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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고후 7:1)
지난 주일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첫 번째 시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바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육체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임하신 성령님은 보혜사가 되셔서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변화시켜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 예수님의 뜻을 깨닫게 되어서 그 뜻대로 순종하며 예수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두 번째 시간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입니다. '성도'라는 단어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무리', '세상과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시대는 노아의 시대처럼 죄악이 관영한 시대입니다.
돈과 인간의 끝없는 욕망, 술과 마약, 거짓과 이기주의가 미화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가 독버섯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이 세상의 죄악의 물결이 담장을 넘어 교회 안으로, 그리고 믿는 성도들의 삶과 영혼 속으로 마구 밀려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과 성도의 차이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성도들의 영적 경계선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벧전 1:15-16)“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닮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명백한 뜻입니다.
1.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이란 무엇인가?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거룩’이라고 하면 검은 양복을 입고, 목소리를 깔고,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한 채 금욕적으로 절제하는 삶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룩의 본질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오해입니다. 성경이 선포하는 ‘거룩’에는 세 가지 영적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첫째, 거룩이란 ‘하나님과 함께 함’입니다. 거룩은 원래 인간에게 적용되는 속성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거룩하십니다. 죄인된 우리가 거룩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죄값을 지불하신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에서 깨끗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깨끗해지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실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모세를 떠올려 보십시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양을 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보잘것없는 가시나무 덤불, 곧 떨기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햇볕에 바짝 말라 언제라도 불이 붙으면 타버릴 것같은 광야의 떨기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 떨기나무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불꽃이 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출 3:5)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성도 여러분, 그 미디안 광야의 땅이 원래부터 거룩한 땅이었습니까? 아닙니다. 황량하고 거칠은 흙먼지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땅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면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허물많고 죄많은 우리였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할 때 비로소 우리가 ‘거룩한 성도’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거룩이란 ‘구별됨’입니다. ‘거룩’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뜻은 ‘잘라내다’, ‘다르게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죄악된 가치관, 음란하고 타락한 문화로부터 나를 딱 잘라내어 “나는 하나님의 소유다.”하고 구별하는 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밤,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 17: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성도 여러분, 배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입니다.
배는 바다 위에 떠 있어야 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바닷물이 배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하면 어떻게 됩니까? 배는 결국 중심을 잃고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 속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사업을 하고, 학업을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삶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타락한 문화와 야망, 욕심과 음란의 물결이 성도의 심령과 가정, 그리고 교회 안으로 찰랑거리며 들어오는 순간, 우리의 영혼과 신앙은 순식간에 침몰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은 아주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됨을 알지 못하느냐" 요한일서 2장 15절도 말씀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세상의 부귀영화, 음란한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 살아가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히 구별된 거룩한 백성입니다.
셋째, 거룩이란 ‘깨끗함’입니다. 거룩은 죄와 더러움이 전혀없는 정결하고 흠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거룩은 즉시 오염됩니다. 여러분, 집에 아무리 비싸고 화려한 옷이 있어도, 거기에 오물이나 더러운 먹물이 한 방울만 튀면 어떻게 됩니까? 그 옷을 입고 외출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지저분한 영상들, 귀로 듣는 험담과 거짓말, 마음으로 품는 탐욕과 미움이 끊임없이 우리 영혼을 오염시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간절하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7:1) ” 눈으로 보는 죄, 입으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죄, 생각으로 짓는 모든 죄를 날마다 예수의 피로 씻어내어, 점도 없이 흠도 없이 거룩함으로 주님 앞에 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함을 이루길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성도들을 향해 엄중한 말씀을 선포합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구절을 잘 보시면 구원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아니 목사님, 예수 믿으면 이미 구원받았다고 배웠는데, 왜 성경은 또다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합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그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세 가지 시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과거적 구원, 곧 ‘중생’입니다. 우리가 자신이 소망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의롭다.”하고 칭의를 선언해 주셨습니다. (골 1:13,14)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단번에 일어난 구원입니다. 법정에서 재판장이 “무죄”를 선포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를 칭의라고 부르고 우리는 이를 통해 중생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2) 현재적 구원: ‘성화(聖化, Sanctification)’, 현재 진행형의 구원, 즉 ‘성화’입니다. 예수 믿고 의롭다 칭함을 받은 성도가, 일평생 육신을 벗는 그날까지 날마다 예수를 닮아가며 거룩해져 가는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입니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룬다’는 말은, 예수 믿고 단번에 얻은 영적인 거룩함의 신분을 바탕으로,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내 성품과 언어와 행위가 지속적으로 성결하게 변화되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거에 구원받은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예수 믿어 중생을 체험한 성도는 날마다 성화의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 성화의 과정이 바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요,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과정’입니다.
3) 미래적 구원: ‘영화(榮化, Glorification)’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날, 혹은 우리가 부름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날, 우리의 썩을 육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변하여 죄와 고통이 전혀 없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는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정하시고 부르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의롭다하고 의롭다 하신 우리를 주님앞에 서는 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몸이 온전해지고 썩을 몸이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는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이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삶이 우리 실제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합니까? 거룩은 ‘쓰임받는 목적’의 전환입니다. 구약 시대 성막을 떠올려 보십시오. 성막 안에는 금으로 만든 대접, 숟가락, 등잔대, 떡상, 등 많은 기구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막 안의 대접이나 일반 가정집의 대접이나 그릇이라는 재질에 있어서는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대접이라도 하나님의 성막 안으로 들어와 레위인에 의해 하나님의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는 순간, 그 그릇은 ‘성물, 즉 거룩한 기구’가 됩니다. 그 순간부터 그 대접은 절대로 개인의 음식을 담거나 다른 곳에 쓰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제물의 피와 향을 담는 데만 쓰여야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성막의 거룩한 잔을 가져다가 술잔으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예루살렘의 성전 기물을 탈취해다가 잔치상에 술을 마시는데 사용하다가 그날 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목숨을 잃었습니다(단 5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몸과 영혼은 이제 육신의 욕망을 담는 죄의 몸이 아닙니다.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요 성물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몸이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눈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쓰여야 하고, 우리의 입술은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쓰여야 하며, 우리의 발은 복음을 전하는 거룩한 발이 되어야 합니다.
