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84)
텔레파시
텔레파시(Telepathy)란 다른 사람의 정신활동을 초감각적으로 아는 것으로 병원에서는 종종 보게 된다. 텔레(tele)란 말은 라틴어로 ‘멀다’라는 의미이고, 파시(pathy)는 ‘정신활동’이란 의미로 ‘멀리에서 정신활동을 교감한다’는 뜻이다.
홍 할머니는 88세로 췌장암 말기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 며느리가 자주 면회를 왔는데 면담해 보니 아들도 심장질환으로 종합병원에 입원해있었다. 하루는 홍 할머니가 아들 이름을 부르고 울며 작은 발작을 일으켰다. 한 시간 후에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아들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종종 겪는 일인데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동일한 전자기적 주파수를 공유하여 텔레파시로 서로 교감한다고 전해진다.
맏형이 죽던 날
오래전 그날은 추석 전날 오후였다. 형제들은 모두 고향 집에 모여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자들은 우물가에서 닭을 잡았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안방에서 혼자 점심을 드시던 연로하신 아버지가 갑자기 큰 소리를 치셨다. “큰 애가 왔다. 큰 애가 왔어!”
나의 맏형은 1935년생으로 1975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줄곧 살았으며 한 달 전에 폐렴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외치는 소리에 아주 놀랐다. 큰형이 추석을 맞아 캐나다에서 왔다면 우리가 공항으로 마중 나가야 했을 것인데 어떻게 우물 옆 대문을 통과하지도 않고 불쑥 안방에 나타난단 말인가? 아버지의 연세가 노령이라 치매기가 있는 걸로 생각하고 안방으로 가보았다.
아버지가 밥상을 밀쳐놓고 꺼이꺼이 울고 계셨다.
“너희 큰형이 지금 왔다 갔어.”
아버지는 연이어 “어이구 어이구” 소리까지 내시며 눈물을 계속 흘리시는 것이 아닌가!
큰형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저렇게 어린애 같은 행동을 하시겠느냐고 우리 형제들은 서로 위로하면서 닭 잡던 일을 계속하였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는 손을 떠시면서 전화를 받지 못하여 내가 대신 받았는데 캐나다에서 온 국제전화였다. 큰형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큰형이 한 시간 전에 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큰형이 죽은 후 그 넓은 태평양을 몇 초 만에 건너 정말로 고향 집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고향으로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아버지에게 하직 인사를 하러 왔던 것이다.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밥을 먹으려는데 문틈으로 하얀 안개 같은 것이 스며들어 밥상을 덮었다고 한다. 그때 캐나다의 맏형이 나타나 “아버지, 이제 갑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형을 알아보고 “그래 이제 왔느냐, 잘 가거라”하고 겨우 대답했다고 한다.
큰형수는 울먹이면서 전화로 말을 계속 했다.
“아버님, 남편의 장례를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시신을 한국으로 옮겨가기도 어렵고, 이곳 교민들은 죽으면 한인교회의 도움을 받아 시민 묘원에 안장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려무나.”
그때 나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고향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구나 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처형이 죽던 날
아내는 큰 처형과 정서적으로 아주 친밀했다. 큰 처형은 아내보다 10살 정도 위였는데, 아내는 힘들 때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항상 큰 처형과 의논하고 조언을 구했다.
하루는 저녁 모임이 있어 늦게 귀가했는데 아내가 눈이 퉁퉁 붓게 울고 있었다. 아내는 미국에서 큰 처형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저녁 7시경에 들었다고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으로 정신없이 울다가 아이들을 씻겨서 재우고 밤 9시경 잠옷을 입으려고 안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여니 아주 짙은 향냄새가 진동하였다고 한다. 순간적으로 ‘큰언니가 왔구나’ 생각하고 “언니야!”하면서 주저앉아 울었다고 한다. 아내는 큰 처형의 영혼이 우리 집에 왔다고 믿고 있다.
자녀가 멀리 있어도 사고로 죽든지 큰 고통을 당하면 어머니는 그 고통을 실제로 느낀다. 자녀에게 쏟는 정성의 십분의 일만 부모에게 해도 효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아프게 낳고 힘들게 키워준 부모에게 살아생전에 공경과 애정을 더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