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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함께 돌아봐야 할 소수자 인권
1. 서언
1990년대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사회의 투명성이 강력하게 요청되는 시기였다. 그러한 시점에 감사원 감사관이었던 이문옥 씨가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은폐’를 폭로한 것은 공익제보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같은 해,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1992년 이지문 중위의 ‘군 부재자 투표 비리’ 의혹의 폭로 등 사회의 암울한 구석을 밝히는 내부고발이 이어지면서 공익제보를 사회발전의 중요한 과제로 각인시켰다.
1993년 탄생한 김영삼 정부는 사회 투명화의 여론을 받아들여 마침내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하나회 척결 등 비리의 온상을 제거하고자 메스를 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987년 민주항쟁으로 절차적 민주주의의 길이 열리고, 1988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실질적 민주주의의 요구가 거세졌으며, 1990년대 공익제보자들의 활약으로 투명한 사회의 길을 내딛게 된 것이다.
그 후로도 많은 공익제보자의 희생과 헌신에 빚을 졌던 우리 사회는 공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신고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원하고자 나섰다. 2011년 3월 국민 생활의 안정과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풍토의 확립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공익신고자 보호제도의 일반법인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제정되었다. 그와 함께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의 원상회복과 신고자 누설로 인한 일상생활의 피해를 막기 위한 의무가 부과되었다.
2. 공익제보자 보호의 현실
그러나 지난 10여 년간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제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양한 탄압행위가 잇달았다. 현실이 제도를 추월하는 현상이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발생하며, 신고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공익신고에 대한 법률 지원 미비로 인하여 공익신고자가 각자도생으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현실은 일말의 변화도 없다.
제도만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일반적 부패행위의 신고 외에도 청탁금지법 · 이해충돌 방지법 · 공공재정 환수법에서 규정한 위반 행위를 신고했을 경우 비밀 보장 · 신변 보호 · 신분 보장 · 책임감면 등의 보호와 함께 보상금 · 포상금 · 구조금 지급과 같은 합당한 보상 체계를 갖추고 있다. 명목상의 법 규정만 본다면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공익신고자가 이러한 법의 혜택을 받아 해피엔딩으로 공익신고를 마무리했다는 사례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게다가 다시 공익신고가 필요한 상황이 닥친다면 여전히 공익신고를 하겠다는 신고자를 만나 본 적이 없다. 이는 공익신고자의 길이 여러모로 험난하기 이를 데 없는 고난의 길임을 의미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내부제보자들은 주인공의 앞길을 가로막는 빌런(악당)이나 음모적 세력의 일부로 묘사된다. 공익제보의 인상이 각인되기 시작하는 학교교육 과정에서도 내부고발자가 칭찬받는 사례는 드물고, 도리어 고자질 행위로 비난받기 일쑤다. 한국처럼 정(情)과 의리와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예컨대 예체능 · 교육 · 경찰 · 검찰 · 군대와 같이 선후배 동료 관계가 밀접하고 폐쇄적인 조직일수록 모르는 체하고 지나가는 게 미덕으로 간주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흔히 조직에 해를 끼치는 배신자나 배반자로 몰리고, 법적 보호를 받게 된다고 하더라도 왕따 등 이런저런 보복에 노출되는 게 현실이다.
공익제보자 문제를 바라보는 국가기관의 인식도 그리 호의적인 것 같지는 않다. 2021년 3월 4일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신고의 활성화를 위해서 반부패 공익신고자에게 보상금 등을 적극적으로 지급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2014년 ‘효성 입찰비리’ 관련 공익신고를 하고 2015년에 해고되어 생활고를 겪고 있던 효성그룹 김민규 차장의 경우, 전혀 다른 상황에 봉착했다. 위원회는 그가 해당 사건에 가담한 실무책임자로서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였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대폭 감액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2020년 5월). 보상금을 온전히 받는다 해도 무너져버린 일상을 회복하는 데 턱없이 부족할 판에 지급 과정에서 겪은 모멸감과 쥐꼬리만 한 보상액은 공익신고를 후회하게 하는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령 제22조의 규정 “다음 각 호의 사유를 고려하여 보상금 지급액을 감액하거나 지급하지 아니할 수 있다”에 따라 보상금을 감액할 수 있는 권한과 재량을 가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26조 제2항은 보상금 지급을 의무규정으로 두고, 법령상 신고 의무자 및 공직자가 자기 직무와 관련하여 신고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위와 같은 재량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14조는 신고자의 공익침해 행위 가담의 경우 적극적인 책임감면을 요구(형사 · 행정조치 · 징계)할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리한 위치에 있는 공익신고자의 처지를 감안해서 법령을 적용해야 할 국민권익위원회가, 법률에 정확하게 위임조차 되지 않은 시행령상의 규정을 들어서 보상금 감액을 결정한 것은 해당 기관의 존재 이유에 비추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 법률은 공익신고자를 100% 공익신고자 · 75% 공익신고자 · 50% 공익신고자 등으로 나눌 수 있는 권한을 국민권익위원회에 부여하지 않았고, 제도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공익제보자를 보호해야 할 기관이 그런 결정을 하는 것은, 한편으로 ‘나쁜’ 공익제보가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모든 공익제보란 해당 사건에 어느 정도 가담한 경우에야 실제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제보자가 조직 내부의 범죄에 가담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공익제보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런데도 공익제보의 질(質)을 평가하고 보상금을 차등 지급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행정관청 · 사법기관 등이 공익제보자에 대해서 충분히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특히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진 국민권익위원회조차도 나쁜 공익제보를 상정하고, 공익제보 활성화에 역행하는 인식을 갖는 것은 큰 문제점이다.
