
(M)한국사잡동사니방 2007.03.02 15:30
신라의 개국 전설 - 혁거세, 김알지, 석탈해, 알영설화모음
1. 개국 설화의 특징
신라 개국의 특징은 계통이 다른 여러 유이민 집단이 신라 형성의 토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개국 설화도 혁거세, 알지, 탈해, 알영 설화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 세력이 모여 합의로 세운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어납니다. 신라는 6부 제간 세력이 국사를 공론으로 처리하였고, 만장일치의 합의와 화백회의가 존속했습니다.
알영설화도 혁거세 설화와 마찬가지로 존중되는데, 이것은 왕과 왕비 및 그 자손은 성스럽다는 중고기 성골의 관념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리고 건국 후에도 석씨계, 김씨계 등이 계속 유입되는 과정을 설화에서 보여줍니다.
2. 혁거세 설화의 특징
신라의 개국 설화는 초기 6촌장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6촌장은 한 영역의 최고 지배자이자 독자성을 가진 소국의 지배자였을 것입니다. 신화에서는 이 6촌의 지배자가 모여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는 연맹체적 사회를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신라의 성장 과정을 보면. 정복사업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지배적입니다. 초기 경주 평야 - 낙동강 진출 - 진한 전역의 지배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왕권이 강해지고, 이것이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 식으로 왕명 변천을 통해 보여집니다. 지증왕대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 비로소 국호가 신라로 정해진 것으로 봐도, 신라는 소국체제에서 발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신라 건국기의 사로 6촌 시기부터 신라는 이미 연맹왕국 단계로 시작된 광역국가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것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철기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하호층이 성장하였고, 하호층이 낙랑과 직접 접촉하면서 선진문화를 수용하는 주체가 되어갑니다. 신라 지배층은 하호의 통제가 어려워져서 6국이 군사력을 통합하여 공동으로 권력을 유지한다는 내용입니다. 즉 소국의 지배자(간)들이 최고의 지배자로서 혁거세를 거서간(간 중의 간)으로 선발한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모든 책임은 국왕에게 있어 국왕이 진한 지역을 총괄합니다. 단, 각 지배는 실제 이전 지배 세력에게 위임한 상태이므로, 각 소국에서 간들은 실제 왕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라는 이러한 <중층적인 구조> 속에서 국가체제를 유지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럼 각 설화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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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설화
시조, 성<박>씨,휘<혁거세>.<전한><효선제>,<오봉>원년,갑자,사월 병진[또는 정월 15일] 즉위, 부르기를 거서간이라 했고, 나이는 13세였고, 국호는<서라벌>. 먼저는 바로 <조선> 유민이었다. 나누어 사니 산골짜기를 사이로 하여 6촌이다
첫 번째 가르되 <알천><양산촌> , 두 번째 가르되<돌산><고로....(중략)
<나정>은 수풀 사이에 있었다. 말이 (히히힝) 우는 즉 가 보니까 홀연히 아니 보였다. 다만 있으니 큰 알이었다. 쪼개니 '이슬 과부아이'[이슬이 과하게 불어나]가 출하여 나왔다. 어찌 곧 거두어 마을을 기르지 않겠는가 급년 십여[삼]세에 기상 그렇게 일찍 이루었다. 6부인은 이로써 터가 생겼다. 신으로 따라 밀어 높이었다.이는 바로 세워야 할 임금이었으니 <진>사람 이었다. 이르기를 '표주박'이라 하여 '박'으로써 하였다. 처음에 큰 알 같은 표주박이었다. 옛날에 이로써 朴을 성으로 하였다.거서간, <지지>라 말하니 '임금'이다 [혹은 부르기를 '귀인'이라 갈 하여 칭하였 다]
- 삼국사기 -
사료해석 : 고대 탄생 신화로서 신화적 요소가 상당히 많아 해석이 분분합니다. 고전적 해석은 거서간(귀인) 단계에서 신라는 점차 차차웅 - 이사금 - 마립간 - 왕 등의로 칭호가 바뀌면서 영토가 넓어지고 왕권이 강화돠는 것으로 보아 왕명의 변화 자체가 곧 신라 발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즉, 초기 사로 6국의 언급은 곧 조그만 소국 규모 국가를 상징한다는 것이죠.