쓰임받는 목적이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완전히 바뀐 것, 이것이 바로 거룩의 시작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던 다윗 왕을 보십시오. 다윗은 청년 시절, 목숨을 걸고 사울 왕의 칼을 피해 도망 다니면서도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지켰던 사람입니다.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몇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옷깃만을 베고도 마음이 아파 잠을 못 잤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고, 전쟁에서 승승장구하고, 삶이 편안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무엘하 11장을 보면, 부하들은 전쟁터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다윗은 왕궁 침상에서 늦게까지 게으르게 낮잠을 자다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다윗이 어떻게 해야 했습니까?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즉시 눈을 돌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탐욕의 생각을 끊어내지 않았습니다. 육신의 소욕에 끌리자 마귀가 다윗의 심령을 사로잡았습니다. 결국 남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덮기 위해 충직한 신하 우리야를 전쟁터의 맨 앞에 세워 죽게 만드는 잔인한 살인죄까지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경건을 풀어버리고 영적으로 방심하는 순간, 그 위대한 성왕 다윗도 순식간에 육신의 더러운 죄악에 짓밟혀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지은 후 다윗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여 영혼의 구원은 받았지만, 그의 집안에서 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식들끼리 서로 죽이고,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다윗은 맨발로 울며 도망치는 비참한 징계를 겪어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죄는 달콤해보이지만 그 열매는 너무나 참혹하고 쓰디씁니다.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지 않으면, 마귀는 언제든지 우리의 허점을 치고 들어와 우리의 삶과 가정에서 신앙을 송두리째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받은 대로 믿음위에 굳게 서서 두렵고 떨림으로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우리가 어떻게 거룩함을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성도로써 거룩함을 잃지 않고 날마다 거룩함을 온전히 이룰 수 있겠습니까? 나의 결심이나 의지, 결단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지난 한 주간을 돌아보십시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였습니까? 전혀 변함없이 그저 각기 제길로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서 저는 말씀을 통해 세 가지 영적 원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1) 나 자신을 부인하고 온전히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이 육신의 생각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처럼 날마나 나를 쳐서 복종시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의지와 힘으로는 육신의 생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붙잡혀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이론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선택하려면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의 감동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은 죄를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갈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루를 시작하며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성령 하나님, 오늘도 내게 성령충만을 주옵소서, 내 눈과 입술과 생각을 성령의 권능으로 지켜주옵소서. 내 안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육신의 소욕을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성령으로 충만할 때 비로소 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2)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묻힌 온갖 죄악의 먼지와 때를 무엇으로 씻어냅니까? 외출했다 돌아오면 따뜻한 물로 손을 씻고 샤워를 하듯이, 성도는 날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영혼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중에 내 교만함이 깨달아지고, 내 정욕과 탐욕이 깨달아지면, 즉시 십자가 앞에 나아가 예수의 보혈로 씻어내야 합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날마다 하나님앞에 자신의 참 모습을 비추어보고 잘못된 곳이 있으면 회개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심령이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7장 1절을 다시 보십시오. "…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우리가 왜 죄를 짓습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왜 슬그머니 타협합니까? ‘하나님이 지금 보고 계신다’는 거룩한 두려움(코람데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습니다. 목사의 눈, 장로의 눈, 남편과 아내의 눈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은밀한 생각과 행위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은 절대로 속일 수 없습니다. 창세기의 청년 요셉을 보십시오. 아무도 없는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의 아내가 날마다 눈짓하며 집요하게 유혹할 때 요셉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창 39:9)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주인의 눈이나 사람의 눈을 두려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를 이기는 거룩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마음이 회복될 때, 우리는 그 어떤 죄의 유혹도 능히 걷어차고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인 저와 여러분을 향해 아버지의 심정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야, 세상을 본받지 말아라.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너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가라.”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과거적 구원(중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장차 영광스러운 부활과 영생이라는 미래적 구원(영화)을 확실하게 약속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과제는 명확합니다. 우리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통해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지고 타락해도,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거룩한 구별됨을 증명해 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다함께 결단합시다. “주님. 세상과 타협하던 나의 더러운 구습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내 입술을 깨끗하게 하시고, 내 눈과 마음을 예수의 피로 정결하게 하사,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성령 충만함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가운데 주앞에 서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 나눔이야기-------------------------------------------------------
1.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3가지 의미(하나님과 함께함, 구별됨, 깨끗함) 중 오늘 나에게 가장 크게 와닿거나 도전이 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2. 다윗의 영적 방심처럼, 내 삶에서 영적 경계선이 무너지거나 세상의 문화와 가치관이 내 마음에 슬그머니 들어왔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3. 이번 한 주간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성령 의지하기, 말씀·기도의 정결함, 하나님을 경외하는 코람데오의 삶) 실천할 한 가지 구체적인 결단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