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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애의 '저를 소개합니다' |
ⓒ 한성수 |
<저녁밥을 먹고 난 후에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뉴스를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아들 녀석이 불쑥 종이 한 장을 내밉니다. 바로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연례행사로 되풀이 되는 '가정환경조사서'입니다.
아들이 내민 종이에는 '기초환경조사서'란 타이틀에 학생의 인적사항, 보호자 및 가족의 생년월일, 직업, 종교를 기재하는 난이 있고, 그밖에도 학생의 취미, 성격, 나의 장래희망, 부모님이 바라는 장래희망, 교사에게 바라는 요망사항, 건강상태 등을 기재하는 난이 있습니다.
아들은 장래희망이 '선생님'이라고 하는데, '부모가 바라는 장래희망'에 우리 부부는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기재하여 둡니다. 또 '교사에게 바라는 요망사항'에는 역시 "모든 것을 선생님께 맡기겠습니다"고 기재했습니다.
'건강상태'난에는 "양호합니다만 아토피성피부염이 있습니다"라고 적었는데, 그것은 지난 학기 체육시간에 나일론 소재의 체육복을 입혀서 고생을 한 적이 있었으므로 "이번 학기에는 면으로 만든 체육복을 구해 입혔으면 좋겠습니다"고 첨언하여 두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난이 있습니다. 바로 수강하는 학원이름이 세 칸이나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두어 군데의 학원을 수강한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할 시기에 있는 우리 아들도 학원에 보내고 있어서, 나는 슬며시 아들에게 미안해집니다. 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괜히 뒤처질 것 같은 조바심이 아이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실이 되었나 봅니다.
"아버지께서 학교 다녔을 때도 이런 조사를 했어요?"
"그래. 아버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계속 이런 조사서를 작성했단다. 재산상황에는 집이 전세인지 자기 집인지, 자기 집이면 초가집인지, 기와집인지, 논밭은 또 얼마나 있는지, 가계의 월소득은 얼마인지 등으로 구체적으로 적도록 되어 있었단다. 또 살림살이를 조사하기도 했는데, 피아노가 있는지, 세탁기가 있는지, 텔레비전이 있는지, 심지어 전화가 백색전화인지 청색전화인지도 조사를 했단다."
"전화기 색깔까지 조사를 했다고요?"
"응. 전화기 색깔로 구분한 것이 아니고, 백색전화기는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는 전화를 말하고, 청색전화기는 사용만 가능한 전화였단다."
"왜 그렇게 자세히 조사를 했어요?"
"아마 그것은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환경을 잘 파악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문득 아픈 기억이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때 '무학'인 부모님들의 학력 난을 모두 '국졸'로, 위의 일곱 형제가 모두 '국졸'이거나 '중졸'인데도 '고졸'로 기재했습니다. 또 가정형편을 조사하는 항목에 누가 보아도 '하' 중에 '하'인 우리 집 형편을 '중'으로 항상 적었습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왜 이리 불에 덴 듯이 가슴이 화끈거리고 쓰라린지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막내형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수야! 만약에 네가 친구들과 가다가 막노동을 하고 있는 형님을 만났다고 하자. 그러면 너는 모른 척 하려느냐?"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항상 가슴 속에서는 그 때의 부끄러움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생각해 봅니다. 공문서에 본적 란을 없애고, 일부 기업에서는 학력 란을 없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마 효율적인 인적자원의 관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은 출신성분이나 학력에 따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오늘 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도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해서 제출한 모양입니다. 그 항목에는 부모의 학력 란과 직업을 구체적으로 적도록 기재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 중 또 몇 명은 그 옛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중졸'인 아버지의 학력을 '대졸'로 적어 놓거나, '무직'인 아버지의 직업을 '사업'으로, 또 이미 이혼한 어머니의 이름을 채워놓고 눈물짓거나 상처받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모의 직업이나 학력을 파악하는 것이 학생을 지도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그 선입견이 학생을 바라보는 데 차별을 가져오지는 않을까요? 만약 1%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매년 조사하는 '가정환경조사서'를 아예 없애는 것은 어떨까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 있다면, 만약을 대비해서 보호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파악해 두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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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지난해 이맘 때, 내가 적었던 글입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난 오늘, 새 학년이 된 아이들은 어김없이 다시 '가정환경조사서'를 내놓습니다. 다만 그 명칭이 '저를 소개합니다.'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딸아이의 소개서 중 '부모님을 소개합니다.'는 란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학력'과 '직업', 심지어 '직장'과 '직책'을 구체적으로 기재하도록 되어있고, '직장전화 번호'까지 적도록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해보다 그 전체적인 질문내용이 훨씬 부드럽게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저희 집의 경제적 형편은 이렇습니다.'란 난은 학비감면이나 급식지원이 필요한지를 기재하는 난인데, '가난은 조금 불편한 것일 뿐, 부끄러운 일도, 불행스런 일도 아닙니다.'라고 설명을 하여,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였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더 많이 알아야 더 잘 지도할 수 있다'며 항변할지 모릅니다. 또 '부모의 학력이나 직책을 적는 것이 무슨 큰 상처가 되겠느냐'며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나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나도 직책을 묻는 딸아이에게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차라리 이런 조사서 대신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상담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음을 연 대화가 있다면 새로 맞은 담임선생님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과 어색함을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과 아이들의 소통은 <부도체>인 이런 종이쪽지를 통해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마주 앉아 따스한 눈길로 대화를 나눈다면 선생님에 대한 아이들의 존경심과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은 강물처럼 서로를 넘나들며 흐르지 않을까요?
- 이글은 'U포터'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정말 이런 방법밖에는
새로배정된 학생들의 사정을 알수없는것일까....
마지막 말처럼
이런 조사 써내고
부모학력..
고졸 대졸 이런거 손들고!
아직도 이런 풍토가 만연하다니 슬프다.
첫댓글 그러게..
나도 이거 정말 싫었다... ㅠ 근데 이거 대학에서도 하더만,
난 양반 가문이다. 그러나, 아버님께서는 소(초등)학교만 졸업하셨다. 소 한마리 파셔서 쌀장사로 사업을 시작, 자동차 수리공장, 건설회사, 세계적인(?)자동차 제조 회사를 이룩하셨다...
ㄲ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