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노트 48
4. 질문 : 경행을 하는 것보다 좌선을 더 많이 하고 싶습니다.
답변 : 부처님께서도 경행을 하고 좌선을 하셨다. 경행과 좌선을 병행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수행방법은 없다. 경행을 하거나 좌선을 하거나 일상의 알아차림을 하거나 모든 것을 밀착해서 알아차려야 한다. 수행자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수행을 하면 오십 보를 가다가 다른 시간에 백 보 후퇴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수행의 발전이 없으며 집중력이 생기지 않는다.
부처님 법문의 요지는 사띠빠타나(satipaṭṭhāna, 알아차림의 확립)이다. 수행자는 언제나 모든 현상에 밀착하여 알아차리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이 세계 자체가 오욕락(五慾樂)을 즐기는 세계다. 이 오욕락에 마음이 쏠리지 않도록 하루 중의 모든 시간을 계속 알아차림으로 채워야 한다. 일상의 모든 동작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려서 끊어짐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오욕락에 빠지지 않고 집중력이 증가한다. 좌선과 경행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동작을 똑같이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 참고 >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것이 탐욕이며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성냄입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선하지 못한 마음입니다. 선하지 못한 마음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데 이 마음으로 수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수행은 무엇이나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표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명상원에서 수행을 하려면 모든 계획이 최적화되어 있는 시간표를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부처는 빨리어로 붓다(Buddha)라는 뜻인데 아는 자, 깨달은 자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알았는가 하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고집멸도를 알아 윤회를 끝낸 분입니다. 붓다는 인간이 가보지 못한 새로운 정신세계를 스스로 찾아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리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 더 이상 다다를 것이 없는 사물의 이치를 알았습니다. 이것이 무상, 고, 무아입니다. 내가 없다는 무아를 알아 모든 집착을 여읜 것이 깨달음입니다.
부처님은 살아있는 생명 중에서 최고의 바라밀 공덕을 쌓은 과보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최고의 신분의 자제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부처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부처로 태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6년 동안 목숨을 건 각고의 노력을 하다 실패한 뒤에 위빠사나 수행을 찾아내서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이 길로 오라고 45년 동안 설법을 하셨습니다. 이때 수행을 하는 방법이 바로 사띠빠타나(satipaṭṭhāna)입니다.
사띠빠타나(satipaṭṭhāna)는 알아차림을 확립한다는 뜻으로 수행을 하는 방법을 설한 경전입니다. 이때의 수행방법이 사마타와 위빠사나입니다. 사띠빠타나(satipaṭṭhāna)는 사띠(sati)와 빠타나(paṭṭhāna)의 합성어입니다. 사띠(sati)는 기억, 알아차림을 뜻합니다. 빠타나(paṭṭhāna)는 현존하는, 인식하고 있는, 확립하는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띠빠타나(satipaṭṭhāna)는 알아차림의 확립이라는 뜻 외에 알아차림이 튼튼하게 머무는 것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것을 한문으로는 염처(念處)라고 합니다. 알아차림을 확립하려면 구체적으로 네 가지 대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몸, 느낌, 마음, 법입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사념처(四念處)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알아차림의 확립만이 깨달음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서 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오욕락(五慾樂)을 즐깁니다.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은 재산욕, 성욕, 음식욕, 명예욕, 수면욕입니다. 이상 다섯 가지를 오진(五塵)이라고 하는데 다섯 가지 번뇌의 티끌입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다섯 가지 번뇌가 일어나지 않아 마음이 청정해집니다. 이러한 청정해진 마음에서 통찰지혜가 나 해탈의 자유를 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