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국기독교정보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필레오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아래의 글들은, 18세기 조선 후기의 역사학자이며, 실학자인 안정복(安鼎福, 광주안씨, 1712(숙종 38)∼1791년(정조 15)) 선생의 문집인 "순암선생문집 제17권 잡저(雜著)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국역 순암선생문집"은 수십년 전에 출판되어 판매되었으나 현재는 절판되고 구입할 수 없습니다. 이 운영자는 "순암선생문집"을 소장하고 있으면서 여기에서 소개하는 내용들을 여러번 읽었습니다. 안정복 선생은 외래의 학문과 문화와 종교를 강력하게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여 놓고 있어서 역사 연구와 조선시대의 그리스도교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18세기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규경(李圭景, 1788(정조 12)∼? )의 문집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도 그리스도교를 아주 상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글들을 읽어 보면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고,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지 100년이라는 허구도 사라지게 됩니다. 또한 현대시대의 관점에서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남녀 놓은 문헌들의 내용을 읽어 보면 상당히 재미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운영자는 두 종류의 문헌들(원문)을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고문헌에
해당되는 책을 구입하기도 어렵거니와 수십년 전에 출판하였으나 이미 품절되어 버린 국역본도 구입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국가의 보조금을 지원받은 전문 학술기관(한국고전번역원)에서 원문과 번역문을 제공하고 있어서 공부하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그리스도교를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
고전번역총서 > 순암집 > 순암선생문집 제17권 > 잡저(雜著)
고전번역총서 > 순암집 > 순암선생문집 제17권 > 잡저(雜著)
아래의 글은 한국고전번역DB에서 재공하는 글입니다
순암선생문집 제17권
잡저(雜著)
천학고(天學考) 을사년
서양(西洋)의 글이 선조(宣祖) 말년부터 이미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명경 석유(名卿碩儒)들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나, 제자(諸子)나 도가(道家) 또는 불가(佛家)의 글 정도로 여겨서 서실(書室)의 구색으로 갖추었으며, 거기서 취택하는 것은 단지 상위(象緯)와 구고(句股)의 기술에 관한 것뿐이었다. 연래에 어떤 사인(士人)이 사행(使行)을 따라 연경(燕京)에 갔다가 그에 관한 책을 얻어 가지고 왔는데, 계묘년(1783, 정조 7)과 갑진년 어름에 재기(才氣)있는 젊은이들이 천학(天學)에 관한 설을 제창하여 마치 상제(上帝)가 친히 내려와서 일러주고 시키는 듯이 하였다.
아아, 평생을 두고 중국 성인의 글을 읽어놓고 하루아침에 무리를 지어 이교(異敎)로 떨어져 버리고 마니, 이것이 어찌 ‘3년을 배우고 돌아와서 그 어머니 이름을 부른다.’는 말과 다르겠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전기(傳記)를 취하여 천학고(天學考)를 만들어서 그들로 하여금 이 학문이 중국에 이른 것이 이미 오래이고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도 오래이며 지금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는 바이다.
알레니[艾儒略]의 《직방외기(職方外記)》에 보면,
“여덕아국(如德亞國)은 옛날의 대진국(大秦國)인데 불림(拂菻)이라고도 하니, 곧 천주(天主)가 하강(下降)한 나라이다.”하였고,
마테오 리치[利瑪竇]의 《천주실의(天主實義)》에는,
“한(漢) 나라 애제(哀帝) 원수(元壽) 2년인 경신년(B.C. 1)의 동지 후 3일째 되는 날 동정녀(童貞女)를 택하여 태반을 빌어서 탄생하였다. 이름을 예수[耶蘇]라 하였는데, 예수는 구세주(救世主)란 뜻이다. 서토(西土)에서, 33년간 널리 교화를 펴다가 다시 올라가서 하늘로 돌아갔다. 이것이 천주님의 실적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대진이란 이름은 후한(後漢)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바로 전한(前漢) 때의 이간국(犂靬國)이다.
