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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엽의 시 _대지와 생명의 순결성을 옹호한 쟁기꾼의 노래
◈ 저자 : 신동엽(申東曄) 1930~1969.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단국대 사학과를 거쳐 건국대 대학원 국문과를 이수했다. 한때 잡지사 기자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으며 충남 주산농고·서울 명성여고 등의 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30세가 되던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석림(石林)'이란 필명으로 투고한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1963년 첫 시집 『아사녀(阿斯女)』를 출간하고, 이어 시극(詩劇) 「그 입술에 파인 그늘」, 장편 서사시「금강(錦江)」, 오페라타 「석가탑」 등을 발표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9년 4월 간암으로 사망한 그는 생전에 20여 편의 시를 발표했지만, 사후 그의 유작과 산문 등을 포함한 『신동엽전집』이 발간된(1975) 것을 계기로 민족적이고 민중적인 참여 시인으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 해설자 : 임동확(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집 『매장시편』을 펴내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시집 『살아 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 『처음 사랑을 느꼈다』, 『나는 오래 전에도 여기 있었다』, 시화집 『내 애인은 왼손잡이』, 5·18 20주년 기념 시선집 『꿈, 어떤 맑은 날』,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등을 펴냈다.
1. 얼굴 생김새 맞지 않는 발돋움의 흉낼랑 그만 내자
신동엽 문학은 우선 문명화되기 이전 세계에 대한 강한 향수와 동경을 품고 있다. 그가 「시인정신론」에서 밝히고 있는 대로 파도가 일기 전의 잔잔한 해변에 비유되는 '원수성(原數性) 세계'에 대한 갈망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의 대표 시의 하나로 손꼽히는 「향아」가 그 좋은 예이다. 그는 분업화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적 자본주의 문명을 "무지개빛 허울의 눈부심"으로 규정하면서 "수수럭거리는 수수밭 사이 걸찍스런 웃음들 들려 나오"던 "전설 같은 풍속으로 돌아가자"고 말한다. 또한 서구적 현대 문명을 수용하거나 추종하는 행위를 "기생충의 생리와 허식에 인이 배기"는 것으로 비판하면서 "얼굴 생김새 맞지 않는 발돋움의 흉낼랑 그만 내"고 "차라리 그 미개지", "눈빛 아침처럼 빛나던 우리들의 고향 병들지 않는 젊음"의 시절로 "돌아가자"고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신동엽 시인은 그렇듯 대지의 생명 위에 뿌리박지 않는 일체의 문명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특히 분업적인 개별화에 기반을 둔 현대사회와 문명의 특징을 파도가 일어 공중에 솟구치는 물방울로 비유되는 '차수성(次數性) 세계', 즉 대지적인 생명으로부터 그 뿌리가 뽑힌 한 그루 고목 같은 사회로 규정하면서 땅에 누워 있는 씨앗의 마음과 같은 '원수성(原數性) 세계' 또는 열매가 여물어 땅으로 되돌아오는 씨앗의 마음을 뜻하는 '귀수성(歸數性) 세계'로의 귀환을 꿈꾸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통합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에 기초하지 않는 오늘날의 문명에서 비롯된 정치와 경제, 철학과 종교, 과학과 문학 등은 '맹목기능자들'이 뚜렷한 목적 지향 없이 펼쳐 내는 '허구스런 건축'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그는 「시인 정신론」에서, 현대인들은 제 앞의 먹이에만 집중하는 닭과 같은 좁은 시야와 이익에 갇혀 서로 경쟁하거나 투쟁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문명의 모든 가치와 이념을 뛰어넘은 보편성과 인류애가 담긴 새로운 세계관과 인간관의 정립이 시급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에 따라 그는 시간적으로 인위적인 문명 이전의 "먼 상고(上古)" 또는 "삼한(三韓)ㅅ적"의 "이슬 먹은 세월"(「원추리」)까지 거슬러가고자 한다. 또한 공간적으로 온갖 "비본질적인 것들"을 벗어나 "살아 있는" "바람과 산"(「살덩이」)으로 대변되는 생명의 원초적 본질인 대지로 귀환하고자 한다. 그가 볼 때 "철도연변(鐵道沿邊)"의 "원분(怨憤)"과 "탄피(彈皮)의 산"으로 상징되는 맹목적이고 폭력적인 근대화와 전쟁의 광기 속에서 "우리들의 전답(田畓)만이" 유일하게 "상처 없이 누워 있"(「아사녀(阿斯女)의 울리는 축고(祝鼓)」)는 공간으로 다가왔던 셈이다.
