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외딴 마을의 길가 벤치에 노인 세 사람이 앉아서 무료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어부 출신으로 보인다. 소주를 마시기에는 아직 이른 시각이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도 나누지 않고 바다를 바라보지도 않는다.
바닷가를 거닐며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관광객이나, 롤로스케이트를 배우는 동네 아이들만 가끔 쳐다볼 뿐이다.
해풍에 깃을 씻은 까치들이 길가의 목책 난간에 내려앉아 바다와 노인들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소나무 가지로 올라앉는다.
인생의 남은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 들리고, 그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담배와 술에 찌든 이 노인들 틈에 끼어 앉아, 나도 외지에서 온 친구가 지나가는 것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싶어진다. 나 같으면, 행인보다는 바다를 더 오래 바라볼 것이다.
그래도 될까. 내가 용기를 내어 접근하자, 그들은 무엇을 물으려 하느냐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여기서 돌아서면 안 될 것 같아, 또 한 발짝 그들에게 가까이 간다. 어느 틈에 그들은 네 사람으로 늘어났다. 안경을 쓴 낯익은 얼굴도 그 가운데 있지 않은가.
나는 나에게로 바짝 다가선 셈이다.
감상: 바닷가에 무심히 앉아있는 노인들과 까치 무리가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낯선 모습이 아니라 원래 내 모습이었다니. 나이가 들수록 모든 낯섬이 낯익음으로 변해간다. 나는 그렇게 타자와 닮아가고 그 모든 모습의 합이 자연이다.
교대역에서
김광규
3호선 교대역에서 2호선 전철을
갈아타려면 환승객들 북적대는 지하
통행로와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오르내려야 한다 바로 그 와중에서
그와 마주쳤다 반세기 만이었다
머리만 세었을 뿐 얼굴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로 바쁜 길이라 잠깐
악수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와 나는 모두
서울에 살고 있지만
희망
김광규
희망이란 말도
엄격히 말하자면
외래어일까.
비를 맞으며
밤중에 찾아온 친구와
절망의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희망을 생각했다.
절망한 사람을 위하여
희망은 있는 것이라고
그는 벤야민을 인용했고,
나는 절망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데카르트를 흉내냈다.
그러나,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유태인의
말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에 관하여
쫒기는 유태인처럼
밤새워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미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일까
통금이 해제될 무렵
충혈된 두 눈을 절망으로 빛내며
그는 어둥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절망의 시간에도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
어디선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
희망은 절대로 외래어가 아니다.
상행
김광규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 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괘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아!’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욱이 어색할 깨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