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시차/ 염창권
오후에 걸었다, 아직 일과 전이었고
시차를 읽어가듯이 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복된 척후병의 눈빛이
내 안에서 날 겨눴다
구시가지는 총 맞은 표정으로 쓰러졌다
마스크를 쓴 형해가 크게 구멍을 파고 있다
추렴한 영수증처럼 눈앞이 희다, 또 붉다
새 몇 마리 낟알을 쪼고 있다, 딱딱한
바닥에 부리가 좋이 닿는다, 그 기세로
피 묻은 온도가 오른다, 볕 그늘이 성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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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의 이별/ 염창권
불 꺼진 광장으로 어둠이 밀려들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언덕길에 스멀거리는
갑자기 낯설어진 몸, 그의 냄새 맡는다
차갑게 뭉쳐진 쇳빛 공기 속에서
끝 숨을 파닥이던 낮이 발기를 풀었다
시간의 분기점에 선 네 얼굴이 파리하다
돌려보낸 그림자에 따른 냉담한 자책으로
납빛 창문 닫아걸면 흰 절벽이 일어선다
물 불은 우표와 같이
긴 밤을 떠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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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갈대에 내리는 비/ 염창권
유리창 안쪽에서 날 내다보고 있었다
그 사람의 눈 속에서 걸어가다 나왔을 때
천변의 살얼음 낀 곳에 그 얼굴이 어른댔다
물가에 선 갈대 군락의 발목이 거뭇했다
노인처럼 한쪽으로 낮고 길게 휘어졌다
무거운 빗줄기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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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새로운 교감
염창권 시집/ 오후의 시차/ 책만드는집/ 2022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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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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