비리(非理) 제보 제도가 위법행위를 적발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임은 이미 수많은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바 있다. 2011년 미국에서는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하여 시행한 이후, 비리 제보자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제보자의 숫자와 보상금 등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비리 제보자들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와 보호조치를 보장함으로써 비리 관련 정보를 알고 있는 잠재적 제보자들에게 제보를 결행하도록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의 엔진 결함을 제보한 김광호 부장에 대하여 미국에서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소식은 좋은 타산지석이다. 공익신고에 대한 보상을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비리 예방과 공익신고자 보호의 핵심이다. 사회 일반의 공공성 도의(道義)와 공익제보에 대한 폭넓은 보상 조치의 시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3. 불교시민사회 역할론-상생과 공존 장치로서 공익제보
가. 공익제보의 발상지 시민사회
사회 각 분야에서 부패와 타락이 고발되어야 정화의 계기가 마련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보다 높은 공정사회로 발전할 수 없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조차도 고인 물에서는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기관, 특히 감출 것이 많은 국가조직은 공익제보자와 본래 상극이다. 각자의 능력 차이를 전제로 한 적자생존과 무한경쟁의 법칙이 지배하는 기업과 시장도 공익제보자 보호의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 권력기관이나 기업은 효용가치가 있는 선에서 공익제보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공익제보자가 없이도 국가기관이나 기업 조직이 과연 스스로 공정할 의지나 역량이 있는가. 상생과 공존의 도덕의식은 ‘어디서 누가’ 주체가 되어 현실사회에 요구하고 관철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나. 시민사회의 역할
시민사회(市民社會, civil society)는 자발적인 공공 및 사회 조직과 기관의 총체를 일컫는 말로, 사회에서 국가나 시장과 구별되는 영역이다. 런던경제대학 시민사회센터는 ‘시민사회’를 이렇게 정의한다. “시민사회는 공유된 이해 · 목적 · 가치를 둘러싼 강제되지 않은 집합 행동의 장을 말한다. 이론적으로 시민사회의 제도적 형태는 국가, 가족, 시장과 구별되지만, 실질적으로 국가, 시민사회, 가족, 시장의 경계는 복잡하고 모호하며 합의가 필요할 때가 많다. 보통 시민사회는 다양한 공간 · 행위자 · 제도적 형태를 포괄하며, 형식성과 자율성, 권력 면에서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시민사회에는 등록 자선단체 · 비정부 개발기구 · 공동체조직 · 여성단체 · 신앙 관련 단체 · 직능단체 · 노동조합 · 자조집단 · 사회운동 · 기업집단 · 연합 및 옹호 집단과 같은 조직을 아우른다.”