2. '매어달린 세대'와 '껍데기는 가라'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신동엽 시인은 청소년과 청년기 시절 동안 8·15 민족해방과 더불어 시작된 좌우익 간의 갈등과 투쟁,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겪는다. 또한 사회인이 된 후로도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 등 크고 작은 역사적 격변에 시달려야 했다. 즉 그가 구체적인 한국의 역사적 현실과 민족적 고통에 뿌리박은 시를 쓰거나, 후일 사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후일 부조리한 당대의 현실과 폭력적인 문명을 비판하는 참여 시인이자 저항 시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는, 민족적 위기와 민중적 생활의 비참함을 직접 몸으로 겪어야 했던 자기 체험이 크게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신동엽은 자신의 세대를 "문명높은 어둠"에 "쫓기는 짐승"에 비유하면서 "매어달린 세대"(「······싱싱한 동자(瞳子)를 위하여······」)로 규정하고 있다. 국권 상실과 정치적 폭력의 연속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위상을 바로잡을 기회 없이 수동적으로 이끌려 오거나 종속당한 그 자신의 세대를 그 어딘가에 '매달린 세대'로 보았던 것이다. "나"의 "자리" 또는 정체성은 "백짓장 하나만큼 낮은 자리" 또는 아예 "없는 듯"(「나의 나」)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걸 증거한다. 역사적 "광란(狂亂)" 속에서 "보이는 건 눈에 묻는 나"(「눈 날리는 날」)라는 말 속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충격과 재난의 연속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을 수 없었던 세대의 고뇌와 아픔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존재론적 불안감과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끈질기게 모색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난다.
뿌리 늘인
나는 둥구나무.
남쪽 산 북쪽 고을
빨아들여서
좌정한
힘겨운 나는 둥구나무
다리뻗은 밑으로
흰 길이 나고
동쪽 마을 서쪽 도시
등 갈린 전지(戰地)
바위고 무쇠고
투구고 증오고
빨아들여 한 솥밭
수액(樹液) 만드는
나는 둥구나무
- 「둥구나무」
위 시에서 "둥구나무"와 동일화된 "나"는 결코 평탄하게 설장(設莊)하거나 안정화된 주체가 아니다. "등 갈린 전지"일 뿐인 "남"과 "북"의 갈등과 대립의 와중에서 "힘겨운" "뿌리"내린 "둥구나무"처럼 온갖 시련과 고통을 자신의 정체성을 살찌우는 자양분으로 "빨아들여" 겨우 "좌정"한 상태다. "동쪽 마을"로 대변되는 동양 또는 농촌과 "서쪽"으로 대변되는 "도시"화와 서구화 사이 반목과 전쟁, 분열과 투쟁 사이에 "나"는 그 자신의 "뿌리" 혹은 "다리"를 겨우 "뻗"고 있는 형국이다. "나"의 개인적 삶과 존재론적 안녕감을 위협하는 "바위"나 "무쇠", "투구"나 "증오"조차 "한 솥밭" 또는 "수액"으로 만드는 필사적인 몸부림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나"를 둘러싼 열악한 사회적 환경과 삶의 조건을 자아발전과 새로운 미래상을 위한 계기로 삼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단지 난폭한 외부 세계의 폭력으로 인한 박탈감이나 상실감에 대한 반응의 하나로서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자아 정체성 모색에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를 '매어달린 세대'로 규정하면서도 그는 민족적 현실을 직시하고 역사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또한 그는 "구름 한 송이" 또는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염원하고 그 "외경(畏敬)"을 알아 "볼 수 있는 사람"(「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을 꿈꾼다. 