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온전한 믿음으로 주님께 충성하는 달☜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冕旒冠)을 네게 주리라(계2:10)
계2:8-11절)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
지난 2003년 3월, 홍콩에서 갑자기‘싸스’라는 급성 전염병이 퍼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 병을 두려워하여 환자들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홍콩의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은‘싸스’에 걸린 환자들을 피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내놓고 치료를 하였는데, 그 바람에 홍콩의 의료진들 중에서 여러 사람이‘싸스’에 감염이 되었고, 그 중에서 죽은 사람도 여러명 있었습니다.
홍콩 사람들은‘싸스’를 두려워하지 않고, 환자들을 돌본 이 의료진들이야말로 진정한 홍콩의 정신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또 2011년 3월 11일에는 일본 동북부 지방에‘쓰나미’가 덮치는 바람에 원전이 폭발하고, 그 안에서 방사능(放射能)이 누출되었을 때, 누구든지 그 안에 들어가면, 방사능(放射能)에 피폭이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꾸만 올라가는 원자로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그 원자로에 가서 물을 뿌리겠다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자기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지키려는 영웅(英雄)들이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아주 중요한 책임을 맡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 일은 전방을 지키는 군인일 수도 있고, 원자로를 지키는 기술자일 수도 있고, 다른 위험한 공사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자기가 맡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다고 판단이 되면, 자기 목숨을 걸고, 안전을 지켜야만 다른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가지를 맡기셨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책임지는 이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무려 열 가지 재앙(災殃)을 내리셨고,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하셨으며, 나중에는 시내 산(山)의 불 가운데 나타나셔서 십계명의 두 돌비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신을‘소멸하는 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世上)은 죄가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재앙(災殃)이 터지도록 설계(設計)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世上)에 임(臨)하는 모든 재앙(災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바른 예배(禮拜)를 드릴 때,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막을 수 있는 능력(能力)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禮拜)는 피뢰(避雷)침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즉 하늘에서 번개가 떨어질 때, 피뢰(避雷)침에 번개가 떨어져서 땅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말돈, 영(靈)과 진리(眞理)로 예배(禮拜)를 드려야만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축복(祝福)으로 바꿀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세상(世上) 모든 사람들은 죄의‘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世上)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약(藥)을‘복음(福音)’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상(世上) 사람들은 복음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고, 복음을 미련하고 무식한 것으로 취급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소아시아에 많은 교회(敎會)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작은 교회(敎會)는 서머나 교회(敎會)였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도 크고 유명한 교회(敎會)를 다니는 교인들은 *내가 어느 교회(敎會)를 다닌다*고 당당하게 말하겠지만, 교회(敎會)가 작은 상가나 지하실에 있는 개척 교회(敎會)이면, 교회(敎會)가 좀 부끄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물론 정치인들도 가지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서머나 교회(敎會)는 작은 교회(敎會)였고, 또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아 어려운 형편에 있는 교회(敎會)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서머나 교회(敎會)야말로 가장‘충성된 교회(敎會)’라고 칭찬하셨습니다.
Ⅰ.처음이요. 나중이신 예수님(상)
2:8절)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서머나 교회(敎會)는 소아시아 여러 교회(敎會)들 중에서 작고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敎會)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머나 교회(敎會)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작은 서머나 교회(敎會)를 부끄러워하시거나 모르는 체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이 어려운 교회(敎會)를 기억하시고,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서머나 교회(敎會)가 환란(患亂)과 궁핍(窮乏)중에 있다 해서 당장 물질적(物質的)으로 많은 것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또 그들이 겪고 있는 환란(患亂)과 핍박이 없어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敎會)를 향해서 예수님 자신을‘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선‘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말은 예수님은 이 세상(世上) 전체를 시작(始作)하신 분이시고, 마치실 분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처음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집을 지을 때, 수많은 기술자(技術者)들과 인부(人負)가 오게 됩니다. 그러나 그 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 집을 지은 사람이며, 그 집에 살아야 할 사람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일생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면서 영향을 주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 최종적(最終的)으로 만들어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입니다. 즉 교회(敎會)를 세우는 것은 마치 성전(聖殿)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은 집을 짓는데, 금(金)이나 은(銀)이나 보석(寶石)으로 짓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데, 나중에 불로 시험하니까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지은 집은 모두 불 타버렸다고 했습니다.