○ 《한서(漢書)》에, 무제(武帝) 때에 안식국(安息國)에서 이간(犂靬)의 현인(眩人)을 바쳤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오익산리국(烏弋山離國)은 서쪽으로 이간·조지(條支)와 접하였다.”
하였다. 안사고(顔師古)는 말하기를,
“현인(眩人)은 곧 오늘날 칼을 삼키고 불을 토하며 오이를 세우고 나무를 심으며 사람을 끊고 말을 자르는 등의 술수를 부리는 사람이다.”
하였다.
○《열자(列子)》에 말하기를,
“주(周) 나라 목왕(穆王) 때 서쪽 끝에 있는 나라에서 화인(化人)이 왔는데, 물과 불 속으로 들어가고 쇠와 돌을 뚫고 산천(山川)을 뒤집어 놓고 성읍(城邑)을 옮기는 등 천변만화하는 재주가 무궁 무진하였으며, 물건의 모양을 바꾸고 사람의 생각을 바꾸었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화인은 곧 현인이다. 대개 이간국이 중국으로부터 4만여 리의 거리에 있으니, 가장 서쪽의 땅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환술(幻術)을 잘하고 재주가 많았으므로 서역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이를 사모하여 본받았으니, 그것이 중국에 전해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통전(通典)》에 보면,
“《후한서(後漢書)》에 나온 대진국은 전한 때의 이간국으로서 후한 때에 비로소 교통한 것이다. 환제(桓帝) 연가(延嘉) 초에 국왕 안토니우스[安敦]가 사신을 보내어 일남(日南)의 국경 밖에서 조공을 바쳤다. 그 나라가 조지(條支) 서쪽에 있는데 바다를 건너는 것이 4만 리이며 장안까지가 4만 리이다. 살펴보건대, 이것은 육로(陸路)를 말한 것이다. 땅이 평탄하여 사람들이 널리 분포해서 사는데, 동서남북이 각각 수천 리이다. 그 임금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고 현명한 자를 뽑아서 세운다.
사람들이 장대(長大)하고 평정(平正)한 것이 중국과 비슷한 점이 있으므로 대진(大秦)이라 하는 것이다. 혹자는 본래 중국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갖가지 향과 금·은 등 신기한 보물, 진귀한 금수와 환인(幻人)이 있으며, 안식(安息) 및 여러 호인(胡人)들과 교역한다. 불림국(拂菻國)은 고국(苦國) 서쪽에 있는데, 대진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의 얼굴색이 붉고 희다. 왕성(王城)은 사방이 80리이며, 사면의 영역이 각각 수천 리이고 강력한 군대가 백만이다. 대식국(大食國)의 서쪽 경계에 있어서 항상 대식국과 겨루다가 나중에 대식국에 병합되었다. 그 법이 돼지·개·나귀·말 등의 고기를 먹지 않으며, 임금이나 부모 등 높은 자에게 절하지 않고, 귀신을 믿지 않아 하늘에만 제사지낼 뿐이다. 그들의 풍속은 7일마다 하루씩 쉬는데, 그날은 물건을 사고 팔지 않고 출납하지도 않으며, 오직 하루 종일 술이나 마시고 떠들며 노닥거린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대식국은 파사(波斯)의 서쪽에 있는데, 사람들이 헌칠하고 장대하며 의복이 깨끗하며 태도가 조용하고 우아하다. 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두 하루에 다섯 차례 하늘에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예당(禮堂)이 있는데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매 7일마다 왕이 나와서 예배를 올리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대중들을 위하여 설법하기를, ‘사람이 살아가기란 매우 어렵고 하느님의 길은 쉽지 않다. 간사하고 잘못된 일이나 겁박(劫迫)하고 훔치는 일, 잗단 행동이나 쓸데없는 말, 자신의 안녕을 위해 남을 위태롭게 하는 일, 가난한 자를 속이고 천한 자를 학대하는 일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범하면 그 죄가 더할 수 없이 크다.’ 한다. 무릇 전쟁이 있을 때에 싸우다가 적에게 죽임을 당하면 반드시 하늘 나라에 태어나서 그 적을 죽이고 무한한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온 천하가 이에 교화되어 마치 물 흐르듯이 따른다.”