한국 근·현대사를 좌우한 대사건의 하나인 동학혁명을 중심적 모티프로 끌어들여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주체성을 되찾고 재전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그는 "끄덕하면 외세(外勢)를 / 자랑처럼 모시고 들어오"거나 "대중도 없이 서양깃발만 / 흔들어"대는 조국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진정한 "알맹이"(「금강」6장)의 역사를 찾고자 한다. 또한 그는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강화시키는 "콩크리이트의 철학"과 "포도알"을 실어나르는 "화차(貨車)"를 "도시로 징집"하는 "철면피"한 근대적 세계 속에서 "고려 때 뿌리"로 대변되는 훼손되기 이전의 역사적 공간을 확보하거나 "바다"와 같은 "고향"(「권투선수」)으로의 귀향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신동엽이 "동학년 곰나루"의 "아우성"과 "아사달"과 "아사녀", 그리고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향기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로 대변되는 "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고 힘차게 외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즉 그는 특별히 4·19혁명의 성공과 좌절을 지켜보면서 역사적 '알맹이'와 '껍데기'에 대한 각성과 경계를 분명히 한다. 그러면서 "빠다와 재즈", "딸라"와 "원조물자"로 표상되는 "양키이즘"(「금강」6장)과 같은 '껍데기는 가라'고 단호하게 외친다. 또한 "대포"를 "끌고 와" "강산의 이마"에 "금그어 놓았"던 "이방인"이나 "그 벽을 핑계삼아 딴 나라 차"린 것은 진정한 "우리"라고 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와 더불어 "서붓사람들의 은행소리에 홀려 / 조국의 이름 들고 진주코거리"를 "얻으려" 다니는 행위 역시 "우리들의 가슴 깊은 자리"에 "흐르고 있는 / 맑은 강물"의 "조국"이 아니다. 그야말로 그 모든 것들은 본질적인 것이 아닌 "껍질"일 뿐으로서 "저희끼리" 경쟁하고 "싸우다"가 "흘러"(「조국」)가 버릴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그가 볼 때 제국주의와 사대주의, 서구적 기계 문명과 그에 대한 부화뇌동 행위는 한낱 "역사의 껍데기"(「금강」6장)로 "역사의 하수구"로 "흘러가버"(「아사녀」)릴 대상일 뿐이다.
반면에 그는 "삼한으로 백제로 고려로 흐르던" "평화의 마음"과 "아사달"과 "아사녀"의 아름다운 "몸부림", "3·1의 하늘"로 대변되는 "찬란한 저항"과 4·19혁명이 보여 준 "충천하는 자유에의 의지"(「아사녀」)를 높이 평가한다. 특히 그는 장편 서사시 「금강」을 통해 "각자 스스로"가 "한울님"이라는, "모든 중생"과 "이웃사람"을 "한울님 섬기듯" "섬길"(「금강」4장) 것을 강조하면서 "한 생명을 독점하려는 소유욕" 대신 "내것/네것" 구분하지 않는 "세상"(「금강」9장)이야말로 참된 '알맹이'의 역사가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야말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 "지주"와 "관리", "은행주"와 "특권층"이 없는 "평화"와 "평등"의 "두레" 또는 "무정부 마을"(「금강」6장)이 그가 꿈꾸는 진정한 이상사회의 모델이었다고 할 수 있다.
