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검정 운동화를 샀다. 구두 같아 보이는 발이 편한 신발을
내 방 머리 맡에 놓아 두고 답사 갈 날을 기다린다.
남쪽나라 바다 멀리 ~ 물새가 나아르고 ~
자기 소개가 끝난 정순왕후님의 한소절 노랫가락이다.
창덕궁 자원봉사 지킴이 이정순님은 정순 왕후다.
우리는 남쪽나라 진도에 가고 있다. 어제 내린 봄비는 대지를 적시고
창밖은 온통 꽃이다. 개나리가 손을 흔들고 있다.
두 대의 버스는 징게 맹겡이를 지난다.
김제 만경을 내 고향 우리녁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지평선이 보이는 들녘은 호남평야가 유일하다.
전라도 길, 황톳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어느 천형의 나병을 앓는 시인은 이렇게 읊으며 이 길을 지났다.
추사 김정희도 이 길을 따라 전주를 지나 친구 초이 선사가 있던
대둔사를 들러서 제주도로 유배를 갔다.
그 분 뿐인가.. 전라도 길은 유배 길이다. 땅끝이다.
진도 대교를 지난다. 몇날이나 걸렸어야 할 길을 단숨에 온다.
지금은 다리라지만 옛날에는 이 곳이 울돌목 명량해협이다.
이비(耳鼻)를 베어 갔던 왜놈들을 혼내주었던 곳.
우리나라 아이는 "에비" 온다 울지마라 하면 울던 울음도 그쳤다.
왜놈이 이비(코와 귀)를 베러 오기 때문이다. 에비는 이비의 와전
일본에서는 울지마라 "울둑" 하면 뚝 그친다고 한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전라도는 음식이 맛깔스럽다.
모두가 흐뭇한 포만감으로 표정들이 여유로워 보인다.
임진왜란의 격전지, 포말을 만들며 휘감듯 빠른 물살은 지금도 흐른다.
우수영 저쪽 어디쯤에서 강강 술레 춤을 추었을게다.
용장산성, 남도석성,세방낙조를 들러서 숙소에 이르렀다.
숙소는 소포리 마을이다. 작은 회관 앞 마당은 덩그랗게 넓다.
버스 두 대에서 80 여명이 내려서 옹기종기 모였다.
뉘엿뉘엿 해거름 속으로 수더분한 옷차림의 마을 아짐니가 보인다.
번호를 따라 방 배정을 받는다. 아니다 민박 집을 정해주는 것이다.
4명이서 아니면 8명까지 각각의 집으로 아주머니를 따라간다.
어떤 팀은 차를 타고 가기도 한다. 온 동네가 호텔인 셈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 전퉁 집에서 묵게하는 게스트 하우스와 같다.
저녁 8시 모두가 마을 회관에 모였다. 공연이 있다는 것이다.
60 여 평 쯤 되어 보이는 작은 방 안에는 조명도 무대도 없다.
분장실도 없고 배우도 보이지 않는다. 저녁을 지어주시던 그 아짐니들이 배우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배우가 코 앞에 나온다. 같이 섞여서 앉아 있던 아낙이다.
의상은 밥을 지으시던 그대로다. 자장가를 부른다. 곡조도 없다.
소리나는대로다. 자장자장 우리아기 옥동아기 금동아기 자장 자장....
꾸밈음도 없다. 연기도 따로 하지 않는다. 덤덤 밍밍 이다.
눈을 감고 듣던 나는 먼 곳 내 엄니의 품으로 가고 있었다.
실로 얼마만인가 이것은 울 엄니가 부르시던 노래였다.
내 동생을 재우며 부르시던 덤덤 밍밍 음뽀도 없던 울엄니 노래였다.
엄니 제가 환갑을 지난 나이가 되었답니다. 열살도 못 되었을 적의 노래를 들으며
회갑조차도 못보시고 세상을 뜨신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어엄..니이..