최근의 해석은 사로 6촌을 그냥 6부로 파악하면서 진한 소국 6국이 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즉, 초기부터 부족장이 연합한 큰 국가가 사로국이며, 이들 부족장들이 폐쇄적인 귀족 계급을 형성한 것이 골품제도라는 것입니다.(실제 골품제도의 아찬, 파진찬 등 "찬"이라는 명칭이 족장계열의 명칭이라는 주장이 많습니다.) 교과서적 해석은 생략하겠습니다.
사로국의 건국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이 위에 군주가 없어 백성을 다스리려 하니 죄다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굴고 있소.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지 않을 수 있겠소?
- 삼국유사 -
사료해석 : 이 사료의 가치는 신라(사로국)의 건국이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라의 발전을 논할 때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으로 왕호가 변천하면서 왕권이 강화되고. 이것은 영토확장과 연결된다고 보는 입장이었습니다. 즉 왕호변천은 곧 신라사회의 확대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신라의 발전은 정복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관점이지요.
그러나 이 사료는 6촌이라는 진한 소국 연합이 곧 혁거세를 추대함으로서 신라 자체가 처음부터 큰 국가의 규모로 출발함을 보여줍니다. <뿌리깊은 한국사>를 보면, 신라는 철기문화의 보급이 이루어지는 시점부터 하호층이 동요하여 지배계급의 위기가 찾아왔답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고 진한 지배층이 연합하여 사로국을 건국했다는 군요. 그 증거로 당시 국가 경계가 애매하였다는점, 또 골품제도의 "찬"계열은 모두 족장연합계열로 볼 수 있다는 점 등을 증거로 들고 있습니다.
박혁거세 설화
진한 땅에 옛날에 6촌이 있었다. 전한의 지절 원년인 임자년 3월 초하루에 6부 시조들이 저마다 자제를 이끌고 알천 기슭 위에 모두 모여서 의논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이 위에 군주가 없어 백성을 다스리려 하니 죄다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굴고 있소.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하지 않을 수 있겠소?> 라고 하였다.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 곁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내려오더니 백마 한 마리가 꿇어앉아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가 보니 붉은 알이 하나 있고, 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알을 깨보니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이 아이를 경이롭게 여겨 동천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따라 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기에 혁거세왕이라 이름하고 위호를 거슬감이라 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 치하하며 <이제 천자가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있는 여군을 찾아 짝을 지어야 할 것이라>라고 말하였다.
이날에 사량리 알영정 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편 갈비에서 어린 여자아이 하나를 나으니 자태와 얼굴은 유달리 고왔으나 입술이 닭부리 같았다. 월성 북천에 데리고 가서 목욕시켰더니 부리가 빠져 떨어졌기에 그 내를 발천이라 하였다. 궁실을 남산 서쪽 기슭에 짓고 성스러운 두 아이를 받들어 길렀다. 남자는 알에서 태어났고, 또 알은 박처럼 생겼는데 이곳 사람들은 박을 박(朴)이라 하므로 성을 박(朴)이라 하였고, 여자아이는 태어난 우물 이름으로 지었다.
두 성인의 나이가 열세살이 되는 오봉 원년 갑자에 남자가 왕이 되매, 여자를 왕후로 삼고 국호를 서라벌이이나 서벌이라 하였다. 사리나 사로라 하였다고 하기도 한다. 또는 처음에 왕후가 계정에서 태어는 까닭에 계림국이라고 하였다고도 하니, 이것은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내기 때문일 것이라. 일설에는 탈해왕 때 김알지를 얻을 때 닭이 숲 속에서 울었으므로 이에 국호를 계림으로 고쳤다고도 한다.
- 삼국유사 기이편, 신라시조 혁거세왕 -
사료해석 : 나정 숲은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사적 제245호입니다.. 2000년 세계문화유적 등록되었습니다. 오래된 소나무 숲 속에 작은 정자가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자그마한 우물 하나와 기념비도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생설화를 간직한 숲입니다. 천 년 장대한 신라의 역사가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죠.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기원전 69년 춘 삼월에 나정이란 곳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태어나자마자 동천이란 곳으로 옮겨져 씻겨집니다. 말하자면 세례를 받은 것이죠. 가야를 건국한 김수로왕도 태어나서 성스러운 물에 목욕함으로써 성인이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박혁거세가 백마가 난 알에서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백마가 하늘에서 운반해 온 알에서 태어난 것인지는 분명하기 않습니다.
