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다시 고라 자손의 시입니다. 그리고 노래라고 합니다. 무엇을 향한 노래이냐 하면 성전을 향한 노래입니다. 고라 자손은 성전의 문을 지키고 노래를 인도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들이 일하는 곳을 노래합니다. 이상합니다. 하지만 성전 자체가 좋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기때문에 그곳을 노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절에서 시인은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는 2절에 나오는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터전을 잡으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어떤 곳보다 그곳을 택하셔서 그곳에 계시기로 하셨습니다. 사람이 고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그곳을 고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십니다. 시온은 산 이름입니다. 거기에는 당연히 문이 없습니다. 여기서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은 그곳에 세워진 성전을 의미합니다. 3절에 보면 그 성은 하나님의 성이라고 불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온 우주에 충만하게 거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단 1센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시온을 특별히 더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신 곳이 없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충만하게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참으로 이 땅에 간섭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든 신들과 비교하여 볼 때 하나님께서 한 장소를 정하셔서 계신다는 것은 스스로 다른 신들과 구별되는분이심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딱 한 곳을 정하셔서 그곳에 거하시는 곳으로 삼았습니다. 반면에 당시에 주변의 신들은 여러 지역에서 여러 지역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있습니다. 여러 곳에 제사할 수 있는 곳을 만들었습니다. 곳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각 지역마다 섬기는 신들이 달랐습니다. 신들마다 다스리는 곳의 이름을 붙여서 섬겼습니다. 아인트호벤의 바알, 덴 보쉬의 바알, 브레다의 바알 이렇게 구역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곳을 지정하셔서 그곳에 계셨고, 그곳으로 백성을 모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지역에 따라서 나뉘어져 다스리는 분이 아니라 오직 한 분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다스리는 유일한 분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시온에 있는 성전은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 거하시며 예배를 받으시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분이아니라 한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기 때문에 성전은 영광스럽습니다. 성전이 칭송을 듣는 것은 그 성전 자체가 아름답기 때문이아니라 그곳에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계시지만 교회 공동체서 특별히 당신의 영광을드러내시고, 임재를 드러내십니다. 교회가 거룩한 것도 그곳에서 거룩한 성령께서 함께 거하시기 때문이지 성도들이 완전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4절에서 라합은 이집트의 별명입니다. 이집트와 바벨론, 그리고 블레셋, 두로, 구스와 같은 여러 나라들이 언급이 됩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들이 하나님을 아는 자 중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시온 사람들이 이 사람들도 시온에서 났다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애굽, 바벨론, 블레셋, 두로, 구스는 이방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의 적군들입니다. 하지만 이 성전에서 그들이 태어났다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비록 이방인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들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들도 부르실 것입니다. 시온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열방을 불러 모으시고 성전에서 예배하고 그곳에 다시 태어나 새로운 생명을 살아가도록 하실 것임을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민족들이 등록할 것입니다. 그들의 거주 허가증 시온에서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등록이 되어 그곳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노래하고 뛰어놉니다. 이것은 즐거운 잔치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시온에서 잔치를 하면서 노래하는데, 그 노래의 가사는 그들의 모든 근원이 이곳에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의 근원, 생명의 근원, 존재의 이유가 성전에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꿈꾸시던 비전입니다. 교회의 보편성입니다. 누구든지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믿고 싶고 그분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이 신분, 지위, 피부색, 민족 상관 없이 모두 교회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실패했습니다. 실패한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참된 이스라엘이시고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이 시편은 모든 민족들이 시온 성을 자신들의 영적인 고향으로 삼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바로 모든 민족들이 참된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온 세상은 마땅히 기뻐해야 합니다. 온 세상을 위한 구주께서 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셨기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백성들을 성전으로 불러 모으십니다. 예수님께로 불러 모으십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당신의 임재를 드러내시고 모든 열방들을 예수님께로 초청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먼저는 유대인을 향해서 복음을 전파하셨고, 이후에는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을베푸셨습니다. 믿는 모든 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참된 생명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을통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구원의 길을 주시기 위해서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가 아니라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 책에 등록시키십니다. 요한 계시록 21장 25-26절은 지속적으로 열방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 안으로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여줍니다. 참된 고향으로 들어옵니다. 그들은 하늘 나라에 등록된 하늘의 시민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만 우리의 참된 고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교제를 경험합니다.
우리의 평생에 우리의 정체성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음을 기억하고 그분 안에서 참된 생명과 기쁨과 즐거움을 누립시다. 우리가 이 시편의 수혜자들이고, 이 시편에서 말하는 이방인들입니다.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지녔지만 모두가 한 가족이며, 한 공동체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며 참된 성전이시자 우리의 참된 고향인 예수님의 품을 기억합시다. 그분의 품에 안기어 누릴 행복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