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신학의 부활에 대한 사상사적 탐색
1. 근대의 계몽 사상가들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이성 향상을 통해 종교적 영향력이 정치적 영역에 미치는 파장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지금 지속되고 있다. 인간의 정치적, 윤리적 생활과 관련된 수많은 논쟁과 주장 속에는 여전히 신의 계시와 인간의 종교적 열정에 기대는 분위기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종교를 정치에 끌어들이는 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신의 계시가 담겨있다는 점을 은폐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주장의 핵심근거로 활용한다. 그러한 태도가 사람들에게 훨씬 강렬한 정치적 힘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제도적으로만 작동할 뿐 선동가들의 연설 속에는 대중을 자극하는 광신적 열정에 대한 강한 종교적 신념이 폭발하고 있다.
2. 마크 릴라의 <사산된 신>은 서구 정치사상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미치고 있는 정치신학이 어떤 방식으로 근대정치철학과 갈등을 겪으면서 지금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것은 종교에 오염된 정치의 실상을 보여주는 작업이기도 하다. ‘정치적 영역’에 미치는 정치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왜 특정한 종교적 신념들은 정치생활 원리로 발달하는가? 인간은 어떤 근거에거 자신들의 정치문제를 신에게 맡기는가?’ 서구에서 기독교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정치는 철저하게 신학의 하수인에 불과했다. 정치적 결정의 근거는 철저하게 ‘신의 계시’에 의존하였던 것이다. 근대의 자연과학적 발전은 신의 계시적 정치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세상의 존재와 운동의 근본원리가 신과는 무관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근대 자연과학은 인간의 정치적 영역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는 실패했다. “근대 자연과학은 신이 성서를 통해 명령을 내린다거나 교황과 기독교인 군주에게 타락한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부여했다는 주장을 부인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3. 그럼에도 근대의 사상가들의 계속된 문제제기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촉진시켰다. 그러한 변화를 이끈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하나가 홉스였다. 홉스는 종교의 뿌리가 인간의 무지와 공포에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 기독교의 신학-정치적 논쟁의 주제를 신의 계시에서 인간의 열정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로 전환시켰다. 이후 등장한 사상가들은 종교의 억압적 태도를 비판하였고 종교적 관용을 주장하였다. 그들은 교역과 부르주아적 생활양식, 가족유대감, 개인의 책임과 재산, 시민의 의무, 과학과 기술의 발달 속에서 종말론적 논쟁을 멈출 것이라고 낙관하였다. 기독교의 계시적 성격을 전환시키려 했던 일련의 신학자들은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성서적 내용을 계시적 성격이 아닌 도덕적 원칙과 근대적 생활의 근거로 활용하였고 예수의 성격도 윤리교사적 특징으로 규정하였다.
4.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자들 또한 정치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를 시도하지 않았으며 종교가 일상의 윤리와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연결시켰던 것이다. 그들의 문제점은 구체적인 정치상황에서 독일의 군국주의에 대한 굴종적 태도를 보였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사상이 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확신을,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운명에 대한 애착을 심어주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결국 1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종말론적 계시를 강조한 바르트와 같은 신학자들을 통해 정치신학 특히 메시아적 정치신학이 부활하게 된 것이다. 메시아적 정치신학의 핵심적 원리는 인간의 궁극적 운명은 정치가 아닌 오직 신의 구원 속에서만 발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사회적 혼란은 인간과 문화에 대한 강조보다는 종교적 열정에 대한 헌신으로 인간들을 집중시켰다. “카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이 영향을 미친 세대는 그들의 자유주의 스승들이 찬양했고 1차 세계대전 때 자결해버린 문화와 타협할 의사가 없었다. 그들은 미지의 신, ‘전적인 타자’, 은폐의 하나님과 대면하고자 했다. 그리고 모순 속에 살면서 창조에 내재된 종말론적 갈등을 느끼고자 했다.”
5. 정치에 미친 종교의 영향에 대한 역사를 보면 종교적 영향을 떨쳐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운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인간의 내재적인 종교적 감성이 있다는 점에서 쉽게 바뀔 수 없는 어려운 인간의 속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속성일지라도 그것을 악용하고 선동하여 광신적 행위에 대한 근거로 활용하거나 상대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면 종교의 광신적 열정은 제어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정치체제를 구성한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 태도와 관계없이 제도적으로 정교분리를 미국 헌법의 핵심적 원리로 구성한 것은 중요한 결정이었다. 그럼에도 종교적 열정을 통해 정치적 영향을 확산시키려는 행위는 대중정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현재 한국사회 광장에서 ‘신의 계시’를 앞세워 차별과 선동을 일삼는 광신적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증거인 것이다.
6. 저자는 왜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어려운가를 사상사적 흐름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그러한 변화를 살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어떻게 합리화되고 왜곡되면서 우리를 지배하는가를 파악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그들의 저작이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거기서 정치신학이 얼마나 끈질긴지, 그것이 서구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가장 혐오스러운 근대정권을 정당화하는데 적용될 수 있는가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혼란의 상당한 부분이 종교적 광신을 통해 재확산되고 있다. <사산된 신>은 그러한 광신의 뿌리를 파악하고 정치에 개입된 종교의 위상을 냉정하게 이해하는 데 중요한 준거점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댓글 -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현대 사회 체재의 토대이자 상식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부정하는 종교는 시민들의 지탄을 받아야 하고 법의 심판에 복종시켜야 한다. 선량한 시민들을 현혹시키는 사이비 집단은 이미 종교의 자유를 말할 자격이 없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초법적 저항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를 이용하는 사이비 선동가는 엄격한 법의 집행으로 이 사회에서 쫓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