교회(敎會)에서 중요한 것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되어 살아 있는 성전(聖殿)을 짓는 이것입니다. 따라서 교인들은 변화되지 않고, 오직 교회(敎會) 건물만 화려한 대리석으로 짓는 것은 엉터리 부실 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보석(寶石) 교인으로 지어진, 움직이는 성전(聖殿)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고 갈 수 있는 움직이는 성전(聖殿)을 짓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보좌(寶座)를 상징(象徵)하는 언약궤도 제사장들이 들고 다닐 수 있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있는 공동체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받을 때, 그 안에 성령이 임(臨)하시고,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임(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敎會)에 있어서 화려한 건물이나 많은 교인은 본질적(本質的)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교인들이 생명의 말씀으로 변화가 되어야만 제대로 성전(聖殿)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머나 에서는 경제권을 전부 유대인들이 다 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기독교(基督敎)인이라고 하면, 서머나 에서는 장사를 하거나, 돈을 빌리기가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돈 때문에 무릎을 꿇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 생활하는데, 중요한 것은 결코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면, 우리를 가장 빨리 부패(腐敗)하게 하는 것이 결국‘돈’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世上)에 살면서‘돈’을 벌지 않을 순 없지만,‘돈’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그리고 우리가‘돈’을 많이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주님을 원망(怨望)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世上)의 것으로 살지 않고, 하늘의 양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임무는 세상(世上)에서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복(福)을 임(臨)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교회(敎會)가 하늘의 복(福)이 임(臨)하게 하는 성전(聖殿)이 되려면, 교인들을 인간의 지식(知識)이 아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가르쳐서 금(金)이 되고 보석(寶石)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敎會)는 너무 편한 곳보다는 환란(患亂)이 있고, 어려움이 있는 곳에서 더 성도들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사모(思慕)하고, 순수(純粹)하게 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편한 상황에서 듣기 좋은 말씀을 들으면서 신앙(信仰)생활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성경(聖經)에 보면 위대한 신앙(信仰)의 인물들은 모두 많은 환란과 역경중에서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처음과 나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하거나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우리를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道具)들인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간(道具) 과정이 아니라, 최종적(最終的)으로 만들어진 나의 모습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모두 우리를 만들기 위해서 사용되는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난 일에 대하여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 자신이 먼저 고난(苦難)을 받으셔서 죽는 것까지 경험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머나 성도들은 예수님과 동일(同一)한 고난(苦難)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이 무엇인가 하면, 성도들이 고난(苦難)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더욱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살 때는 천국(天國)이나 예수님이 멀리 느껴지고, 세상(世上)이 너무나 좋은 것 같은데, 고난(苦難)을 받으면, 이 세상(世上) 현실(現實)은 사실 영화(映畫)의 한 장면과 같이 비현실(非現實)적이고, 주님과 천국(天國)이 실제적(實際的)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성도들은 예수님과 하나이기 때문에 이 모든 고난(苦難)은 예수님도 같이 느끼고 계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교회(敎會)의 머리이기 때문에 머리와 몸은 연결(連結)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당하는 고통은 모두 주님이 당하시는 것이며, 머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그 부활(復活)의 능력(能力)을 고난(苦難)당하는 교회(敎會)에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기에 꼭 교회(敎會)가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은데, 망하지 않고, 다시 살아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부활(復活)의 능력(能力)이 있기 때문입니다.아-멘
찬송가 333장 *충성하라 죽도록*
※새벽(夏)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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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심방(尋訪)및 궁금한 내용 문의☞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