3. '완충지대' 추구와 세계평화 의지
신동엽의 시 세계를 지배하는 일관된 주제 의식 가운데 하나는 바로 다름 아닌 '완충지대'의 추구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차적으로 "개성에서 / 금강산"에 이르는 "반도의 허리" 또는 "중심부" 지역을 가리킨다. 하지만 단지 그것이 지리적이고 물리적인 공간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또한 그것은 정치적이고 인간주의적인 남북 간의 평화와 공존 지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선 그것은 "북쪽"이나 "남쪽"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이념적인 "중립지대"(「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제밤은」)를 뜻한다. '완충지대'의 또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인 "정전지구(停戰地區)"는 잘못된 "역사"의 "고드름"이나 "초연(硝煙)"을 "폭포처럼" 흘려 보내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새벽"의 시간 또는 "바심하기 좋은 이슬젖은 안마당"(「새로 열리는 땅」)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그것은 외세의 침입이나 국내 특권층의 횡포로부터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았던 시절 '북부여'와 '백제', '고렷땅'과 '북간도' 등 역사적 공간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또한 국내적인 시각을 넘어 "온 세계"의 "초록정원"에 피어나던 "천만가지" "향기"의 "아름"(「오월의 동자」)다움에 대한 추구로 이어진다. 달리 말해, 그의 완충지대 설정 또는 중립주의 추구의 사상은 분명 외세의 힘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현실과 역사적 공간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평화 공존의 이념으로 승화되고 있다. 그가 주창하고 염원하는 '완충지대'는 한 나라와 한 민족의 국경을 넘어 인류 보편적인 사랑과 박애,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실현되는 그 어떤 공간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허면 두 코리아의 주인은 우리가 될 거야요. 미워할 사람은 아무데도 없었어요. 그들끼리 실컷 미워하면 되는 거야요. 아사녀와 아사달은 사랑하고 있었어요. 무슨 터도 무슨 보루(堡壘)도 소제(掃除)해 버리세요. 창칼은 구워서 호미나 만들고요. 담은 헐어서 토비(土肥)로나 뿌리세요.
비로소, 우리들은 만방(萬邦)에 선언(宣言)하려는 거야요. 아사달 아사녀의 나란 완충(緩衝), 완충(緩衝)이노라고.
- 「주린 땅의 지도원리(指導原理)」 중에서
위 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남북으로 갈라진 "두 코리아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아사달"과 "아사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이 비극적 운명을 숭고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듯 군사적인 대치 목적의 "보루"나 "담"을 "토비"로, "창칼"을 "호미"로 만드는 노력을 하자고 제안한다. 민족적인 의지와 상관없이 설정된 이념적이고 인위적인 장벽과 경계를 넘어서는 "완충"지대의 확보가 가능할 때, 일체의 미움이나 증오에서 비롯되는 대립이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단지 국내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닌, 세계 "만방"에 평화와 공존의 새 원칙을 "선언"하고 실천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렇듯 그는 "전화(戰火)"와 "쓰러진 폐허"의 "우리네 조국"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빛나는" "낭만"과 "미소"가 살아 있는 "인류(人類)에의 길"을 "증명"하고 실현하기 위한 유토피아적 공간으로서 '완충지대'를 모색하고 있다. 단지 한국만이 아닌 "아시아 대륙"을 비롯한 세계 약소국가를 "군화"와 "신무기"로 무장한 채 "이유 없"이 "침략"을 자행해 온 제국주의적 세력의 "발과 다리", 그리고 "발톱"(「발」)에서 자유롭고 해방된 그 어떤 시공간을 모색해 왔던 것이다.
신동엽 시인의 이러한 사상적·문학적 지향을 잘 보여 주는 시가 바로 그의 「산문시 1」이다.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 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황도밭은 사람 상처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에 놀러 가더란다.
