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회 저절로 될 때까지
안녕하세요. 마음공부를 안내하는 최경도 교무입니다. 아이를 보아 주려면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봐줘야 한다는 말처럼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마음공부를 단계적으로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으니 거의 다 왔다고 마음 놓을 것이 아니라 그래도 시작했으니 끝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마음공부에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는 마음공부 하여 편안하고 행복한 나날이 될 때까지 해야 합니다. 파란 고해 풍랑 거센 바다에 나가 항해한지 오래된 인생이라는 배가 이제 돌아가 편히 쉴 고향을 찾아 닻을 내릴 항구가 보이는 듯하다.
52회부터 “마음 병 치료하기”를 시작하여 57회부터 마음 병 치료하는 의술과 약재를 소개하며 30회를 더하여 87회까지 왔다. 3학8조가 마음 병 치료의 의술이고 4은4요가 약재에 해당한 줄은 알았지만 이 기회에 원불교 교리를 섭렵하기로 하고 원불교 [정전]을 공부하였다. 그런데 [정전]을 현재 목차에 따르지 않고 처음 읽는 이가 [정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목차를 바꿔 정리하여 “정신개벽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정리한 내용에 따라 소개하다가 이제 그 마지막인 “저절로 될 때까지”에 온 것이다.
[정전] 가운데 한 장씩을 10분 정도에 소개한다고 열심히 하였지만 대강 철저히 했다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가 옳은 평가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전]을 소개하면서 원문이 긴 것은 원문 읽는 시간이 너무 길어 요점만 소개하기도 하였다. 가이드가 최소한의 안내를 하였으니 필요하면 더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정신개벽의 노래”는 제1장 낙원으로의 초대, 제2장 공부인의 아름다운 모습, 제3장 나를 변화시키기, 제4장 낙원 가는 길, 제5장 저절로 될 때까지, 제6장은 사경하기 이다. 이제 제6장 사경하기가 남았으나 이것은 각자의 원하는 바에 맡기로 하고 거기까지 함께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공부를 해 보면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름을 알 수 있다. 한번 들어 안다고 하여 그 아는 것이 실행되지는 않는다. 실행하기까지는 하고 또 하여 몸에 익숙해져야 저절로 하게 된다. “원불교 성가” 중에 ‘법문 공부의 노래’가 있다. ‘듣고듣고 또 들어 안 들어도 들릴 때까지, 보고보고 또 보아 안보아도 보일 때까지, 알고 알고 또 알아 앎이 없이도 다 알 때까지, 하고하고 또 하여 함이 없이도 절로 될 때까지 비우고 채우고 정진하여 무의식 세계를 정화해 가세’ 하는 가사이다.
이어서 ‘한 번 듣고 다 들었다 말고, 한 번 보고 다 보았다 말고, 한 번 알고 다 알았다 말고, 한 번 해보고 대했다 말고.’라 하고 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한 번 듣고 보고 해보고 다했다 생각하기 일쑤이다. 지금까지 마음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마음 병 치료의 의술과 약재를 소개하여 왔는데 실재로 이는 한 번 보고 듣는 데 불과하여 소개한 정도에 그쳤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저절로 될 때까지 보고 듣고 알고 하는 반복하여 익숙하게 되는 연습 과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정전]은 의술과 약재를 포함하고 있지만 여기에 “낙원 가는 길”이 있다. 의술과 약재이면서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인 3학8조 4은4요가 “낙원 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면 이제 걷든지 타고 가든지 날아가든지 어떻게든지 가서 목적지인 낙원에 도착해야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괴로움에서 벗어나 해탈하여 자유로운 삶을 갈망하는 데 그곳이 낙원이다. 그 곳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인생을 바라지만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자유롭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라고 하는 마음의 벽인 에고와 원초적 본능이라고 하는 욕망에 파묻혀 편치 않을 뿐 아니라 불행해지기까지 한다. 또한 많은 생을 살면서 지은 정업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에 진 빚은 갚아야 한다.
우리 인간은 나의 외부환경에만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부귀와 권세와 향락을 바라지만 실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민물을 마셔야 하는 데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에고의 탐욕은 탐할수록 더욱 타는 목마름이 증가할 뿐이다. 밖으로 치닫는 눈을 안으로 돌려 나의 내면을 바라보아야 한다. 진정한 나의 삶과 진실한 내면의 나의 마음을 살펴보기 위하여 밖으로 향한 눈빛이 안으로 나의 내면인 마음에 관심을 가져야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다.
내 마음 속에는 내가 모르는 내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나는 잘 살고 있는가 죽은 후 다시 태어난다면 부자들의 죽음과 가난한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될까? 등등 수많은 질문이 나의 내면에는 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내면의 나는 찾지 않고 밖으로 밖으로 달콤한 꿀을 찾아다니는 나비가 되다 보면 어느 덧 해는 서산에 기울고 차가운 북풍이 휘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에 맨몸으로 서게 된다.
우리의 삶에 천당과 극락은 어디이며 낙원은 어디인가? 천당과 극락은 사후의 세계를 설명하는 누구나 도피하고 싶어 하는 이상향이다. 반면 낙원은 현실성이 있어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실제로 지중해나 카리브해의 섬이나 인도양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또는 태평양의 작고 아름다운 섬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곳으로 사람들은 신혼여행으로 밀월여행 허니문을 떠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낙원은 멀리 따로 지역이나 장소를 정하지 않고 우리 곁에 있다. 정산종사는 “이치에 통달하고 망념이 없어지면 이것이 곧 다시없는 낙원이니, 처지에 편안하면 몸에 욕됨이 없고 원리를 미리 알면 마음이 항상 한가하리라. 망념이 끊어지면 천진이 나타나나니, 이렇게 일심이 되면 낙원이 무궁하리라.” 하였고 “심량이 호대하면 모든 경계가 스스로 평온해지니 이것이 곧 낙원의 길이요, 심량이 협소하면 모든 경계가 사면을 위협하니 이것이 곧 고해의 길이라, 고락이 다만 자신의 견지 여하에 있다.” 하였다.
원불교에서 낙원은 차원이 다른 세계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소태산 대종사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하는 것이 개교의 동기라 하였고 정산종사도 낙원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의미로 말하였다. 결국은 마음을 공부하여 배운 바를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알고 또 알고, 하고 또 하여 저절로 될 때까지 할 때 내 마음에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자재 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으면 지금 여기가 낙원이 될 것이다. 아울러 교육을 통하여 개인과 사회를 변화시키고 정신 육신 물질 세 방면으로 자력을 양성하며 공익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숭배하는 공도자 숭배를 함께 함과 아울러 감사보은 하는 삶을 살면 될 것이다.
대산종사는 ‘밖으로는 의식주의 생활을 개선하여 무지와 빈곤과 질병을 물리치는 데 힘써 일생의 신낙원을 건설하고 안으로는 삼학 팔조로 마음을 개조하고 사은 사요로 세상을 건져서 영생의 심낙원을 건설하는 데 힘쓰라.’ 하였다. 우리 공부인 모두 저절로 될 때까지 마음공부에 힘써서 낙원에서 함께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은 마음병 치료하는 의술과 약재인 “정신개벽의 노래” 소개를 마무리 하면서 “저절로 될 때까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다음시간에는 “ 6. 마음난리 평정하기”에 대하여 공부 하겠다. 오늘도 마음공부 잘 하여서 새 세상의 주인 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