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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6장 10절.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6-충성하는 삶
나라를 다스리거나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인재를 소중히 여깁니다. 많은 유형의 인재중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인재는 실력있고 충성된 사람입니다. 충성된 사람을 고용하면 일을 믿고 맡길 수가 있기 때문에 충성된 사람을 일군으로 찾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충성된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어딘 가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만나면 그 나라나 그 회사에게는 큰 복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다니엘서를 보면 메대와 바사 나라의 다리오 왕이 나라의 행정구역을 120개로 나누어서 다스렸는데 그 120개의 행정구역을 세명의 총리에게 맡겼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입니다. 그런데 그 다니엘이 워낙 지혜롭고 충성스러워 왕의 신임을 독차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은 전국을 다니엘에게 맡기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두 총리는 다니엘을 궁치에 빠뜨릴 묘책을 연구하기에 이릅니다. 그래서 다니엘의 흠을 찾았지만 워낙 충성스럽기도하고 지혜롭기도 한 다니엘의 흠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총리는 뭔가 빼도 박도 못할 약점이 없을까를 찾다가 못찾자 다니엘의 신앙생활에서 약점을 찾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악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그 당시 다니엘은 워낙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규칙을 세워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기도생활이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가 한가한 중에 이런 기도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바쁜 일정 중에서도 하나님 우선 원칙을 세워서 기도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지혜의 근원이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도 하나님 우선 원칙입니까?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하는 다니엘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본 두 총리는 다니엘의 기도생활을 다니엘로 하여금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약점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리오왕에게 건의를 했습니다. 여러 왕의 신하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결과 한달 동안 각자가 믿는 신을 섬기지 말라고 공포하고 그것을 어기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넣는 조서를 내리시도록 왕께 말씀드리자고 했다고 아뢰었습니다. 유대교 뿐만 아니라 어떤 종교 행위도 금지하는 법을 만든 것입니다. 물론 표적은 다니엘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왕은 총리들의 말에 속아 왕의 이름으로 인을 찍었습니다. 그로인해 그 명령은 메대와 바사가 다스리는 전역에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두 총리는 사람을 보내 다니엘의 집을 감시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니엘은 자기가 기도를 하면 자기는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자신의 일은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이 땅에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는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변함없이 다락에 올라가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앉아 하나님께 예루살렘을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을 본 두 총리의 부하들은 자기들의 상관인 총리들에게 알렸고, 두 총리들은 왕에게 그것을 알렸습니다. 두 총리의 고발을 들은 왕은 왜 두 총리가 전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한 달간 다른 신들을 예배하거나 기도하는 등의 종교적인 행위를 하면 죽이는 법을 만들자고 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은 자기가 말한 것을 철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에게 충성스러운 다니엘을 구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살려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법대로 사자 굴에 던져 넣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다가 죽음의 사자굴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왕은 잠도 못자고 다니엘이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께 다니엘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종교행위를 금지하라고 명령한 왕이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다음 날, 왕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사자굴 앞으로 가서 슬퍼하면서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사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살았느냐?” 그러자 굴 속에서 답이 들려옵니다.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사신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셔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제가 이렇게 살아있습니다” 그러자 왕은 어서 속히 다니엘을 끌어 올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런 법을 만들면서까지 왕을 이용했던 두 총리와 그의 가족들까지 사자굴 속에 던져버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몸이 땅에 닫기도 전에 사자들이 뛰어 올라서 그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충성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해도 충성하고 자신이 섬겨야할 윗 사람에 대해서도 역시 충성스럽습니다. 그래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도 충성스럽고, 세상의 직업 속에서도 역시 충성스럽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 10절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은 이 비유를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불의한 청지기의 예를 들으시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한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지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주인에게 들렸습니다. 주인은 실상을 알아보고 그 청지기를 해고하고자 불러서 물었습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말이 어찜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그 말을 들은 청지기는 이제 주인의 장부를 가지고와서 다시금 조목조목 빠짐없이 보고를 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이 청지기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청지기 일을 더 하기는 틀렸고, 그렇다고 내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청지기 일 밖에는 없는데 이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구나. 어떻게 해야지?”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묘책을 생각해내었습니다. ‘어차피 주인의 재산을 낭비한다고 해서 쫓겨나게 된 건데. 이제 주인의 재산을 빌려간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의 빚의 일부를 탕감해줘야겠다. 그러면 내가 쫓겨나도 그들이 나를 영접할거야“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주인의 재산을 빌려간 사람들을 하나씩 불렀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름 백말을 빌려갔고, 어떤 사람은 밀 백석을 빌려갔습니다. 이것을 볼 때 이 정도로 빌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장사를 하는 상인들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 상인들을 불러 셈을 다시 하게 한 것입니다. 기름 백말을 빌려간 사람에게는 오십 말을 빌려간 것으로 다시 적으라고 쓰게 하였습니다. 밀 백석을 빌려간 사람에게는 팔십 석을 빌려간 것으로 쓰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아직 빚을 갚지 못하였고 그들은 그 빚에 대하여 굉장히 큰 마음 부담을 가지고 있었는데 청지기가 부르더니 이런 놀라운 탕감을 제시하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물론 그가 탕감해준 것은 아마도 이자에 해당되는 것들일 것입니다.