- 「산문시 1」 중에서
얼핏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세계를 지향했던 노자(老子)의 사상을 연상시키는 위 시에서 신동엽은 자신의 지향하는 "중립국"의 이상을 명확하고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즉 그가 꿈꾸는 "중립국"은 먼저 "농민들"조차 "대학"교육을 받는, "지성"과 예술가적 소양은 물론 경제력까지 일정하게 갖춘 나라이다. 특히 그곳의 "국민들"은 어떤 경우에도 "총쏘는 야만"에 가담하지 않는 반전(反戰) 의지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최고 지배자를 나타내는 "대통령"조차 권력을 남용하기보다 단지 하나의 "직함"일 뿐인, 여느 평범한 사람들과 다름없는 행위를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신동엽이 꿈꾸는 '완충지대'는 단지 "두쪽 난 조국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한 "염원"(「밤은 길지라도 우리 내일은 이길 것이다」)의 한 형태만이 아니다. 또한 "아사달"과 "아사녀"로 비견되는 갈라진 한민족 간의 "중립의 초례청"(「껍데기는 가라」)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물론 일차적으로 분명 그것은 "한반도에 와 있는 쇠붙이"와 "가시줄"로 상징되는 이념의 대립과 군사적 갈등을 '완충'하거나 종식시킬 공간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극복 여부에 따라 그것이 "세계" 평화의 "밀알"이 될 수 있다고 "수운"의 "말"(「수운(水雲)이 말하기를」)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볼 때 "우리" 민족이나 국가만이 "헤어"지고 "나누"어진 게 아니며, 당대의 세계인들 역시 그 형태를 다를지라도 한민족과 동일하게 온갖 분열과 소외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신동엽이 추구하는 '완충지대'는 단지 "유린과 착취가 / 무한대로 자유로운 / 버려진 땅"으로서 "반도(半島)"(「금강」13장)에 한정되지 않는다. 서로의 "모습"과 고통의 정도는 다르지만"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즉 "한 우주 한 천지"(「달이 뜨거든」) "속에" 살아가고 있는 당대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다. 또한 그러한 인식은 "주림과 추위와 분노에 지친" "인류"와 그 "정신사"(「금강」14장)를 꿰뚫어보고자 하는 예언자적인 지성과 시인의 예지로 발휘된다. 다시 말해, 그의 중립주의 속엔 한 국가의 국민을 넘어서는 "자기혁명"과 "국가혁명",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류혁명"을 통해 "통치자"가 "백성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 "지상낙원" 또는 "이상사회"(「금강」16장)를 건설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들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4.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흔히 신동엽은 자본주의에 기초한 현대 문명과 그 생활방식에 강한 거부감을 바탕으로 원초적인 생명세계에 대한 깊은 연민감과 유대감을 지속적으로 표현해 온 시인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데올로기적인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진 민족적 현실과 가난과 핍박에 시달려 온 민중들의 삶과 그 저항의지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준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외세'문제와 반역사적인 행위와 전통에 대해 특별한 자각과 경계심을 내보이며 올바른 민족관과 역사의식을 모색하려 했던 비판적이고 지성적인 시인의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러한 신동엽은 "자본"과 "대포"를 "앞세"우며 한반도에 "진출"(「금강」20장)한 일본과 "청나라", 미국 등의 제국주의 세력과 거기에 빌붙은 "사대"주의자들의 "도둑질"과 "약탈", "정권만능"주의와 "노동착취"의 현상을 우선적으로 개탄한다. 또한 자기 "출세"를 위해 "형제의 등을 밟고 / 친구의 목을 부러뜨리"는 것을 의미하는 "고시(考試) 공부"(「금강」13장) 등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인간형에 대한 부정과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붓깍지로 빼앗긴", 즉 부정 "투표"에 의해 민주주의를 찬탈당하거나 외세에 기탁한 권력자들이 새로운 "시대"의 "봉건영주"(「주린 땅의 지도원리」)로 군림하는 것을 야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모든 현대적 문명이나 제도, 그리고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거부하거나 저항적 자세를 시종일관 견지했다고 보는 것은 단견이다. 여전히 봉건적인 잔재를 떨치지 못한 채 가난과 체념 속에 사는 민족과 민중의 비극적 현실에 주목하는 가운데서도, 분명히 그는 거의 비슷한 운명과 처지에 놓여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인 등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그의 시 작품들 속에서 곧잘 확인되듯이 반외세적이고 반문명적인 관점을 지닌 한 민족주의자적인 시인 또는 또 다른 한 명의 한국인을 넘어, "어두운" "세기의 대합실 속"에서 "인류"의 "정신"에 대해 분명한 자각을 가진 "빛나는" "아름다운 눈" (「빛나는 눈동자」)을 소유한 세계인으로 살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시어(詩語)인 '눈동자'가 그의 중요한 시적 소재 또는 문학적 장치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흔히 '마음의 창'에 비유되는 '눈' 또는 '눈동자'는 그의 시 속에서 참된 인간이 찾고 지켜가야 할 정신적인 원형 공간 또는 고향을 의미한다. 