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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어긋난 명령 지휘관 처벌 받는게 '군 FM'
라이언 일병 구하기 나서는 미국식 애국주의
병사 대신 사단장·국방장관 구하기 나선 한국
비판 언론에 회칼 테러 위협…이게 나라인가
누가 내게 가장 기억나는 전쟁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주저함 없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첫손에 꼽을 겁니다. 영화 제목은 미담으로 다가왔는데, 도입부의 상륙 전투 장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끔찍했습니다.
내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귀 옆으로 총알이 쌩하고 날아가고, 군인의 철모가 총알에 뚫리면 내 이마에 총알이 박힌 것 같고, 총알이 병사의 가슴을 관통하면 내 가슴이 쩌릿하여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데도 한 병사가 넋이 나간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떨어져 나간 자기 팔을 찾아 드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터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전쟁이란 그런 겁니다. 전쟁은 끔찍한 겁니다. 총알에는 온기가 없습니다. 총알에는 생각이 없습니다. 도입부 장면은 내가 그 전투 현장에 있는 것처럼 무섭고 끔찍하지만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미국식으로 애국심을 고양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중 한 장면.
나는 카투사로 미군부대에서 군 복무를 했습니다. 집안의 ‘빽’으로 혹은 훈련소에서 줄을 잘 서서 카투사로 빠지던 시절이 아니라 영어와 국사 시험으로 선발할 때 카투사로 군대에 다녀왔는데, 굳이 따지자면 카투사 시험 1기입니다.
논산 훈련소와 평택의 캠프 스탠리에 있는 카투사 교육대를 거쳐 2사단 포병부대에 배치된 첫 날, 자기는 군대 가기 싫어 검지를 잘라버릴 생각도 했는데 너희들은 군대가 좋아서 시험 치고 왔냐고 ‘갈구던’ 카투사 고참에게 밤새도록 ‘대가리 박는’ 기합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기상하여 침상에 앉아 있는데 이마에서 끈적한 무엇인가 흘러서 만져보니 진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카투사로 복무하면서 배운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역시 부자나라 군대는 다르구나, 국방력도 결국 경제력에서 나오는구나, 우리도 잘 사는 나라가 돼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는 애국심을 그렇게 배웠습니다.
‘FM대로 하라’는 말의 의미도 그때 알았습니다.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내가 아는 FM은 라디오의 FM이었습니다. 그랬는데 미군부대에서 복무하면서 보니 FM은 ‘Field Manual’ 머릿글자를 딴 약어더군요. 우리말로 바꾸면 ‘야전규범’, ‘야전수칙’이라고 번역될 겁니다.
카투사로 나의 첫 임무는 관측병이었습니다. 훈련이 없는 날이면 미군들은 지프와 관측용 장갑차 정비를 하는데 꼭 두툼한 매뉴얼을 펼쳐놓고 매뉴얼에 나와 있는 대로 하더군요.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답답했었습니다.
차량 수리도 아니고 일상적 정비인데, 어렵고 복잡한 것도 아닌데, 굳이 매뉴얼 펼쳐놓고 미련하게 하나하나 확인까지 해가며 그럴 필요가 있을까. 저걸 꼭 매뉴얼대로 해야 하나. 머리 좀 굴려서 빨리빨리 좀 하지, 요령껏 좀 하지 답답하네 하며 속으로 비웃기도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하, 저러니까 정비 불량으로 인한 사고가 없는 거구나. 언제 어느 때든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출동할 수 있는 거구나. 여기는 군대로구나. 군대를 저래야 하는 거구나. 사고가 나거나 비상 상황에 즉시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 무엇이 문제이고 누구의 책임인지 금방 알 수가 있겠구나.
지금도 기억합니다. 여름 한낮에 기온이 일정 온도가 되면 야외 작업자들은 윗옷을 바지춤 밖으로 꺼내도록 하고, 그보다 더 올라가게 되면 윗옷을 벗게 하고, 그보다 더 올라 기준치를 넘게 되면 야외 작업을 중지시키고 실내에서 쉬게 합니다. 그것이 매뉴얼이고 레귤레이션(regulation)인데, 그걸 어기고 작업을 시키면 지휘관은 감봉이나 강등 또는 보직을 박탈당하는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자로 살면서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삼풍 백화점이 붕되되었을 때, FM대로 하던 미군부대에서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실종자 수색을 하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그 사건 수사를 축소하려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임 국방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되어 ‘도피성 해외 출국’을 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다시 미군부대에서의 FM이 떠올랐습니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고 관련 사단장의 지시를 보도한 JTBC 뉴스.
