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등잔불로 타는 산
성경을 본답시고 초 훔친 자 우쭐대는
암울한 이 속계(俗界)에 불 밝히는 푸른 등잔
기름이 다 할 때까지 심지 태운 산이여
* 등잔봉(833.9m);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홍천시 두촌면. 등잔같이 둥그스름하게 생긴 봉우리로, 남쪽비탈은 초원지대라 눈에 얼른 띈다.
* 나쁜 짓을 해도 남의 눈에 안 띄면 죄가 성립 안 된다! 걸리면 내가 나쁜 게 아니고, 단지 재수가 없을 뿐이다! 과연 그럴까? 자기 합리화로 치부해버리는 오늘날의 철면피?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154(149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2. 이무기 능선
백조(白鳥)로 날던 청류(淸流) 바위로 내려앉자
내 담력 시험하려 창 들이댄 붉은 거송
독비늘 떼지 않고는 잡지 못할 이무기
* 설악산 고성능선(故城稜線) 릿지;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고성(寒溪故城) 계류 우측을 따라 올라가는 험준한 바위능선이다. 이 산성은 조상의 호국의지가 결연히 담긴 천험의 요새다. 바위가 없는 구간은 돌로 성을 쌓아, 새도 넘을 수 없는 일기당천(一騎當千)의 험로로, 군데군데 적송이 늠름하게 버텨 있다.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336(270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3. 숨은 천리마(千里馬)
엉치뼈 시큰거려 옷 헤진 줄 모르고
늑골까지 튀어나온 깡마른 산 얕봤다가
천하에 명마(名馬)인 줄을 길들인 후 알도다
* 설악산 무명능선; 설악산 서북주릉(西北主稜) 남쪽 지능선. 무명봉 두 곳(1,257m, 1,161m)을 오르는데, 바위가 뾰족뾰족해 엉덩이를 조심해서 걸어야 하며, 자칫 옷을 찢어먹을 수 있다. 산세는 외관상 대체적으로 야위고 비탈이 불룩 튀어나와 처음에는 퍽 내키지 않았으나, 막상 등산을 끝내고 나니 이외로 속살이 두텁고 경관이 좋은 곳이었다.
* 말(馬)을 감정 할 때에는 깡마른 데서 실수 하고, 선비를 평가할 때에는 가난하다는 데서 실수한다. 상마실지수(相馬失之瘦) 상사실지빈(相士失之貧)-사기 골계전(滑稽傳)에 나오는 유명한 말이다.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342(274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4. 호박소(沼)를 겁탈함
벗은 옷 감춰두고 선녀를 겁탈하려
옥(玉)절구 쿵쿵 찧는 푸른 수의(囚衣) 나무꾼
선혈이 감돈 자두확 물총새로 날아가
* 바데산(646m); 경북 영덕. 경방골 등산로 옆에 있는 호박소가 단연 일품이다. 경상도 일부 지방에서 호박소란, 소(沼)의 모양이 마치 절구 안의 움푹 파인 부분인 소위 ‘확’(호박)을 닮음을 의미한다. 자두처럼 생긴 테두리 안, 깊은 물은 비취색을 띄고 있다. 이 산은 절경인 옥계(玉溪)를 끼고 있다.
* 나무꾼은 바로 음탕한 자신의 마음 아닐까?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212(189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5. 배은망덕한 범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처박고는
가시를 뽑아주니 날 으드득 깨문 바위
고얀 놈 발톱마저 뽑아내 목걸이로 꿰찰까
* 박월산(朴月山 896m);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 오지에 숨은 명산으로, 그 쪽 산줄기를 용호(龍虎)에 비유하면, 이 산은 호랑이 머리에 해당한다. 바위가 억세고, 간간이 대문같이 생긴 암릉을 통과한다.
* 범이 설마 배신하랴? 은혜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인간이 문제지?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215(190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6. 용 비늘 떼어
쭉 째진 푸른 눈에 불 뿜는 은빛 용
날카론 벽옥(碧玉)바위 항문을 찔러대기
비수(匕首)로 턱 비늘 떼어 솟을대문 세우리
* 문암산(門岩山 940m); 강원 태백시와,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경계. 박월산(호랑이)과 대칭을 이루는 오지의 명산인데, 이산은 용에 해당한다. 암릉이 용비늘처럼 번쩍이고, 정상부의 바위는 솟을대문같이 우뚝하다. 두 산을 일러 ‘태백의 금강’이라 한다.
* 염이불귀(廉而不劌); 옥이 모가 나있더라도 다른 물건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과 같이, 군자는 의(義)를 따라 제재(制裁)하지마는, 그로 인하여 남을 다치지는 않게 함을 비유.
* 역린(逆鱗); 용의 턱 밑에 거슬러 돋아난 비늘 하나. 건드리면 사람을 찔러 죽인다. 곧 군주의 노여움을 비유하는 말이다.(한비자 세난편)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204(184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7. 구슬 가로채기
음흉한 담쟁이는 미녀 솔 범하건만
청설모도 고발 않고 매미조차 낄낄대니
은룡(銀龍)과 푸른 범 다툰 황금구슬 가로채
*용호롱주암(龍虎弄珠岩); 이 바위는 문암산과 박월산(둘 다 강원 태백) 사이 누런색의 근사한 여의주 모양인데, 풍수 상 용호가 서로 차지하려 다투는 형국이다. 싸우는 틈을 이용해 필자가 중간에 가로채버렸다. 산길 옆 담쟁이넝쿨이 소나무를 칭칭 감아 오르고, 이 나무 저 나무를 왕래하는 청설모와, 매미소리가 운치 있다.
