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위대한 번영(繁榮)과 화해(和解)
최근에 번영신학이란 주제가 화두였다. 번영신학이란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이 그에 상응하는 댓가나 번영을 하사한다고 믿는 형태의 신앙이다. 기복신앙과 비슷하다고 여겨 기피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놀랍게도 기복신앙이 아니라도 하나님을 섬기면 반드시 그 번영과 평화가 임재한다고 말씀하신다. 그 번영과 평화가 영원하려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이 하면 된다고 하신다. 그것이 바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가 스스로 거룩하 ”(레11장 44)라 약속하신 말씀에서 기인한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큰 틀에서 출애굽기 끝과 레위기의 초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출애굽기 40장 34.35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도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제사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성경을 레위기인데 히브리어로 와이크라(Wayqra=그가 부르셨다)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이 모세를 장막으로 부르셨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cf: 모세5경 이름
창세기 브레시트(태초에), 출애굽기 웨엘레 쉐못(그 이름들은 이러하니) ,레위기 웨이크라 (그가 부르셨다), 민수기 베이드 바르 (광야의 집에서) , 신명기 데바림(말씀들)
장막으로 부른 후의 기록인 레위기 1:1.2에 보면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고하여 이르라..” 출애굽기에는 모세조차도 하나님의 장막에 들어갈 수 었었는데 여기서는 직접 장막에 모세를 부른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하나님이 죄인인 인간을 대하시는 방법을 기록한 구절이다. 레위기는 태중복음이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의 원형이 여기 나타난다, 그리고는 11장에서부터 구체적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백성과 어떻게 함께 계시고 싶은지에 대한 설명을 한다.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내게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장 45절
이 구절을 이해하기 전에 10장 19절에 놀라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아론이 모세에게 이르되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제물을 먹었더라면 여호와께서 어찌 좋게 여기셨으리요”
어느 날 모세가 하나님께 속죄제로 염소를 드렸는데 아론의 아들인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규레 대로 거룩한 곳 즉 “누룩을 넣지 말고 단 곁이나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레 10:12,13)” 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슨 연유인지 규정대로 먹지 않고 제멋대로 먹어서 그 아비 아론에게 항의하는 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거룩함을 규정한 많은 규정 중에 먹는 것에 대한 여호와의 반응이 “선히 여기시지 않았다”고 대답하면서 모세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내가 먹었다 할지라도 아마 그들과 똑같이 행했을 지도 몰라 좀 봐주세요 하며 사과하는 장면이다. 이 사과를 들으면서 다음구절(20절)에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고 기록한다. 분명 하나님의 명령에 어긋난 행동을 했는데도 좋게 여기고 넘어갔다. 제사장 등의 응식(應食)이 너무 많아 그들은 힘들었다. 누룩도 넣지 않은 밀가루 음식과 소금도 치지 않은 고기를 먹어보았는가?
한바탕 이 해프닝을 겪은 다음 바로 11장이 기록된다. 1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먹을 거리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먹을 거리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마치고 바로 44.45절의 말씀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여기의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거룩함은 누가 강요하는 것에 의한 것도 아니다.
또 거룩의 규례를 살짝 범한 자에게 당장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도 아니다. 순결과 거룩은 스스로 우리의 몫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 우리와 함께 하시겠는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심이 쉬운 일이었던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신 것이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다. 너희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쉬워서 너희를 건져냈으니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서 너와 함께 하고 싶다. 그래서 나의 지극한 거룩이 너와 상충이 되니 내가 거룩의 기준을 너에게 낮춰서 요구할 것이야
총각 때 한 여성과 교제한 적이 있다. 같은 직업을 갖고 있고 선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종교가 다르기도 하가니와 결정적인 한가지 걸림돌은 상대방이 술 담배를 끊지 못함에 서로 힘들었다, 그리하여 상대는 술은 단박에 끊고 같이 교회에 다니면서 동화되었지만 담배문제가 서로를 갈라지게 했다. 그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하신 말씀처럼 나의 여인이 되려고 스스로 노력했지만 극복하지 못했다. 그가 나에게 아쉬웠지만 스스로 극복해 내지 못했다.
하나님이 아쉬워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거룩함의 속성을 낮추고 가리워 우리와 사랑을 공유하고자 하심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이다 거룩의 기준이 엄청난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이 담배만 끊는 것처럼 쉽고 가능한 이이다.
하와가 실패한 첫 번째 요인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음식 문제 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졀이 일상의 생사 문제에서 시작됨을 알았고 쉬운 결론을 내려 주셨다.
