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보니, 어떤 보살은
몸과 살과 손과 발과
또 아내와 자식을 보시하고
무상불도(無上佛道)를 구합니다.1-53
부견보살 신육수족 급처자시 구무상도
復見菩薩 身肉手足 及妻子施 求無上道
1-부견보살(復見菩薩)은! 석가모니부처님이 무량의처삼매에 들어가 광명을 놓으심에, 타방세계에 보살이 보살도(菩薩道) 닦음에 먼저 보시바라밀 닦는 일을 노래했다.
2-보살에 둘이 있다. 첫째 출가보살. 둘째 재가보살이다. 이는 모습에 입각해 보살을 구분한 것이다.
3-보살을 경전에 입각하면 넷이 있다. 첫째 방등교의 보살. 둘째 반야교의 보살. 셋째 화엄교의 보살. 넷째 법화교의 보살. 이다.
4-보살을 수행계위에 맞추면 다시 넷이 있다. 첫째 장교보살. 둘째 통교보살. 셋째 별교보살. 넷째 원교보살. 이다.
5-보살을 공관(空觀)에 입각해 구분하면 셋이 있다. 첫째 즉공(卽空)보살. 둘째 불공(不空)보살. 셋째 중도(中道)보살. 이다.
6-보살을 보시바라밀에 따라 나누면 셋이 있다. 첫째 재물(財物)보시. 둘째 사신(捨身-제 몸을 보시함)보시. 셋째 사명(捨命-목숨을 바침)보시. 이다.
7-만약에 보살의 등급에 맞추어 설명을 하면, 보살의 수행계위는 8만4천 단계의 수행계위가 있다. 이렇게 보살을 낱낱이 구분하여 설명을 하면 무량하여 끝이 없다.
8-한 명의 보살이 시방세계를 돌면서 만나는 부처님의 수가 무량천만억 명이면, 한 명의 보살이 시방세계를 돌면서 이름을 얻게 되는 그 수 역시 무량천만억 개이고, 수행계위의 이름 역시 무량하다.
9-관세음보살의 이름을 가지고 수행과에 입각해 풀이하면, 관세음보살의 계위를 가지고, 수행과 공덕에 의해 얻어진 것일 경우, 어떤 중생이든 관세음보살의 수행과 공덕을 닦게 되에 되면, 관세음보살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니, 관세음보살은 보살수행과의 이름임을 알아야한다.
어떤 중생이 불도를 닦아 관세음보살이 되었다 여겨, 시방세계에 한 명의 관세음보살만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어떤 중생이든 관세음보살을 닦으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얻게 되는 것이니, 지금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경우도 역시 과거 무량한 겁 전에, 어떤 한 명의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경지를 닦아 관세음보살이라는 명칭을 얻은 것임을 알아야한다.
따라서 지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경우, 시방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관세음보살 중에 한 명일 뿐이고, 지금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관세음보살의 그 본지 즉 최초의 중생일 때를 추적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본지(本地)에서는 수많은 관세음보살이 계시고, 적문(迹門)에서 한 명의 관세음보살만 있는 줄을 알지만, 적문 역시 수많은 관세음보살이 계신다.
법화경에서 오백제자수기품에 이르시길, “지금 이곳에 있는 5백 명의 아라한은 모두 하나의 이름으로 보명여래라 불리게 되리라.”하신 것처럼 부처님의 이름 역시 이와 같은데 하물며 보살의 이름에 있었으랴!
10-보살을 일승석(一乘釋)에 입각해 풀이하면, 법화경을 지니고 읽고 외우며 깊이 이해하고 남에게 말해주면, 이를 중생이지만 일승보살(一乘菩薩)이라 하니, 누구든 법화경을 읽으면 얻게 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어떤 중생이든 법화경을 의지해 믿음을 가지고 수희(隨喜-법화경의 내용을 듣고 기뻐함)를 하면, 8만 명의 대보살의 이름을 얻게 되니, 이를 중생이지만 묘법보살(妙法菩薩)이라 한다. 따라서 8만 명의 대보살 중에 한 명의 보살을 뵙고자 하는 일은 작은 소원이므로, 8만 명의 대보살이 원하는 일이 아니다. 8만 명의 대보살이 원하는 것은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어떤 중생이든 나의 이름을 얻게 되리라.”하심이 바로 8만 명의 대보살이 원하시는 바임을 알아야한다.