또한, 하버마스는 시장 피폐화에 대응하는 공적영역의 회복에 역점을 두면서, 시민사회는 생활-세계로 구성된 사회의 공적영역의 의사소통 구조를 강화하는 비정부기구와 비영리적 결속체 그리고 자발적 결사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러한 결사체 · 기구 · 운동들은 사회적 문제들이 사적 생활영역에서 어떻게 반향을 일으키는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것을 공적영역에서 문제 삼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시민사회를 공적영역의 체계 안에서 일반적 이익에 대한 문제해결의 담론을 제도화하는 결사체 네트워크라고 본다. 특히,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시민사회를 강제되지 않은 인간들의 단체가 활동하는 장이요, 그 주체는 공적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는 자율적 공민이라고 주장한다. 시민사회는 바로 인간의 본성적인 사회성 그 자체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요컨대 사회적 민주주의(=질적 민주주의)를 통해서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자율적 결사체(자기 경영)로 이루어진 민주적 시민사회라는 것이다. 또 시민사회는 국가와 엄밀하게 분리되나(영역의 분리), 단지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사적영역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견제하면서 정책을 결정하거나 조절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결사체들의 총체이다. 그러니까 독립적 지위를 갖고 국가권력을 감시 제약하는 법을 수호하면서 형성하는 공적영역이 바로 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의 발견은, 공동선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사회성을 부정하고 고립된 영역들의 집합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시장과 국가권력에 의하여 소외된 인간으로서 살아왔던 개인에 대한 재발견이 그 전제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구성 목표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결사체와 개인의 총합과 공존이다. 총합과 공존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한, 힘을 가질 수도 없고 자율성을 주창하는 이슈의 소비자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의 출범과 그 이후
필자는 박근혜 정권 시절 이명박 전 대통령과 더불어 BBK를 설립했고 이를 폭로하였으나 홀로 형사처벌을 받았던 김경준 씨의 사연을 듣고 소송대리를 맡은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제보자에 대한 과거 검찰의 부당한 처우와 정치적 편향수사에 격분하고,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2016년 말, 박근혜 탄핵을 위해 광장에 모인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이제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이 학생들의 분노가 우리에게 올 것이며, 더 이상 나라의 미래는 없다. …… 부패한 배후 세력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투명한 사회에서 자기주도적 삶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공익제보자라는 명칭은 허울이고 배신자로 매도할 뿐인 우리 사회의 위선을 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문옥 감사관을 좌장으로 이지문 중위 등 역사적인 내부 고발자들과 함께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한 ‘내부제보실천운동’이라는 단체를 만드는 데 참여하였다.
‘내부제보실천운동’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사회적 공존의 도덕성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하다는 결론에서 만들어진 단체이다. 주위 불자들의 지지가 그 출범의 단초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덧 진영논리와 패거리 문화가 많은 것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감추어야 할 것이 많은 기득권의 벽은 여전히 견고했고, 퇴행적 탐욕의 보수가 빠져나간 자리는 위선적인 진보로 채워졌다. 이들의 적대적 공존 관계 속에서, 공익제보자들의 제보는 공익적 가치의 판단이 서기도 전에 진영의 유불리에 의하여 제보자 개인의 신상을 공격하는 것을 목도했다. 그 와중에 진영 싸움을 이용한 메신저 공격으로 공익제보자가 희생되기도 했다. 공익제보자가 그 권위에 기대어 숨을 쉬고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언론들도 진영 간의 극한 대립에 휩싸여 정당성이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공익제보자 보호를 위해 공익제보자들에 의한 시민단체를 만들어 시민사회에서 공존의 도덕성을 확립하고, 국가권력을 견제하고자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새 시민 없는, 극한적 진영 대립에 휘말린 시민사회에서 허우적대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건강한 시민사회 구성원들과의 네트워크와 연대는 내부제보 운동의 불가결한 요소다. 이러한 연대를 통해서만이 공익제보자들은 사회적 공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 불교시민사회에 대한 기대
시민사회 중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장 커다란 영역이 종교계다. 종교계는 헌법상 가장 큰 보호를 받는 기본권의 수혜자로서 사회적 공존의 도덕의식을 제고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성종교는 계급화 · 물신화 · 권력화 · 기복화에 함몰되어 기득권에 안주하고, 그 기득권의 재생산에 적극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심지어는 공익제보자를 사회의 기득권 질서에 위협이 되고 분란을 조성하는 자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종교계의 그런 활동은 결국 대다수 시민들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빚고 있다.
모쪼록 불교계가 사회현실을 바로 본다면, 대중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공익제보를 함으로써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들을 감싸고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주체로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불교적 가치에 합당한 선택이다. 따라서 건강한 불교시민사회라면 공익제보자들과 자연스러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계의 바람직한 공익활동 네트워크는 일반 시민사회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이 ‘미래의 부처는 공동체로 온다’고 한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공익제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불에 타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그 불길이 곧 자신에게 닥칠 것임을 알지 못한다. 공익제보는 온 세상이 불에 타고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자기희생적 보살행이다. 공익제보자는 틱낫한 스님이 표현한 대로 ‘불의 바다 속의 연꽃’으로서 삼계화택(三界火宅)의 세상에서 공존의 도리를 꽃피우는 존재이다.
