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5살 때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집 과수원에서 키우던 개를 어른들이 잡아 죽여서 태우고 요리해서 먹는 걸 목격한 이후로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서 잘 먹지 않다가 중2 때 어느날 가족들과 고기집에 갔는데 접시에 담겨나온 돼지고기가 사람의 살이랑 똑같아 보였어요. 그 후로 먹지 않기로 결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 고기를 먹지 않고 있지만 계란이나 우유, 치즈는 먹고 있었어요. 얼마전 부터는 계란이나 우유도 잘 안 먹게 되었는데, 이번 고기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를 시작으로 그래! 계란이랑 유제품 없이 살아보자 마음 먹었었습니다.
일요일. 하루 종일 고기나 우유, 계란을 만날 일이 없었는데 저녁 때 사무실에서 만났습니다.
저녁으로 뭘 먹지.. 냉장고를 열어보니 먹고 남은 요거트가 있었어요. 평소 같았으면 시리얼에 버무려서 먹었을 것을 유제품도 먹지 않기로 했으니 요거트는 열어보지 않고 마른 시리얼만 먹었습니다. 그래도 맛있더라고요.
월요일. 저녁때 운영위회의가 있는 날. 식사 시간이라 간단히 드실 수 있는 빵을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사무실 근처 빵집을 돌았는데 한 군데에 딱 한 개의 비건 빵이 남아있었어요. 버터도, 우유도, 계란도 들어있지 않은 무화과깜빠뉴. 한 개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다음 가게로 갔더니 비건빵은 없고 계란도 안 들어가고, 버터나 우유도 들어가지 않지만 생크림이 들어간다는 식빵이 있더라고요. 선택할 다른 빵이 없어 이 식빵을 사왔습니다. 회의 때 먹은 무화과깜빠뉴는 깜짝 놀랄만큼 맛있었어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생크림 식빵을 어느새 한 조각을 먹고야 말았습니다. 맛이 궁금하네하면서 저절로 손이 가더라고요. 아이고, 정신 바짝 차려야지!
화요일. 요즘엔 엄마한테 신세를 많이 지고 있어요.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아침, 엄마가 머리맡의 방문을 여시며 오늘 호박전 해먹을까? 하시길래, 엄마 나 고기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 하는데 우유량, 계란도 안 먹기로 했어. 엄마 먹어.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씀이, 그럼 엄마도 같이 안 먹을게. 잠결에 살짝 감동.
수요일. 이날도 정읍에서 저녁시간에 회의가 있는 날이었어요. 다른 분들은 빵. 저는 정읍터미널 근처에서 파는 '옛날 찐과자'를 사서 먹었습니다. 계란이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과자를 찾기 힘든데, 이 과자는 너무 반가웠어요. 심지어 아주아주 맛있고요~ 원제과의 예술작품인 바나나빵을 눈 앞에 두고도 먹지 못했지만 아니 먹지 않았지만 크게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이 일주일이 끝나서도 계속 사랑하는 원제과의 바나나빵과 기가 막힌 소보루빵, 먹어본 식빵 중에 제일 맛있는 우유식빵을 먹지 않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고, 조만간 결정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리고 오늘 목요일. 코끼리 유치원 친구들이 고기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아이들에게 왜 고기 없이 살아보기를 하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고 유치원으로 갔습니다. 가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어린 아이들에게 잘 전달이 될 수 있을까 걱정이었어요. 다행이 아이들은 눈 똥그랗게 뜨고 들어주었어요. 결국에는 고기를 안 먹을거라고 큰 소리로 약속까지 해주었어요. 오히려 아이들이기에 무리없이, 저항없이, 자연스러이 받아들여지는 얘기들인가 봅니다.
으아아아~~ 애기들 너무 예뻐서, 예뻐서 계속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하루종일 노는 아이들 보고만 있어도 좋을 거 같애요. 또 보고 싶은 아이들. 고기 없이 일주일 살아보기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아이들 만나고와서 그런지 피곤피곤해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코끼리 유치원 친구들의 고기 없이 사는 일주일 이야기가 벌써부터 무지 기다려집니다~^^
아래글에서 링크 시켜드린 다큐멘터리 Earthlings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세상의 진실이 거치는 세 단계
1. 비웃음 당함
2. 거센 반발에 무딪힘
3. 결국 진실로 받아들여짐
첫댓글 유치원 아이들 집에서 왁자지껄 난리가 났겠네요!!^^
아 애기들 눈에 아른아른해요. 일주일 어떻게 살아볼지 너무 기대됩니당.
진실이 거치는 세단계 ㅠㅠ
먼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