하고, 또 말하기를,
“대식과 파사 여러 나라의 풍속은, 하늘에 예배하며 저절로 죽은 고기와 묵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고국(苦國)은 대식의 서쪽 경계에 있는데, 역시 대국이다. 사람들이 대개 헌칠하며, 의상이 헐렁하고 커서 유복(儒服)과 비슷하다.”
하고, 또 말하기를,
“고창국(高昌國)은 그 풍속이 천신(天神)을 섬기며 불법(佛法)도 아울러 믿는다. 언기국(焉耆國)은 풍속이 천신을 섬긴다. 조국(漕國)은 곧 한(漢) 나라 때의 계빈국(罽賓國)이다. 총령산(葱嶺山)에 천신을 받드는 자가 있어서 사당을 세웠는데, 그 의제(儀制)가 매우 화려하여 금은으로 집을 짓고 은으로 바닥을 만들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나라 안에 득실신(得悉神)이 있는데, 서해(西海) 동쪽의 나라들은 전부 이를 공경하여 섬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강거국(康居國)은 풍속이 천신을 섬겨 떠받들어 공경하기를 매우 극진히 한다고 한다. 신아(神兒)가 7월에 죽어서 그 해골을 잃어버렸으므로,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매양 그 달이 되면 남녀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100명이 울부짖으며 들판에 흩어져서 천아(天兒)의 해골을 찾다가 7일만에 그친다고 한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골국(滑國)은 거사(車師)의 별종이다. 풍속이 천신과 화신(火神)을 섬기는데, 매일 문밖에 나가서 신에게 제사한 뒤에 식사를 하되, 꿇어앉아서 한 번 절하고 그친다.”
하였고, 살펴보건대, 하늘을 섬기는 학문은 대진 한 나라뿐만이 아니며, 예로부터 여러 나라들이 대개 다들 그러하였다. 또 말하기를,
“한(漢) 나라의 반초(班超)가 연속(掾屬)인 감영(甘英)을 대진에 사신으로 보냈다. 감영이 조지(條支)에 이르니 큰 바다가 나왔다. 이를 건너서 안식(安息) 서쪽으로 가려고 하니 뱃사람이 말하기를, ‘바다가 넓기 때문에 선풍(善風)을 만나야 석 달에 건널 수 있고, 만일 악풍(惡風)을 만난다면 3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였으므로 감영이 이 말을 듣고 그만두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천축국(天竺國)에 신인(神人)이 있으니 사율(沙律)이라 불리우는 자이다. 한(漢) 나라 애제(哀帝) 원수(元壽) 원년(B.C. 2)에 박사 제자(博士弟子) 경닉(景匿)이 대월지(大月氏) 사자의 불경(佛經)을 받았는데, 내용이 노자경(老子經)과 더불어 공통되는 것이 있었으니, 대개 옛날에 노자가 서쪽으로 관(關)을 나가서 서역의 천축을 지나다가 가르쳤던 것이다.”
하였다.
