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는 대충 하는게 아냐
집 담벼락 아래에 수국이 피었습니다. 희고 둥그런 꽃송이를 볼 때 마다 엄마가 생각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가지들이 아래로 늘어지고 옆으로 뻗쳐서 자동차들이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비만 오면 꽃송이가 젖어서 더 쳐지곤 했지요. 꽃만 키울 줄 알지 가지치기를 할 줄 몰라서 생긴 일입니다. 그러던 중 엄마가 오셨습니다. 수국 나무를 보시더니, "이러면 나무가 위로 크지 못하고 옆으로만 뻗쳐서 안 예뻐." 라고 하시며 가지 하나를 꺾었습니다. 엄마는 허리가 아프시니 입으로만 지시하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단호했습니다.
“여기 잘라봐.” “여기? 알았어.” “저 가지도 잘라내 버려” “아, 이것도?” 가지가 잘려나가는 것을 보니 속이 후련했습니다. 엄마는 점진적으로 냉혹해졌습니다. “여기 이것도 잘랐으면 좋겠는데” “헐, 엄마 이건 너무 굵은데… 쳐내면 휑하지 않을까?” 슬슬 불안해졌습니다. 더 잘라내면 정말 필요한 것까지 없애 버려서 불편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엄마는 의연한 표정을 지으시며, “잘라내도 금세 새 가지들이 올라와.” 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가지를 잘라내며 살벌한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수국 나무가 날씬해졌습니다. 우거진 잎들 속에 숨었던 나무 밑 둥과 굵은 중심 버팀목이 드러났습니다. “오, 얘가 이렇게 듬직한 애였어?” 잘려나간 가지들도 아프다거나 잃었다거나 하는 상실의 흔적보다는 ‘가볍다. 자유롭다. 짐이 내려놔진 것 같다. 이젠 무거운 꽃송이들을 떠받치지 않아도 되겠다.’ 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가지치기, 이렇게 하는 거구나. 다 잘라내면 꽃이 덜 필까봐 또는 우거진 꽃이 아니래서 지나가는 이들이 안 예쁘다고 할까봐 두려웠던 겁니다.
제 평생 울 엄마의 단호한 태도는 처음입니다. 늘 희생적이시고 자기 존재감 같은 건 엄두도 못 내시며 순교자처럼 살아오신 분이시지요. 이렇듯 가지치기를 잘하시는데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남편의 요구는 왜 다 받아주고 사셨을까요. 자식들에 대한 걱정근심은 왜 덜어내지 못하고 감당하시다 축 늘어진 수국처럼 병이 나신 거냐고요. 엄마는 가지치기를 해주시면서 큰 딸인 저만이라도 무거운 짐, 책임져야할 일, 챙겨야 하는 가족에 대한 무게감을 덜어내고 편히 살기를 바라셨을 겁니다. 가지치가 잘 된 수국 나무를 보니, 제 맘까지 가벼워지고 단순해진 느낌입니다. ‘그래, 이렇게 살아. 내가 세상을 다 구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착하게 살아서 성인이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바르고 착하고 잘하고… 모든 것에 완벽한 그런 인생이 있을까. 솔직히 그렇게 살지도 못하잖아. 그냥, 살아. 기쁘고 행복하게.’ 우리가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께서 “너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니?” 라고 물으실까요. 아니요, “너 하루라도 행복한 적이 있었더냐. 너답게 기쁘고 자유롭게 살다 왔니?”라고 하시지 않을까요.
나만의 옷을 제대로 입고 나다운 꽃을 더 잘 피어내려면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엄마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것도 살살, 가지 몇 개 잘라내는 일시적이고 소극적인 가지치기가 아닌, 엄마처럼 냉혹하고 단호하게, 누군가에겐 잔인할 정도의 자극일지도 모를 그런 가지치기 말이죠. 다 잘라내고 공간이 생기면서 서로 부대끼지 않아도 되겠네요. 하느님과 나 자신이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 타인의 모습도 잘 볼 수 있겠지요. 가지치기가 왜 필요한지 알겠는 겁니다. 엄마가 생각납니다. 수국이 피는 5월 성모성월엔 더 그렇습니다. 엄마에게 달려가 아이처럼 안기고 싶습니다. “엄마, 나 왔어요.”
/박지현 요세피나 sbs 공채 1기 방송 구성작가,
전 가톨릭 비타꼰 기자, 저서 「45일의 기적」
「일상의 소소한 매듭풀기」
첫댓글 박지현 요셉피나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