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던 전차상륙함 문산호를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문산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해군에 동원돼 묵호경비부 대원 철수 및 복귀 작전, 여수철수작전, 장사상륙작전 등 임무 수행을 했다. 특히 장사상륙작전 당시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 수송에 참여해 북한군의 집중 포격에도 불구하고 작전 임무 수행을 했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해안에 좌초돼 이 과정에 선장 황재중과 선원 10명이 전사했다.
문산호는 본래 미국 인디애나주의 제퍼슨빌(Jeffersonville) 선박회사가 설계한 전차상륙함으로, 40㎜ 쌍열포 2문·40㎜ 단열포 4문·20㎜ 포 12문 등을 탑재한 군함이었다.
1943년 9월 22일 함명 ‘LST-120’로 취역 후, 1946년 1월 7일 퇴역 시까지 태평양 함대에서 사이판과 티니안 전투 등에 참전했다. 6·25전쟁 개전 당일 해군 묵호경비부에 징발돼 묵호-포항 간 철수 및 복귀 병력을 수송했다. 1950년 7월 27일에는 여수철수작전에 참가, 백두산함의 엄호 아래 이응준 소장의 병력 600여 명과 차량 30여 대를 진해로 수송하기도 했다.
장사상륙작전 당시 해안에 좌초된 문산호는 1997년 3월 6일 장사동 해안에서 해병수색대원에 의해 바닷속에 묻힌 채 발견됐다. 정부는 전사한 황재중 선장에 충무무공훈장, 10명의 선원에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안원규·정원명 선생은 한인합성협회를 결성하고 운영한 주요 인물들이다. 선생들은 미국 하와이의 25개 한인단체를 하나로 통합한 항일민족단체인 ‘한인합성협회’를 결성·운영했다. 협회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후원해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고, 기관지인 『한인합성신보』를 발간했다.
안원규(1878~1947) 선생은 대한인국민회 창립을 주도하고 하와이 지방총회 총회장을 역임했다. 1945년까지 다양한 독립운동 단체에 몸담으며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주도했다.
정원명(1881~1942) 선생은 1905년 하와이 에와친목회 회장, 1907년 한인합성협회 총회장을 역임했다. 정부는 안원규 선생에게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정원명 선생에 2014년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