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75)
●[단편소설]
《하모니카 찬가 (讚歌), 징하다 그 사랑 한번》
1. 쇠붙이 틈새로 흐르던 숨결
지독히도 눈치가 보이고 설움이 시리던 어릴 적 친척 집에서의 생활은 어린 영혼에 지우기 힘든 멍을 남겼다. 눈칫밥에 목이 메고 서러운 소리가 가슴에 박히던 날이면, 나는 말없이 동네 시냇가 외딴 버드나무 밑이나 컴컴한 골목길 뒤편으로 도망치듯 달려가곤 했다. 그곳에서 흙먼지 묻은 주머니 속 작은 쇠붙이 하나를 꺼내 쥐었다. 하모니카였다.
날숨과 들숨으로 빚어내는 그 가냘픈 선율을 입술에 대고 숨을 몰아쉬다 보면, 가슴속에 얹혀 있던 묵직한 돌덩어리가 조금씩 깎여 나가는 듯했다. 서러움에 겨워 뺨을 타고 흐르던 짠 눈물이 하모니카 리드 안으로 스며들어 차갑게 굴러갈 때, 그것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내 외로움을 묵묵히 받아내 주던 단 하나의 살가운 동무였다. 차가운 쇠붙이에서 새어 나오는 따스한 음색만이 유일하게 나를 안아주는 온기였다.
그 작은 위로는 청춘의 길목마다 늘 배경음악처럼 흘렀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산성으로 소풍을 갔던 날이 기억난다. 다들 장기자랑이랍시고 쭈뼛거리며 유행가를 부를 때, 나는 말없이 하모니카를 입에 물었다. 고적한 산성 바람을 타고 번지던 아련한 독주는 거친 노래들보다 훨씬 깊게 친구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대학생이 되어 찾아갔던 농촌 봉사활동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린 어르신들이 모인 낡은 마을회관에서 내가 옛 가요 메들리를 불어 젖혔을 때, 주름진 노인들의 얼굴에는 아이 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어깨춤을 추며 박수를 쳐주시던 어르신들의 호응은 어떤 거창한 무대보다 뜨거웠다.
군대 시절, 얼어붙을 것 같던 휴전선 GP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마치고 녹초가 된 소대원들 앞에서 불던 휴식 시간의 연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마치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서 전장의 고요 속에 울리는 애잔한 하모니카 소리에 병사들이 전쟁조차 잊고 넋을 잃었던 것처럼, 혹은 영화 '마농의 샘'의 주인공 장이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전원에서 베르디의 ‘운명의 힘’을 하모니카로 불며 깊은 충만감을 누렸던 것처럼, 내 숨결이 닿은 은빛 소리는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었다. 하모니카의 두 줄의 작은 구멍에 가락을 맞춰 숨을 불고 마시면 온 세상 소리가 깨어나는 듯했다. 그것은 은빛 소리와 내 영혼이 만나는 은밀한 접점이었다.
2. 허울 좋은 사상누각과 뜻밖의 도전
나이가 들어 어엿한 사회인이 된 어느 날, 일간지 구석에서 발견한 ‘행복바이러스 하모니카 오케스트라' 단원 모집 광고는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연주자로서의 열망을 다시금 흔들어 깨웠다. 나도 드디어 멋진 화음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입했다. 그러나 그곳이 내가 알던 순수한 음악의 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젊은 지휘자는 내게 가장 기본적인 트레몰로 하모니카 대신, 거대하고 낯선 특수 악기인 ‘코드 하모니카’ 연주를 맡겼다. 처음에는 남들이 다루지 않는 크고 화려한 악기를 다룬다는 생각에 선뜻 응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철저한 계산 아래 이루어진 일임을 깨달았다. 트레몰로의 호흡과 베이스 주법 등 가장 기초적인 밑바탕도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코드와 베이스를 다루는 것은 그야말로 '사상누각(砂上樓閣)'이었다. 모래 위에 쌓은 성은 이내 흔들렸고 연주는 늘 삐걱거렸지만, 그는 내 기본기를 다져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오케스트라라는 외형을 화려하게 꾸미기 위해 나라는 존재를 부품처럼 끼워 맞춘 것에 불과했다. 회원의 성장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이익과 명예만을 생각하는 영악한 강사일 뿐이었다.
그의 이기적인 면모는 '하모니카 지도자 과정'에 들어가면서 한층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교단에 선 그는 수강생들을 장악하고 제 권위를 세우기 위해 무례하게 압박을 가하곤 했다. 어느 날은 동료 수강생들 앞에서 예고도 없이 특정 사람을 지목해 질문을 던졌다.
