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나름일세
세월은 가지 말라고 말려도 간다.
내 맘 같으면 사정하면 들어 줄 것도 같은데 인정사정이 없다.
그래서 세상 사는 데는 내 맘대로 안된다고 하는가 보다.
살갗을 애던 겨울바람도 언제 슬금슬금 왔는지 모를 봄바람에 놀라 도망치고 조금만 용쓰면 이마에서 작은 땀방울이 송당송당 맺혀지는 것 보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세월이라는 녀석이 자기 뜻대로 변하게 만드는 게 현실인 듯 하다.
안된다고 고집부리던 것 중 하나가 부부는 절대로 각방 쓰면 안 된다 소리 내 큰소리치진 않았지만 늘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밑바닥이 추운 침대가 싫다며 아내가 덜렁 짐을 챙기고선 작은 방 돌침대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별로 춥지도 않은데 유별스럽다고 멍하니 바라보며 이건 내가 꿈꾸는 세상이 아니라며 천장을 보면서 허허로운 웃음을 날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훌쩍 지났다.
첫날도 둘째 날도 허전했다.
자다가 옆이 텅 빈 자리를 볼 때마다 허전하기도 하고 혼자 자니까 방안 기온이 훅 떨어진 느낌이 들어 이불을 잘 덮고 자는 버릇이 아닌데 갑자기 춥다며 이불을 끌어다 덮은 내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달려든 건 외로움이었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든가?
하루 이틀 다양한 감정들이 사그러들고 이게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냐며 자신을 위로하면서 이 방식 또한 괜찮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코를 골며 헛소리를 하고 다양한 형태의 소음 때문에 잠을 깨며 머리를 돌리다가 짜증 나면 코를 잡아 비틀어버리기도 했는데 너무 조용하여 밤에 잠을 깨는 일이 없어져서 좋다.
코 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잘 때는 그것이 괜찮은 환경인 줄 알았는데 수면을 방해하는 다양한 공작들이 사라지고 나니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몸이 한층 개운하다는 느낌이 있어 좋다.
침대는 온통 내 세상이다.
아무렇게 뒹굴어도 간섭하는 사람 없고 부딪히는 사람 또한 없어 긴 베개를 애인 삼아 사타구니 사이에 끼고 다리를 올려 자다 보면 힘들기도 할 텐데 긴 베게는 밤새 푸념 한번 안 하니 이게 천국이지 싶다.
간혹 다리가 아파 아내한테 올리면 당장 불호령 떨어지거나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불쾌함을 드러냈을 텐데 감정이 없는 베게는 온밤을 나에게 봉사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럽냐는 것이다.
간혹 손님이 오면 아내는 작은 방을 내어주고 내 방으로 와서 잔다.
습관이라는 것이 참으로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당장 오면 불편해진다는 사실이다.
옆에 누워 코 골지 이리저리 뒤척이다 건드리지 불편한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습관이 되기 전에 어떤 방식을 바꿔야지 습관화된 이후 고치려고 하면 상당한 애로가 발생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은 혼자 자는 침대가 확실히 편하고 좋다.
또 다른 생활 패턴이 생겨났다.
혼밥이다.
아내가 국가고시(?)를 치겠다며 학원에 다닌다.
처음엔 아침밥을 챙겨주고 가더니 언제부터인지 아침 일찍 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하고 가겠다면서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실행을 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알아서 밥과 반찬을 챙겨 아침 점심을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데 조금은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긴 하다.
내 몸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말이 많냐며 덤벼들면 별로 할 말이 없을듯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지만,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굳이 일찍 일어나 아내가 나가기 전에 밥을 먹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지면서 예전과 다른 생활 패턴이 생겨나고 저녁형 인간의 표본처럼 늦게까지 놀다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습성이 생겨나 느긋하게 일어난다.
인간은 하루에 꼭 세끼를 먹어야 할까?
이 의문이 들면서 별로 노동도 하지 않는데 귀찮게 세끼를 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젊은 날 아침은 언제나 건너뛰고 다녔던 기억이 떠올라 하루 두 끼 먹는 거로 정했다.
일단은 삼세기는 면했다.
아무도 삼시 세끼 먹는다고 구박하고 싶어도 이식이로 변했으니 원망의 대상에서는 제외되는 탁월한 선택이라며 혼자 만족한다.
물론 구박하거나 눈치 주는 일은 안 하지만 세상사 떠도는 풍문에서 자유스러워졌다는 얘기다.