<삼국사기>에서는 박혁거세 즉위 5년(기원전 53년) 기사에 왕비인 알영부인의 탄생설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에는 알영과 혁거세가 똑같은 날에 계룡의 왼쪽 겨드랑이 밑에서 태어났다고 한 반면, <삼국사기>에는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죠. 오른쪽과 왼쪽 겨드랑이가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김부식의 시기에는 우파(오른쪽 집단)세력이 강했고, 일연스님의 시기에는 좌파(왼쪽 집단)가 강해서 똑같은 사실을 좌우를 달리해 기록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알영이란 이름은 무슨 뜻일까요? 고대신라에서는 남자를 알노(閼老. 알치), 여자를 알영(閼英. 아로)이라고 했습니다. 알치에서의 ‘치’는 동냥치, 양아치, 그치, 저치 등에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고, 아로에서의 ‘로’는 남해왕의 여동생인 아로阿老, 남해왕의 왕비인 아루阿婁, 고구려의 소서노召西奴, 부분노扶芬奴 등에서 그 용례를 볼 수 있죠. 알閼은 ‘아리’의 한 문식 표기이며, 아리란 우리 말은 ‘알’, ‘알짜’, ‘알통’, ‘처음’을 뜻합니다. 처음이고 알짜란 뜻의 ‘아리’에서 파생된 우리말로는 ‘아이’, ‘아씨’가 있습니다. 아씨는 원래 갓 태어나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동자(동자. 어린아이)를 뜻했다고 합니다. 이런 뜻에 비추어 보면 알영정이란 우물도 부락의 초입부에 있는 곳이었고, 여자들이 자주 물을 길렀던 곳으로 보입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알영을 서술성모西述聖母의 현신으로 봅니다. 서술성모는 쉽게 말해 마리아와 같이 동정으로 잉태할 수 있는 동양식 성처녀이지요. 알영의 이런 신화적 속성 때문에 문제가 좀 복잡해집니다. 즉 알영은 박혁거세의 아내이며 어머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아내와 어머니의 위상이 혼재되는 사회는 모계사회와 부계사회가 혼재되는 사회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런 과도기적 사회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결혼하는 모자혼, 아버지와 딸이 결혼하는 부녀혼, 형제 사이에 결혼하는 자매혼의 단계를 거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알영을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볼 수 있는 근거는 <삼국유사>입니다. 삼국유사에서 계정은 계룡이 사는 우물이고, 그 계룡에서 알영이 태어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처음으로 왕이 되었다는 것이 증거입니다. <삼국유사>의 이 부분만을 보면 신라의 최초 왕은 박혁거세가 아니라 알영인데요, 이런 모순 때문에 어떤 학자는 초왕생어계정初王生於鷄井‘이란 구절에서 ’왕王‘자를 ’후后‘자의 오기로 보기까지 합니다. 즉 박혁거세가 계정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의 왕후인 알영이 태어났다는 것이죠. 하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박혁거세가 모두 나정 근처의 숲에 있던 알에서 태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일치합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신라의 최초의 건국시조인 박혁서세가 실은 알영이며, 그녀는 당시 모계사회의 여제사장이었을 것으로 주장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여왕을 세 명이나 모셨던 신라이니,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만은 없습니다.
알영이 태어났다는 계룡도 해석을 요하는 부분입니다. 계룡은 닭을 가리키는 계鷄와 용龍이 결합된 것이지, 닭처럼 생긴 이상한 용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죠. 동양의 설화에 등장하는 닭의 설화적 원형은 ‘세 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三足烏입니다. 삼족오는 흔히 태양에 사는 새로 묘사됩니다. 이것은 태양을 숭배하는 북방계통에서 나오는 천손강림설화의 원형입니다. 북방계에서 새는 태양의 상징, 천신족의 상징이며, 천신족은 북방계 유목족을 가리킵니다. 천신족이 숭상하는 닭은 암흑과 귀신을 물리치고 광명과 상서로움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닭은 곧 새벽이요, 태양이다. 닭이 음양오행설과 결합하면 주작朱雀이 되어 남쪽의 수호신이 됩니다.
용은 기본적으로 인도문화, 즉 남방문화의 상징입니다. 우리 문화에서 용의 원형은 거북(龜)이죠. ‘구지가’나 ‘해가사’를 보면 거북이 당시 신라나 가야 등에서 얼마나 숭배를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거북은 남방문화가 강세를 띠면서 상상의 동물인 용으로 변화합니다. 용은 수신水神족과 농경족을 상징합니다.
