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1,13-24; 루카 10,38-42
+ 오소서, 성령님
오늘 하루 별고 없으셨어요? 문득문득, ‘별고 없다’, ‘무탈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잊고 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어제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을 다녀왔는데요, 감사하게도 여러 가지 검사 결과 큰 이상이 없으셔서 3시간여만에 퇴원을 하고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지난 주일미사 때 제가 필리피서의 말씀을 인용하여 강론 말씀을 드렸는데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제의 상황은 마치 ‘제가 드린 말씀이 응급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지’를 묻는 거대한 질문 앞으로 저를 데려다 놓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휴일에도 수많은 의사, 간호사, 약사님들과 많은 직원께서 응급실에서 분주히 일하시는 광경을 보면서,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한 이처럼 평상시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헌신하고 계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모든 분들 별고 없으시고, 무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 제1독서인 갈라티아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어떻게 박해자에서 복음의 사도로 변화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씀하십니다.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받은 계시가 ‘예수님에 대한 어떤 지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이었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복음은 단순히 전달해야 할 어떤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만난 분, 자신을 변화시키신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오로 사도의 복음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이민족들에게 전하셨고, 그들은 바오로 사도와 그의 동료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때, 교리 내용을 잘 전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가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더 많이 사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더 많이 살수록, 사람들은 우리를 만날 때 그리스도를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찾으십니다. 마르타가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해하는 동안,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 자체가 놀라운데요, 당시 여성들은 랍비에게서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제자의 자세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다가가 말씀드립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마르타는 누구에게 불만을 가진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마리아에게 불만을 가졌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도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참 아이러니하지요? 마르타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을까요? 분명 예수님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일거리가 너무 많다고, 다름 아닌 예수님께 불만을 표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도 마르타의 마음에 공감될 때가 있습니다. 나 혼자 애쓰고 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에게 서운해지고, 심지어 주님께도 서운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마르타를 부드럽게 타이르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이름을 두 번 부르신 것은 애정이 담긴 부르심의 표현입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너무나 많은 일에 지쳐있는 마르타는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돌보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는 너무 바쁘기 때문에 예수님 발 앞에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섬김은 그분의 육체적 필요를 채워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올바른 이웃사랑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길거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돕는 일만 중요할까?’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 발 앞에 앉아 예수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도 성당에서 갖가지 봉사활동을 하다가 주객이 전도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봉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봉사하는 대상’보다 더 중요해질 때, 우리도 마르타와 같은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또 이런 상황을 바로 잡아주시지 않는 주님께 원망을 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봉사의 본래 목적은 하느님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놓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우리는 내가 하는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기 자신을 전하고 자신을 선포하려는 유혹을 경계하며, 언제나 나의 봉사를 받으시는 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때 비로소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베르메르,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계신 그리스도, 1655년
출처: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Vermeer)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