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5
물불의 조화로 낙원을 꿈꾼 선비 낙애(樂厓)
<화수(火水)의 조화를 바라다>
“가연(佳淵)을 파서 삼악산(三嶽山)이 화체(火體)가 되어 비추는 것을 막게 하였다.”(수춘지)
춘천에는 유명한 마임 축제가 있다. 춘천 마임 축제의 매력은 물과 불의 싸움과 화해, 그리고 조화에 있다. 어찌 물불이 조화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춘천의 마임은 물불의 조화를 내세워 세계 최고의 마임 축제를 만들었다.
춘천의 마임 축제가 물과 불을 내세운 뜻은 물론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연원을 따라가 보면 물불의 상극(相剋)을 상생(相生)으로 바꾼 사실이 있다.
조선조 영조 때 낙애(樂厓) 김환(金鍰, 1650~1744)이란 사람이 벼슬을 버리고 춘천 죽전[수동리]에 낙향해 살았다. 어느 날 김환은 봉의산 앞 춘천부에 이르렀다. 멀리 삼악산을 보니 불의 근원으로 보였다. 언젠가는 삼악산의 화기가 춘천의 관아 문소각(聞韶閣)을 태울 것이라. 그는 서둘러 부사에게 말해 문소각으로 들어오는 입구인 근화동 일대에 연못을 파도록 했다. 불을 끄는 방법이 물을 뿌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춘천 부사는 김환의 말을 들어 개못[犬淵]이 있던 장소를 확장하여 가연(佳淵, 또는 淸淵)으로 만들었다.
<낙애의 이름을 딴 지명 유래>
我朝三百年來也 우리 조선조가 3백 년이 되었는데
今卿父子半乎哉 이제 경의 부자(父子) 나이가 반이나 되었구려
特命陞超有意在 특별히 명을 내리니 뜻이 있다면 도성으로 오시오
耆府宜謝朱門開 기부에서 마땅히 주문(朱門)을 열어 사례하리라
김환은 94세까지 이승을 누리다가 저승으로 갔다. 그 당시 94세면 정말 만수(萬壽)를 누렸다. 생전에 8명의 임금을 모셨고, 92세 때 영조 임금으로부터 호랑이 가죽을 선물로 받았다. 그리고 영조 임금이 직접 시를 써서 모시고자 했던 어시(御詩)를 받았다. 후손들은 어필각(御筆閣)을 지어서 어시를 모셨다. 낙애가 남산면 수동리에 살았기에 지명이 낙애[낙애지, 나가지]로 되었고, 낙애가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서 목숨 수(壽)자와 마을 동(洞)자를 쓴 수동리가 되었다.
<가연을 판 뜻은 화변을 막음이라>
“춘천은 삼악산이 정면에서 비추고 있으므로 화변(火變)이 많다고 여겨서 부의 입구에 대연(大淵)을 팜으로써 화가(火氣)를 누르게 하였다.”(수춘지)
낙애가 주장한 풍수 음양론을 실행했다는 사연이 춘천의 지리지 이곳저곳에 전한다. 그러면 정말 낙애는 춘천의 지형을 보아 삼악산이 화변을 일으킨다고 보았을까.
아마도 화재(火災)는 화근(禍根)이니 싸움이 없기를 바라는 우거(寓居) 노인의 뜻이리라. 그렇다. 최고의 풍수는 후손의 안락과 풍요를 바랐으니,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싸움을 막는 일이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큰 싸움은 개인의 실리를 챙기려는 당쟁이니 말이다. 이처럼 춘천 사람들이 풍수(風水)로 바라는 마음의 정체성은 화합과 화락과 평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