마. 공익제보는 대승적 보살행
잘 알다시피, 대승불교는 개개인의 각성과 함께 중생구제와 정토실현을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다. 어떠한 깨달음도 중생구제에 봉사하지 않는다면 허구이며, 정토실현은 개개인의 각성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이것이 또한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의미다.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은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고통받는 모든 존재의 구원과 해탈을 추구하는 존재이며, 고통받는 마지막 한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보살은 해탈을 미루고 지옥으로까지 뛰어든다고 가르치는 것이 대승불교다. 이러한 보살상은, 현실사회에서 배신자의 낙인과 생활상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진실을 폭로하는 공익제보자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공익제보와 그 제보자를 위한 시민사회 운동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가장 핵심부에 포진해야 할 그룹은 바로 불교계이고 불교시민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4. 참여불교 정신의 회복-공익제보자와 지속적 연대
다시 돌아보면, 고통받는 중생의 구제를 추구하는 불교의 대승적 활동이 다소나마 성과를 거둔 바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사회에서 형식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달성되기까지 전개된 민중불교 운동, 이후 실질적 민주화와 사회적 공동선의 열망이 고조되던 시기에 일어난 종단개혁 운동, 그리고 국제적인 ‘참여불교’ 네트워크와 함께 자본주의 시장경쟁과 개인화(personalization)에 대항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지식인들의 호응도 있었다. 하지만 부(富)의 축적을 신의 축복으로 여기는 기독교 태생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시장의 양적 팽창이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유혹하는 신자유주의 경제론이 득세한 시기에, 불교시민사회는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였다.
공동선(共同善)의 최고봉인 대승불교 정신에 기반했을 법한 불교시민사회가 현실 부조리에 대한 저항력을 잃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불교교단의 보수적 분위기를 혁신하고자 출범한 재가불교 운동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한 맥락과도 닿아 있고, 불교계 외연(外緣)인 일반시민사회의 정체된 분위기와도 겹쳐 보인다. 특히 종교계 일반에 여전한 봉건적 질서와 기복적 행태에 더하여, 물신화(物神化)와 세습체제로 전락해버린 기존 교단들에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닿을 통로는 쉽게 닫히고 말았던 것 같다.
마치 개(個)교회들처럼, 마치 세상과 분리된 요새처럼, 승가(僧伽) 안에서 불교를 문화유산으로만 향유하였던 것은 아닌가. 교단의 위세(威勢)를 정부에 과시하여 공공지원을 받거나, 대중의 고통을 자양분으로 한 기복(祈福)의 대가로 연명하거나, 그런 수준에서 사방 승가의 사중(寺衆)이 만족한 것은 아니었던가. 승가공동체에서 집단지성의 단비를 기다리는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채, 고립되고 파편화된 신행(信行)을 이끄는 것만으로는 어떤 불교단체라도 참여불교의 정신을 유지하기가 곤란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속적인 자정(自淨) 노력이 없다면 승가공동체의 타락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 아래, 2015년에서 2019년 사이 불교시민사회의 좀 더 선명한 저항 운동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운동은 교단의 변화로 이어질 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 와중에 일각에서는 아예 교단 문제에는 거리를 두고, 불교계 새싹[인재] 양성에 집중하자는 논의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불교 운동의 성과 여하를 막론하고, 고통받는 대중의 구원과 해탈을 추구하는 대승불교 보살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불교시민사회가 더 널리 함께 고민해서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교단자정이든 중생구제이든 그 해답을 구하는 방법들 가운데서 필자는 우선 기성 교단으로부터 자유롭고 참여불교 정신으로 충만한 불교시민사회의 영역을 더욱 넓혀가기를 제안한다. 즉, 일상적인 사회체계 안에서 배제되고 탄압받는 사회적 약자들과의 상호연대를 통해서 존립하는, 진정한 의미의 불교시민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은 인생의 온갖 구속과 장애를 애써 외면하거나 방관하지 않는 ‘대자유인의 길’을 가르치신 부처님 말씀에 부합하고, 본래의 정신을 잊은 듯할 때 초심으로 돌아가는 지혜가 언제나 유효하다고 보는 필자의 개인적 소신에도 부합한다.
