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심(朱可心)(1904-1986년)
중국 자사공예 대사
청말~ 민국초
의흥 정촉진 출생.원명은 주개장이고 예명이 가심이다.
虚心者,可师也”,“山中一杯水,可清天地心”의 의미를 띠고 있다
14세 때 왕생의(汪生义)를 스승으로 모시고 오근운(吴根云)과 사우(师友)관계를 맺었다
1931년 강소성 의흥직업학교 요업과기공으로 초빙받았는데 이 기간에 자사 커피세트를 창작했다.
다음해에 심혈을 기울여 운룡정(云龙鼎)과 죽절정(竹节鼎)을 제작하여
미국 시카고 박람회에 참가하여 최고상을 수상하였다.
1953년 12월 전국민간예인 참관대회에 운룡호(云龙壶)와
원송죽매호(圆松竹梅壶)를 출품하였다.1959년 그는 합작회사 대표신분으로
북경 고궁박물관에서 주관한 세계 도자전시회에 참가하였는데 작품 송서포도호(松鼠葡萄壶),
송죽매삼우호(松竹梅三友壶)가 중국공예미술순회전의 일환인 해외 전시품에 입선되어 1등상을 획득했다.
1959년 그는 4개월간 심혈을 기울여 남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성사도배(圣思桃杯)를 복제하여 특별상을 받았다. 왕성한 창작기간에는
여의호(如意壶),운옥호(云玉壶), 고급 커피셋트(高峰咖啡具), 영빈주구(迎宾酒具),만수호(万寿壶),
완매호(碗梅壶),가심이식호(可心梨式壶) 등을 설계하고 제작했으며 많은 종류의 디자인은
자사공예품 중 최고로 잘 팔리는 제품이 되었다.
1964년 그는 진명원의 포복호(包袱壶-보자기호)를 복제하여 자사 기예의
수준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였다.주가심은 자기만의 호식(壶式)를 처음으로 만들었고
여러 종류의 장식적 수법은 중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크게 환영을 받았다.
70년대 초기 그는 쉬지않고 여전히 자사도기 창작에 종사하였는데 그 시기 전후로 색시자호
《 色柿子壶》,채접호《彩蝶壶》,고호《高壶》,보춘호《报春壶》,경송호《劲松壶》,취송호
《翠松壶》를 설계제작하였다.1973년 처음으로 호형, 여러 종류의 장식과 새로운 형식을
만들었는데 심장 형태의 호에 청송(青松),취송(翠松), 한매(寒梅),고백(古柏),벽도(碧桃) 등
장식을 새겼다. 특히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가심이식호《可心梨式壶》는 국무원에서
일본 수상에게 주는 선물로 지정되었다. 1985년 10월 상해 방송국에서 TV제작물을 촬영했는데
그 때 방고호《仿古壶》를 만들었고 그 후 그 생전 마지막 작품인 한편호《汉扁壶》를 제작했다.
주가심은 끊임없이 진취적인 예인이었다. 작품 대부분은 시대의 분위기가 듬뿍 담겨있었다.
그의 호예 풍격은 순후하고 순박했으며 규칙이 적합했고 자연과 생활 속으로부터 창작영감과
소재를 발굴하는데 탁월했다. 또한 많은 자사 기예 인재를 길러내었는데
반춘방,허성권,왕인선 등이 있다. 1986년 3월에 병으로 사망했다.
출처:중국바이뚜(百度)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