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저녁. 근로정신대시민모임까페 메일을 확인하며 꼭 가리라. 양금덕 할머니 댁 한번 찾아가보겠다 한게 작년 겨울인데.... 다큐를 보며 홀로사는 할머니 모습에 얼마나 마음저려 했던가.
20일 저녁 서울에서 집에 내려온 동생과의 저녁이 제안됐었고 영광에선 할머니가 왜 한번 오지 않느냐 하셨다. 하지만 내일은 도저히 안된다고... 결국 공부핑계를 대고서 21일 점심즈음 나섰다. 할머니 집에서 식사모임을 한다. 줄곧 참여하지 못한 미안함과 서명운동에 더 적극적으로 결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에 조금 일찍 돕기로 하고서 양동파출소 앞으로 갔다. 삭신이 노골노골한 ㅅ을 꼬셔서....ㅋ
우리가 가져간 수박 한덩이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버스를 타고 시내 한복판을 거쳐 꽃집에 잠깐맡겨져 고양이에게 핥음을 당하고서 다시 내 품을 흠뻑적시고 이기자님 손을 거쳐 할머니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경로당으로 향하는 길... 할머니집이라고 가르쳐주시는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냥 네모상자 창고같은 곳이 집이라.... 무겁고 더운 공기가 어깨를 한껏 짓누르던 날씨였기에 대체 바람은 통할까 싶었다. 경로당에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수입인 할머니.... 찾아보는 자식하나 없는 할머니...
"할머니 안녕하세요~" "예예..어서오시오... 혹여나 못찾을까봐 쩌 앞까지 나갔다가 들왔구만..." 여느 할머니가 그렇듯... 이제나 저제나 올새라 골목어귀까지 나가 두리번 거리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미 음식은 다 장만해져있었다. 오리탕, 꽁치김치찌개, 손수 가꾸신 야채, 이런저런 무침들.... 뭔가 하리라 했겄만...아쉬움에 무색한 손만 꼼질꼼질할때... ㅅ이 텃밭이야기를 한다. 할머니가 심그신거냐고... 영화에서도 나왔던 그 텃밭...눈썰미 좋은 ㅅ덕에 우리는 도울 일을 찾았다. 어깨가 부쩍 아프신 할머니가 도저히 텃밭을 가꿀 수 없어서... 상추며 케일이며 청경채며...훌쩍자라고 그 사이 잡초들도 함께 자라버렸다. 잡초를 뽑는 걸로 시작해 결국 텃밭을 거의 갈아엎는 걸로 끝났다.ㅋㅋㅋ 수북이 쌓인 쌈거리들을 나눠가져가라신다. 검은봉지 여섯개가 나란히 마당에 놓였다.
질펀하게 땀흘리는 동안.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여간 할머니를 잘챙겨주신다는 문구점 아주머니의 냉커피도 마셨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오시고...할머니집을 방문했다. 꼭 옛날동네 콩나물 창고같이 생긴 곳의 문을 여니 낮은 단스를 밞고 내려가고 또 내려가 할머니 방을 둘렀다. 할머니는 또 부산하시다.... 선풍기를 돌리시느라.. 이어지는 할머니 목소리... 졸업장을 취득하신거... 이 집을 장만하시는 과정...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 이야기... 힘겹게 살아온 할머니와...울컥울컥 울컥울컥... 내겐 너무 놀라운 집이건만...애잔함이 쏟아지는 공간이건만...할머니는 그 어떤 곳보다 마음이 편하다 하신다. 최고라며.. 생선장수로 번 7만원을 이리저리 손수 발품팔아 작은 집을 지었고 조금씩조금씩 늘려 부끄럽지만 집안에 화장실까지 만들게 되셨다고... 남의집으로 화장실안가도 되서...밤에 마려운 거 안참아도 되서 너무 좋으셨다고 하신다. 감사하다고..참으로 좋은 집이라고....