육짜배기 가락도 진도 아리랑도 강강술레 춤도 보여준다.
공연이 끝나신 분은 여흥을 위한 음식을 작만하러 주방에 가기도 한다.
지킴이는 준비된 문화 애호가이다. 즉석 팀이 구성된다.
장고 1 이옥화, 장고 2 지킴이 *** , 징은 박선영 간사가 꾕과리는 이옥화님 남편 이수원님이다.
모두가 신명나는 한마당을 벌였다. 막간으로 이 수원님의 섹서폰 연주는
동백꽃잎이 빠알가아케 새겨진 사연으로 더욱 흥을 돋운다.
그뿐인가 화답으로 공연은 다시 이어진다.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에라 대신이로구나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
놀고 놀고 놀아 봅시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성주풀이다.
우리집은 12 남매가 있다. 여인 1에서 6남매 여인 2에서 6남매 합이 12 남매이다.
막내동이가 초등학교 때 이야기란다. 너희집 아버지 어디 다니시느냐 ?
네 시조방에 다니시는데요. 아니 뭐라고 ?
형제들이 모이면 지금도 그 애기를 하며 웃는다.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여 ~
귀에 선하다 아버님의 목청 돋우시던 음성이...
아버님은 어디 계신것일까, 저 목소리를 들으러 여기 오셨을지도 모른다.
또 있다. 북 춤을 추신 할아버지다. 68세의 자그마한 노구에 동안을 가지신 분.
덩더꿍 더꿍 덕... 얼쑤 ~ 손 놀림의 유연성이 가히 소년이다. 움직이지도 안는 듯
어깨는 멈추어 있어도 우리는 그분의 간여린 율동으로 숨을 죽일 수 밖에 없다.
살인적으로 순박한 미소는 멈추어 선 듯한 발 놀림과 안으로 절제된 감성으로 어울려 있다.
누가 마리린 먼로의 미소를 뇌살적이라 했는가 나는 미소에도 격이 있다고 본다.
여흥을 못이겨 우리는 마당으로 나갔다.
주민과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감고 풀고 당기고 웃고 뛰고 ...강강술레를 불렀다.
아니 벌써 자시가 넘었다. 한 쪽에선 생 전복을 따고 있다. 두부 안주에 김치도 잘 어울린다.
붉은 색 홍주가 나온다. 진도출신 소치가 제주도에 위리안치 된 스승 김정희에게
그림 배우러 갈 때 가져갔던 이 지방 특산 약초로 담근 술이다. 맛이 스카치 위스키 같다.
공연인지 놀이마당인지 배우인지 관객인지 손님인지 주민인지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두가 오늘이고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홍주에 취하고 한 판의 소리가 되었다.
자장가를 불러주신 울 엄니는 가시고 성주풀이를 불러주신 아짐니는 남아 계신다.
여기 와서 소리를 들으니 내 부모가 생각 난다고 그 아짐니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에 영웅 호걸이 몇몇이며 절대 가인이 그 뉘기며.....
새벽 4 시가 되었다. 마을회관 그 자리에서 잠을 청한다.
2007년 4 월 15일 일요일
한반도 서남쪽, 진도의 서남 끝 소포리 마을의 아침이다.
한 밤의 추억을 각자의 베낭에 담고 마당에 다시 모였다.
길가에 북치던 노소년이 경운기를 손보고 있다. 오늘은 고추농사를 하러 간단다.
엄마를 따라 온 7,8명의 아이들 끼리도 4시가 넘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한다.
어느 집은 주인과의 정담으로 밤 늦게까지 밤을 새웠고 누구는 곡식을 선물로
누구는 해산물을 이별의 정표 삼아 주셨다고 들고 나온다.
고문준 선생님은 울금을 들고 입이 함박만큼 크게 좋아 하신다.
울금과 기장을 발효시켜서 만든 술이 종묘 제례 때 관지통에 부어 백을 부르는 울창주다.
