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화요일 예전같으면 답사를 나가야 하는 날인데,
하늘이 말린다. 3월 18일(화)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고, 창문 밖을 내다보니 온통 하얗다;
이렇게 늦은 철에 봄눈이라니, 꽃 시샘 눈 치고는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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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1일(화) , 한밭수목원(동원)과 오정동농수산도매시장을 대충 둘러보고는 점심 먹고 각자 헤어진 다음,
나 홀로 인동시장을 찾아 나선다.
웬일인지 나온 김에 찾아보고서다. (무슨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고서)
대전역행 102번 시내버스를 타고 대전역 못 미쳐 원동사거리에서 내린다.
원동네거리를 건너니 3.8민주화 운동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보아하니 1960년, 4.19직전의 민주화운동 시절 사연이다.
벌써 까마득한 시절 65년전 일이다.
햇볕 쬐고 있는 헌책방 할아버지에게 인동시장 가는 길을 물어본다. 맞은 편인 큰 길 건너편을 가리킨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헌책들 묶음 더미가 을씨년스럽다. 한 때는 부러웠던 책들인데...
왔던 길을 돌아본다. 세천으로 가는 네거리 (붉은 점 표시 부분). 저 길로 6.25 전쟁 때 대전전투에서 제임스 딘 소장(24사단장)이 길을 잘못들어 포로가 되는 사연이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간의 선택이 역사적인 사건으로까지 되는구나를 생각해본다.
짐작으로 가다 표지판도 없고, 또 물어서 '깃발 꽂힌 데'라는 말만 믿고 찾아간다.
대전천변이다.
운동기구 시설이 있는 곳 저 편으로 태극기들이 도열하듯이 꽂혀있다.
천변에 ''만세광장 갤러리' 라는 글씨가 보이고 빛바랜 옛 사진들이 걸려 있다.
급하게 사진부터 찍어본다.
출처를 보니 < 근대도시대전 > 사진자료집 에서 다시 찍어 게시한 것이다.
1919년 3월 16일 대전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이라는 사실을 사진을 보고나서야 알게 된다.
우선 찍기에 급급해서. 소처럼 일단 먹어 놓고 나중에 되새김질 하듯이.
1900년대 초 가마니, 땔감 시장으로 시작되었다는 데,
상상이 가는가? 땔감, 나무를 지게에 지고 와서 팔거나, 아니면 장작 한 마차 달구지, 정도,,,,
물류의 요지였다는데... 3500평이 넘는 넓은 장터 모습
인동쌀시장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6일 애국청년들이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행진 대열을 짜고 시위를 주도 했다는 내용이다.
쌀시장은 당시 말로는 "싸전" 이라 해야 더 어울릴텐 데, 생뚱맞게 '쌀시장'으로 현대화 시켰다.
싸전, 포목전, 쇠전, 등 등으로..
1960년대 초의 인동시장 모습 : 이 때까지 전근대적 모습, 무허가 점포/전방 헐어내기...
불쌍하고, 가난한 자들은 무엇으로 먹고 살라고 하는가?
떠돌이 행상, 돌팔이 약장수, 이장 저 장 돌아다니며 자기 점포도 없이 장사하는 장돌뱅이,
장날 풍경을 떠올려 본다.
인동 싸전의 모습이다. : 이때까지만 해도 쌀이 화폐의 중심 시절 . '쌀 판다'와 '쌀 산다'가 헷갈리던 시절이다.
'쌀 판다'는 요샛말로는 '쌀을 사온다'는 뜻이고, '쌀 산다' 즉 쌀을 주고 돈을 사온다는 뜻이다.
'오늘 장에 가서 쌀 팔아와야 저녁 해먹는다.' 라는 말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쌀 돈 사서' 학자금 내고, 귀한 소 팔아서 낸다 해서 상아탑 대신, '우골당'이라 부르던 사립대학 등록금 내던 시절 이야기이다.
소 한마리 값이 큰 돈이던 시절에 '쇠전 ' 장 거래는 오전에 일찍 마감된다.
해 있을 때 큰 돈 가지고 고개를 넘어 가야 하니까, 강도 만나지 않으려는 깊은 배려에서인듯..
해마다 3월 16일이면 인동만세시위 재현행사가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사진만 찍다가 나중에야 아는데... 그것도 어느 할아버지(90살)와 이야기 중에 짐작으로...
'인동 만세로 광장' 도 보이고..
인터넷으로만 보던 사진을 간신히 찾아내어 직접 사진을 찍는다.
도로변에 주차된 차 뒷편에 가려져서 못 찾았는데, 예의 할아버지가 저 차 뒤에 있다고 일러주셔서 .
- < 인동장터 만세운동의 유래>도 적혀 있다.-
( 흰옷에 파란색 잉크를 뿌려서 시위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로 삼은 아이디어가 대단하다. )
- 인동장터 유적기념비 너머로 보문산산성이 보인다- (붉은 점 표시 부분)
안동장터기념비 옆에는 일제시 정신대로 끌려간 <평화의 소녀상>과 보국대로 간 <강제징용 노동자상> 조형물이 보인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의 피눈물 나는 시대 모습이다.
내가 태어나고, 우리 손자가 태어나고.. 그 옛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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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둘러보고는
마침 연탄재를 내놓는 할아버지네 가게 안으로 무턱 대고 따라 들어간다.
요새 세상에 보기 드문 연탄재 풍경이다. 가게 안에는 연탄난로가 있다.
염치 없이 물어본다. 연탄 한 장 값이 얼마나 하는지. 900원이란다. 하루에 3장 씩. 적잖은 금액이다.
자세히 여쭤볼 수도 없고,
가게 안에는 수선집인지, 옛 재봉틀에, 실패뭉치가 가지런하게 많이도 색깔별로 녾여 있다.
연세가 지긋해서 여쭤보니 90. 고향은 황해도 연백, 6..25때 부모님 따라 월남한 월남인이시다.
(시대에 따라 부르는 호칭도 다르다. 월남민, 피난민, 탈북민... 이 비극이 언제나 끝나려나 !)
대전의 산 역사이신데, 마음 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
서둘러 나온다. 만세운동 기념비 위치만 묻고는, 차 뒤에 가린것이 보이지 않아서,
차 뒤에를 일러주신다.
가게를 나오면서 드릴 것은 없고, 마침 주머니에있는 호박엿 사탕 하나를 얼른 놓고 나온다.
- 붉은 점 표시 부분에 연탄재 6장이 쌓여 있다. -
- 봉제 수선업을 하시는 90살 황해도 연백 출신 할아버지 , 정정하시다. 눈도 밝으시고......
고향 분들도 이제는 다 가버리고..-
14일에 기념식이 있다는 정보를 얻어서, 인터넷 검색에 들어간다.
결국, 3월 14일에 유성장터와, 인동장터에서 기념식이 있다는 정보를 얻는 수확을 거둔다.
(* 다음에는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식 편을)
(2025.03.18(화) 카페지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