○《북사(北史)》에 보면,
“대진국은 일명 이간이라고도 하는데, 조지(條支)로부터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1만 리이며, 대국(代國)으로부터 3만 9400리이다. 지방이 6천 리이며 두 바다 사이에 있다. 왕성(王城)은 5개의 성으로 나뉘어 있는데 왕은 중성(中城)에 산다. 성에는 팔신(八臣)을 두어서 사방을 주관하게 하며, 왕성에도 역시 팔신을 두어서 사성(四城)을 나누어 맡아 주관하게 하되, 일을 계획할 때는 네 성이 모여서 의논한다. 소송에서 억울함을 당한 자가 있으면, 소소한 경우에는 그 지방을 맡은 신하를 꾸짖고 중대한 경우에는 내쫓은 다음에 현명한 자를 뽑아서 대신한다. 사람들이 단정하고 장대하며, 의복과 거기(車旗)가 중국의 제도를 모방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대진이라고 부른다. 수(隋) 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그 나라 사람 살합팔(撒哈八)·살아적(撒阿的)·간갈사(幹葛思)가 중국에 들어왔다. 그 교는 하늘을 섬기는 것으로 근본을 삼는데, 처음으로 그 교를 전하였다.”
하였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보면,
“당(唐) 나라 무종(武宗) 회창(會昌) 5년에 승니(僧尼)와 대진의 목호 현신(穆護祆神)을 모두 강제로 귀속(歸俗)시켰다.”
하였는데, 호삼성(胡三省)의 주에,
“목호(穆護)는 석씨(釋氏)의 외교(外敎)인데 곧 마니(摩尼)의 종류이다.”
하였다. 마니란, 《당회요(唐會要)》에,
“헌종(憲宗) 원화(元和) 원년에 회흘(回紇)의 중 마니가 왔으므로 절을 짓고 거처하게 하였는데, 그 교는 천축(天竺)과는 다르다.”
하였으니, 곧 이른바 명교(明敎)의 승려였던 것이다. 현(祆)은 음이 호(胡)와 연(烟)의 반절(反切)로, 호신(胡神)을 일컫는 말이다. 살펴보건대, 대진의 풍속에 머리를 깎고 아내를 두지 않는 것은 중과 다름이 없다. 다만 하늘을 섬기는 것과 부처를 섬기는 것이 서로 같지 않을 뿐이다. 개황(開皇) 이후로 그 교가 중국에 유행하였는데, 관사(館舍)를 지어서 사는 것이 도관(道觀)이나 불찰(佛刹)과 다름이 없었으나, 그 교만 주관하게 했을 뿐이었고, 회창(會昌) 이후로는 마침내 그 교가 끊어졌다.
○ 홍서 원시비서(鴻書原始祕書)에 말하기를,
“회흘인(回紇人)이 받드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하늘을 알 뿐이며 기타의 신이나 부처는 모두 받들지 않는다. 비록 신이니 부처니 하더라도 말하자면 모두 하늘이 그들을 낳은 것이다. 하늘에 예배하고 하늘에 기구하면 구하는 도를 얻을 것인데, 신을 위하고 부처를 위하니 하늘이 그들에게 능력을 주지 않았거늘 그들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러고 보면 나를 낳고 나를 길러주는 것은 모두 하늘이다. 만물이 모두 하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받들어 모시는 것이 하늘이다. 그런데도 만약에 따로 신이나 부처를 예배한다면 이것은 두 갈래의 마음으로서 사람들의 불충(不忠)이나 불효(不孝)와 일반인 것이다. 그 교문(敎門)은 오직 하늘을 받드는 것만 알기 때문에, 매년 정조(正朝)부터 매일 일어나서 새벽과 저녁으로 복을 비는데[叫福], 벽에서 얼굴을 돌리면서 ‘눈으로는 사특한 것을 보지 않는다.’ 하고,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면서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는다.’ 한다. 바야흐로 머리를 쳐들고 하늘에 부르짖으면서 복을 빈다고 하고, 두 손으로 받들면서 복을 받는다 하고, 손으로 마치 물건을 받은 형상을 하여 품 안에 집어넣으면서 하늘이 복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 뒤에 감사의 예배를 올리는데, 이것이 규복(叫福)이라는 것이다. 세속에서 규불(叫佛)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 전해진 것이다. 그래서 규복루(叫福樓)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이것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회흘은 당(唐) 나라에서 말하던 회흘이 아니고 바로 후세에 회회(回回)라고 불리우던 것이다. 서역의 나라들은 별도로 천신(天神)을 높여서 섬겼는데, 지금의 이른바 회부(回部)가 이것으로서, 한 나라의 이름이 아니다. 지봉(芝峯)도 말하기를, ‘회흘은 당 나라 때의 회흘이 아니고 곧 옛날의 대식국(大食國)이다.’ 하였다.
