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제가 미국 텍사스에서 보냈던 화물(그림) 정리를 한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은, 그 글을 올리면서 느꼈던 얘기 하나를 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 그림들 대부분은, 제 멕시코 시절(1995-1997) 1년 반 동안 그렸던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제가 멕시코를 떠나오면서, 자잘한 종이 드로잉들은 직접 가져왔지만(테라코타 몇 점도 깨트려가면서까지 가져왔는데요), 현지에서 두 번에 걸쳐 전시를 했던 큰 그림들(유화 등)은,
거기에 있던 한국 수녀원에 맡겨두고(나중에 찾아갈 거라며) 올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제 뜻대로 돼주질 않아, 12년을 끌다가,
그 수녀원에서 그림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고(독촉) 한동안 전전긍긍하다가,
2009년 미국에 가서 '멍 신부님' 주선으로 텍사스에서 일 하나를 맡아 하게 되어, 몫돈을 만진 다음에야 겨우 그 그림들을 찾으러 멕시코에 갔었는데,
어쩌면 제 멕시코 시절 그림 중 대표작이랄 수 있는 '기타치는 사람'(아래)은 없어져버린(?) 뒤였고,
(아,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그 그림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열 몇 점의 테라코타 작품들도 다 사라진 뒤여서(멕시코 친구에게 맡겼었는데, 그 행방조차 모르고 있어서),
(그 중, 두어 점의(이제는 사라져버린) 사진을 선보입니다. 아래)
씁쓸한 기분으로, 그 나머지라도 정리를 해야했기에,
그 당시 미국 텍사스에 있던 신부님의 권유도 있고 해서, 텍사스로 그림들을 보냈었는데요,
사실 멕시코에서 그렸던 그림들 중에는, 현지에 몇 점 남겨둔 것도 있기는 하거든요?
그 시절 제가 신세를 졌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남겼던 것도 몇 점은 되고, 벽화 실습 작품 같은 건 무게 때문에 가져올 수가 없어서, 두세 점 현지에 맡겨두었는데, 그런 것들은 앞으로도 가져올 수가 없을 겁니다.(한 한국인 교포에게 맡겨둔 작품들은, 그 가족이 미국으로 이사했다는 바람에 수소문을 할 수조차 없는 등... 제 기억 속에만 남은 작품이 되고 말기도 했답니다.)
그러고도(그 때는 그 그림들을 미국 내에서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다시 십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아, 그런 와중에 신부님도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제 그림들이 갑자기 갈 곳이 없어져서... 최근에야 부랴부랴 그 그림들을 한국으로 보냈던 건데요,
(아, 하다 보니, 그런 과정의 얘기도 한 '얘깃거리'네요.)
물론, 작품 하나 하나마다 다 그 사연이 있는 거지만,
오늘은 이번에 정리했던 그림 중,
제가 2009년 미국에 처음 도착하면서 그렸던 '남궁 문, 뉴욕에 오다'라는 그림에 대한 얘기를 간단하게 하려고 합니다.(하고 싶어서입니다.)
이 그림은요, 제목 그대로...
제가 미국에 가려고 시도를 많이 했지만(멕시코 시절부터) 비자 때문에 갈 수가 없어서,
'더러워서 안 간다!' 하고 미국 쪽엔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가,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나중에 멍 신부님이 텍사스에 자리를 잡은 뒤에, 한 번 오라고도 해서,
없는 돈에 겨우 비행기표 값만 준비해서 일단 '뉴욕'으로 날라갔던 건데요(당시 제 고등학교 미술반 후배 하나가 뉴저지에 거주하고 있어서),
당시 미국 공항 도착 상황이 너무 감격스러워,
'결국, 내가 뉴욕에 발을 들여놓았구나!' 하는 심정으로 표현했던 드로잉인데요,
그 얼마 뒤, 텍사스로 넘어가, 신부님의 주선으로 일을 맡아 하던 중,
그 드로잉을 조금 큰 크기의 유화로 옮겼던 게, 여태까지 텍사스에 남아 있다가 이번 짐에 섞여 함께 왔던 거거든요.
그러니 저는 이 그림이(액자까지 돼 있어서, 놀랐는데요.), 애틋하기까지 해서...
'오죽했으면, 제목도 그렇게 붙였을까......' 하는, 감상에 젖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아, 그렇게 그림도 다 그 사연이 있답니다.
작가인 제 자신에게도 깊은 회상에 잠기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