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힘과 붕어빵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들은 민주주의 설계도를 가지고 나라를 세웠다. 그 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한국 근대역사에 굵은 족적을 남기고 세계 중심에 우뚝 섰다.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대한민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함으로써 명실상부 선진국이 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더욱이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하니 한민족의 저력을 만천하에 과시한 쾌거였다. 이는 민주주의로 새로운 국가 기반을 닦고 출범한 지 73년 만에 선조들의 땀과 피를 담보로 얻어낸 값진 열매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이런 선진국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음은 민족적 자부심이고 어디에 내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한국민의 자긍심이다.
그런데 유일하게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곳이 한 군데 있으니 이 나라 정치 1번지 여의도다. 국민의 대표라고 선출된 입법부 의원들의 행태를 보면 실망의 선을 넘어서 경악할 지경이다. 불법과 부정이 만연되어 있다. 마치 이 정도의 범죄 이력을 갖춰야 국회의원에 적합한 자격 요건처럼 되어 버린 슬픈 우리의 현실을 국민들은 매일 목도하고 있으니 착한 국민이 참 안쓰럽기만 하다. 그러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정치판 각 당에 대한 자조 섞인 말이 있다. 집권 여당 ‘국민의 힘’에는 국민이 없고,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에는 민주가 없으며 정의당에는 정의가 없다는 말이다. 집권당은 당연히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데 힘도 없으니 어찌 국민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입법권을 한 손에 쥔 거대 야당은 ‘더불어’도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들의 내로남불의 전형을 꼬집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당을 지지하는 열혈 세력들의 광적 행보는 참 신기한 일이다. 알맹이가 없는데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런 현상, 가짜가 그럴듯한 허울을 쓰고 있어도 진짜처럼 떳떳하게 큰소리칠 수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 ‘가짜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는 소리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문득 지난날 추운 계절 길거리에 옹기종기 모여서 호호 불며 맛있게 먹던 붕어빵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붕어빵은 국화빵과 더불어 가난했던 시절 허기진 배를 채워 요기(療飢)를 면할 정도로 서민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은 먹거리였다. 19세기말 일본 도쿄 아자부주반(麻布十番)에 있는 나니와야(浪花家)라는 가게에서 만들어진 타이야키(도미+불로 익힌 음식)가 1930년대 무렵에 이 땅에 들어와 현지화된 음식이다. 이 빵은 1950년, 60년대 전후(戰後) 원조로 미국에서 대량의 밀가루가 수입된 이후 대중화되었다. 국화빵, 문화빵, 붕어빵이라고 불리던 이 풀빵이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오방떡(왕풀빵), 모꼬지라는 이름으로 급속하게 대중 속으로 침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듯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 빵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붕어빵이나 국화빵은 특징이 있다. 겉모양만 붕어요 국화일 뿐 진짜 붕어와 국화가 없다는 것이다. 겉만 그럴듯하고 내용물이 없을 때는 사기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심각한 문제인데도 지금까지 가짜 붕어빵을 먹으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붕어빵은 오랫동안 가난한 시절 허기진 배를 채워준 좋은 음식이라는 면에서 순기능이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에 가짜 불감증을 조장하는 데 한몫했다는 점에서 역기능도 지닌 양면성 음식이 되었다. 혹 이제껏 붕어빵을 잘 먹고 나서 왜 쓸데없는 소리 하느냐고 핏대를 높일 사람도 없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국민과 민주가 없어도 광적 지지자가 있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 번져가고 있으니 가짜에 익숙해진 우리를 돌아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국민의 대표답게 행동하지 않은 저질 의원은 분명 진짜가 아닌데도 내 편이니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수용하는 자세는 붕어 없는 붕어빵을 먹은 익숙함이 낳은 결과일지 모를 일이다.
정당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괜찮은지 물어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성령에 충만하여 세워진 신앙공동체다. 예수님은 없고 사람만 북적이는 교회는 가짜다. 한때 흑인차별이 심하던 미국교회에서 있었던 실화다. 백인만 모이는 교회에 흑인이 예배에 참석하려다가 모질게 내쫓겼다. 예배당 문 밖에서 서러워 울고 있는 그 흑인에게 주님이 나타나셔서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얘야! 나도 황인종이라서 이 교회에 한 번도 들어갈 수 없었단다.”
그 교회는 백인만 있고 예수님이 없는 가짜 교회였다는 말이다. 남유다에서 활동하던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는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했다(렘 7:4). 범죄 한 유대 백성들 때문에 하나님이 떠난 성전은 이제 불의한 사람들만의 집회 장소가 되었다. 하나님이 없는 성전을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외쳤으니 선지자는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단언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없는데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가짜 불감증 시대에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돌아볼 문제다.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가짜에 열광하는 가무전성(假無全盛) 시대에 참 진리를 붙들고 사는 사람이 진짜 필요하다. 알곡 신앙이 그리운 때다. 내가 알곡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는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요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예레미야 23:28).
국민의 힘 당의 로고
더불어 민주당의 로고
붕어빵을 만드는 모습
붕어빵
도미 모양을 한 일본의 붕어빵 타이야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