이 청지가 하는 일을 주인이 듣고는 이 청지기의 지혜로움을 칭찬하였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첫 번째 효과는 자기가 왜 주인의 재물을 탕감하게 되었는지를 주인이 알게 한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 탕감한 것은 재물을 빌려간 사람들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다가 탕감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인으로 하여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느라고 탕감했다고 비치게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렇게 탕감하게 되었을 때 빌려간 사람들은 청지기에 대하여서도 감사하겠지만 탕감해주는 권한을 주인이 시켜서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인지라 사람들이 주인을 칭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이 탕감을 통해 사람들이 이 청지기에게 굉장히 큰 감사를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쫓겨나더라도 그들이 자신을 영접하게 될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청지기가 지혜롭게 일처리를 한 것에 대하여 들은 주인은 이 청지기의 지혜로움에 대하여 칭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 것은 이 주인의 칭찬이 불의한 행동을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 청지기가 쫓겨난 후에 자기의 거취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쫓겨난 후에 닥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그 지혜를 칭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인의 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의 칭찬이 아니라 생존의 방법을 잘 선택하고 처리한 지혜에 대한 칭찬을 한 것입니다. 그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으로 자기의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돈을 불의하게 자기를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운 사람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하시면서 칭찬을 한 것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불신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빛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더 지혜로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여러분들을 영주할 처소로 영접한 다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오늘 본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그러시면서 11절은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기억할 말씀은 지극히 작은 것에도 충성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한다는 것입니다. 행동은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큰 것도 역시 소홀히 여기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으로써 여러분들이 만나는 모든 선한 일들은 크기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윗의 일생을 보면 그는 이새의 여덟 명의 아들들 가운데 막내였습니다. 이새는 나이도 많지 않은 막내 아들에게 양 떼를 맡겼습니다. 다윗은 아버지가 맡긴 아버지의 양 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때로 곰이나 사자같은 동물들이 습격을 해서 어린 새끼 양을 물고갈 때 다윗은 물맷돌을 돌려 곰이나 사자를 공격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져서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해 숨거나 그 자리를 피할 상황이었지만 다윗은 아버지를 사랑했고 아버지의 양을 사랑했기에 목숨을 걸고 사자나 곰과 싸웠던 것입니다.
다윗이 용기를 내어 물매에 돌을 채우고 사자나 곰을 향하여 던질 때 그때 하나님은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사자나 곰에게 정통으로 맞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자나 곰은 그 물맷돌을 맞고 기절을 했습니다. 얼마나 정확하게 맞았으면 곰이나 사자가 기절을 하겠습니까? 그러면 다윗은 달려가 곰이나 사자의 수염을 잡아 꼼짝 못하게 하고는 칼로 찔러 그것들을 죽이고 그 입에서 어린 양을 빼내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더 부지런히 물매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사울의 왕궁으로 인도하셔서 사울을 위한 악기 연주를 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수금 연주를 할 때마다 귀신으로 인해 고통을 받던 사울은 잠시 동안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런 다윗을 이제는 블레셋의 거인 장수인 골리앗으로 인해 떨고 있는 이스라엘의 전쟁터로 인도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키도록 해서 말입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은 전쟁터에 가서 형들이 잘 있는지 알아보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말씀대로 가서 전쟁터에서 형들을 만나고 지휘관들에게 아버지가 준 선물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럴쯤에 다윗은 골리앗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다윗과 함께 있던 군사들은 골리앗이 이제까지 행한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왕이 골리앗을 무찌르는 사람에게 자기의 딸을 주겠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윗은 자기가 가서 골리앗을 죽이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런 다윗의 말이 사울왕에게 들려졌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몰린 사울왕은 다윗을 불러 “네가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자신의 젊은 시절부터 함께 하시면서 싸워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저 불레셋 거인을 능히 물리치실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왕의 허락을 받은 다윗은 협곡을 내려가서 골리앗과 일대일의 싸움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물매를 돌리는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의 이마를 맞추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이제 왕의 사위 후보가 된 다윗은 자신을 동역자가 아닌 경쟁자로 보는 장인인 사울왕의 미움을 받으면서도 받은 직분과 받은 모든 일들에 대하여 충성하였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때가 이르렀을 때 왕으로 앉히셨습니다. 왕의 자리에 앉은 다윗은 하나님께 충성하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렇게 그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다니엘이나 다윗이 하나님께 충성된 마음으로 자기 상전들에게 충성하였던 것을 여러분들은 들으셨는데 성경은 예수님도 역시 아버지의 말씀을 들으시고 충성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아멘”이시라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예”라고 대답하시고 순종하셨다는 말입니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참된 증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충성의 정도는 죽도록 충성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은 충성된 일꾼들을 찾아 부르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쓰임을 받게 된 이유중 하나가 바로 층성스러움 때문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2절을 보면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이 말씀은 지금 나를 능하게 하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이시다. 내가 그분에게 감사드리는 것은 나를 충성되이 여기셔서 내게 직분을 맡기셨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았던 사도 바울의 일생은 충성스러운 종으로서의 일생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머리가 되려고 하는 마음은 있어도 종으로서 섬기려는 마음은 없습니다. 그래서 봉사자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는 종의 자리를 마다하고 자꾸만 평가하려 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람들을 움직이려는 머리가 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항상 강조했던 것은 교회의 머리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 진정한 머리는 없습니다.
