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첫사랑이라 할 만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비 온 뒤에 햇빛을 받은 풀잎 위의
이슬처럼 맑고
순수한 모습이었다. 사실 얼굴이나 모습조차 분명히 떠오르지
않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고 지금 보게 되어도 가슴이 뭉클거리고 수줍어 두 눈을 감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대학입시에 실패하는 등 당시 상황이나 환경이 너무 암울해 그러한 감상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그때 청기와 모임이 결성되어 회원 확보가 계속될 때 서면
남다방에서 영혜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솔직 담백한 화법에서 善하고 어진 마음을 가졌다고 느꼈다.
영혜를 만나고 나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씩 풀려가 자주 만났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와 인연이 넓어져 몸과 마음이 성장하니 사랑이란 감정도 달라져야 살아 갈 수 있음을 받아 드려야 했다.
그래서 첫사랑을 가슴에 남겨 두고 영혜와 계속 만났다.
영혜와의 만남이 계속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영혜의 절친한 친구의 애매한 역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마누라가 오해
하고 있는 부분도 많이 있었다.
그 오해를 적극적으로 풀어주지 못한 것을 지금 몹시 후회한다.
언젠가 영혜와의 관계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졌을 때 그 아픔
을 견뎌내기 위하여 옛날 일을 더듬어 첫사랑이라 해야 하는 사람의 일하는 곳을 알아내어 전화를 했다. 전화번호를 몰랐다
가 아니라 알기가 두려워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사람의 행적은 계속 추적해 왔다가 바른 말이다.
내가 자신할 수 있는 것은 만 날 당시의 나이에 둘 다 사랑이란 것이 무엇인지 몰라 그 감정을 표현할 줄 몰라도 나를 분명히 기억하리라고는 생각했다.
" 나 김욱곤이란 사람인데 기억하겠습니까 "라고 하니 명쾌한
목소리로 " 기억합니다. 비번 때 전화해 주세요"라고 분명한 어조로 대답했지 애틋한 감정은 실리지 않았다.
내가 한 사랑은 첫사랑이 아니라 짝사랑이란 생각에 화가 난다.
아무리 순수한 첫사랑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 가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꿈꾸는 지에 대한 탐구가 사랑이다.
하지만 서로의 사랑이 커질수록 책임이라는 현실적 부담이 이별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첫사랑은 원망보다는 그리움이 더 큰 이유다.
나는 매일 아침 해야 할 일을 펜과 종이로 정리하는 것 처럼 효율적이지 못했지만 푸념없이 첫사랑을 끝내기를 작정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 나는 친구들과 진하해수욕장에 캠핑을 갔다.
낮에는 해수욕도 하고 게임도 하며 즐겁게 놀았다.
햇볕은 노을 너머로 저녘 배를 타고 사라지는 해변에서 여고생 한 그룹과 우연히 합류하게 되었는데 그 숫자가 우리와 짝을 이룰 수 있는 수였다 자연히 서로의 짝을 이루어 떠나고 나와 여학생 한 명이 남게 되었다.
바위에 걸 터 앉아 여고생들의 신비스러운 日常을 눈 감고 듣고
있었다.
그런데 " 뺨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 손길에서 청춘에
대한 쓸쓸한 그리움을 본 것처럼 느꼈다.
좀 지나 손목을 잡으며 그만 가자고 한다.
걸으면서 생각하니 여고시절은 한 번밖에 없는 것 일뿐아니라 인생의 다른 시점에서는 지니기 힘든 마음의 고비를 이 애도 지나고 있구나 여겼다.
나는 진주를 생산하고도 훨씬 후에
" 너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냐"라고 하며
마누라와 싸운 적이 있었다.
친구들도 짝을 이루며 돌아왔다. 표정은 제 각각이었다.
이문동에 있는 경희대학교 창고 건물인 것 같은 단과대학에 다니면서 지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같은과 친구가
" 야 시골에서 너 애인이 보낸 편지 같다" 라고 하며 전해 주었다.
영혜는 자취집으로 편지를 보내기에 의아해 하며 꽂봉투를
개봉해 보니 "진하해수욕장에서 만난 송ㅇㅇ입니다"라는
한 줄 메모와 함께 꽃봉투 속에 회신 봉투와 편지지가 곱게 접혀 있었다
진하 해수욕장에서 둘이 있을 그때에도 확신은 못해도 어렴풋이나마 이 애가 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척 했던 것이다.
그 애의 애틋한 감정을 알았지만 그때는 영혜와 친구의 감정을
넘어가는 시기라 답장을 하지 않고 두 번이나 불에 태워 날려 버렸다. 이와 같이 나는 한 여고생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는 잘못
을 저질렀다.
비학 창고에서 2호기 비상용 자재를 점검하고 있었니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저 기억하시나요. 송ㅇㅇ 입니다"
기억하고말고 내가 너에게 준 마음의 상처에 나는 아무한테도 말 못 하고 정말로 많은 가슴 앓이를 했다
그렇지만 그 애가 어찌 알고 전화를 했든지 간에 나 자신도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음에 묘한 감정이 들었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 애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 주어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꼭 집어 그런 것도 아니고 보고 싶었다
"해운대에 있는 '바다 카페로 온나'만나자" 했다.
10여 년이 훨씬 지난 만남이었다.
몸은 내 기억보다 많이 굵어진 것 같다.
중지, 약지에 큰 알이 박힌 반지를 끼고 차려 입지 않고 앞치마를 둘릇다면 덤을 듬뿍 담아 주는 채소 파는 아줌마 같다.
내가 힘들게 겪은 "짝사랑"이란 아픔의 흔적을 그 애에게서 본다.
ㅇㅇ 이와 친구의 애정관계 등 그동안 궁금했던 소식을 주고 받는 이야기 중
"어째 저의 이름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해 주며 " 너에게 잘 못한게 잊히지 않는다."라고 했다.
"저도 오빠 가슴에 비비고 들어갈 틈은 있었네요"
나로 인하여 가슴 아파한 여자가 있었다는 것에 죄스럽기도 하고 연민의 정도 느꼈다.
집에 데려다주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 안에서 가벼운 입맞춤을 했다. 이애도 그동안 쌓인 그리움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되겠다는 듯 힘차게 안겨 왔다.
마누라를 보낸 후 한번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마누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지워버렸다.
덩굴 같은 인연들을 칼질하기도 힘든데 새로이 인연을 맺는다
는 것은 나에게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