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답사 1번지]로 장로사랑방 번개를 때려주신 광운 김경수 방장님, 큰 일을 치뤄내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저희들은 모두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방금 전, 6시 30분에 류창희님과 함께 춘천에 도착하였습니다.
목덜미가 하얘서 여고생같으신 박진서님을 오프에서 만나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보살님으로 인하여 장로사랑방이 더욱 오소니도소니해질 것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대표시삽이 되더니, 사람이 달라지고 품격이 달라졌습니다. 더 예뻐지시고 더 나긋나긋해지신 도명화 대삽님, 먼 길 달려와 고된 여행에 참석해주셔서 감격했습니다.
경주시 내남면 명계리에 자리한 용은사(龍恩寺)는 근년에 신축한 가람으로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고 지장보살과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협시불로 모시고 있다. 합작지붕의 다포양식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극락보전은 산지가람의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으로 장엄하고 있었다. 법당 안도 불단과 닫집이 화려하고 정교한 목조조각으로 장엄되었고 우물마루와 우물천정이 반듯하고 아직 단청불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당내에는 소나무 향기가 상기도 새큼하였다. 우리들이 머문 요사채도 모든 시설이 쾌적하여 마치 연화세계에 잠시 나들이를 나온 기분이 들었다.
저녁법회는 일정표대로 여법하게 진행되었다. 예불, 영일(靈一)스님께서는 참선에 대한 법문을 해주셨는데, 참선은 마음을 한군데에 집중하여 자기 본성(自性)을 찾는 수행으로 염불, 주력, 간경과 더불어 깨달음으로 가는 4門 중에서 가장 확실하고 쉬운 방법이다'라는 법문을 해주셨다.
영일 스님에 이어서 우화(羽化)스님께서는 이런 법문을 해주셨다.
"백척간두(百尺杆頭)에서 진아(眞我)를 보아라. 절에 오는 것은 '거울을 보듯' 자신을 되돌아 보기 위한 것이다. 다시 生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십시오"라고,,
이어서 발원문이 낭독되고, 관음 정근을 한 다음 백팔배 참회 사경도 하였다.
1997년 4월 27일, '세계 문화유산의 해'를 맞이하여 <현대불교>신문의 테마여행단에 끼어 석굴암, 분황사, 황룡사지를 거쳐 남산을 답사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탑곡 마애 석불군이 있는 남산의 동록 주변을 답사하였다.
이번에 소위 '남산 1번지 답사'라고 하는 남산 서록의 답사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특히 이번 답사에서 우리는 이면우 거사님의 알선에 의하여 남산 답사1번지의 전문 해설가이신 이홍렬 선생님을 모실 수 있었는데 선생의 해박하고 깊이있는 해설은 시종 우리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고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남산 1번지 답사의 입구인 삼릉을 지나 남산을 올라가는 초입에는 '배리삼존불 입상'이 있는데, 실례를 들어보면 이런 식이었다.
백제의 서산 마애 삼존불과 이곳 남산 배리 삼존불은 모두 불.보살들이 고졸하게 웃고있는(^u^) 상호를 취하고 있다 => 웃는 모습을 하고 있는 불.보살의 상호은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이다. 통일 신라 이후의 불상들은 근엄한 상호를 유지하고 있다(예;석굴암 불상의 상호;도를 완성한 성인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초월하였기때문이다)
패션(불보살이 입고 있는 의상)의 형태에도 시대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 배리 석불의 의상은 갑옷을 입은 듯 투박하고 두꺼운데 이것은 중국을 통하여 들어온 북방불교의 영향이고, 석굴암의 불.보살 상의 옷은 속이 들여다보일 듯 얇은 비단옷 형태인데 이것은 더운 지방인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을 말해준다(당의 현장법사와 신라의 혜초 등을 통한 인도 문화의 유입)
불.보살이 취하고 있는 손모양을 수인(手印)이라고 하는데, 삼국시대의 부처님의 특징은 통인(通印)을 취하고 있다. 통인이라고 하는 것은 오른손은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여 아래로 쭉 뻗어 내리고[施無畏印), 왼손은 쫙 펴서 위로 들어 올린 모양(與願印)이다.
배리 삼존불의 오른쪽 협시보살은, 머리를 왼쪽으로 기울이고 궁둥이와 다리를 갈지(之)자로 틀고 왼발을 약간 들어 허리를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돌렸는데, 이것을 '코트라보트' 자세라고 하는데, 긴장을 풀고 있는 가장 편안한 자세이다' '잘 보아라.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왼쪽 엄지발가락보다 더 굵게 보이지? 그리고 자세히 보면 이쪽은 발가락도 위로 뒤집어진 모양을 하고 있지? 왜 그런지 알아? 왼쪽 발은 힘을 빼어 약간 들어 올리고 오른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두다보니까 오른쪽 발가락들이 하중을 더 많이 받아서 그렇게 된 거야.
