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정리 / 김현하
나만의 책상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이전엔 개인 방이 따로 없었고, 학교나 학원 숙제를 하기 위해선 거실 벽 한쪽에 세워 둔 탁상을 펴야 했다. 코팅된 나무 위에 수학과 국어 학습지를 두고 폰으로 가사 없는 노래를 틀면 거실이 곧 작은 공부방이 되었다. 거실 베란다를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덕에 공부하다 잠든 적도 여럿 있었지만. 6학년, 이사를 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집, 그리고 새로운 방. 남향으로 창이 난 방에 다양한 가구가 들어왔고, 책상도 그 중 하나였다.
높이는 약 2m, 폭은 아이가 양 팔을 쫙 뻗은 길이. 정면엔 책이나 필기구를 수납하는 공간이 있고 왼쪽으론 바퀴가 달린 간이 책상이 있다. 방을 어떻게 채울지 부모님과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왼편엔 1인용 침대를, 오른편엔 책장과 책상을. 어떤 책상을 넣을지 결정하기 위해 가게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어떤 것은 색이 마음에 안 들었고 어떤 것은 수납 공간이 적었다. 높이가 낮거나 높은 곳도 있었다. 고르고 골라 결정한 하나가 마침내 방 한쪽을 채웠고 초등학생 때 만난 나만의 공부 친구는 지금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변하는 것도 있다. 책상 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속 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방에 처음 놓인 가구 위는 처음엔 텅 비어 있었다. 빈 공간을 나만의 취향으로 차곡차곡 채워왔다. 학습지와 만화책, 더 자라서는 과제와 낙서 노트들, 이제는 전공책과 소설책까지. 고등학생 때 쓴 일기장도 어엿하게 책상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가지런히 개져있는 수건들처럼 꽂혀있는 노트들도 있지만 자리를 벗어나 대충 쌓아둔 책들도 있다. 이유는 몇 가지 있다. 첫째,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둘째, 책상 정리를 한 지 꽤 되었기 때문이다. 한쪽 구석엔 집중용 간식을, 이쪽 구석엔 탁상 달력을, 또 저쪽 구석엔 미개봉한 택배 상자를. 반듯하게 정리된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걸 본다면 분명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갈 것이다.
책상 위는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다는 문구가 있다. 처음 이 문장을 보았을 때 반쯤 공감하며 읽었다. 고등학생 때였나,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리가 어지러울 시기. 당시에도 책상은 딱히 정돈되지 않았었고, 지금도 비슷하다. 놓여 있는 물건들만 조금 달라졌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야 많다. 진로는 모든 고민들의 1순위이고 인간 관계는 언제나 어렵다. 자기계발은 죽을 때까지 가져야하는 과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평생을 지저분한 책상과 함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책상 정리의 시작은 질서 없이 놓여있는 잡동사니를 질서 있게 치우는 것이다. 상자 안에 넣거나 수납함에 보관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 마음도 이와 비슷하다. 쓸데없는 것은 치우고 목표점을 명확히 잡기. 마침 봄이 시작되고 있으니, 어지러운 생각들을 쓸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봐야겠다.
첫댓글 책상 위 물건들로 선생님을 조금씩 알아가는 거 같습니다.
정리정돈 잘 하는 것도 습관인 듯해요. 나는 책상이 어지러져있으면 아무 것도 못 하거던요.
그래서 의자에서 일어서면 꼭 바로 책상을 정리하고 방을 나옵니다.
저도 어지럽게 늘어 놓았다가도 돌아서면 마음에 걸려 다시 정리를 하곤 한답니다. 잔잔하게 쓴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