8만 명의 대보살이 법화경을 배우고 유통하는 일과, 중생이 법화경을 배우고 유통하는 공덕에는 조금도 차별이 없다. 따라서 이를 연화보살(蓮華菩薩)이라 한다. 법화경을 배우는 일을 상구보리(上求菩提)라 하고, 법화경을 유통하는 일을 하구중생(下求衆生)이라 한다면, 어찌 법화경에 와서 보살과 중생에 차별이 있겠는가!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이르시길, “보살이여! 법화경을 지닌 중생을 보거든 부처님을 뵙듯이 해야 한다.”하시었고, 또 “법화경의 사람은 시방의 대보살을 스승님처럼 여겨야 한다.”하셨으니, 어찌 둘에 차별이 있으랴!
법화경에 와서는 중생이건 보살이건 부처님이건 동일하여 차별이 없다. 이를 경전보살(經典菩薩)이라 한다. 만약 방편의 가르침에 의지할 경우라면 반드시 차별이 있기 마련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두 가지의 방편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소승의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가르침이고, 둘째 보살의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화경은 오로지 부처님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전보살은 방편의 부처님을 의지하는 일이 없고, 오로지 본불(本佛)을 의지해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에 경전보살이라 하는 것이다.
11-신육수족(身肉手足)은! 제 몸을 보시하는 일을 말하니, 안의 보시라 한다. 앞의 게송에서 재물 따위와 지금 처자(妻子) 등을 보시하는 일을 밖의 보시라 한다.
만약 일승석에서 보시를 풀이하면, 어떤 중생이 법화경을 읽고 외우면 이미 안의 보시를 하는 것이고, 법화경을 남에게 읽고 외우라고 주면 밖의 보시가 되니, 손발을 보시하고 처자를 보시하는 일에 비하면 그 공덕이 매우 커다.
12-급처자시(及妻子施)는! 아내와 자식을 모두 불도(佛道)에 들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가까운 인연에서부터 멀리 있는 인연을 말씀하신 것이다. 법화경에서 이르시길, “어머니시여! 저희가 부왕(父王)을 교화해 불도에 들게 하였습니다. 이제 저희들 역시 다시 출가하기를 원하오니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하시었다.
13-구무상도(求無上道)는! 이 게송은 방등보살이 방등불(方等佛)의 무상도(無上道)를 노래한 것이다. 반야불(般若佛)의 무상도와 화엄불(華嚴佛)의 무상도와 법화불(法華佛)의 무상도와 비교하면, 그 위치에 있어 낮고 높음에 구분이 있다. 비유를 들면, 초등학생과 중학생과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함께 아버지의 이름을 알고 부르지만, 제 아버지를 이해하는 관점에는 차이가 있는 것과 같다.
14-삼관(三觀)에 입각해 풀이하면, 신육수족(身肉手足)의 보시는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이라 하니, 제 몸을 살펴서 공(空)에 들어가 열반을 체득하는 것을 말하고, 급처자시(及妻子施)의 보시는 종공입가관(從空入假觀)이라 하니, 공(空)에서 나와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말하고, 구무상도(求無上道)의 보시는 중도제일의관(中道第一義觀)이라 하니, 앞에 두 관법(觀法)을 방편관(方便觀)으로 삼아 중도관(中道觀)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偈頌-
법화경을 지니면 중생일지라도
이미 보살이라 부른다.
법화경을 읽고 외우면
안의 보시를 한다고 하고
읽고 외우라 남에게 말해주면
밖의 보시를 한다고 하며
법화경을 믿고 수희(隨喜)하면
이를 무상(無上)보시라 한다.
-寶雲法師 無上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