또한 역사와 현실의 비참함과 참혹함 속에서 빛나는 이상적인 세계로 가기 위한 "열려있는 창문"이자 고향 상실 또는 세계 상실감에 시달리는 '나'의 잃어버린 "서정"의 "시간"을 두레박질하는 "내실의 / 공간"(「금강」10장)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서로 간의 막힌 대화를 여는 출구 역할과 함께 "높은 의지"로 "승화된" 인간의 "정신"과 "눈물겨운 역사"가 빚어낸 "미(美)의 지고한 빛"이 "스며 나오"(「금강」3장)는 "빛나는" "영원"의 "하늘"(「금강」2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민족 또는 민중 문학의 선구자'라고 지칭하는 것은 본의 아니게 그의 문학적 이념을 좁혀 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즉 서로 간의 끈끈한 유대와 상호 호혜적인 삶의 양식이 지배했던 한국 전통에 대해 깊은 관심과 애정을 주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신동엽이 무조적으로 자연과 민족을 옹호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땅은" "정말" "열반일까"(「창가에서」)에서 망설이고 회의하는 태도에서 확인된다. 또한 이것은 4·19혁명과 3·1운동에 참여한 "우리들"을 노래하면서도 동시에 "알제리아 흑인촌" 또는 "카스피해 바닷가의 촌아가씨"가 사는 "마을"(「아사녀」)을 상기시키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그를 당대의 현실에만 주목하는 참여적이고 저항적 시인으로 보거나 단지 민족·민중운동사적인 관점에서 그의 문학 세계를 조명하는 것도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무정부주의자로 평가되는 그는 단지 민족적이고 국내적인 시각을 넘어 세계사적인 모순과 전쟁이 낳은 불행과 갈등에 저항하고 항거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들 간의 평화와 우애, 협력과 조화가 이뤄지는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을 보고자 했던 평화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시인 중의 한 명이었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5.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신동엽 시인의 시 세계의 의미와 시사적(詩史的) 위치는 무엇인가?
신동엽 시인은 1960년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경제성장과 물질 위주의 한국적 근대화에 따른 모순과 서구적 현대 문명의 폐해에 주목하면서 원초적인 대지와 생명의 가치를 옹호하는 문학 세계를 펼쳐 갔다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민중적 현실의 비참함과 민족적 분단에 따른 이데올로기 갈등과 대립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리얼리즘적 창작 원리에 바탕을 둔 민중문학 또는 민족문학의 새로운 길을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각종 외래 사조가 한국 문학을 지배하던 50년대의 한국 문학계와 순수시·참여시의 논쟁이 본격화된 60년대 문단에서 참여시 또는 민족·민중시의 영역을 구축하고 또 그에 걸맞은 시 작품을 보여 주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 신동엽 시인의 시에 나타난 '여성'들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신동엽 시에 나타난 여성들이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다분히 기존의 남성주의적 시각에 쓰여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장편 서사시 「금강」의 등장인물 가운에 나오는 '진아'의 얘기에서 보여 주듯이 '고구려의 밭' 또는 '백제의 씨'로 대변되는 역사적 전통의 담지자로 설정되고 있다. 또한 '진아'가 단지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의 한 명인 '신하늬'만을 만나기 위해 태어나고 성장하는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을 한 가지 목숨으로 생각할 줄 아는 우주모(宇宙母)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딱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장시 「여자의 삶」에서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듯이 '좋은 씨'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선택할 권리가 전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되어 있으며, 특히 그러한 신성(神性)을 가진 여자는 전쟁을 막거나 위대한 성인을 길러 내는 역할을 해낸다. 무엇보다는 그의 시에 나타나는 여성이 단지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것이 아닌, 그가 추구하는 대지와 인간 회복을 상징하는 시적 모티프라는 점에서 그에 대한 비판은 재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임동확 /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