“자, 김 선생님. 지난주에 공부한 조바꿈을 아는 대로 말씀해 보세요.”
“<학교종> 곡을 3도 베이스, 5도 베이스, 옥타브 베이스로 실연해 보세요.”
수업이라는 미명 아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나이 지긋한 수강생들이 당황하여 쩔쩔매고 있으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 차가운 조소를 날리며 여러 사람 앞에서 무안을 주었다.
“이 정도 기본 공식도 안 외우고 어떻게 지도자가 되겠다는 겁니까? 연습이 전혀 안 되어 있으시네요. 제대로 못 하실 거면 복도로 나가서 연습하고 들어오세요.”
머리 허옇게 바랜 시니어들이 새파랗게 젊은 강사의 날카로운 언사에 얼굴이 벌게진 채 고개를 숙여야 했다. 대답하기 힘든 질문으로 일부러 망신을 주며 기(氣)를 꺾어놓는 잔인한 교수 방법이었다. 지식의 전달자, 기능의 전수자라는 위치를 이용해 타인에게 모욕감을 주며 제 권위를 높이려는 모습을 보며 내 안에서 깊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 무렵,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처럼 외롭게 제 자리를 찾지 못하던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에서 하모니카 특별활동 강사로 일하고 있다는 옆자리 짝꿍 정현 씨였다. 배움을 더하겠다는 마음으로 입회한 그녀는 가녀린 외모와 달리 하모니카를 대하는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단단한 사람이었다. 마침 '서울하모니카페스티벌'의 개최 소식이 들려왔고, 우리는 이 무기력한 공기를 깨뜨려보자는 무언의 합의 아래 시니어부 듀엣 부문에 도전하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녀가 선택한 악기는 정갈하고 맑은 소리를 내는 '트레몰로 하모니카'였고, 내가 쥔 것은 독특하고 경쾌한 음색인 반주용 '비네타 하모니카'였다. 우리가 선택한 곡은 생기발랄한 정취가 묻어나는 명곡, ‘낭랑 18세’였다. 비네타 하모니카의 독특한 화음 위로 정현 씨의 트레몰로가 경쾌하게 나무를 켜듯 선율을 얹는 구성이었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강사의 눈치가 보여 정식 연습실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우리는 자리를 옮겨 용두산 공원의 고적한 모퉁이 벤치를 찾아갔다. 바닷바람이 거칠게 불어와 악기를 얼어붙게 만들 때면, 우리는 뜨끈한 온기가 남아있는 동네 노래방으로 숨어들었다. 노래방 기계를 꺼둔 채, 좁은 방 안에서 오직 ‘낭랑 18세’에 두 사람의 숨결만을 맞추며 밤낮없이 연습에 매달렸다.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준비 과정은 험난했다. 무엇보다 나 때문에 파트너인 정현 씨에게 피해가 가거나 그녀의 커리어에 흠집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입술이 부르트고 악기의 금속 부분에 부딪힌 혀끝에서 비린 피 맛이 감돌 때까지 숨을 불어넣고 들이마시며 곡을 다듬었다.
마침내 다가온 페스티벌 당일. 긴장감 속에서 연주가 시작되자, 용두산의 거친 바람 속에서 맞추었던 우리의 호흡이 거짓말처럼 무대 위에 녹아내렸다. 비네타의 경쾌한 울림과 트레몰로의 밝고 고운 가락이 허공에서 완벽한 은빛 실타래처럼 엉켰다. 13개 팀의 연주가 끝난 후, 시상식장엔 묘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우리의 듀엣 명칭인 '호동과 낙랑공주'가 호명되자, 정현 씨와 나는 환호했다. 결과는 뜻밖에도 시니어부 '동상'이었다.