* 농주(弄珠); 구슬을 가지고 놀다. 연인과 함께 사랑을 속삭임.
* 매미의 오덕(五德)
① 매미의 기다란 입이 갓끈과 같이 곧게 뻗은 형상이 글을 앎. [文]이 첫 번째 德이요
② 오로지 맑고 깨끗한 이슬만 마시고 평생을 살다 죽으니 그 맑음. [淸]이 두 번째 德이며
③ 사람의 곡식이나 채소를 손대지 않으니 그 염치. [廉]이 세 번째 德이고
④ 다른 곤충처럼 집을 짓지 않고 나무그늘에 그냥 사니 그 검소함. [儉]이 네 번째 德이요
⑤ 철에 맞추어 울고 늦은 가을 이면 때를 맞추어 죽을 정도니 그 믿음. [信]이 다섯 째 德이라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445(336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8. 솜 수의(壽衣)를 걸치고
산죽향(山竹香) 맑은 능선 노송에 걸린 청운(靑雲)
신산(辛酸)한 삶의 고뇌 산돌배로 떨어지니
솜처럼 푹신한 수의(壽衣)에 썩은 해골 뉘이매
* 면산(綿山 1,245.9m); 강원도 태백시 낙동정맥. 솜처럼 부드러운 육산(肉山)능선에 산나물이 많고, 조릿대와 거송이 멋있다. 인적이 드문 오지의 산이라, 수백 년 된 산돌배나무에서 떨어진 도사리가 널브러져 있다. 이 과일은 매우 시어 그냥 먹기는 거북하나, 술에 담궈 마시면 기관지에 좋다.
* 청춘의 꿈과 이상이 좌절된 신산한 중년의 삶을 이산에 묻는다.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188(173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발행.
19. 향적뇌성(香積雷聲)
사향내 물씬 풍긴 곰삭은 용연(龍涎) 덩이
고본(藁本)에 취한 딱새 원추리꽃 춤춘 융단
하느님 기침소리에 기절하는 노주목(老朱木)
*덕유산(德裕山) 향적봉(1,614m): 전남 무주 장수, 덕유산의 주봉. 정상부의 바위, 약초, 원추리, 주목 등 산향기가 듬뿍 쌓인 남도 최고의 명산이다. 긴 능선은 큰 고래를 연상케 한다. 특히 번개와 뇌성이 칠 때 바르르 떠는 주목은 정말 아름답다. 스키장 만들 당시 희귀한 주목과 구상나무가 잘려나갔다.
* 용연; 향유고래가 토한 물질에서 채취한 향료로, 사향과 비슷한 향기가 난다. 매우 귀하고 고가이다.
* 고본;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드문 약초로 향기가 좋다. 술로 담가먹기도 함.(고본주)
* 《古書硏究》 제 25호 (2007년) 선가 20수.
* 졸저 『名勝譜』 <한국의 승지 266곳> 4 ‘무주구천동33경’ 시조 중, 제33경 ‘향적봉’ 참조. 2017. 7. 7 도서출판 수서원.
* 졸저 『한국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山詠 1-127(131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20. 도봉제색(道峰霽色)-선시
소소한 가을바람 모정(慕情)을 쓸어 가면
가인(佳人)의 푸른 눈썹 능선으로 깜박대기
큰 바위 끌어안으니 보라 노을 춤추네
* 도봉산(道峰山 739.5m); 빼어난 인품을 닮은 산 전체를 포괄해 노래함. 광풍제월(光風霽月)은 시원한 바람과 맑은 달이란 뜻으로, 아무 거리낌 없는 맑고 밝은 인품을 비유하여 이름.
* 체로금풍(體露金風); 雲門因僧問(운문인승문) 樹凋葉落時如何(수조엽락시여하) 師云 體露金風(사운 체로금풍)-운문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나무가 마르고 잎이 떨어질 때는 어떻게 합니까?" 운문선사가 말하였다. "온몸이 가을바람을 맞게 되지”. 선문염송 23권 수조(樹凋)에서.
* 제10차 한국산서회 인문산행-도봉산(2017. 12. 2) 자료로 제공.
* 졸저『名勝譜』 ‘도봉산10경’ 10수, 『선가』1 관허, 산음가 6-7 나에게 묻기를, 11-15 도봉추색(136면), 명암명폭열전 제4~9번 도봉산 6수 등, 총 20수 참조.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山詠 1-134(136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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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bong Jesaek (道峰霽色) – Seonsi
Wenn die leichte Herbstbrise meine Zuneigung hinwegfegt,
Blinzelnd mit Gains blauen Augenbrauenwülsten
Während ich den großen Felsen umarme, tanzt der Sonnenuntergang
* 2024. 10. 20 독어 번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