"시장하실텐디...인자 저녁잡수러 가십시다.." 나는 뿌득뿌득 소리나는 단스가 무너질까 조심히 밟고 나오나 조금은 큰 키가 걸려 머리를 꽝 찧고서 에고고고다. 경로당에서 차려지는 만찬. 오리 두마리로 끝내주는 오리탕을 만드신 할머니는 손수 푸시며... 오리다리가 네개이니....늘 고생하시는 분들을 언급하신다. 하나는 교장선생님, 하나는 사무국장님, 하나는 목사님..하나는 이기자님 드려야 하시다면서 국물 안을 휘휘저어 건져올리신다. "늙어가꼬 맛있는가도 몰라. 그래도 많이 잡수셔..." 다들 난리가 났다. 여름철 보양 중 이만한 보양이 또 어디있을것이며. 어렸을 적 할머니집에 죄다 모인 기분이 드시는지 좋아보인다. 부엌에서 돕는 내가 듣는 말... 무슨 여음구처럼... "아이고...나같은 것이 뭐라고...나같은 것을 찾아주고...내가 진짜 행복하구만..." 되풀이하신다. 정말 좋으시나보다 우리할머니...
밥을 먹는다는 것은 술을 마시는것과는 또 다른 문제라며 낯선이와의 식사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는 ㅅ이 밥을 먹는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인데...라며 . 이를 또 다른분은 식구가 된 것이라했다. 할머니 마음이 흠씬 담긴 밥을 먹는 동안에도 찾아오신 여러분을 위해 할머니는 분주했다. 자리를 내드리느라고 당신밥그릇은 바닥에 놓았고, 더운날씨덕분에 선풍기를 여기저기서 가져오셨으며, 소주가 빠지면 안된다고 연신 받으시러가셨다.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고...내가 뭐시라고 이렇게 찾아줘서...오늘만 같으믄 좋것구만....하시며...
따뜻한 밥, 마음, 말거리, 사람들...모든것이 이상적일 수밖에 없는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돌아가며 이야기를 했다. 어떤 마음인지...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 그 중 우리와 텃밭가꾸기를 함께한 신광중 선생님 한분은 아이들이 할머니께 쓴 편지와 함께 모시옷을 전달해드렸다. 슬쩍 읽어보니.. 아이들의 웃지못할 말들과 그들의 시선에서 마음 씀씀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모두들 이 자리를 감사하게..여기고 있다.
반미쯔비시 이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시 일본최대 군수업체이면서 우리에게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은 미쯔비시 회사를 우리의 힘으로 처단해야한다. 미쯔비시 소속계열공장으로 끌려가 원폭피해까지 당하신 분들 이야기를 들으며. 최소한의 양심적 행위조차 하지않는 오만한 자태를 보며.. 우리는 화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국언기자님의 열변이 토해졌다. 이제는 반미쯔비시다. 우리기에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동안 가능한 모든것을 해왔지만 좌절해야했기에....최선의 선택이라 여겨지는 이를 택한다. 反 미.쯔.비.시. 운동!!!!!-아직 미쯔비시회사의 구체적인 상품이 뭔지는 ... 더 조사해봐야겠지만 거대기업인만큼 꽤 많은 것들이 있는 것같다. 일단 자동차는 랜서, 랜서 에볼루션,파제로,아웃렌더, 이클립스... 등으로 대우자동차판매가 미쯔비시상사와 '미쯔비시 코리아'를 설립하여 수입판매하는 형태로 2008년 9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듯하다. 이는 일부이고 다양한 계통으로 미쯔비시 로고를 사용하는 독립적인 12개의 회사가 있다는데 구글링을 하던 도중..근로위안부나 인권에 관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미쯔비시는 나쁜기업으로 찍혀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출처: 미쯔비시 CORP -사회적 책임 2008.5.14. 골드핑거님의 글> <미쯔비시 로고>* 제품, 브랜드 : 미쯔비시 로고를 사용하는 서로 독립적인 12개의 회사가 있다. 유명한 미쯔비시 브랜드는 미쯔비시 자동차, 니콘 카메라와 카메라장비이다. * 홈페이지 : http://www.mitsubishi.co.jp * 회사 자료 매출액 (2002) : 970억 유로 수익액 (2002) : 7억3천만 유로 본사 : 도쿄(일본)
열대우림의 파괴, 부당한 가격담합
미쯔비시 사는 1870년 처음 운송회사로 창립한 후로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거대 콘체른으로 성장했다. 1947년 미쯔비시는 재정적으로 어느 정도 상호 독립적인 형태의 여러 개별사로 분리되었다. 미쯔비시 회사 전체를 통괄하는 모회사도 없고 총괄하는 활동조정자도 없지만, 상호 재정적 출자는 이뤄진다. 그런 회사 중 하나가 미쯔비시 모터스 사의 7.99퍼센트 지분의 주주인 미쯔비시 사이다(미쯔비시 자동차). 독일의 콘체른 다임러크라이슬러도 마찬가지로 미쯔비시 모터스 사의 지분을 37.3퍼센트 갖고 있다.