○ 명(明) 나라 가정(嘉靖) 연간에 정효(鄭曉)가 지은 《오학편(吾學篇)》에 이르기를,
“서역에 묵덕나(默德那)라는 나라가 있는데 곧 회회국(回回國)이다. 처음에 국왕 모한맥덕(摹罕驀德)이 태어날 때부터 영성(靈聖)하여 서역의 나라들을 신복(臣服)시켰으므로, 이들 나라들이 높여서 별암원이(別諳援爾)를 삼았으니 중국말로 천사(天使)란 뜻이다.
나라 안에 불경 30장(臧)이 있는데 모두 3천6백여 권이다. 글은 전서(篆書)·예서(隷書)·초서·해서(楷書) 등이 혼합되어 있는데, 서양이 모두 이것을 사용한다. 그 땅이 천방국(天方國)에 접해 있는데, 일명 천당(天堂)이라고 한다. 풍경이 융화(融和)하고 네 계절이 봄과 같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곡식이 풍성해서 사는 사람들이 생업을 즐거워한다. 음양·성력(星曆)·의약·음악 같은 기예를 가지고 있고, 풍속이 살생을 중히 여겨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며, 기구가 매우 정교하다. 선덕(宣德) 연간에 천방국을 따라 조공을 바쳤다.”
하였다.
○《명사(明史)》에 보면,
“신종(神宗) 만력(萬曆) 29년인 신축년 2월에 천진(天津)의 세감(稅監)인 마당(馬堂)이 대서양(大西洋)의 마테오 리치[利瑪竇]의 방물(方物)을 올렸다. 예부(禮部)가 아뢰기를, ‘대서양은 《회전(會典)》에 올라있지 않으니 그 진위(眞僞)를 알 수 없습니다. 또 조공으로 바친 천주녀도(天主女圖)라는 것이 이미 온당한 물건이 아니며, 주머니에 신선골(神仙骨) 등속의 물건이 들었는데, 대저 신선이라면 하늘로 날아 올라가 버렸을텐데 어찌 뼈가 남아있겠습니까. 관대(冠帶)를 주어서 그들 나라로 돌려보내야겠습니다.’하였는데, 회답하지 않았다.”
하였다.
○ 전목재(錢牧齋)의 《경교고(景敎考)》에 말하기를,
“대진(大秦)은 지금의 서양 오랑캐이다. 승려 중에 영리하여 문자에 통달한 자가 입술과 혓바닥에 침을 발라서 망녕되이 말을 만들었으니, 비록 명수(名數)에 대해서 잘 해석하여 취할 만한 것이 있더라도 그들의 행교(行敎)는 서역 오랑캐들의 것에 불과하다. 천지·일월·수화(水火)에 관한 여러 신(神)들은 분명 축교(竺敎)의 한 지파로서, 그 중에도 가장 용렬한 하승(下乘)이다.”하였다.
살펴보건대, 경교(景敎)란 서사(西士) 경정(景淨)이 지은 비문이다. 그의 책 《진도자정(眞道自訂)》에 기록하기를, ‘명 나라 천계(天啓) 3년에 관중(關中)에서 땅을 파다가 허물어진 담장 밑에서 비석 하나를 얻었는데, 비에 성교(聖敎)의 교리를 간략하게 기록하였으며, 성교의 인사(人士) 72인을 새겨서 전하였다.
