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싶은 순간(2026. 7. 29)
이미환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잊지 못하고 마음에 쌓여가는 일들도 많아 진다. 기쁜일도 슬픈일도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들이기에 그 어떤것도 더하고 뺄 수 없을 만큼 없어서는 안될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올릴때 마다 나의 어리석음을 일깨우며 수치심으로 몰고가는 어떤 일들이 있다. 그때는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심각한 폭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일들이다.
그때는 무지하고 무뎠는데 지금은 왜 예민한 사안이 되어야 하는지 알고 부터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과거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마시는 레테의 강물을 내가 원하는 순간이다.
큰 아들녀석은 백말띠로 올해 서른일곱살이다. 대구 근교 직장가까이에 집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목요일 쉬는 날과 주말엔 으례껏 우리 부부가 있는 집에 들러 뭉그적 대다 간다. 집에 들르는 날이면 특히 먹거리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많다. 한주간 노동으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는 주말 밤의 그 느긋함을 주로 게임으로 즐긴다. 어쩌다 식탁위에 음식 푸짐하게 술을 곁들인 상이 차려지면 평소 모습과 다르게 말로 조곤조곤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내가 아들을 만나 소통하며 즐기는 시간이다.
그날도 우린 마주 앉아 먹고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덧 아들의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 더듬어 가다가, '엄마, 엄마가 나 뺨 때렸던가 기억나?'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설마! 내가 다른데도 아니고 너 뺨을 때렸단 말이야?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아들도 무슨일 때문에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고 뺨 맞던 순간의 기억은 선명하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억에 떠올리지도 못할 만큼 사소한 일이었는데도 어린 자식의 뺨을 때렸나보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한 내 모습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어떤 합당한 이유에서건 여러 신체 부위중에서 빰을 때렸다는 사실은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이 되었다. 과거의 그런 나를 용서할 수가 없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떻게 할 수도 없다. 뒤늦게나마 아들에게 뺨을 때렷던 일을 사과했지만 아들의 뇌리에서 그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릴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되었다. 레테의 강물을 떠다 나와 아들이 나누어 마시고 함께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교실에서 여러 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화가 나는 일이 많았다. 숙제를 해오지 않는 아이, 거짓말 하는 아이, 공부 시간 떠들며 방해 하는 아이, 가르쳐도 수업 내용을 못 알아듣는 아이, 뻔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핑계대는 아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이,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 등등 강도와 종류가 다른 많은 화가 나는 상황을 접하면서 화를 잘 다루는 방법에 나름 꾸준히관심을 기울여 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참지 못하고 터트린 그 두 번의 일을 떠올리면 숨고 싶어진다.
초임시절 이었다. 역시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어떤 아이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왼손에 책을 들고 오른손에 플라스틱 자를 들고 있었으며, 어떤 일이 일어났고, 내가 들고 있던 자로 교탁 바로 앞에 앉은 남자 아이의 머리를 순간적으로 내려쳐서 자가 부러졌던 기억이다. 그 순간 나의 행동에 나도 너무 놀라 그 후로는 교실에서 지시봉 조차 없애 버렸다. 다른 또 한번은 교실 뒤편에 앉은 어떤 아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던 기억, 이어서 들고 있던 분필을 던졌던 기억, 그 순간 교실 모든 아이들이 평소 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숨을 죽이고 있던 전경이 손에 잡힐 듯하다.
나는 자랄때 우리 부모님이 서로 크게 소리치며 싸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결혼을 하고 남편이 화가 나서 나를 보고 소리치면 지레 가슴은 콩닥콩닥 거리고 무서워서 눈을 내려 깔곤 했다. 그땐 내가 그 소리침에 두려움을 느꼈더라도 폭력을 당했다고 인지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부모님께도 회초리로 맞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다.
아들에게 또 교실에서 처럼 물리적인 폭력성이 모습을 드러낸 언저리들을 곰곰히 더듬어 본다. 추측 해보면 그때는 아마 화가 많이 날 상황이었고, 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때가 있다면 화가 났을 때이고,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하며 그 당시에는 내가 휘두른 폭력적인 행동과 언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것 같다. 또한 화를 내면 상대방이 제압되어 나의 의도에 맞게 통제가능하다는 계산을 하고 화난척 연기를 하기도 했다. 나보다 힘이 센 사람에게는 같은 상황이라도 두려움으로 인해 화를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고 억누를 수 있었다. 반면에 나보다 힘이 약한 아이들에게는 화를 조절하려는 힘이 약하여 터트릴 수 있었다. 그때는 내 안의 폭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돌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지냈던 시간이었다.
과거에 내 폭력의 대상이 되었던 힘 약한 아이들에게 내 불찰을 사과하며 잊어 달라고 레테의 강물을 떠다 바치고 싶다. 그리고 나도 이제 그만 그 일들을 강물에 흘러 보내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나는 레테의 강물을 마시지 않기로 한다. 내가 간직한 이 회한의 눈빛이 내 안의 폭력성을 지켜보며 민감하게 대처해 줄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지난 일을 회상하면 자신이 부끄러운 일이 생각 나기도 합니다. 모두 지난 일입니다. 다 지나가리라. 잊어버리면 마음이 편합니다.
과거 실수에 대한 민감성을 유지하는 것이 오늘의 나를 지키기 위해서 더 유익하다는 자기 반성의 글 잘 읽었습니다.
서두에 제시된 갈등이 본문을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결미의 결론으로 유도되었고, 문장 전체를 통해 과거의 실수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잘 이끌어 오신 것 같습니다. 서두-아들-교실-남편-종합-결미 짝짝짝!!!
레테의 강물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런 말이었군요. 저도 아이들을 많이 때렸던 사람 중에 하나였어요. 의도적으로 보이려고 화를 많이 내기도 했었지요. 선생님처럼 후회가 되네요. 차분한 전개가 글의 품질을 높이는것 같아요.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