계룡을 그렇게 본다면, 알영이 탄생할 당시의 사회상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족과 호랑이족이 등장하고, 알영신화에서는 닭족과 거북족이 등장합니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족이 호랑이족보다 우세하여 곰녀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알영신화에서는 닭족보다 거북족의 힘이 더 셌다고 합니다. 그래서 닭은 열세이고 거북, 즉 용이 우세한 쪽으로 계룡족의 연합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알영에게는 남방계 농경사회의 모권적 요소와 북방계 유목사회의 부권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권적 요소가 강화되어 용이 닭을 대체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 이 해석은 옛날 어떤 책에서 내용을 노트에 옮긴 것인데, 지금 출처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생각나면 출처를 올리겠습니다. -
알영 이야기
혁거세서간 5년(기원전 53년) 봄 정월에 알영을 왕비로 삼았다. 이에 앞서 용이 알영정에 나타나 오른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어떤 할멈이 보고서 이상히 여겨 거두어 키웠다. 우물 이름을 따서 아이 이름을 지었는데, 자라면서 덕행과 용모가 뛰어났다. 시조가 이를 듣고서 맞아들여 왕비로 삼으니 행실이 어질고 안에서 보필을 잘하였다. 당시 사람들을 둘을 이성(二聖)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혁거세거서간 5년조 -
사료해석 : 혁거세 설화가 담긴 삼국사기 기록의 뒷부분 알영이야기입니다. 해석은 윗 사료들과 동일한 부분이라 생략합니다.
석탈해 설화
탈해는 본래 다파나국(용성국, 정명국, 완하국, 화하국이라고도 함, 위치는 모름)에서 태어났는데, 그 나라는 왜국의 동북쪽 천리되는 곳에 있다. 앞서 다파나국이 여국왕의 딸을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는데, 임신한 지 7년이 되어 큰 알을 낳았다. 왕이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알을낳은 것을 성서롭지 못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여자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단으로 알을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워 가는 대로 가게 맡겨 두었다.
처음에 금관국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금관국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거두지 않았다.(가락국기에는 탈해가 수로왕과 싸워 쫒겨났다고 전해짐) 다시 진한 아진포 어귀에 다다랐다. 이 때는 시조 혁거세가 왕위에 오른지 39년이 되는 해다. 그 때 바닷가에 있던 할멈이 줄을 끌어당겨서 해안에 매어놓고 궤짝을 열어보니 어린아이가 하나 있어 할멈이 거두어 길렀다. 장성하자 키가 아홉자나 되고 풍체가 빼어나고 환했으며,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아이의 성씨를 모르니 처음에 궤짝이 도착했을 적에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울면서 따랐으므로 마땅히 작(鵲)에서 조(鳥)를 빼 버려서 석(昔)으로 삼고 또 궤짝을 열고 나왔으므로 탈해(脫解)라고 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탈해는 처음에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여 어머니를 모셨는데, 한번도 게으른 기색이 없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골상이 특이하니, 마땅히 학문을 하여 공명을 세워라.>라고 하였다. 이에 오로지 학문에만 힘써 지리까지도 더불어 알았다. 양산 아래 호공의 집을 바라보고는 길지라고 여겨 속임수를 써서 그곳을 빼앗아 살았는데 그 땅은 나중에 월성이 되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즉위년 -
가락국 바다 가운데에 배가 와서 닿았다. 가락국 수로왕이 신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함께 북을 치고 맞아들여 머물게 하려고 하니, 배가 곧 나는 듯이 달아나 계림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에 이르렀다. 마침 포구 가에 한 노파가 있어 이름을 아진의선이라 하니, 혁거세의 고기잡이 할미였다. 바라보고 말하기를 <아 바다 가운데 본래 바위가 없었는데 까치가 모여들어 우는 것을 무슨 일인가?> 하고 배를 끌고 가서 찾아보니 까치가 배 위에 모여들고 배 가운데 궤짝 하나가 있는데, 길이가 20척, 넓이가 13척이나 되었다. 배를 끌어다 나무숲 밑에 두고 길흉을 알지 못하여 하늘을 향해 고하였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궤를 열어보니 단정한 사내아이와 함께 7보와 노비가 가득 차 있었다.