참여불교란 현실세계에서 공공연히 불교가 구현되어 가는 모습이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후에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답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다. 로카미트라 법사는 “참여불교는 부처님 당시부터 실행되었던 것”이며 “부처님이 보살로 계실 때 다른 중생을 돕는 삶을 사신 것이나, 깨달으신 후 45년간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한 삶을 사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일상적 수행과 사회참여를 분리시켜 볼 근거가 없고, 개인 중심 수행을 넘어서 공동선을 추구할 불교시민사회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 불교 신행의 본령(本領)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마침 공동선을 위해서 나선 까닭으로 모든 것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공익제보자들과의 굳건한 연대가, 바로 참여불교 본연의 모습이며 불교 수행의 중요한 길이라고 본다.
5. 불교시민사회의 목표-공익제보 촉진의 과제
지금까지 우리는 공익제보자 보호 운동의 방향성과 종교계의 책무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들을 보호하고 도와줄 것인가. 이에 대한 실제적이고 제도적인 측면의 현실과 대안을 살펴보고자 한다.
① 우선 지적할 것은 공익제보의 사회적 효과에 비해 이에 대한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익신고자 보호법 제정 이래 2021년 상반기까지 공익신고로 인해 확정된 금전 처분 부과금액은 1조 6,300억 원이다. 이에 반해 지금까지 공익신고자의 보상금, 포상금, 구조금은 100여억 원이 지급된 데 불과하다. 공익신고자의 제보에 의하여 확정된 금전 처분의 수십 배에 달하는 비리 예방효과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현재의 보상은 매우 부족하다. 이에 대한 제도를 대폭 개선하여야 할 것이다.
② 다음으로는 공익제보 보상제도를 형해화시키고 있는 행정입법을 개선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익신고자 보호법 시행령은 제정 취지와는 달리 법령에 위임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법률상 감액 사유 외의 감액 사유를 정하고 있고, 행정규칙에 불과한 공익신고 보상금 및 포상금 사무운영지침은 공익신고자의 질(범죄에의 가담 정도에 따른)을 판단할 수 있는 재량규정을 두고 있다. 보상금 등 제도가 비리 행위에 가담한 내부 공익신고자에게 합법으로 회귀할 ‘황금의 다리’라는 것을 저버리고, 공익신고자 보호기관에 그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고 의무자의 신고 내지는 공직자의 직무상 신고 외에는 하위법령에서 감액 사유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의 처지를 감안하여 증액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여야 할 것이다.
③ 보상금 상한선의 철폐와 환수금액과의 연동 비례율 상향 지급이 필요하다. 현재의 보상금 등은 잠재적 제보자에게 제보를 유도하는 동기부여의 역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 특히 연봉이 높은 임직원에게 자기 직을 포기할 정도의 보상금 등이 지급된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침묵할 가능성이 훨씬 많은 내부자나 관련 업체 종사자들에게 강력한 유인책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관련법은 보상금과 포상금은 상한선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고, 포상금의 경우 실제 지급되는 액수는 미미하다. 따라서 현재 보상금의 상한선을 철폐하고, 환수금액과의 연동 비율을 30%로 일괄 상향하여야 하며, 국가가 제보로 환수하는 액수와 무관하게 지급되는 포상금의 상한선을 대폭 늘려야 한다. 거액의 보상금 등이 지급될 가능성이 있다면 현재 제보하지 않은 사람 중에 제보를 고려할 사람이 늘어날 것이고, 공익신고자에 대한 최후의 방어책 기능을 할 것이다. 공익신고자가 제보 이후에 겪고 있는 정신적, 경제적 등 여러 가지 피해를 감안하여, 효과적인 보상금 지급이 필요하다.
④ 공익신고자를 무능력자로 만들어서는 공익신고를 통한 비리 예방 효과를 달성할 수 없다. 특히 상당한 액수의 보상금 등은 공인신고자가 초기부터 양질의 법률 자문을 얻을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해 줄 수 있다.
⑤ 모든 분야에서 보상금 등 지급의 의무화와 보상금의 현실화가 중요하다. 2021년 4월 20일 공익신고 대상 법률이 확대(467개→471개)되었으나,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현재 따르고 있는 일본법의 열거주의를 벗어나, 영국 공익신고법의 포괄주의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전까지라도 보상금 등 지급에 관한 규정을 위 법률 외에도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미미한 개별법상의 보상 역시 현실화시켜야 한다.
