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사랑 이야기
살아가면서 ..
때로는 ..
철저히 혼자이고 싶을때도 있지만
혼자라는게 너무 힘겨움에
누구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때도
있을것입니다....
이 국화사랑도 가끔은 이렇게
혼자이고 싶을때가 있었지만
세상살이가 혼자만으로 되는것이 아닌가 봅니다..
현장에서 그것도 현행범으로
걸려버린 우리들의 웃지못할 행동(?)
하늘같은 장인과 장모님을 몰라보고
이렇게 되었으니 이 국화사랑의 심정이
오죽하것습니까...
일단은 사태를 수숩할려고 사실은 이것이 아니라
이렇고 저렇고 해서 그렇다고
천사는 부모님들한테 핑계를 대었지만
부모님들은 처음부터 색안경을 쓰고
본것이 있는데 믿으려 하지않았고
전 아픈몸을 일으켜세워 무슨 죄진사람처럼
머리를 푹~숙이고 있었죠..
천사집이 철원인데
같은 강원도이지만
강릉하고는 다섯시간 이상걸리는 거리에다
노인네들이 반찬이며 쌀이며 한보따리 가지고
이렇게 딸자식 보고싶어 온 그 마음에
찬물을 끼언졌죠..
딸자식둔 부모의 입장에서는
소문더 나기전에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고
아직 준비도 되지않은 우리들은 울며겨자먹기로
부모님이 하자는대로 따라야 했습니다..
어자피 같이 살봐에는 허락맞고 사는것이 어쩌면
더 좋은것인지도 모르나
아직 결혼을 할수있는 준비나 또는 그 여건도 되지
않은상태에서 부모님들의 입장은 이해하겠지만
결혼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딸가진 부모님들은 서둘러 버렸고
이 국화사랑은 아픈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햐여
발길을 돌려야 했죠..
천사부모님은 내려왔으니 이 국화사랑의 아부지엄니를 만나
약혼날짜라도 잡아야겠다고 성화를 하셨고
이 국화사랑은 사명을 띠고 집으로 부모님을 모시러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죠..
집으로 들어가 자초지정을 말하니 ..
국화사랑 아버지는 그날따라 술도 안마셨던터라
맨정신에 차근차근 저에 설명을 듣고 난뒤
한마디 하시더군요..
좋냐!!!!?
천사가 좋냐구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좋다고 고개를 끄떡였죠..ㅎㅎ
그럼됐다 하시더니 앞장을 서라고 하더군요..
자취방 부근에 조그만 식당에 자리잡고
서로 상견례를 하고 간단한 식사를 시켜놓고
부모님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알수는 없었으나
결론은 결혼식을 올리자고 결론이 내려졌죠..
아직 어리지만 이 국화사랑이 군대갔다오면
철도 들것이고 나름대로 생활력이 강하니까
딸자식 고생이야 시키겠습니까.
하는 아버지의 말이 천사의 부모님을 진정시킨것같습니다
그때가 10월초..어느날..
아닌밤중에 홍두깨라구
그렇게 처삼춘벌초하듯 결혼날짜를 한달여 앞으로 잡아놓고
전씨가문에 문중땅 임야가 있어
그것을 헐값에 정리하고 청첩장이며 간단한
예물이며 들어가는 음식이며 모든것을 분주하게
준비를 하였습니다..
ㅠㅠ
11월23일 기일을 정하고
이 국화사랑은 천사와 어린나이에 한번에 사건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고
20살이란 어마어마한 나이에 결혼식을 거창하게
올렸죠...
1986년11월23일 이 국화사랑이 스므살 어린나이에
결혼을 치르고 또한 시골이다보니
축이금 또한 웃지못할것들이 많이있었죠..
축이금내용은 이렇습니다..
최아무개 쌀한말
김아무개 들기름 한되
손아무개 소주됫병두되
뭐 이렇게 돈 대신 물품으로 들어왔죠
ㅎㅎㅎㅎㅎ
지금 가끔 그 축이금 장부를 보면서
웃기도 하지만 계산이 않됩니다
결혼식한다고 청첩장이 날아오면
그때 살한말 한 분들에게 얼마를 해야할지..?
