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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한 자세를 가진 사람
창세기 23:1-20
2023년 10월 8일 주일낮 11시
인도, 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말과 태도와 생각이 예뻐야 한다. 이 복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기도 하고 사람을 통해서 주시기도 한다. 복은 영적인 복과 육적인 복이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신자는 영적, 육적 복을 함께 누릴 수 있다.
말과 태도와 생각이 예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등 결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브라함, 다윗 등의 성경 인물이나 우리 신자들은 다 허물이 있다. 신자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난 부분이 다듬어져 가는 것이다. 아브라함 역시 삶의 과정을 통하여 연단을 받고 다듬어져 갔다.
오늘 본문 창세기 23장은 아브라함의 생애 막바지에 일어난 사건이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장사되는 이야기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이다. 그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에 따르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존중(진가를 알고 인정하는 것, appreciation), 경배(예배, 숭배, adoration), 애정(사모, affection), 복종(subjection)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네 가지 중 두 번째, ‘경배’에 대해 이 시간에 다루기로 한다. 시편 29:2에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개역개정)”라고 했다. 시편 29:2은 히브리어 원문을 어떻게 우리말로 옮기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히브리어 원문은 “하부 라아도나이 케보드 쉬모 히쉬타하부 라아도나이 베하더라트 코데쉬”이다.
허성갑 직역성경은 “그의 이름의 영광을 여호와께 돌려라 존귀한 성소에서 여호와께 경배하여라”고 옮겼다. 저는 이 번역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개역개정을 따라서 “거룩한 옷을 입고”라고 할 때 ‘거룩한 옷’이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물론 이 번역을 취하는 학자들도 있다.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흠정역(King James)을 취한다. “Give unto the LORD the glory due unto his name; worship the LORD in the beauty of holiness.” 즉 “주님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드리고 그 거룩함의 아름다움 속에 주님을 경배하라.”이다.
토마스 왓슨은 경배를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이웃에 대한 존중 즉 사람들에게 명예를 돌리는 것이다. 창 23:3에 아브라함이 일어서서 헷 자손들에게 절을 했다고 기록한다. 경건은 정중한 태도로 드러난다(Piety is no enemy to courtesy). 하나님께 정중해야 함은 물론이고 사람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개인적으로 저 역시 사람에 대해서 저 자신도 모르게 차별의 언어와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은행, 보험, 휴대폰 전화 상담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경우가 있었다. 식당이나 시장 혹은 마켓 직원에게 무례한 언사를 한 일이 있었다. 나보다 약자라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경솔하게 행동한 적이 있었다.
아브라함은 헷 자손들에게 최선의 예우를 갖추어 대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헷 자손들에게 정중하게 대했던 배경을 설명하고자 한다. 창세기 23장에 보면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다.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었다. 아브라함이 장막 안에 들어가서 아내 사라의 시신 앞에서 슬퍼하고 애통했다.
죽음은 슬픔이고 절망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각자 부활의 소망을 안고 살아간다. 신자는 주님이 오실 때 모두 부활하여 만나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다.
사라는 죽을 때 나이가 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여인이다. 그 약속된 씨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모든 신자들의 어머니가 되었다(벧전 3:6). 사라는 이삭을 낳고 37년을 더 살다가 127세에 기럇아르바(여호수아 15:54) 즉 헤브론(마므레)에서 죽었다. 헤브론(마므레)은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서 일정 기간 머물다가 다시 돌아온 곳이다(22:19).
그리고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을 만나서 말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앞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왜 아브라함은 헷 족속에게서 자기 아내를 장사할 땅을 구하고자 했는가? 그냥 그 지역 사람들이 묻히는 곳에 그의 아내 사라를 장사지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칼빈(John Calvin)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죽은 자기 아내의 시신을 이방인들과 함께 묻는 것은 섞임과 오염의 죄를 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언약의 백성의 아버지요 어머니이니, 칼빈의 견해는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설명으로 제게 생각된다.
아브라함은 자기 가문의 땅을 구입하여 자기 가족과 자녀들, 자손들의 묘지를 만들고자 했다. 요즘 형식으로 말하면 문중 땅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칼빈은 “거룩하고 순결한 묘지”를 만들고자 했다고 주석했다. 그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유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다. 아브라함 자신이나 그의 가족이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증거할 목적으로 그 헤브론 땅을 구입하고자 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늘을 바라본 것이다. 그가 구입할 그 무덤을 위한 땅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곳이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자입니다(23:4).” 아브라함은 헷 자손들이 허락해 주었기 때문에 그 지역에 나그네로, 일시적 거류민으로 살고 있음을 겸손하고 완곡하게 표현했다. 아브라함은 헷 자손들의 땅을 탐내지 않음을 암시했다. 아브라함은 앞으로도 그 헤브론 지역에서 나그네로 그리고 일시적 거류민으로 살 것을 암시했다. 아브라함이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아내를 장사할 그 묏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공손한 자세로 말하여 헷 자손들을 설득했다.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23:6).”
아브라함은 많은 가축 떼와 종들을 거느린, 매우 유력한 자였다(창13:5,6). 또한 헷 자손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죽은 아내의 매장을 허락하지만, 땅을 영구적으로 아브라함 소유로 내어줄 마음은 없었다. 땅을 영구적으로 아브라함 소유로 내어주는 것은, 토착민 헷 족속과 나그네요 거류민 아브라함이 영구히 동등해짐을 의미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절을 했다(23:7). 협상은 서로 앉아서 이루어졌다(10; 룻 4:1-4). 그런데 아브라함이 일어서서 절을 한 것은 중요한 요청을 위한 정중한 행위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은 단지 자기 아내 사라의 죽은 시신을 매장하는 것을 허락받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내와 자신과 그의 자녀와 자손들이 묻힐 영구적 매장지를 소유하길 원했다.