미군과 비교하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지만, 폭우로 불어난 강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다가 숨진 해병대 채 상병이 미군 소속이었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구명조끼 같은 안전장구도 없이 인간 사슬 엮듯이 병사들이 서로 손을 잡고 급류가 흐르는 강으로 들어가 실종자 수색을 하는 미개한 일은 없었을 겁니다. 폭우로 물이 불어난 그 강에는 흙탕물이 급류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현장의 지휘관들은 위험하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사단장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답니다. 군대 다녀온 이들은 알 겁니다. ‘까라면 까야 하는’ 게 한국의 군대라는 걸. 미군에서도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군법에 회부되고 영창에 갑니다. 그러나 FM이든 복무수칙이든, 규정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리면 그런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처벌을 받습니다. 대통령이라 해도 부당한 명령을 내린 지휘관을 두둔하지 못합니다.
병사가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정도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냐고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게 알려지면, 대통령부터 옷을 벗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국방장관이 수사에 개입하여 이래라 저래라 했다는 게 알려지면 외국 대사가 아니라 교도소에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미군이 아니고 미국이 아니라도 정상적인 국가라면 그렇게 할 겁니다. 그래야 군대가 유지되지요. 특히나 징병제로 성인이 되는 남자는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하는 나라에서 전시도 아닌 평시에 병사의 생명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어느 젊은이가 기꺼이 군대에 가려 하겠습니까. ‘빽’도 없도 돈도 없고 집안에 검사 한 명 없으면 서러운 나라인데.
채 상병 손을 잡고 수색에 투입됐던 병사는 ‘내가 손을 놓쳐 수근이가 그렇게 됐다’며 자책의 트라우마에 괴로워한다고 합니다.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부하 병사가 왜 수색현장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그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려다 이단아로 몰려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반면에 박정훈 대령에게 부당한 지시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의 전직 국방장관은 호주 대사 발령을 받고 ‘해외 도피성’ 출국을 했습니다. 그 장관에게 대통령의 부당한 지시를 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대통령의 참모는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았습니다.
호주의 공영방송은 부하 사망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전직 국방장관 ‘피의자’가 대사로 왔는데, 한국에서도 매우 논란이 많고 외교적으로 골칫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답니다. 호주에 사는 우리 교민들은 얼굴이 화끈거릴 것 같습니다. 국빈 방문을 나흘 전에 취소한 독일에서도,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갔다가 조문을 못한 영국에서도, 대통령 부인이 병풍 경호 받으며 명품 쇼핑을 한 리투아니아에서도, 우리 대사를 초치하여 항의한 네덜란드에서도, 그리고 호주에서도 국격이 나날이 날렵하게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호주 ABC 방송 장면 갈무리.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2차대전에 참전한 라이언 일가의 4형제 중에 3형제는 전사하고 막내인 라이언 일병은 실종됩니다. 미군 지휘부는 특수대원들을 투입하여 막내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섭니다. 8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더라도 한 명의 병사를 살려 조국으로 데려오려고 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쟁터에 투입된 4형제 가운데 3형제는 전사하고 남은 막내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 상태인데, 국가는 손을 놓고 있다면 어느 젊은이가 자원하여 군에 입대하고 전쟁터에 나가겠습니까? 어느 부모가 생때같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려 하겠습니까? 8명 병사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전쟁터에 투입된 4형제 중 한 명이라도 살려서 부모에게 돌려보내겠다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미국식으로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화입니다.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흙탕물 급류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던 병사가 목숨을 잃은 사건이 진상을 규명하기보다 까라면 까야 하는 명령을 내린 사단장 구하기가 더 중요하고,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대통령의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외압의 연결 고리인 국방장관을 ‘해외 도피성’ 외국 대사에 임명하고 또 다른 연결 고리인 대통령실 참모는 깃발만 꽂으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지역에 공천을 하고.
여기저기 술자리에서 저잣거리에서 장터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이어지는데 대통령실에서는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을 철회하는 일은 없다고 했답니다. 공수처와 야당과 좌파 언론이 결탁한 정치공작이라고 했답니다.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MBC 기자도 있는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라며 군사독재시절에 군 정보사 요원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쓰던 기자에게 회칼 테러를 한 사건을 들려주었답니다.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의 언어가 주먹과 공갈 협박을 무기로 연명하는 조폭 세계의 언어와 닮아 있어서 섬뜩합니다. 대통령실 참모가 아니라 용산파 조직원 같습니다.
나라가 이렇습니까? 이게 나라입니까? 그런 나라에서 애국을 말할 수 있습니까? 정말이지 화가 나서 못 참겠습니다. 4월10일이 내일이 아니라서 분통이 터질 지경입니다.
출처 :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이종섭 국방장관 구하기 < 민들레 들판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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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담하기만 할뿐입니다
이런데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이럴때(선거) 왜 대사로 보냈냐고 대통령을 걱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