당(唐) 정관(貞觀) 9년에 중국에 들어왔으며, 비석을 세운 때는 당 건중(建中) 2년 1월에 해당된다.’ 하였다. 그러니 전목재가 찬술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전목재는 당시의 사람으로서 서사(西士)와 종유(從遊)하여 이에 대해서 잘 알았을테니, 그의 말은 더욱 믿을 만하다 하겠다.
○ 청(淸) 나라의 선비 고염무(顧炎武)의 《일지록(日知錄)》에 말하기를,
“대진국은 《후한서》 서역전(西域傳)에 처음으로 보이는데, ‘바다 서쪽에 있고 영토가 사방 수천 리이며 4백여 개의 성이 있고 복속된 작은 나라가 수십이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천축국은 서쪽으로 대진국과 통한다.’ 하였다. 지금 불경에 모두 제(題)하기를, ‘대진의 구마라습(鳩摩羅什)이 번역한 것이다.’ 하였는데, 이것은 요흥(姚興)이 세운 나라 이름이니 잘못된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당(唐) 현종(玄宗) 개원(開元) 7년에 토화라(吐火羅) 국왕이 천문(天文)을 해독하는 사람 대모사(大慕闍)를 바쳤는데, 물으면 모르는 것이 없었다. 법당(法堂)을 하나 설치하고 본교(本敎)의 교리에 따라서 공양하기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금의 마테오 리치의 천주당(天主堂)과 비슷한 것인데 현종 시대에는 시행될 수 없었으니, 어찌 당시 조정에 학식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 말은 역시 천주설(天主說)이 그르다는 말이다.
○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말하기를,
“대서국(大西國)에 마테오 리치란 자가 있었는데, 바닷길을 나선 지 8년 만에 8만 리의 파도를 건너서 동월(東粤)에 와서 10여 년을 살았다. 그가 지은 《천주실의(天主實義)》에는, 첫머리에서 천주가 처음으로 천지를 창조하여 안양(安養)을 주재하는 도리에 대하여 논하고, 다음으로 사람의 영혼이 불멸하는 것이 금수와는 크게 다른 것임을 논하고, 그 다음으로 육도(六道)를 윤회한다는 말이 잘못된 것임과 천당과 지옥이 선악의 과보(果報)임을 변파(辯破)하고, 끝으로 사람의 품성이 본래 선하여 천주를 공경하여 받드는 뜻을 논하였다. 그들의 풍속은 임금을 ‘교화황(敎化皇)’이라고 부르는데, 장가를 들지 않기 때문에 세습하여 잇는 일이 없고 현명한 자를 택하여 세운다. 또한 그들의 풍속이 우의(友誼)를 중히 여겨 사사로이 저축하지 않으며, 《중우론(重友論)》을 지었다. 초굉(焦竤)이 말하기를, ‘서역의 리치군[利君]이 「벗이란 제 2 의 나다.」 하였는데, 이 말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다.’ 하였다. 자세한 것은 《속이담(續耳譚)》에 보인다.”
하였다.
○ 성호 선생의 《천주실의》 발문(跋文)에 대략 말하기를,
“‘천학실의’란 이씨(利氏) 마두(瑪竇)가 지은 것이다. 그는 구라파(歐邏巴) 사람인데, 만력(萬曆) 연간에 예수회[耶蘇會]의 친구인 양마락(陽瑪諾)·애유략(艾儒略)·필방제(畢方濟)·웅삼발(熊三拔)·방적아(龐迪我) 등 몇몇 사람과 함께 바다를 건너와서, 3년을 나그네로 지내면서 비로소 그 학문에 통달하였다.
오로지 천주(天主)만을 높였는데, 천주란 곧 유가에서 말하는 상제(上帝)이지만, 경건히 섬기고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믿는 것은 불씨(佛氏)의 석가이다. 천당과 지옥을 들어서 권면하고 징계하며, 널리 돌아다니면서 인도하여 교화하는 것을 예수[耶蘇]라 한다. 예수란 서국(西國)의 구세주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란 이름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또한 중고(中古) 시대부터였는데, 순박하던 인심이 차츰 각박해지고 성현이 떠나가 버려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은 날로 늘어나고 이치를 따르는 자들은 점점 드물어 갔으므로 이때 천주가 크게 자비심을 발하여 친히 내려와서 세상을 구하게 된 것이다.