들기름 한되한분들한테 또 얼마를 해야할지 ㅎㅎ
대학 총장님이 주례를 서셨고
과에서 친한 친구들 몇명 그리고 초등학교 동창들 몇명
천사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아직 생활에 능력도 없는 우리들이 결혼식부터
올리자니 이거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심 걱정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스므살 어린나이에 변변한 연애한번 못해본 이 국화사랑
한마디로 억울한 결혼생활이 시작되었죠..
신혼여행이라고는 강의시간하루 제끼고
경포콘도에서 하루밤 보낸것이 고작입니다 ㅎㅎ
지금에 이 국화사랑 마눌이가 그 천사입니다 ㅎㅎ
하지만
신혼 한달만에 이 국화사랑은
군대를 지원입대하였죠..
12월26일.....
어자피 갖다올 군대라면 일찍 갖다가 오는것이
생활에 도움이 될거라는 저에 생각에 자원입대를 결정하고
천사와의 결혼 생활은 한달남짖 ...
처가에서 8백만원이란 거금으로 전세를 얻고
신혼살림을 차린 우리들은 꿈같은 한달이 흘러갔고
한달여만에 군 입대라는 또다른 인생이 기다리고있었죠...
영장을 받아들고
한번도 가보지 않은 처가집을 향하여
강릉에서 버스를 타고 상봉동에 내려
다시 철원가는 버스를 타고 오징어 한축사서
처가로 향하는 이 국화사랑의 마음은 씁씁한 마음과
세상에대한 그 어떤 마음이 교차하더군요..
지금은 와수리 가는 길이 포장이 다 되었지만
그때는 이동까지가면 그다음부터는
비포장을 한참을 가다가 와수리가 나오고
거기서 내려 처가를 갔죠..
처음으로 처가집이란데를 도착하여
여장을 풀기도 전에 처가에는 많은 손님들이
와 계시더군요..
동네 아줌니 아저씨들.....
어린새신랑본다고 동네잔치를 하다싶이 하면서
몰려들었습니다..
결혼식때 처가집 식구들이 와서 그때는 인사가 되었지만
동네분들은 참석을 하지 않으셨죠..
먼저 장인장모님게 절을 하고
다음은 큰처남한테 맞절
그리고 작은처남은 고등학교를 다니고있었고
처재는 어느 공장에 취직을 하고있었죠..
이렇게 처가에서 하루밤 못먹는 술로 진탕 취하고
어떻게 되었는지 기역조차 할수없을정도로 퍼마셨죠..
동네분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 국화사랑을
칭찬하셨죠..
장사하면서 배운 입담으로
즐겁게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인기를 끌었죠..
그렇게 이틀밤을 자고 하직인사를 하고
다시 강릉으로 내려와
부모님을 찾아뵙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결론을 내고
군대갈 준비를 하고있었죠...
천사는 계속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는것으로 하고
학비는 처가에서 부담하는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 국화사랑은 12월26일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천사랑 친구들 몇몇이랑 춘천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삼년이란 세월을 또다른세계에서 보내야 되는
부담감을 안고
또한 신혼초의 재미있는 생활을 정리하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자 이렇게 생이별을 해야했죠..
겨울이라 썰렁하고 추운 춘천
새벽부터 천사는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친구들은 가사도 모르는 군가를 부르면서
춘천102보충대로 향하여 세대의택시를대절내 타고
스므살의 마지막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춘천..102보충대 연병장...
같이 머리갂고 군대입대한 친구 한명과
또 저와 비슷한 많은 젊은 청춘들과 왁자지껄한곳에서
천사와 아무말없이 손만잡고
그렇게 마주보고 흐르는시간을 아쉬워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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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이구 정말 번개불에 콩 구워 드셨네 ^^* ... 우짜쓰까... 저 젊은 청춘을... ㅋ ... 그 끼(바람)를 그님께서 잘 다스리고 살아야 할낀데... ㅋ 여러 여자 울리기 전에...잘 처리(?) 하신거 같기도 하공 ㅋㅋㅋ ... 지금껏 살면서... 몇번이나... 되돌리고 싶진 않으셨는지...ㅋ 재미따~ ^^*
허걱^^ 저는 야시시한... ^.,^ 재밋는글 감사하게 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