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인생
최원혜
유년 시절 학교 운동장 모퉁이 한 편에 놓이었던 시소가 유독 눈에 띄어 서로 자리 차지하려고 땀범벅 해가며 뜀박질하였다. 쿵덕~쿵덕~ 마주 보며 앉아 한쪽이 하늘 끝까지 올라가는 듯하였다. 또 반대편 한쪽은 엉덩방아 찧을 듯 땅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그때는 서로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하늘 가까이 오를 때이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그래서 그때는 그저 재미있는 놀이기구인 줄만 알았다. 시소는 어쩌면 우리네 인생의 삶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어른이 되어 살아온 오르막 내리막의 삶을 경험해 보았다.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 날도, 얻는 것이 있으면 잃을 때도, 한없이 잘될 것 같던 날도 어느 순간 내려앉아 버린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다시 올라가기 할 때도 있었다. 우리네 인생살이는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소 같은 인생살이이다. 내 인생에서도 예순 넘어설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시소 반대편에 앉아 오고 가고 하였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시소 인생이다.
지난달 동기회 단톡에 시커먼 화면이 뜨길래 “이게 뭐야?” 생각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동기 여자 친구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부고 메시지이다. 활성화되었던 단톡방이 온통 큰 슬픔으로 시커멓게 물들었다. 동기이기에 이 세상 삶을 위하여 같은 해에 내려왔다. 그러나 우리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기는 모두가 다르다. 상가에 가면 어느 누군가 얘기하였다. 가는 그 시기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의 종착역이라고 하였다.
그 친구는 건강 관리 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네 운명은 때가 되면 올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마침표 같아서 인생무상이다. 나 역시 며칠 동안 뒤숭숭하였으며 일상생활이 뒤죽박죽 되었다. 그때는 나도 모르는 불안의 모드이랄까? 요즈음은 나 또한 하늘로 올라갈 때가 언제인지, 어떠한 방향으로 가게 될지 죽음에 대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환절기 이어서인지 여기저기서 부고장을 보내온다. 친구 부모, 성당 신자들의 연도 미사 등 알림 문자가 부지기수다. 그렇게 우리네 인생은 시소처럼 오고 가고 한다.
우리 인생의 삶을 위하여 부모가 나를 올려 주었고, 나는 자식들을 올려 주었다. 또 친구가 힘들 때면 내 어깨를 내어주기도 하였으며 나 또한 힘겨운 날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에 기대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무게를 받아주며 살아온 것이다.
인생무상을 느끼며 나날을 보내오다 주일 되어 성당을 다녀왔다. 미사참례로 침울한 마음 훌훌 털어버렸다. 그리고 신앙이 공감되는 신자들과의 만남은 한층 더 기쁜 마음 충만하였다. 성당 마당에서 삼삼오오 주최팀에서 봉사로 나누어준 믹스 커피 한잔하였다.
그날 뜻이 맞는 신자들과 우리들의 아지트인 “미소짓다 브런치” 카페에서 점심 나누었다. 그날은 인원이 많았다. 열 세분이 모이었다. 제각기 밀린 이야기들이 많은 듯하다. 그중에는 부군 세례 때에 도움 준 자매도 있었다. 나에게 “부군 영세 받게하느라 고생하였다.”고 위로도 해주었다. 교리 중의 하루도 빠짐없이 부군과 함께하였기 때문이다. 또 그 자매중 부군의 영세 대부 맡은 부인도 있었다. 내가 형님이라 부르는 사람이다. 올해로 칠순 된다며 어르신 되심을 축하받는 의미에서 점심 식사비 한턱내었다. 덩달아 나도 대부 부인이어서 내가 농으로 “시모님, 며느리가 식사비 내신 것에 대한 화답으로 커피는 내가 살께요.” 하였다. 모두 고부간 짝이 잘 맞다며 “하하, 호호” 박수로 난리법석이다.
그렇게 그날 하루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 가득하였다. 집으로 돌아올 무렵 거동 불편한 형님을 내 차로 모셔드렸다. 봉사하는 마음은 기쁨이 두 배로 충만하여서 한층 밝아진 얼굴은 부군한테 들켜 버렸다. 구구절절 밝아진 이유를 이야기하였다. 부군은 “참! 잘하였네.”라며 맞장구쳐주었다. 대부 아내가 문자 왔다. “요셉피나씨! 커피 고마워요. 이쁜 맘 간직 할께요. 그리고 사랑해요.”라는 문자 확인은 정말 기분이 한층 업되어 참좋았던 하루이었다. 우울하였던 마음 싹 가시게 해주었던 대부님 부인에게 너무도 고마웠다.
이제야 인생 살아가는 것이 별거 없다는 생각으로 한층 업그레이드하여 보낸 하루이다. 요즘 내가 돌보던 어르신 요양병원 입소하여서 그날그날의 리듬은 물론 친구의 사망 소식 등 여차여차 “우울 모드”이었다. 그렇게 되었던 것은 나는 시간적인 여유가 넉넉하면 안 되는 것이다. 노인으로 올라서 치매 예방을 위하여 두뇌 회전도, 몸은 아끼어 가며 조심조심 일을 해야 되는 것이다. 늘 바쁜 생활에 익숙하여졌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시 낭송 강의 반에 참가한다. 지난주에는 박인환 님의 시 베이비붐세대들은 잘 알고 있는 “목마와 숙녀”를 강의받고 왔다. 그래서 오늘은 배운 시 외우며 연습하느라 나름 분주하였다. 미루어둔 글쓰기 하며 흘러가는 시간 들을 쪼아 먹고 있다.
시소 인생은 만남과 이별이 오간다. 젊은 날에는 무조건 올라가는 것만이 상책인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높이, 더 빨리 올라가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 깨달았다. 높이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만은 아니었다. 내려오는 순간도 필요하였다. 그 이유는 내려와야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낮아져야 다른 사람이 올라설 수 있는 자리도 생기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시소 인생이었다. 그 인생을 알차게 보내기 위하여 정신 줄 놓지 않기 위하여 두뇌 회전등 건강 관리 잘해 나가려고 오늘도 밤늦도록 자판기 두드리고 있다.
(20261005.)(20261012.1차퇴고)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한비수필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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