석굴암에 본존불을 에워싼 보살들의 발 모양이 본존불을 향하여 모두 이렇게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희랍이나 로마의 신전에 있는 대리석 조각이나 중세 사원의 벽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탁견이란다. 천 오백년 전, 우리 조상들의 예지(叡智)와 혜안(慧眼)이 참 놀랍지?' 이홍렬 선생의 해설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쳐보였다.
냉골에 앉아계신 목이 떨어져나간 석조여래 좌상, 마애관음입상, 아미타.석가 선각 삼존불상, 마애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선각마애여래상, 상선암 마애여래대좌불을 차례로 답사해 올라가면서 이홍렬 선생은 하나 하나 흥미진진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해주셨는데,,
이제까지 대수롭지 않게 보아넘겼던 하나 하나에 새로운 의미와 지식을 일러주심으로 우리들에게 불상을 보고 대하는 안목을 높여주시니, 그래서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고 하는 말이 생겨났구나' 하는 탄성을 불러 일으키게 해주었다.
특히 아미타.석가 선각 삼존불상(선각육존불) 앞 너럭바위에서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슬그머니 소금을 꺼내들더니 입술에 비껴대고 즉흥적으로 한 곡조를 연주해주셨는데,, 기막힌 바이브레이션(이 때 도명화님은 궁둥이에 바짝 힘을 주고 있었음)~산 밑으로 펼쳐진 배리 평야 위에 내려앉는 피리 소리가 꼬물꼬물 천년 신라의 역사를 거꾸로 헤엄쳐 올라가는 듯하였다.
상사바위를 거쳐 금오산(金鰲山) 정상을 올라 삼화령 대연화대를 거쳐 용장사지를 거쳐 남산답사1번지를 계속하려 하였으나 흩뿌리는 가을비에 길이 미끄러워 아쉬움을 접은 채로 답사 일정을 마쳐야만 했다.
큰 마음을 내어 하불동 장로사랑방 번개를 준비하였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참석자가 적었던 아쉬움, 그리고 날씨 탓으로 1변지 답사를 계획대로 끝내지 못한 아쉬움이 겹쳐 회향에 앞서 경암 이면우 거사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신다.
"나중에 좋은 날을 잡아서 남산 답사를 다시 한 번 더 하시죠"
마음 속으로 '不敢請인댄 固所願입니다(감히 청하지는 못할망정 정말로 원하는 바입니다)하면서,, 겉으로는 또 "네, 그러시죠" 내가 이렇게 대답을 한다. 속으로는 또 이렇게 중얼거린다. '야, 그러다가 니네 집 기둥뿌리 빠지면 어카지?'
<千年 古都에 모인 佛心>이란 테마를 내걸고 진행된 장로사랑방 남산답사 번개는 경암(敬岩) 법수(法修) 이면우 거사님의 원력으로 이루어졌다. 어제 우리가 일박 2식을 하면서 번개를 맞은 용은사(龍恩寺)에서는 우리를 정중한 손님으로 융숭하게 맞아주셨는데, 쾌적한 환경과 두끼의 정성스런 공양이 너무 극진하여 오히려 우리를 몸둘 바를 모르게 했는데, 이것은 오래전부터 거사님 내외분께서 지으신 지극한 공덕의 결과였음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극락보전 앞에 걸려있었던 환영 현수막, 알찬 내용과 깔끔한 편집, 멋진 제본으로 만든 40여쪽에 이르는 답사 자료집, 콩 백설기와 맛있는 술빵 등.. 이번 '남산답사1번지' 장로사랑방 번개을 위하여 주도면밀한 준비를 해주신 거사님 내외분의 물심양면의 은혜에 대하여 그 감사함을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해낼 수 있을까?
이 공덕으로 거사님 내외분의 소회소원(所懷所願)이 원만성취되시고 댁내의 건강과 부귀가 수미산 같으시기를 축원할 뿐입니다. 항상 거사님과 함께 근무를 하며 거사님을 돕고 계시는 '달마야놀자'팀의 모든 분들께서도 이번 저희 행사에 물심 양면으로 크게 도와주셨는데, 깊고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손을 내저으시지만, 법상(法常) 성락천 거사님께서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까?