동정녀(童貞女)를 택해서 남녀간의 교감(交感)이 없이 태반(胎盤)을 빌려 여덕아국(如德亞國)에 강생(降生)하고는 이름을 예수[耶蘇]라 하였고, 33년간 세상을 널리 교화한 뒤 다시 올라가서 하늘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그 교가 마침내 구라파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는데, 예수가 살았던 때는 1603년 전이 된다.
이씨(利氏)가 중국에 와서 수십 종의 책을 지었는데, 천문을 관찰하고 지리를 살펴서 운행을 계산하여 역법(曆法)을 만든 우수함은 일찍이 중국에 없던 바이다. 그렇지만 그가 축건(竺乾)의 교를 배척한 것이 대단한 일이기는 하나 필경에는 자신의 교도 환망(幻妄)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오히려 깨닫지 못하였다.
중국 사람들이 한(漢) 나라 명제(明帝) 이전까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가 모두 천당과 지옥을 경험하지 못했는데, 어찌 유독 윤회설만 잘못된 것이고 천당과 지옥에 관한 주장은 옳단 말인가. 그리고 만약 천주가 지상의 백성들을 사랑하여 인간 세상에 환생(幻生)해서 사람들에게 일러주고 말해주기를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처럼 해야 하는 것이라면, 수많은 나라에 자비를 베풀어야 할 사람들이 어찌 한정이 있겠는가. 그런데 한 사람의 천주가 두루 다니면서 깨우쳐 주려면 너무 수고롭지 않겠는가. 또 구라파의 교를 전해 듣지 못한 구라파 동쪽의 사람들에게는 어찌하여 구라파처럼 온갖 영이(靈異)스러운 천주님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온갖 영이한 자취들이 또한 마귀에 덮어씌어서 그런 것이 아닌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내 생각으로는, 서국(西國)의 풍속 또한 급속히 변하여 길흉의 응보를 점점 믿지 않게 되자 부득이 천주경(天主經)의 가르침이 있게 되었던 것이니, 처음에는 중국의 《시서(詩書)》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따르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설을 보태어서 지금까지 전해온 것이며, 그 이후의 허다한 영이의 자취는, 저들이 이른바 마귀나 광인(誑人)의 소치에 불과한 것이다.
대개 중국에서는 사실의 자취에 대하여 말하므로 자취가 없으면 어리석은 자들이 믿지 않고, 서국(西國)은 허환(虛幻)의 자취에 대하여 말하므로 그 자취가 어지러울수록 미혹한 자들이 더더욱 빠져드니, 그 형세가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마귀에 대한 미혹이 이와 같은 것은 또한 천주교가 이미 사람의 마음에 고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뒤에야 중국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면 천당이나 지옥, 그리고 전세(前世)의 일들을 기억해 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저 서사(西士)들이 탐구하지 않은 이치가 없고 통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없으면서도 그 고착된 고정 관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애석한 노릇이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선생의 말이 이와 같다. 그런데 지금 이것을 공부하는 자들이 간혹 ‘선생도 일찍이 이것을 배웠다.’ 하면서 자기의 견해를 주장하여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스승을 무함(誣陷)하는 죄에 빠져들어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 어찌 한심하지 않겠는가. 그 학술의 차이점을 문답(問答)으로 정리한다.
첫댓글 휘오스님께서 관심있어 하실 것 같아서 담아와 봅니다.^^
캄사합니다.
@휘오스 제가 더 감사합니다 휘오스님^^
건강히 잘계셨지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평안위에 평안이 항상 휘오스님 머리위에서 떠나지 않길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