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하나뿐인 / 복향옥
내년 봄이나 여름쯤으로 생각했던 아들의 귀국 일정이 많이 당겨졌다. 적어도 1년은 있을 거라더니 8개월 만에 워홀 생활을 정리했다. 이왕 나간 김에 시간 날 때마다 여행도 하고, 적성에 맞는 일을 다시 찾아 즐겁게 지냈으면 했으나 아들의 생각은 달랐다. 학비 벌겠다고 와서 돈 쓰고 다닌다는 게 꺼려진다나? 또, 하는 일이 고되긴 해도 다른 데보다 보수가 좋아 택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고 했다. 여행은 쓰는 돈 이상으로 얻어지는 게 있고, 생각지 못한 데서 재능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 이일 저일 도전해 봐라, 하면서 회유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지난 2월 초, 아들은 제 손으로 대학원 학비를 벌어보겠다며 훌쩍 호주로 떠났다. 그때는 “잘 생각했다. 오래 안 있어도 좋으니 여러 가지 경험하면서 많이 보고 느끼거라.” 하며, 두 손 들어 환영했다. 그랬으면서 기대했던 기간만큼 체류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내가 잠깐 부끄러웠다. 아들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의지가 약한 거라 단정 지을 뻔했다. 아들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단순히 포기하거나 퇴보하는 게 아녜요. 여기서 일하면서 공부하는 동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그래서 한 단계 더 나아가고자 계획을 변경한 거예요. 또 변덕 부리나 생각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건 그냥 변화예요.”라며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동안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을 보면서 내 편리대로 해석하고 결론지어버렸고, 그 때문에 관계가 깨지거나 소원해지기도 했다는걸.
수년 전, 고등학교 1학년이던 아들이 뜬금없이 “저, 엄마 후배 될 거예요.” 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지원할 거라며 싱글거렸다. 나는 환호하면서 곧바로“어이 후배!”고 불러댔다. 그 후 기숙사에서 나오는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틈만 나면 내 학창절 얘기를 묻거나, 본인이 학교에서 얼마나 문학에 소질이 있는 아이로 평가받는지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사내자식이 글 써서 뭐 하게?”자, 아들은 단박에 “그럼 아빠는 제가 뭘 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되물었고, 이에 남편은 경영학을 권했다. 닷새 후에 귀가한 아들은 경영학과에 지원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경영학도가 된 지 7~8개월이나 됐을까, 아무래도 학과를 잘못 선택한 것 같다며 실의에 빠진 아들에게 입대를 권했다. 그런 고민은 너만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이나 적성이 아닌 성적표로 입시 지도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폐해다, 이제 네 인생을 생각해라, 고등학교 시절엔 공부하느라 대학 입학해서는 1학기 내내 술 먹느라 널 돌본 적 없잖으냐며 일장 연설을 했다.
다음 해에 입대한 아들은 행정병인 덕에 틈틈이 책을 읽고 또 그렇게 글을 썼다. 그런 글을 모아 제대 후에는 1인 출판사를 차리더니, 제 책을 만들어냈다. 경영학과에 맘을 두지 못해서였을까,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던 3학년 2학기에는 또 난데없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4학년이 돼서는 복수 전공을 할 만큼 애정을 쏟았다. 영화 제작한다고 할까 봐 맘 졸이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영화과 교수님의 대학원 입학 제안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호주 워홀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랬는데 또다시 계획을 수정해서, 영화로 불타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겠다고 하니 반가워해야 할지, 좀 진득하니 있으라 해야 할지 난감하기는 했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호주에 가본 적도 없고, 육공장 일은 더더욱 알지 못하니 아들한테 무조건 참아라 말아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나도 금세 생각이 달라지고 계획이 수시로 바뀌는데 어찌 아들한테만 마음먹은 대로 전진하라고 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아들의 이런 전적을 잘 아는 지인이, 귀국 소식에 놀라면서 말했다. “벌써요? 왜 좀 더 있으라 하지. 와서 뭘 한데요?” 하더니 “우리 집 애들은 중학교 때 꿈꿨던 거, 지금 그대로 이루고 살아요.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어.” 하며, 뿌듯한 얼굴을 했다. 그 말에 나는 “아, 그래요? 대단하네요. 울 아들은 그냥 제 맘 내키는 대로 사는데.” 라며 웃으면서 응수했지만, 속으로는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그 애는 그게 성향에 맞을 거고, 내 아들은 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 믿으니까.
첫댓글 하하, 지인이 묻기만 하고 자기 자식 얘기는 안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요.
며칠 전 마트에서 잠시 본 그 아드님이군요. 듬직해 보였어요. 그리고 이렇게 엄마가 무조건적으로 응원해 주니 아드님은 얼마나 든든할까요. 저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믿어주는 엄마가 있으니 아드님은 행복하겠네요.
앞날을 응원합니다.
여행은 쓰는 돈 이상으로 얻는 게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 공감합니다. 아드님을 전폭적으로 응원하는 선생님의 너른 마음도 깊은 심지도 제겐 배울거리 입니다.
아드님을 응원하며 섬광처럼 빛날 청년의 내일을 응원합니다.
오래전에 멜버른 여행할 때 집값이 하도 비싸서 아파트 하나에 대여섯 명이 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1일 여행 투어를 워홀 온 학생과 같이 했거든요.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멋진 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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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아드님은 서로에게 정말 좋은 영향을 주는 거 같아요. 부럽습니다. 하하.
전적으로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이 있는 아들은 든든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응원하는 만큼 길을 잘 찾아 자신의 삶을 잘 가꾸어 가리라 믿습니다.
멋있는 남자네요. 자기를 찾아 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