교회의 목사가 머리는 아닙니다. 교회의 장로나 권사나 어떤 특정한 재력가나 공부 많이한 사람이 머리도 아닙니다. 교회에는 세상에서 유능하다고 칭송을 받는 머리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알고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 겸손한 마음으로 충성하는 종들이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교회 일을 맡기십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영적 결핍 현상이 생긴 이유는 바로 이것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돈 많고 공부많이한 사람들을 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지식으로 일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커졌지만 영적으로는 추락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많은 교회들이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의 영적인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회가 복된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머리의 자리를 내드리고 머리이심을 고백하기에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교회가 할 일을 지시받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아멘이요 충성된 증인이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가서 기도하시는 일상을 사셨습니다. 그렇게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듣고 사람들 앞에서 행하면서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하나님은 자신이 아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보장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충성스러우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26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하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새상에 말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가 참되시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나아가서 들었고 그 들은 것을 세상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참되신 하나님에게서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말씀이 선포되고, 참된 하나님의 종들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기도의 자리로 나가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목회자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바로 들으면 바로 알게 되고, 바로 알면 바로 믿게 되고, 바로 믿으면 바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충성된 종이요,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0절에도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사람이 무엇을 말하게 되는 지 말씀하십니다.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참이며, 진리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들은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들이 이제까지 진리를 알고 행했다고 주장했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은 진리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지만 진리에 속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믿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진리의 말씀을 전해줘도 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듣는 귀는 하나님이 열어주셔야 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듣고 깨닫는 은혜를 주시지만 자기가 하는 일이 다 옳은 것처럼 생각하고 주장하며 자기 고집을 꺽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듣는 귀를 열어주시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귀는 열려 있습니까? 이 예배때 선포되는 말씀들이 귀에 들리고 마음으로 깨달으며 삶에서 순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 충성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듣는 귀를 선사받고 은혜와 진리를 받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5절입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너희는 너희 자신을 나의 종이라고 하지만 나는 너희를 종으로 대우하지 않고 친구로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친구인 너희에게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너희에게 다 알게 하였기 때문이다”하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충성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겸손의 무릎을 꿇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충성스러운 종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충성스러운 사람들에게는 어떤 모습들이 보여질까요? 첫째는 믿음직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충성스러운 사람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행합니다.셋째로 충성스러운 사람은 자신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것처럼 이 땅에서 자신의 윗사람으로 세워진 상관을 위해 온전한 마음으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2장 2절을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충성스러운 사람은 교회에서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알았던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는 인간적으로보면 자신보다 한 참 밑인 신분을 가진 베드로가 자기 집에 찾아왔을 때 그 발앞에 엎드려 절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는 “나도 당신 같은 사람에 불과하니 일어서라”고 말했지만 고넬료는 주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로서 깍듯이 대했고 하나님은 그런 고넬료와 고넬료로부터 초청을 받았던 가족들과 고넬료의 친구들, 그리고 고넬료의 종들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말씀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있고 환난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고난과 환난은 잠시 여러분들에게 머물다 지나갑니다. 그러나 생명의 면류관은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그때부터 영원히 여러분들의 머리 위에 씌워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상으로 씌워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충성된 사람은 항상 자기의 주인의 마음에 자기 마음을 맞춥니다. 그래서 주인의 말씀이 하나하나 중요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은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으로서 충성된 사람이 되어 여러분의 머리시며, 온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무엇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그 충성스러운 마음에서 나온 행동은 반드시 이 땅에서도 열매를 맺게 되고 영원한 나라에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와 진리에 귀를 기울여 듣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일생이 복되고, 지혜롭고, 뛰어나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열매로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에게 온전히 임하게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