인간의 타락의 시작은 시기와 질투 혹은 내적인 극심한 내면투쟁이 아닌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즉 보이고 느끼고 만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우리의 기본은 먹을 것 이다. 하나님은 먹을 것이 우선이 아니다. 아울러 우리의 보존 즉 거룩의 시작은 본성을 정상 궤도로 올리는 것에서 시작 한다 아울러 하나님 측에서는 우리가 가장 쉬운 것에서 시작하라는 배려이다. 먹는 것에서 일상으로 그리고는 그 다음 단계가 하나님과 영적교제이다.
개인적인 거룩을 지나서 이제는 일상의 관계로 넘어간다.
레위기19: 2.3.4 “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헛 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순서에 유의하라 십계명의 순서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측에서 이루어야 할 거룩은 먼저 인간 관계에서 지켜지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 알듯이 1-4 째 계명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법이요 5-10째 계명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법이다 그중 으뜸은 5번째 계명인데 이를 약속(約束 = 許諾)의 계명이라 한다 1-4계명은 이에 반해 구속(拘束)의 계명이라 일컽는다. 약속계명이란 하나님께서 이 계명을 지키면 이렇게 되리라 선포하셨고 이를 스스로 지키면 그 약속대로 이행하시는 법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편든다. 자식이 똑똑하든 불구이든 돌보야 할 존재이든지 관계없다. 무조건적 관계다. 하지만 자식에게 부모는 의식적으로 사랑하는 존재다. 이익과 손해가 상존하고, 시간과 재물이 있어야 이어지는 존재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적 거룩은 손해와 이익 그리고 시간과 재물을 넘어서서 의식적으로 행하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거룩임을 강조한다.
그리고는 거룩은 구속(拘束)의 계명으로 들어간다. 시간과 함께하는 안식일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막은 거룩이 임재하는 물질이지만. 안식일은 거룩이 임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사랑해보라 하나님은 안식일에 사람과 더불어 거룩을 공유하신다. 안식일은 시간의 모습을 한 거룩한 영(靈)이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거룩하라고 요구하신 세번째 분야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였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 20:26).
거룩은 확장성이 있다. 오로지 집단 이스라엘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나라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열국이 하나님의 거룩을 인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신 4:6-8).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상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을 드러내야 하는 강력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레위기에서 거룩은 구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개인를 지나 그리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넘어 세계의 공동체를 번영시키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각 구성원이 하나님과 화해하기 위한 것이다. 거룩은 규정을 따르는 개인 행위와 관련 있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행위가 하나님 나라의 대리자인 하나님 백성 전체의 삶과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고자 하신다. 인간의 수준이 너무 차이나면 관계가 고달퍼진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유명한 모 재벌 회장 딸이 대학교 때 평범한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했다. 하지만 문화와 생각과 행동거지와 서로가 만나는 사람과의 다름으로 인해 결국은 이혼해서 각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유명한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안다. 이들 관계도 힘든데 하물며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죄악 많은 나와 함께 하기 위해 버려야 하는 그분의 고통스러운 포기중의 하나가 “나의 거룩이 너의 거룩”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낮춰 그분의 신부로 우리를 맞기를 갈망하신다. 만약 그분의 표준대로 거룩하게 되어야 힘께 하신다면 우리는 누구도 주님의 거룩에 참예할 수 없다.
거룩의 특징은 관계다. 관계의 최고봉은 사랑이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에게 가장 거룩한 상태는 무엇인가. 본문 성경절이다. “나도 거룩하니 너희도 내게 거룩할지어다” 레위기 11장 45절 .
최고의 사랑의 상태는 서로만 바라볼 수 있는 관계이어야 한다. 나는 너밖에 몰라 네가 전부야 그러니까 너도 나밖에 모르고 내가 전부여야 해 그럴려면 너는 나만 바라보아야 해 나만 사랑해야해 부부가 최상의 사랑은 서로만 위하는 관계이어야 한다. 신부가 가장 거룩한 상태는 신랑밖에 모르는 것이다 신랑만 쳐다보는 것이다.
사랑의 속성은 All or nothing이다 나는 나는 아내를 99%만 사랑하고 1%는 이웃 여자를 사랑해 라고 한다면 가능한 일인가. 그러므로 신부의 가장 순결한 상태는 신랑과의 순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다 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는 너밖에 몰라 온 하늘에 나 하나밖에 없어서 나를 위하여 기꺼히 십자가라도 뛰어들겠어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이다.
바라는 하나님의 엄청난 배려가 오늘 배워야할 교훈이다.
하나님만쳐다보는 것이 최고의거룩이다..
요한복음 17장 14절-15절 “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