돌아보니 수강생들을 무시하며 군림하던 젊은 강사의 얼굴이 단숨에 굳어졌다. 입회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들이 어떻게 상을 탔나 싶은 눈치였다. 오직 피나는 노력과 진심 어린 호흡만으로 일구어낸 결과였기에 오케스트라 회원들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 빛나는 성과 뒤에 찾아온 것은 씁쓸함이었다. 당시에는 마침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하모니카 붐이 거세게 일어나던 때라, 학원은 수강생들로 메어졌다. 강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은 물론이고 비네타 과정, 베이스 주법 과정, 강사 심화 과정 등 온갖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클래스를 수십 개로 쪼개어 놓았다. 그러고는 쪼개진 클래스마다 일일이 회장과 총무를 선출하도록 의무화했다. 조직을 촘촘하게 묶어 통제하려는 속셈이었다. 스승의 날이나 명절 등 행사가 다가올 때마다 그의 교묘한 압박이 시작되었다. 그는 각 클래스의 총무들을 은밀히 조종하여 수강생들에게서 매월 정기적으로 회비를 각출하게 만들었다. 총무들이 총대를 매고 거두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그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갔고, 자신은 뒤에서 짐짓 모르는 척 대접을 받았다. 학습자를 존중하는 참된 지도자의 마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잔머리를 굴리며 이익을 탐하는 실체와 껍데기만 화려한 권위주의에 깊은 염증과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전공했다던 그의 이력 이면에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허명뿐이었다. 그가 자랑스레 보여주던 것은 성악 부문의 유명 교수와 찍은 사진 한 장이 전부였고, 하모니카를 전수해 준 스승이나 단체의 이름은 한 번도 밝힌 적이 없었다. 결국 그는 타고난 영특한 기본 음악적 소양 위에 이곳저곳에서 귀동냥으로 터득한 하모니카 기법을 부리는 기능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음악에 대한 순수함이 결여된 그곳에서 마침내 나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음악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라, 인간아'
3. 방황의 길에서 만난 참된 보물
오케스트라를 나온 뒤, 한 번 상처 입은 마음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다. 하모니카라는 악기 자체에 정이 떨어져 정든 악기를 서랍 깊숙이 던져버렸다. 마음의 허기를 달래려 다른 악기들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드럼 패드를 두드려보고, 팬플루트를 불어보고, 색소폰을 쥐었다가, 전통악기 대금을 불어보고, 애달픈 해금 줄을 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가슴속 깊은 울림을 채워주지 못한 채 이 악기 저 악기를 떠돌다 보니 선택과 집중이 되지 않아 무엇 하나 제대로 익숙해지지 않았다. 시간만 허비하고 마음의 방황은 깊어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랍 속 먼지 쌓인 하모니카 케이스를 보았을 때 잊고 있었던 은빛 선율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밀려왔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을 때, 문득 아주 오래전 누군가에게 전해 받아 수첩 한구석에 적어두었던 어느 여강사 선생님의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무언가 좋은 인연이 닿을 것 같은 예감이 가슴을 스쳤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 만난 새 하모니카 지도자는 내 음악 인생에서 만난 참된 ‘보물’이었다. 그녀의 수업 방법과 실력, 그리고 인성은 이전의 기억을 모두 덮어버릴 만큼 훌륭했다. 권위주의적인 윽박지름 대신 따스한 격려가 있었고, 영악한 계산 대신 순수한 열정이 있었다.
“선생님, 제가 참 많은 길을 돌아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시절인연이 이제야 닿았네요.”
“돌아오신 만큼 더 깊은 소리를 내실 수 있을 거예요. 모든 게 다 때가 있어야 만나는 법이니까요.”
그녀의 따스한 한마디에 지난 세월 쌓였던 상처가 봄눈 녹듯 씻겨 내려갔다. 그녀 밑에서 다시 기초를 닦으며, 나는 하모니카가 가진 진짜 미학을 온몸으로 깨달아갔다.
인체 생리학적으로 손가락이나 입술보다 감각소체가 가장 발달한 곳이 혀라고 하던가. 연인들이 정서적인 정점까지 다가가기 위해 입맞춤을 나누듯, 하모니카 연주 역시 혀와 입술을 정교하게 놀려 거의 핥듯이 불고 마시며 바이브레이션과 베이스 주법을 구사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하모니카야말로 음악을 향한 가장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의 대리 행위였던 것이다. 성악가가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공명을 조절하며 음악을 보여주듯, 고개의 까딱거림과 몸의 흔들림으로 은빛 소리를 자아내는 환희를 나는 새 지도자를 통해 다시금 배우게 되었다. 참 좋은 지도자 밑에서 다시 하모니카를 잡은 지 어느덧 3년, 내 연주는 매일 새로운 바람이 되어 세상을 만나고 있었다.
4. 마침내 울려 퍼진 하모니카 찬가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하모니카 강사로 일하고 있는 동료를 따라 주민센터 문화센터 강의실에 가게 되었다. 수강생들 앞에서 유쾌하고 활기차게 강의를 이끌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데,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분발심과 동기부여가 불끈 솟구쳤다.