이 울금 뿌리를 종묘에 심고 키워서 교육용으로 쓰실 요량 이란다.
운림산방에서 버스를 내렸다.
호남지방을 중심으로 한 남종화의 대가 허련 (호:소치) 선생님의 집이다.
소치는 완당의 친구인 초의 스님의 소개로 한양의 추사 김정희 선생님 댁에 머물며 서화를 배운다.
2년이 채 안되어 추사 선생님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지만 허련은 세차레나 제주도에 건너가서
일년 또는 몇개월씩 사사를 받으며 극진 정성으로 스승을 보살피고 자신의 기량도 연마 한다.
초의 스님도 제주에 건너가서 반년을 한 지붕에서 살다가 오신다.
5대째 내려오는 화단의 맥을 만들어 주신 처음 분으로 훌륭한 분 이시다.
우연한 일이다 4대째 임전 화백은 왼손잡이로 테니스를 잘 친다. 나와 한 그룹의 멤버였었다.
아쉬운 추억을 뒤로 하고 우리는 서울로 향했다.
진도는 버림받은 서자 보다 더 질긴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왔다.
신라에 치이고 몽골에 짓밟히고 왜구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나랏님까지도 버렸었다.
항몽 삼별초의 난 그 근거지를 세웠던 곳. 아니다 아니다 난이 아니었단다.
구국의 일념 뿐, 선열의 아름다운 순국 충절 이었음을 우리는 이제야 안다.
올라 오는 길 목
우항리 공룡 화석지를 끝으로 공식 일정을 마쳤다.
버스는 서울로 달리고 있다.
김동순 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씨디에서 진도 아리랑이 흘러 나오고 있다.
진도에는 아리라는 총각과 서리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응~ 응~ 응~ 네에 헤 ... 응 ~ ~ 아라리를 낳았다.
아라리는 커서 문경으로 시집을 갔으니 문경 세재는 웬 고갠가 ~~~
이제서야 사진 정리를 하면서.... 선생님께서 몇 번을 되뇌이시던 <울 엄니가 불러주던 자장가를 40년만에 처음 여기서 들었다! >는 그 순간의 선생님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눈물을 흘리실 수 밖에 없는 그리움이었구나! ... 남도는 하여튼 남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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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시고 답사 준비도 해주시고 홍주도 사주시고 고마웠습니다. 정말 진주님
이제서야 사진 정리를 하면서.... 선생님께서 몇 번을 되뇌이시던 <울 엄니가 불러주던 자장가를 40년만에 처음 여기서 들었다! >는 그 순간의 선생님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눈물을 흘리실 수 밖에 없는 그리움이었구나! ... 남도는 하여튼 남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내세요.^^
열정과 긍정을 겸비하신 선생님의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안가거나 못간 친구들에게 여실하게 중계방송을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 글을 잘 쓴 다는 것도 보시요 이잉~.
선생님이 계셨더라면 ...앙꼬가 없는 ...거시기 헌 사리마다 였지라.. 이잉
새벽 4시에 주무시고 5시에 기상하신 청년 용부 선생님, 아자아자!!!
꽃님이랑 꽃님이랑 ...몇이서 새벽 바람을 가르고 ...내 처음으로 새벽 기도를 ...
청년 선생님의 열정을 저도 느끼고 보았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 으랏차차 앞으로 쭈욱 가시는거 아시지요 !!! 함께한 남편 보듬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신 함께한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지킴이 가족들은 모두가 하나 입니다.
이번 진도답사는 용부선생님이 함께 하셔서 모든 선생님들께서 즐겁고 행복해하셨습니다. 가끔 위트섞인 말솜씨는 개그맨 박명수도 못 따라 올것 같아요 (^^) 항상 즐거움을 선사해 주시는 용부 선생님! 창덕궁활동은 언제 하시게 되나요? 이정순
아직은 미정...육영 사업중...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