아내가 떠나간 후 느지막하게 일어나 12시 즈음에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는데 무슨 반찬이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언제나 없다.
하도 되는대로 먹고 사는 인생인지라 냉장고 속에 있는 반찬 중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만 골라 식은 밥 데워서 한 숟가락 뜨면 그만이기에 늘 부담 없는 식사다.
아마 몰라도 아내가 마음이 편한 이유 중에 반찬 타령을 하지 않는 내 스타일이 어쩌면 맘에 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저것 다양하지는 않지만 한 끼를 먹는 데 충분하니까 골라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며 휘파람 불면서 끄집어내어 잘도 먹는다.
봄이라는 계절이 가지는 특성이 있나 보다.
새봄에 솟아나는 나물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냉장고 안을 찾아보면 어김없이 미나리, 머위. 파란 나물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것저것 적당량 골라 담고 데운 밥 한 공기 넣고 고추장에 참기름 곁들어 비벼 먹으면 이것이 지상 최대의 진수성찬이라며 좋아한다.
예전엔 혼자 먹을 바에 굶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두 끼 인생으로 새로 태어나고 아예 혼밥 인생으로 전락하다 보니 어떤 식의 식사도 대체로 만족하게 된다.
마음이 불편하게 만들고 생각이 자신을 힘들게 할 뿐이라고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배가 부르니 이것저것 트집을 잡고 그러다가 티격태격하는 것이 젊은 날 좋은 시절에 존재했던 추억이라면 지금은 혼밥도 꿀맛이고 반찬 탓할 필요 없이 적당히 골라서 한 끼 때우는 참 편한 백성으로 거듭남에 감사할 때가 많다.
사실 살면서 고민하고 걱정해본 적이 별로 없는 인생이다.
흔히 하는 얘기처럼 우리가 하는 고민의 99.99%는 세월이 다 해결해준다는 말이 있듯이 굳이 머리 싸매고 고민한들 세월이 약이더라는 사실 앞에 고개 숙이는 경우가 전부였으니 이것은 누구보다 빨리 깨우쳐서 내려놓는 법을 알아 편하게 사나 보다.
누군가가 함께 침대에서 잤으면, 누군가가 나와 함께 식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실제로 겪어보니 안해도 상관없는 짓이라며 웃게 된다.
요즘 들어 책 읽기에 정신을 빼앗겨 살고 있다.
굳이 특정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도서관에서 그냥 첫눈에 띠는 책을 빌려와 읽는데 다양한 얘깃거리도 존재하고 지식도 있어 흥미롭긴 하다.
옛말에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듯이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떤 것이 이 세상에 꼭 맞는 형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나에게 감동을 주는 말이다.
세상사 그렇듯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고 둘이서 못 먹으면 혼밥하면 되고 혼자 침대에서 자면 온 세상이 내 것 같은 착각이 드니 좋은 대로 생각하니 만사가 형통해지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는 분명 아닌데 그래도 있어 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살았지만, 막상 각자의 편한 방식대로 각방 쓰고 혼밥해도 불편하지 않고 힘들지 않으니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얘기는 정답인 듯하다.
세상사 정답이 없다는 얘기가 우리네가 키우는 식물에도 통하나 보다.
우리 집엔 세 개의 관음죽 분이 있다.
두 개는 거실에 있고 하나는 베란다에 있다.
거실에 있는 것은 수분이 충분한지 늘 관심을 가지지만 베란다 있는 분은 가끔 물을 주니 관심은 훨씬 덜하다고 볼 수 있는데 웬일 나무 상태는 베란다에 있는 녀석이 훨씬 건강하다.
관심을 가진다고 모든 것이 잘 되는 것도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진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네가 하는 각자 편한 방식이 정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실에 있는 나무는 인간의 관심이 거북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니 늘 한결같은 모습은 유지할뿐 활기차고 건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내버려 둔 베란다 나무는 무슨 조화인지 생기가 넘치고 건강미를 자랑하고 있으니 그것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며 그냥 잘 적응해서 자라주니 감사하다며 웃음 날리고 만다.
어쩌면 우린 가장 쉬운 방식을 모르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생각하기 나름인데 관심을 먹고 자라는 줄 아는 착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이 우리네라는 것도 모른 체 말입니다.
누구든지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 거라고 믿어야 한다며 멋지게 관심을 끊고 자신에 주어진 시간을 알뜰하게 채우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리라는 다짐을 하는 오늘인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