'나도 저런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하모니카의 참된 즐거움을 전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가득한 교실을 보며, 새로운 꿈이 싹트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이 인생의 운명이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동료가 갑작스럽게 건강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동료는 다급하게 내 손을 꼭 쥐며, 내 실력과 열정이라면 충분하니 수강생들을 대신 이끌어달라 부탁했다. 그렇게 나는 졸지에 주민센터의 하모니카 강사가 되어 단상 위에 서게 되었다.
첫 수업 날, 수십 명의 회원들 앞에 선 내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어릴 적 서럽게 하모니카를 불던 소년의 모습부터, 오케스트라에서 겪은 아픔과 눈물의 동상 수상, 그리고 참된 스승을 만나 치유받았던 감격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다짐했다. 회원들에게 교육이랍시고 인격적 모욕일랑 결코 주지 않겠으며, 얄팍하게 이익을 탐하지도 않는, 오직 음악만을 사랑하고 나누는 따뜻한 교실을 만들겠노라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손짓하며 강의를 이끌어갔다. 어르신들의 서툰 호흡 하나하나에 박수를 치고, 박자가 밀리면 함께 웃으며 다시 맞추는 유쾌한 교실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연말 주민센터 발표회 날이 되었다. 강의실 뒤편 대형 스크린에는 내 음악 사랑 이야기를 담은 멋진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노랫말을 쓰고 아름다운 선율이 붙여진, 정성 가득한 동영상이었다. 수강생들의 은빛 하모니카 합주가 잔잔하게 시작되었고, 내가 심혈을 기울여 쓴 하나의 고백이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하모니카 찬가>
"그대를 연주할 때 호흡은
사람의 들숨 날숨과 거의 일치한다오
그래서 사람들과 가장 친화적으로
자연스럽게 어울린다네
두 손 안에 꼭 들어오는 그대는
온 세상의 소리, 온 우주의 소리
온 영혼의 소리를 연출한다네
오묘하기 이를 데 없고 불가사리하기까지 한 그대
소담하지만 어느 악기보다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률을 뿜어낸다네
단순하고 허술해 보이나 속 깊고 단단한 내공의 소유자
그래서 쉽게 보았다가는 낭패 본다네
여리다 그러나 단단하다, 작다 그러나 크디큰 악기
허허실실 외유내강의 표상인
내 삶의 동반자 그대 하모니카여!"
노랫말이 영상과 함께 흘러나오자, 숨을 죽이고 화면을 응시하던 주민센터 수강생들의 눈빛이 일제히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회원들의 시선 속에 깊은 공감과 아련한 향수가 부드럽게 고였다. 평생을 거칠고 단단하게 살아온 자신들의 삶이, 저 작고 허술해 보이지만 속 깊은 하모니카와 꼭 닮아있음을 발견한 눈치였다. 몇몇 이들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또 어떤 이들은 제 손에 쥔 하모니카를 보물처럼 소중하게 감싸 쥐었다. 그들의 따스한 시선은 내 가슴을 뜨겁게 채워왔다.
"징하다, 그 사랑 한 번!"
어느 수강생의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강의실 가득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곡조로 펼쳐 보이는 원초적인 인간의 숨결. 손때 묻은 작은 악기 안에서 온 우주의 소리가 깨어나고 있었다. 수많은 길을 돌아 마침내 도달한 이 자리에서, 나는 내 영혼의 동반자인 '반려 하모니카'를 향해, 그리고 나의 소중한 수강생들을 향해 가슴 깊은 찬가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었다.
(끝)
/문화칼럼니스트ㆍ소설가 최진태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사족(蛇足):
'소설'부문
이번에 '신인 문학상' 당선을 기념키 위해
이 글을 써보았습니더.
부족하지만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ㅎ

첫댓글 신인 문학상 당신을 축하합니다. 글을 엮어내는 수많은 언어를 내 언어로 바꾸는 어마어마한 능력에 감탄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은 경험들이 모여서 오늘의 나를 만들고 말지요...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서 나의 모습이 되더라구요
글로 음악으로 마음의 앙금도 풀고 또 품어주고 위로하고 달래주는 넓은 품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주민센타에서 하모니카를 지도하시는군요...훌륭하십니다.
아닙니더^^^
이건 소설이랍니다
팩트와 픽션이 뒤섞인^^^ㅎ
일단은 소설로서 성공한 것같네유
이리 사실처럼 믿어주시니^^^ㅎ
수필이나
칼럼이 아니랍니더^^^ㅎ
아 제목에 단편소설이라고 써 있군요..저는 소설가 등단기념으로 소견을 쓰신걸로 생각했네요
지금의 열정이라면
소설이 현실이될날이 머지않을것같습니다
'태평로니'가
누구신지 궁금합니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