미쯔비시 사는 특히 자본투자, 일렉트릭, 텔레커뮤니케이션, 기계, 화학물질, 금속 분야에서, 그리고 석유사업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국제적인 거대 혼합콘체른이다. 미쯔비시 중장비산업은 1997년 <세계 중성자산업 핸드북>에서 원자력산업의 주요 하청회사로 분류되어 있다. 니콘 브랜드 (카메라와 카메라 장비)는 또 다른 미쯔비시 콘체른에 속한다.
<열대우림 운동네트워크>의 미국 환경운동가들은 1989년 미쯔비시 제품 불매운동을 펼쳤다. 그들은 미쯔비시 사에 대하여 동남아시아, 남미, 북미, 시베리아 등지의 원시림이 파괴된 데 큰 책임이 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미쯔비시 사가 직접 제조하거나 관리하는 소비제품이 전혀 없는 탓에 환경운동가들은 우회적으로나마 문제의 장본인에 대해 압력을 행사하기 위하여 “미쯔비시 모터 세일즈 오브 아메리카”와 “미쯔비시 일렉트릭 아메리카”와 같은 다른 미쯔비시 콘체른을 향해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이 두 회사는 미쯔비시 사와 동일한 로고를 사용한 대가를 호되게 치른 셈이었다.
불매운동은 1998년에서야 종결되었다. 미쯔비시 모터 세일즈 오브 아메리카와 미쯔비시 일렉트릭 아메리카 측이 대체로 보다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것이다. 정작 책임을 갖고 있는 미쯔비시 사는 열대우림 운동가들과의 대화조차 허용치 않았다. 그러나 2002년 11월 미쯔비시 사에서도 즉각적으로 산림관리에 대한 국제적인 규정을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미쯔비시 사의 독일 자회사인 미쯔비시 하이테크 페이퍼 빌레펠트 GmbH 또한, 2001년 12월, 1990년대에 탄소 종이의 가격을 높게 책정하기 위해 카르텔을 형성했다는 혐의로 유럽위원회로부터 다른 8개 회사와 함께 총 3억1천370만 유로의 벌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다
우리 시민모임은 할머니의 삶과 함께할 것이고. 근로정신대의 문제는 반미쯔비시를 외치는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것으로 맞설것이다. 일단! 미쯔비시 물건 안사기!!!!!!!!!!!!!!!!!!!!!!
검은봉다리 하나를 챙겨나오며...비가 주룩주룩이다. 먼저나오는 미안함에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 20일 후...텃밭엔 잡초가 또 자랄텐데..... 할머니는 당신 어깨를 또 얼마나 탓할까... 찾아가야지. 꼭 해야지. 내가 뭐라고....찾아가 할머니 밥 먹어드린 것까지 고마워하시는 당신 마음때문에.. 내가 더 고맙습니다. |
출처: 김유쾌는 다르다. 원문보기 글쓴이: 김유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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