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나그네
현직 때의 B선배가 펴낸 수필집 제호가 <구름 나그네>였다. 서울 삶을 끝내고 귀향하여 고향 청주에 근무했던 선배는 일면식도 없는 부산의 까마득한 후배에게 자신의 작품집을 보내왔었다. 가끔씩 사내 매체에 변변치 못한 글을 실은 걸 기억해준 것 같았다. 세월이 흘러 이번엔 내가 수필집을 보내려고 선배의 주소를 수소문했으나 무슨 영문인지 선배는 칩거하면서 후배의 후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직장 퇴직자단체 충북지회장에게 부탁했지만 선배는 세상과 담을 쌓은 체 살아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만 들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색상이 파랑과 하양이 된 것은 순전히 하늘과 구름 때문이었지 싶다. 공해라곤 없었던 어릴 때 고향에서의 하늘과 구름 특히 가을이 막 찾아들 지금 무렵의 대자연은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로웠던가. 하양엔 백설도 하나 더 있다. 갓난아기 때 홋카이도에서 짧게 체험했을 백설은 어머니의 푸념을 들으면서 자라서 더욱 잊히지 않는지도 모른다. 부락 전체가 얼마나 폭설에 자주 묻혔으면 식료품 가게를 찾아갈 새끼줄을 평시에도 늘 쳐놓고 살았다는 그 애환을. 추풍령 고개 때문에 고향 김천에도 겨울이면 폭설이 잦아 백설을 떠올리노라면 눈밭을 뛰놀던 어린 날의 추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파트 거실에서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집을 나섰다. 연꽃의 자태가 아름다운 수질정화공원을 돌아 지하철역을 지나니 불과 얼마 전 폭우 때 범람했던 양산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천둑에선 오봉산 능선을 피어오르는 새하얀 구름이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고 오봉산보단 약간 먼 반대편 금정산 고당봉 머리 위로도 파아란 가을 하늘이 펼쳐졌다. 어느새 신도시의 한복판으로 변한 양산타워 옆으론 낙동강을 가로지른 고속도로가 달린다. 폰에다 하늘과 구름을 담자니 이제 곧 울긋불긋 산천을 물들일 단풍이 떠오른다. 자연의 순환은 궤도를 벗어나지 않겠지만 악천후에 시달린 지난 여름 악몽을 떠올리면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단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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