<사내아이가 대접받은 지 7일만에 말하되, <나는 본래 용성국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일찍이 28용왕이 있었는데, 모두 사람의 태에서 나왔고 5-6세 때부터 왕위를 이어 만민을 가르쳐서 성명을 올바르게 하였소. 8품의 성골이 있으나 선택하는 일이 없이 모두 교대로 왕위에 오른다오. 이 때 우리 부왕 함달파가 적녀국 왕녀를 맞아서 비로 삼았는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기도하여 아들을 구하였더니, 7년 뒤에 큰 알 하나를 낳았더라오. 이에 대왕이 군신에게 물으니 사람으로서 알을 낳음은 고금에 없는 일이니 이는 불길할 징조라 하여 궤를만들어 나를 그 속에 넣고 또 7보와 노비를 배 안에 가득 실어 바다에 띄우면서 축원하되, 인연이 있는 곳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라 하였소. 그러자 문든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여 여기에 다다른 것이요>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자 아이가 지팡이를 끌며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에 올라 돌무덤을 만들고, 7일 동안 머물면서 성안에 살만한 곳이 있는가 바라보았다. 마치 초승달같이 둥근 봉강이 있어 지형 오래 살 만한 곳이였다. 내려와 찾으니 바로 호공의 집이였다. 이에 모락을 써 몰래 숫돌과 숯을 그 곁에 묻고 이튿날 이른 아침에 그 집 문에 가서 이것이 우리 조상 때 집이라 하였다. 호공은 아니라 하여 서로 다투며 결정하지 못하고 관가에 고하였다. 관에서는 무엇으로써 너의 집임을 증거하겠느냐 하였다. 사내아이가 가로되,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잠시 이웃 시골에 가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사고 있으니 땅을 파보면 알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말대로 파보니 과연 숫돌과 숯이 있으므로, 그 집을 차지하였다.
이 때 남해왕이 탈해의 슬기 있음을 알고 맏공주로 아내를 삼게 하니, 이가 아니부인이다. 탈해가 재위 23년인 건초 4년 기묘에 돌아가니 소천구에 장사 지냈다. 그 뒤에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말하기를, <내 뻐를 삼가 묻어라>하였다. 머리뼈 둘레가 3척 2촌, 몸뼈 길이가 9척 7촌이나 되며, 이가 엉키어 하나가 된 듯하고, 골절이 모두 이어졌으니, 참으로 천하에 짝이 없는 역사의 골격이였다. 부수어 소상을 만들어 대궐 안에 모셨더니 신이 또 일러가로되, <내 뼈를 동악에 두어라>하므로 거기에 봉안하게 하였다.
- 삼국유사 기이편 -
완하국 함달왕 부인이 홀연히 아이를 베어 달이 차서 알을 낳았는데 사람으로 변하였으므로 이름을 탈해라 하였다. 탈해가 바다를 통해 가락국으로 오니 키가 3척이요, 머리 둘레가 1척이였다. 거침없이 대궐로 들어가서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내가 왕위를 뺏으려고 왔다>고 하였다.
왕이 대답하기를, <하늘이 나를 명하영 즉위하게 하여 장차 나라 안을 편안히 하고 백성들이 안심하고 살게 하였으니 감히 하늘의 명령을 어겨 왕위를 넘겨주지 못할 일이고, 또 우리 나라와 백성을 너에게 맡길 수도 없다>고 하였다. 이에 탈해가 그러면 재주와 술법으로 겨루어 보겠냐고 하자 왕이 좋다고 하였다. 삽시간에 탈해가 변하여 매가 되니 왕은 독수리로 변하였고, 탈해가 또 참새로 변하니 왕은 새매가 되었는데 한순간도 틈이 없었다. 조금 있다가 탈해가 본래 모습으로 변하자 왕도 또한 제 모양으로 돌아왔다. 이에 탈해가 항복하여 말하기를, <제가 술법을 다투는 데 독수리에 대한, 새매에 대한 참새가 되었으나 죽음을 면한 것을 대개 성인께서 죽이기를 싫어하는 어진덕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왕과 더불어 왕위를 다투기는 실로 어렵겠습니다> 하고 곧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부근 교외에 있는 나루터로 가서 나라안배들이 드나드는 수로에 머물려고 하였다.
왕은 탈해가 남아 있으면서 난을 꾸밀까봐 염려하여 급히 해군 500척을 보내 쫒으니 탈해가 계림의 영토로 달아나므로 해군은 모두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기사에 실린 내용은 신라의 기사와 많이 다르다.
-삼국유사 기이편, 가락국기 -
사료해석 : 석탈해 설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가락국기가 서로 다르며, 사료에 따라 세가지의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로 묘사됩니다.
