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솔길을 좋아한다. 남편은 대로를 좋아한다. 자가용을 운전하며 오솔길로 가자하면 어김없이 대로로 방향을 튼다. 조심하는 구석은 없고 일사천리로 달린다.
그해 겨울 모임에서 술을 마셨는데 동대구역을 돌아 나오려 하는데 교통순경이 떡하니 서서 알콜수치를 재었다. 아는 사람이 있었다면 신호를 미리 주었을텐데 빼도박도 못하는 지점이다. 어떻게 통과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불어라 해 요령껏 어떻게 불었는지 알 수 없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수치가 안나온다니까.'' 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여러번이다.
화단의 나무들도 잎을 떨구고 앙상한 잔가지만 바람에 일렁인다. 안쪽에 위치한 화분의 식물들도 아이 추워 추워를 연발하는듯 하였다. 남편이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119싸이렌 소리는 요란했다. 넋을 놓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늘 밖에서 구급차량이 지날때 요란하게 울렸지만 남의 일이다 생각했다. 그러나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일이었다. 나의 풍경인 것이다.
아직은 과부가 되고싶지 않다. 과부가 되긴 이르지 않은가!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응급실이다. 그렇게 수술 해준다고 기다리게 해 놓고는 더 지체하면 그러니 하고 다른 병원으로 인계해 준다. 또 싸이렌소리 넋 잃고 달렸다. 결국 이래저래 골든타임을 놓쳤다. 웬 사내가 바리깡을 들고 무자비하게 남편의 머리를 밀어붙였다. 그리고 남편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수술실로 가버렸다. 그것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내가 끼어들 틈도 없었다. 전광판에 이름이 어느 순간 뜨지 않아 간호원을 겨우 찿아물으니 어린아이가 손가락을 다쳐 급히 수술을 해주었다니 그렇게도 위급한 상황에 새치기를 해주나 보다. 어느 한 순간에 맞닥뜨리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니 사는 사람은 살고 죽는 사람은 죽는 것이다. 살아도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죽어도 내가 죽는 것이 아니다. 명줄은 보이지 않는 신의 손길 같다.
인체의 신비는 놀랍다. 올인을 해 잘 보살핀 만큼 변화가 보인다. 부인 할 수 없다. 나만의 정원 퀘렌시아. 그곳에선 겨울내내 얼어 붙어 죽은듯이 고요하게 지내는 나목들이 있다.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요 그 속에는 흔들거림이 있다. 그 변화를 보며 확신을 가지고 꽃피는 봄을 열매맺는 가을을 꿈꾼다. 하물며 인생의 봄은 그동안 얼마나 많이 찾아 왔던가. 더 늦기전에 퇴보는 하지말고 선물인 오늘을 잘 살아내야 한다. 우리 인생이 1막으로 끝날지 2막으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서로서로 아끼며 성실히 삶을 살아내야 할 뿐이다. 오솔길도 걸어보고 대로도 걸어보며 오손도손 살아 갈 일이다. (250325)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