⑥ 비리 제보를 장려하는 국가 포상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까지 공익신고에 대한 국가 포상은 이지문 전 중위가 국민포장을 수상한 것이 유일하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무능력자,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공익신고자의 사례를 극복하고, 공익신고의 긍정적 측면과 국가적 공헌도를 기리기 위하여 국가적 차원의 표창 등 포상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⑦ 보상금 지급 절차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환수가 이루어지기 전이라도 불법행위가 확정되면 보상금 등을 분할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여, 공익신고자의 생활상 고통과 불안감을 해소하고,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보상금 지급 전 구조금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⑧ 쟁송절차 진입 전 등 구조금 지급 사유의 확대와 구체화, 그리고 빠르고 적극적인 지급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불법행위의 확정은 공익신고자가 당사자로 참여한 쟁송절차나 형사절차에서 밝혀진 사실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준비절차에 소요되는 비용은 감안되지 않으며, 법률비용을 감당할 정도의 구조금이 지급된다는 기대를 명확하게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공익신고 등을 이유로 한 준비절차를 포함한 형사절차와 쟁송절차에 대한 구조금 지급의 범위를 확대하며, 그 지급 사유를 구체화하고 비용을 현실화하여 적극적으로 지급하여야 할 것이다.
⑨ 마지막으로 공익신고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보상금 등의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 내부 공익제보자에게 불이익 조치가 행해진 경우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하고, 기관 · 법인 · 단체 등에 구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 경우 다른 보상금과 중복하여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공익신고와 연계된 불이익 조치 자체에 대하여 포상금을 인정한다면 초기부터 공익신고자 보호에 진일보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6. 결론적 전망-공동선 추구를 위한 연대
2021년 6월 25일 헌법재판소는 〈2018헌바127 결정〉을 통해 이렇게 판시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공익침해 행위는 조직 내부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사회 변화 및 기술 발전에 따라 더욱 전문화 · 지능화되어 가고 있어, 이를 조직 외부에서 포착,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공익침해 행위의 효율적인 발각과 규명을 위해서는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내부 구성원의 신고와 정보제공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내부 공익신고자는 조직 내에서 배신자라는 오명을 쓰기 쉬우며, 공익신고로 인하여 해고되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등 신분상, 인사상, 경제상 불이익을 받을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제도적 뒷받침 없이 내부 구성원의 양심과 시민의식에만 기대어서는 내부 공익신고가 원활히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렇듯 국민생활의 안정과 투명하고 깨끗한 사회풍토 확립을 위해서는 내부 공익신고가 필수적인데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복 위험 등 내부 공익신고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상금이라는 경제적 지원 조치를 통해 공익신고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
위의 헌법재판소 판결 이유에서처럼, 국가 차원의 제도개선을 통하여 공익제보자들의 지위 변화를 꾀할 수 있고, 보상금 제도의 개선과 확대는 기본적으로 더 나은 보호책이 될 수가 있다. 그러나 공익제보가 상생사회를 위한 공동선이라는 도덕적 의식이 사회구성원에게 일반화되어야만 실질적인 제도개선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서 위태로운 공익제보자들의 신변에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사회적 연대와 의지처가 존재해야만 한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규정하고는 있으나, 신고자가 불이익 조치를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보호조치의 필요성을 조사할 제도적 강제 장치가 없다. 따라서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규정된 보호조치란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공익제보자들의 삶을 생색내기식 입법 활동에만 맡겨서는 절대로 안전보장이 될 수가 없다고 본다. 예컨대, 불교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활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의 경험을 돌아보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나 외로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항상 《숫타니파타》의 널리 알려진 글귀를 떠올리게 된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때로는 이 구절이 자유롭게 지혜를 찾아 집착을 버리고 간다든가,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라든가, 비난과 칭찬에 휘둘리고 엉킨 일상을 벗어나 정진하라든가 하는 의미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소의 외로움이 가슴에 와닿는다. 두려운 생각을 접고 묵묵히 일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남는 것은 단 하나의 뿔, 아무런 바람 없이 부지런히 일하고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뿔을 남기는 무우(無牛)에 공익제보자들의 모습을 이입하곤 한다. 분명 불교시민사회가 버팀목이 되어서 함께 가야만 하는 현실세계의 보살들이기 때문이다.
《불교평론》에서 공익제보자를 위한 지면을 열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교시민사회가 공익제보자와 상호연(相互緣)하여 건강하고 공정한 세상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으로 여겨져 매우 기쁘다. 공동선으로 상의상관(相依相關)하는 현실사회의 중요 방편으로 공익제보를 인식함과 더불어, 불교시민사회가 도덕의식 확장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기대한다. ■
김형남 konam84@daum.net
신아법무법인 및 성산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감사, 서울시교육청 공직자 윤리위원회 위원장,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운영위원장,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 등 역임. 현재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