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산업화와 노동계급 김용현
영국: 영국의 산업화는 기술혁신과 공장제의 측면에서 그리고 경제성장률과 같은 거시경제지표에서는 단순히 조용한 혁명이었을지 모르지만 근대적 부문에서 전통적 부문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시켰으며 이러한 변화는 대다수 근로 민중에게 이전과는 아주 다른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근로민중의 경험을 통해서 보면 그것은 분명 급격한 혁명이었다. 부르주아지의 가치와는 다른 노동자 문화로서의 독자자적인 함의를 지녔으며 직종조합의 한계를 넘어서서 노동자 사회 일반에 영향을 주었다. 1830년대 초까지의 항의는 대체로 경제적 약자와 경제적 강자의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적 양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불리해진 직종의 종사자로서, 이들의 운동 가운데 전형적인 것은 러다이트나 스윙폭동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 강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노동수요가 확대되는 직종의 종사자들을 가리키며, 주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였다. 이들 항의의 두 흐름은 1830년대에 일시적으로 통합되는데, 그것이 의회 개혁운동을 거쳐 보통 선거권을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중기의 경제적 번영과 함께 이러한 항의는 점차 약해졌으며, 그 대신에 장인과 숙련노동자 중심의 신형조합들이 온건한 노동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노동당의 성립과 발전은 노동계급이 혁명보다는 오히려 현대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새로운 산업도시에서 나타난 공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태가 사회문제화 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이 나타났다.
그런데 19C 프랑스 노동운동과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를 주도하였던 것은 ‘근대적 프롤레탈리아’로 일컬어지는 수공업 노동자들이었다. 노동운동이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권위주의 정부의 억압이 약화된 제2제정기 말부터였다. 이시기에 사회주의는 제1인터내셔널의 영향 하에서 수공업 부문을 중심으로 하여 노동조합들이 조직되었으나 1880년대부터 노동조합들은 지역적 연대를 넘어 지방적, 전국적 조직을 구축하게 되었고, 이와 병행하여 사회주의 정당들도 출현하고 마르크스주의가 프랑스에 도입되어 노동운동을 주도하려 하였다. 이후 20C 사회주의 정당은 극심한 분열을 겪었고, 프랑스 노동운동은 급속히 혁명적 노동조합주의 이념, 즉 생디칼리슴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1890년대부터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의 현실적 이익을 위하여 보통 선거제 아래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법으로 만드는 의회에 대한 압력이라는 형태로 실현된다.1892년, 아라스협정을 기점으로 노사간의 분쟁을 단체협약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경향이 대두되었다. 제1차세계대전 직전에 서유럽의 일반적인 노동운동 패턴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독일: 산업화는 1830-70년, 1870-1914년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초기산업화, 뒤의 단계는 고도산업화의 시기라 할 수 있다. 초기산업화 시기 초기의 주된 특징은 지역별 불균등발전, 농업의 우위, 수공업의 지속적인 발전, 근대적 부분의 왜소로 나타난다. 요컨대 초기산업화는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구조변화의 과정이었다.
고도산업화 시기에는 무엇보다도 근대적 생산조직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1900년에는 공업인구에서 근대적 부문 종사자는 60% 이상을 차지하였다. 근대적 생산조직은 특히 생산의 집중화 경향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집중은 수직적 결합 또는 수평적 결합의 형태를 취하였다 초기산업화와 고도산업화시기의 노동자 생활수준을 살펴보면, 초기 산업화시기에 생활수준은 정체되었던 반면, 고도산업화 시기에 생활수준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노동 운동의 양상 파업, 노동조합, 노동자 정당
러시아: 러시아의 산업화는 서구에 비해 생산조직당 다양한 구성요소를 포함한 장기적이고도 점진적인 발전과정이었다.
러시아 노동운동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거론되는 것은 그 주역이 산업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점이다. 실제로 19세기 후반 러시아 노동운동에서 주역은 공장노동자였고, 1905년이나 1917년 혁명에서 대대적으로 동원된 것도 그들이었다. 러시아 노동계의 두드러진 특징은 농노해방에도 불구하고 농노제의 관행이 뿌리깊게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러시아 노동운동이 다른 서구에 비해 훨씬 강력한 전투성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투적인 노동운동을 촉발한 것은 바로 정부의 정책이었다. 정부는 예방적 차원이 아니라 사후 수습차원에서 노동문제에 개입하였고, 미흡한 조치로서 그들의 불만을 해소함으로 인해 노동운동은 결과적으로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혁명정당과 노동자 대중의 대대적인 결합을 초래 한 것이 바로 경찰사회주의였고 이는 '피의 일요일'로 귀결되었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는 바로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본격적으로 결합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질문:1정부가 노동자의 불만을 해결하지 못해서 러시아 혁명일어 난 것이라면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파시즘 또한 당시 사회의 계층의 불만으로 생성 된 것인데 그러면 러시아의 혁명도 이와 같이 보도 될까요
질문2: 영국의 러다니트나 스윙폭동의 설명 해주세요 그리고 이것이 차티스트와 연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