그러자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던 에브론이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했다. 아브라함과 헷 족속이 헷 족속의 근거지 마을 성문에 모여서 대화를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문에 헷 족속 장로들이 모여서 법적 문제 등 부족의 중대사를 논의했다.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23:11).”
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의 백성 앞에서 몸을 굽혀 절했다(23:12). 아브라함은 헷 자손들에게 두 번 땅에 엎드려 절한 것이다. 아내의 시신을 단지 매장하는 허락을 받는 데서 나아가 영구적으로 가족묘지 즉 문중 땅을 영구적으로 아브라함 이름으로 소유하기 원하는 아브라함은 최고의 예절을 갖춰서 가장 정중하게 그들 앞에 두 번 땅에 대고 절한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의 백성 즉 그 헷 부족의 장로들이 듣는 데서 에브론에게 말했다.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하건대 내 말을 들으십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십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묻고 싶습니다(23:13).”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땅 값이 은 400 세겔이라 했다. 아브라함은 상거래에 통용하는 은 400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다. 은 400 세겔은 비싼 값일 수 있으나 아브라함은 깍지 않고 다 지불했다.
성경에 은을 주고 땅을 거래한 기록이 몇 군데 나온다.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사서 야웨께 단을 쌓아 백성을 위하여 재앙을 그치게 하는 제사를 드리고자 했다. 아라우나는 자신의 타작 마당을 왕께 거져 바치고자 했다. 그러나 다윗은 은 오십 세겔을 아라우나에게 지불하고 타작마당과 소를 사서 하나님께 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그리고 야웨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다(사무엘하 24:22-25). 다윗이 아라우나가 그냥 바치겠다고 하는 그 타작마당과 소를 은 오십 세겔을 주고 산 이유는 무엇인가? 은 오십 세겔 값을 다윗이 지불하지 않았다면 그 번제와 화목제는 다윗이 드린 것이 아니라 아라우나가 드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 칠세겔을 달아 주었다(예레미야 32:9). 오므리가 은 두 달란트로 세멜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고 그 산 위에 성을 건축하고 그 건축한 성 이름을 그 산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 불렀다(열왕기상 16:24).
은 1달란트는 3천 세겔이다. 은 두 달란트는 6천 세겔이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밭과 굴을 위해 지불한 400 세겔은 비교적 비싼 가격이었다. 그러나 비싼 값을 주더라도 반드시 거래가 성사되어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그 거래는 성문 앞에서 헷 족속의 장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거래되었고 막벨라 밭과 굴이 아브라함의 소유로 공인되었다.
아브라함은 은 400 세겔에 에브론의 밭과 굴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를 사서 자기 소유로 확정했다. 달랑 묏자리만 사는 것보다는 넉넉한 면적의 땅을 사는 것이 좋다. 아브라함은 넉넉한 면적의 땅을 샀다.
우리 신자들이 믿음 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 부요해지고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제를 이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정당한 물질적 부를 축적하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정당한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아내 사라가 죽은 후 아내와 자기 가문의 매장지를 구할 수 있는 값, 은 400 세겔을 여유롭게 한 세겔도 깍지 않고 지불할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의 시신을 가나안 땅 마므레 즉 헤브론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했다. 이때부터 헤브론 앞 막벨라 밭과 굴이 아브라함 가문의 문중 땅과 묏자리가 되었다.
사라는 이스라엘 국가 혹은 민족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90세가 되기까지 자식이 없는 고난을 겪어야 했다. 남편 아브라함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속여서 두 번이나 이방 왕의 아내로 넘어갈 위기가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위험을 넘겼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 몸에서 아기가 없으니 사라 스스로 남편에게 자기 몸종 하갈을 주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러나 그 아들은 하나님이 약속한 씨가 아니었다.
90세에 하나님 은혜로 얻은 아들 이삭이 십 대의 나이에 자기 남편에 의해 번제물로 바쳐질 위기도 있었다. 모든 고난의 과정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믿음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세워가는 과정이었다.
오늘 본문은 사라가 진심으로 아내 사라를 사랑했고 존중했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함께 우리처럼 결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내를 누이로 속이거나 몸종 하갈을 학대하거나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얻고자 했다. 여러 삶의 과정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사라는 연단을 받고 점점 하나님의 사람들로 다듬어져 갔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의 어머니요 열국의 어머니 사라의 장사를 위하여, 아브라함 가문의 문중 땅 묘지를 소유하기 위하여 헷 자손들이 모인 성문 앞에서 정중하게 두 번 땅에 엎드려 절했다. 아브라함은 태도가 공손하고 말씨가 겸손했다.
그리고 결국 은 400세겔에 막벨라 밭과 굴을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소유로 갖게 되었다. 정중한 자세를 가진 사람은 원하는 바 목적을 이루고 영적, 육적 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은 하나님께 정중할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겸손하고 온유한 자세와 말과 행동을 드러내는 것이다. 가난한 자, 부한 자, 높은 자, 낮은 자, 젊은 자, 나이든 자, 남자, 여자, 어른, 아이, 모든 사람에게 정중하고 겸손한 말과 행동을 드러내는 자세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