1. 어업 세력으로서의 성격 : 탈해가 바닷길을 거쳐 신라로 들어왔고, 또 동해에서 어업으로 혁거세와 연결되어 있던 아진의선이 도와줘 중앙정계에 진출하였다는 내용입니다.
2. 야장(대장장이)로서의 성격 : 경주로 들어와 거짓 계략을 써서 호공의 집을 빼앗을 때 그의 선조가 대장장이라고 주장했다고 하는 것에서 볼 수 있습니다.
3. 무장으로서의 성격 : 탈해는 체구가 커서 천하의 역사로서 골격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3가지를 종합하면, 탈해는 발달한 철제 무기와 도구를 배경으로 동해 일대에서 어업, 해상 세력을 장악한 무장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탈해는 남해왕의 딸과 결혼하였다는 것에서 그 세력과 연계했을 가능성도 크고, 이 사료를 토대로 신라에서는 해상 세력이 많은 권리를 누리며, 강성했음을 조심스럽게 유추할 수도 있습니다.
탈해는 62세의 늦은 나이로 왕에 올라 24년을 왕에 있었으니 장수한 왕입니다. 이렇게 장기 집권한 왕이 유리이사금에 의해 왕이 되었기 때문에 유리 이사금의 아들에게 다시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은 나이상으로도 약간 의문이 가지만, 또한 과연 이렇게 다른 성씨 세력끼리 평화로운 왕위계승이 가능했을까하는 의구심도 갖게합니다.
김알지 설화
탈해왕 9년(서기 65년)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의 숲에서 닭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새기를 기다려 호공을 보내 살펴보게 하였더니, 금빛 나는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아래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서 아뢰자,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보았더니 조그만 사내아이가 그 속에 있었는데, 자태와 용모가 기이하고 컸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귀한 아들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하고는 거두어서 길렀다. 성장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예 알지라 이름하고 금궤짝에서 나왔기 때문에 성을 김이라 하였으며, 시림을 바꿔 계림이라 이름하고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탈해이사금 9년조 -
영평 3년 경신 8월 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가다가 큰 빛이 시림 속에서 나타남을 보았다. 자색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뼏쳤는데 구름 가운데 황금 궤짝이 나무 끝에 걸려 있고 빛이 궤짝에서 나오며 또 흰닭이 나무 밑에서 우는지라 이를 왕에게 아뢰었다. 왕이 그 숲에 가서 궤를 열고 보니, 그 속에서 사내아이 하나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마치 혁거세 고사와 같으므로 그 말에 인하여 알지라 불렀다. 알지는 곧 어린이를 가르키는 우리말이다. 사내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기뻐하고 따르며 뛰놀았다.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라 하였다. 알지 는 열한(세한, 성한이라고도 함)을 낳고, 열한은 아도를 낳고, 도는 수유를 낳고, 유는 우보를 낳고, 보는 구도를 낳고, 도는 미추를 낳아 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에서 시작되었다.
-삼국유사 기이편, 김알지 탈해왕대 -
사료해석 : 알지는 김씨계의 시조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김씨계는 황금으로 표상되는 경제력을 발판으로 집권한 세력이라는 설들이 있습니다. 특히 육로를 통한 대외 무역으로 경제력을 쌓았다는 설이 <뿌리깊은 한국사>에 수록되어 있는데, 신라 고분에서 로마 제국이 원산지인 유리제품들이 많이 나오는 사실로 이를 뒷받침한다고 적혀있습니다.
박, 석, 김씨 중 가장 나중에 들어온 김씨계가 신라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이 설화는 박·석 양씨보다 먼저 경주에 정착했으나, 정치적으로는 그후에야 비중이 커지게 된 김씨 부족이 그들의 토템인 닭과 조상을 연결시켜 만들어낸 것으로 추측됩니다. 근래에는 '금'(金)부족의 족장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의 7대손 미추이사금 때부터 신라 왕족에 김씨가 등장했습니다.
계림이란? - 첨성대와 월성 사이의 숲인데, 여기서 발견된 금궤에서 김씨 시조인 김알지가 나왔다고 합니다. 김알지가 태어나면서 신라는 국호를 서라벌에서 계림으로 고쳤다고 하는데, 신라는 이것을 이후 사로라고 하였다가, 지증왕 때 신라라고 고칩니다. 그러나 사료에서는 그 뒤에서 신라를 지칭할 때 계림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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