이번 장로사랑방 번개에서 고마우신 분이 한 분 더 계십니다. 이면우 거사님과 함께 공군에서 공군기를 정비하는 군무원으로서 이홍렬 답사 해설자와는 친구지간이신 거사님 내외분께서도 답사 일정에 동참을 하셔서 내내 우리들을 카메라에 담아주셨습니다. 거사님께서는 카메라 촬영 기술이 푸로급이라고 하시는데, 제가 이름을 기억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 빠른 시기에 그 사진들을 여기서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대왕이 국사에게 예를 올릴 때는 곤룡포 자락을 이렇게 모으고 이렇게 절을 하였지요"하면서 '쿵~'하고 바위에 머리방아를 찧으신 이홍렬 선생님(울음을 참느라 순간적으로 입술을 깨물었음), 사진작가 선생님 내외분, 모처럼의 휴일을 우리에게 배려해주신 점 너무 고마웠습니다.
능행 한승규 거사님, 범강 오상룡 교수님, 원담 김주서 거사님, 영주에서 오신 김경순 보살님, 심인 이민호 총괄시삽 내외분, 잠깐만을 위하여 멀리서 와주신 선혜 이영희님과 신랑감, 설가차회의 우신재님 내외분, 플라워 홍순분님(곧 하불동 가입을 약속하심) 내외분, 法常 성락천 거사님, 이면우 거사님의 보살님, 그리고 저때문에 바쁘신 중에도 일정을 함께 하면서 장거리 운전을 해주신 강원대학교 류창희 선생님,, (여기 이름이 빠지신 분이 계시면 귀띰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혀 고의가 아닙니다) 모두 수고가 많으셨지만,, 저는,, 넘 반갑고,, 넘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부득이 참석을 못하신 여러분들(락서님? 범오님? 선화님? 현숙님? 도신님? 관득심님? 혜명님, 현파님? 찰라남? 딮블루님? 수선행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참석하셨던 여러분들께 후기 쓰실 기회를 드리기 위하여 저는 요기까지만 씁니다. 제 글중에 제가 잘못 들은 부분, 잘못 본 부분, 잘못 알았던 부분이 있으면 꼬리글로 지적해주시면 고치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덕현 합장
임경빈 : 다녀 오시느라 수고하셧습니다..후기 잘 읽었습니다.. (2003/10/12 21:28)
이명숙 : 후기를 읽는 제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합니다. 언제나 좋은글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합장 (2003/10/13 09:06)
정현숙 : 저 못 가서 너무너무 슬펐답니다... 그래도 후기 읽으면서 안 가도 간 듯 느끼겠습니다... 자세한 후기 올려 주신 이성모님께 두 손 모아 합장합니다. (2003/10/13 09:48)
박진서 : 자세하고도 다정하게 보고해주신 이성모 원장님, 저는 더 할말 이 없는데요... (2003/10/13 11:22)
방용덕 : 글 읽으니 재미있고 좋습니다. 아울러 죄송한 마음도... ^^; (2003/10/13 18:33)
박일남 : 꼬리말협박에 (지는 죄가 있어서...)^^ (2003/10/13 19:10)
박일남 : 아니,이게 왜 올라가지? 여기는 수정도 못하나요? 글 굴 옮기려고 했는데 오라가 버렸네..... (2003/10/13 19:12)
박일남 : 후기 잘 읽었습니다. 다정도 병 인양 자상하게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2003/10/13 19:14)
박일남 : 경주는 여행과는 거리가 멀어도 제일 많이 가 본 곳입니다. 어딜 가도 하늘을 볼 수있다는게 제일 좋거든요. (2003/10/13 19:15)
박일남 : 다녀오신 분들 후기 즐감했습니다^----^ (2003/10/13 19:19)
박일남 : 맨 처음 꼬리말은 안해도 될 죠크였는데....아, 또 실수. 말 이쁘게 하라는걸 그새 또 깜박 했습니다. 죠크여요 죠크. (2003/10/13 19:34)
첫댓글함께 못한 이 중생을 위해 이렇게 자상하게 나누어 주심에 정말 감사 합니다...모든 일정들이 그림책 펼쳐보듯 스칩니다...다음에 다시 한번더 남산답사을 하신다는 대목에서는 히야!라고 희망의 환히을 가져봅니다...함께 못한 아쉬움을 거사님의 마음 보시로 달랩니다....고맙습니다...^^
첫댓글 함께 못한 이 중생을 위해 이렇게 자상하게 나누어 주심에 정말 감사 합니다...모든 일정들이 그림책 펼쳐보듯 스칩니다...다음에 다시 한번더 남산답사을 하신다는 대목에서는 히야!라고 희망의 환히을 가져봅니다...함께 못한 아쉬움을 거사님의 마음 보시로 달랩니다....고맙습니다...^^
금천재 교수님, 변변찮은 제 후기를 여기 옮겨주셔서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제 후기를 몇군데 수정하였습니다. 새 버전으로 바꿔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합장
백운거사님 수정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요렇게 감쪽같이 고쳐놓으셨을까요? 짝~짝~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