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역
임동확
제가 가진 최후의 염치와 자존을 지켜갈 줄 아는 미래가 남아 있는 한,
용산역은 더 이상 동정의 눈길과 연민의 거처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던 그날 밤.
광주발 서울행 마지막 열차에서 내려 광장 한 구석에서 서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을 때였습니다. 행색 초라한 칠십대 후반의 노숙자 노인이 다가와 담배 두 개비만 구걸했습니다. 때마침 팔십 노모의 간곡한 부탁을 듣고 난 후여서, 난 별다른 주저 없이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뱃갑을 통째로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숙자는 한 개비는 자신의 입에 물고, 한 개비는 나란히 앉아있던 오십대쯤 보이는 여성 노숙자에게 건넸습니다. 그리곤 곧장 일어서더니, 그 노인은 필시 대리석 계단의 냉기를 막아줄 방석이자 시월 밤의 찬 이슬을 막아줄 침구이기도 할 영주 사과박스 골판지에 앉아 편안히 남은 담배를 다 태우라고 했습니다. 마치 꺼져가는 불빛처럼 희미한 그의 체온이 분명 스며 있을 그 자리에 잠시 쉬었다가기를 정중히 청했습니다.
적어도 그 누구에게든 나눠가질 답례품 같은 예의가 하나쯤 남아있다는 듯 한사코 바쁜 발길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 웹진 『시인광장』 2015년 10월호
■ 임동확
전남 광주 출생. 전남대 국문과 및 同 대학원 졸업. 서강대 국문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취득. 시집 『매장시편』『살아있는 날들의 비망록』『 운주사 가는 길』『 벽을 문으로』『처음 사랑을 느꼈다』『나는 오래전에도 여기 있었다』 산문집 『들키고 싶은 비밀』, 시론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 생성의 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