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의 주 무대였던 프랑스 알프스(사부아 주)의 산악마을 발디제르(1850m).
엽서의 이곳은 프랑스 알프스의 발디제르. 해발 1850m로 프랑스 사부아 주 타렌테즈 계곡에 있다.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의 주 무대이자 남자 활강 경기가 열렸던 스키마을이다. 멀리로 댐과 설원이 보이는데 이 케이블카로 오르는 솔레즈 봉(2560m)의 산악과 이어진다. 그래서 산정에서 스키를 타고 봉우리 두 개만 넘으면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너머에 또 다른 스키마을 티뉴(2100m)가 있다.
발디제르와 티뉴는 떨어져 있긴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스키장이다. 79개 리프트(케이블카와 스키지하철 포함)가 1만 ha 설원에 깔려 있는 총연장 300km의 스키 트레일을 커버하고 있다. 이걸 통틀어 ‘에스파스 킬리(Espace Killy)’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넓은지는 일주일을 타도 모든 슬로프를 섭렵할 수 없다는 말로 짐작할 수 있다.
스키 마니아라면 ‘킬리’라는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1968년 프랑스의 두 번째 겨울올림픽 그르노블 대회에서 3관왕에 오른 스키 영웅 장클로드 킬리(71), 바로 그 킬리다. 발디제르와 티뉴는 1972년 합치면서 이 영웅의 이름을 가져왔다. 프랑스 스키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3관왕이라는 대업을 기념한 것이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가 스키를 배운 곳이 발디제르여서다. 킬리는 1986년에 유치한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의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다. 킬리 덕분에 에스파스 킬리는 1992년 올림픽의 주 무대로 등극한다.
내가 이 발디제르를 찾은 것은 이달 10일. 당시는 개장 준비 중이라 숙소인 티뉴 발 클라레의 클럽메드에서 스키 대신 승용차를 타고 갔다. 발디제르 방문은 두 번째로 1997년 1월 이후 17년 만이었다. 처음 방문 때는 몽블랑 봉 아래 샤모니와 세계 최대 스키장 트루아발레(프랑스) 등 프랑스 알프스 스키장을 취재 중이었는데 그때는 발디제르에서 티뉴까지 스키로 다녀왔다.
이번에 살펴보니 스키장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마을은 달라졌다. 1997년만 해도 마을은 아담하고 한산했다. 그나마도 올림픽을 앞두고 건축가 장루이 샤네아크(1931∼1993)의 대대적인 재건축으로 확장된 것이었다. 전통 목조주택 샬레에서 풍겨나는 산악마을의 고풍은 유지한 채로. 그런데 이젠 타운 규모로 커져 있었다. 전통 샬레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유지하면서 아주 고급스럽게. 수백 m의 계곡 진입로에는 고층 호텔도 보였다. 티뉴 발 클라레 마을도 다르지 않았다. 예전엔 클럽메드와 호텔 몇 개뿐이었는데 대여섯 배 규모의 아름다운 산악마을로 바뀌어 있었다. 티뉴에 오기 전에 찾았던 트루아발레의 발토랑스 스키마을(2300m)도 마찬가지. 그곳도 열 배쯤 커졌는데 이달 14일에는 미슐랭 별 두 개의 이곳 출신 셰프의 음식까지 제공하는 클럽메드의 럭셔리 빌리지 ‘발토랑스 센세이션’까지 개장했다.
이런 변화가 시사하는 것은 딱 하나, 프랑스 알프스 스키마을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의 위대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몽블랑 봉 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이곳 타렌테즈 계곡에 고속철도 테제베를 놓고, 깊은 산중의 스키마을로 통하는 도로까지 만들어 접근성을 높인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 알베르빌 시는 올림픽 경기를 이 타렌테즈 계곡의 아홉 개 스키마을에서 나눠 열었다. 올림픽을 국제관광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예상은 적중했고, 국제자본의 투자로 파라디스키(레자크와 라플라뉴 두 스키마을) 트루아발레(메리벨 쿠르슈벨 발토랑스의 세 스키마을) 에스파스 킬리(발디제르와 티뉴) 같은 스키마을은 세계적 명소로 부각됐다. 현재 타렌테즈 계곡은 매년 2000만 숙박일(overnight)을 기록할 만큼 방문객이 많다. 투자도 지속적이어서 부동산 개발 면적도 매년 평균 9만 m²다. 이 추세라면 2040년엔 1990년의 두 배가 될 거란다. 개발을 죄악시하는 시각도 있으나 난개발이 문제일 뿐이다. 티뉴의 호텔 주인이 한 말이 그걸 증명한다.
“올림픽은 원래 빚지는 장사예요. 우리도 670만 달러 적자를 냈고 그중 25%를 지역민이 갚았어요. 그래도 실제로는 남는 장사였습니다. 이렇게요. 평창 성공 여부요? 올림픽 이후 관광수입으로 평가될 겁니다. 올림픽 유산을 통한 ‘지속 가능한 발전’, 그걸 얻지 못한다면 올림픽 할 필요 없지요.”―발디제르(프랑스)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공자는 생전에 이미 큰 인물로 평판이 나 있었지만, 그가 70의 나이에 종욕불유(從慾不踰)의 경지에 까지 이른 것은 어디까지나 길고 긴 배움의 도정을 거치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공자는 늘 자신에 옛 문화적 전통을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이며, 자기처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에 늙을 줄을 몰랐던 자, 즐거운 학생, 이것이 바로 공자가 스스로 솔직하게 그려서 보여 준 자신의 자화상이었다.
공자는 자신이 근심하는 것은 ‘덕을 닦지 못하는 것과 학문을 연구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의를 듣고 따르지 못하는 것,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공자는 도를 배우고 이를 지키는 것이 인간 세계에 도를 실천하기 위해 나서는 것보다 우선하는 일임을 분명히 말한다. 도를 굳게 믿고 도를 배우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이도를 높인다.
또한 공자는 배움의 즐거움에 자족하면서 ‘도(道)에 뜻을 두고 덕(德)에 의지하고 예(藝)에 노닌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공자가 ‘도’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목숨을 걸고 이 ‘도’를 높인다고 하듯 배움의 즐거움에 지족할 수 있고 체육에 뜻을 두고 스포츠에 의지하고 체육의 마음에 의거하여 뉴스포츠에서 노닐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 체육에도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스포츠의 이원적 프로그램은 바람직하다. 지도자는 이 두 커리큘럼의 체득과 직접 구분하여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많아야 사회적 인식이 쇄신될 수 있다. 아무리 체육의 특질을 인식한다고 하더라고 스포츠문화 프로그램의 빈곤은 체육의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스포츠의 본질적 특징이 되고 있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스포츠의 장에서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본질이 훼손되고 있는 것은 프로그램의 획일성도 한 몫하는 것이다. 즐겁고 재미 있는 프로그램에 다른 지도자의 역할은 스포츠의 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유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기까지 신체활동의 즐거움을 몸소 체험하고 생활화될 때, 이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삶의 질을 높여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