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가을이있다
맨 살갗을 스치는 찬 기운, 쓸쓸함을 더해 가는 산과 들. 이렇게
가을이 깊어가면 늘 어디론가 떠나고픈 막연한 충동에 휩싸이곤 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언제부턴가 텅빈 가슴이
울렁대기 시작했다.
바람이, 쓸쓸한 가을바람이 자꾸 어디론가 떠나기를 재촉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고향 고종사촌막내동생의 결혼소식을 접했다.
고모님께서 아침 저녁으로 참석여부를 물으며 ‘참석의 당위성’을
누누이 말씀하셨다. 덕분에 아내의 묵시적인 허락(?)을 쉽게
받아내긴 했는데, 아내가 동행을 자청했다.
실로 오랜만에 혼자만의 느긋하고 호젓한 가을여행을 즐기고 싶었는데
이거 참, 낭패 아닌가!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처럼 이기적인 생각도 없지 싶다.
지금까지 어디 그럴듯하게 둘만의 여행을 다녀본적이 있던가.
"올해는 꼭 비행기 태워주마“고 약속하고 모으던 여행자금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묻지 않은 것도 실은 꼭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도 아니었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고픈 욕심이 앞섰던 때문이었던 것을
미안해지는 마음. 그래, 아내와 같이 떠나자! 모처럼 친척의예식도
함께 보고 도시의 번잡함에 지쳐 있을 아내에게 호젓하고 낮선 오솔길을 선사하자.
그 길을 바람과 새소리와 함께 걷는 기쁨을 올가을 선물해보자.
마치 무슨 큰 선심(?)을 쓰듯 작정하고 드디어 지난 3일 선선한
새벽공기를 가르며 고향인 김제로 출발했다.
휴일이라 교통사정이 좋지 않을까 다소 걱정도 앞섰는데 다행히
고향으로 달리는 서해안고속도로는 한산한 편이었다.
다만 서해대교 휴게실에서 보려했던 일출을 구름의 심통으로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
고향 가을 들녘으로 가는 길인 것을 한산한 도로를 벗삼아
스피드에 걸신이라도 들린양 마음껏 가속기(엑셀)를 밟아 댔더니
2시간40여분만에 고향에 다달았다.
아, 그러나 술이 문제였다. 당일 있은 예식장에서 마신 술로
첫날은 친구 집에서 그냥 잠으로 소진하고 만 것.
해서 오랜만의 가을나들이는 다음날인 4일 시작됐다.
‘안경’은(친구 닉네임) 출근하고 친구 아내와 아내, 셋이서
모악산 아래 금산사에 갔다. 깊어가고 있는 산사의 가을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리고 오후에는 퇴근해온 친구까지 합세해 지평선축제 주행사장인 벽골제에 들어섰다.
먼저 객을 반기는 것은 새색시처럼 수줍은 모습으로 한들한들
고운 자채를 자랑하는 코스모스. 씨앗뿌리기부터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손길이 갔을고.
잘 가꾸어진 꽃들의 모습에서 고향을 열심히 가꾸고 지켜가는
사람들의 땀내를 맡는 듯 해 더없이 흐뭇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정겨운 얼굴로 서 있는 허수아비 들도 반가웠다.
행사진행을 돕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경찰들이 도로변 주차를 도와 줄때에는 딱지만 떼던 때와는
너무도 다르게 다정하게 느껴졌다.
또 우(牛)마차로 어린이들을 태워 주는 모습, 물고기 맨손으로 잡기,
홀태 체험, 메뚜기잡기 무자위(전라도방언으로 물자세)돌려보기,
가마니 짜보기, 새끼 꼬아 보기 ,짚으로 생필품 만들기, 제기차기 등등
(모두 무료) 어린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중년의 가슴을 자극했다.
각설이 타령도 흥겨웠다. 막걸리를 두루 돌려 주는 주모가
딱 주모스럽다(?). 장구와 꽹가리로 군중을 모으는 흥겨운 가락이
너무도 ‘프로’다워 ‘도대체 뭘 팔려고 저러나’ 궁금했는데,
파는 거라고는 엿 몇가락 뿐. 그래도 참으로 정겹고 신명나는 정경이었다.
지평선축제는 깨끗하고 너른 김제 들녘에서 생산되고 있는
쌀을 널리 알리고 또 이를 통해 판로를 확보하기 위한 행사이다.
기름진 들녘과 그 들녘에서 한톨의 쌀을 위해 땀흘리는 농민들,
그리고 그와 관련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지역문화를
보여주고 직접 체험케 함으로써 쌀의 구매의욕을 높이자는 취지이며....
또 이를 통해 호남농경문화를 알림으로써 우수한 지역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자는 뜻도 깃들어 있다.
행사장 곳곳에서 이런 취지를 실감할 수 있었는데 갈수록 농촌이
어렵다는 현실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안타까웠다.
특히 올해 유난히 잦은 비와 낮은 기온으로 더욱 어려워졌다고
하는데 이른 봄부터 뜨거운 여름을 나고 무심한 빗줄기를 견뎌가며
한톨의 쌀을 위해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 했던 고향의 친구와 친지,
그리고 많은 농민들의 마음고생이 어떠할지, 마음이 한없이 아파왔다.
마음은 안타깝고 아픈데 어떻게 도와 줄 도리가 없다.
그들의 곁에서 그저 지켜보고 응원을 보내는 것 외에는.
저녁에는 포크가수들의 라이브콘서트가 마련됐다. ‘사월과오월’,
권진원, 양희은, 이정선, 김세환등 내노라 하는 이들이 나와
친근한 음악으로 청중을 사로 잡았다.곁의 아내가 천진한 아이처럼 너무도 좋아한다.
역시 같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해준 것도 없이 마음이 뿌듯해진다.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을 흡족하게 지켜보며, 차가 빠져 나가기를
기다리며 고향의 들녘의 어스름과 함께 반주와 식사를 즐겼다.
모처럼의 가을 나들이. ‘퇴근했을 친구와 바둑의 자웅을 가려야 하는데’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깊어가는 가을, 노을향해 등진허수아비의
쓸쓸한 배웅을 받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난 지평선 축제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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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요~
그러게요 헌데 요즘은 대기업 천하지요
도시화의 물결에 좋은 농토들이 없어지고 있는게 마음 서리는데 아직도 고향의 정취를 느낄수있는 시나브로님은 그나마 다행이네요. 작년에 다녀오셨는지? 멀지만 않어면 가보구싶네요 10월에는 축제도 가 볼곳이 훠낙에 많다보니…글로 축제 구경 잘 했음다~올해도 기대할께요~
애태타님께서 다녀 오셔서 기행문 올려 주십시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몇해전 다녀왔습니다.
가을 바람 부니 떠나고픈 충동이 일어 되뇌어 봤네요
끝까지 정독하셨다면 아셨을건디~~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향이야 자주 다니지만 가을이 오면 역마살이 도지는것 같네요
김제 하면 쌀... 하면 각설이 지가 좋아하거든요
축제
의리없이 혼자 다니실려고 했나 보네요 ..
더불어서 추억을 만드셨야죠...
네덕분에 옆지기와 며칠 다녀왔습니다..
빵님께서도 일에만 묻혀 계시지 마시고 나들이 함 하셔요
함평나비축제와 함께 가장 잘된 축제라네요...지평선축제...
언젠가 보았던 벽골제도 좋았고 망둥어 잡는것도 잼있었지요...
가까우신데 일만하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멋 진글 이네요...
우리 농촌을 생각해 주시는 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 집니다...
저도 과수원을 하고 있는데 농사는 지을 수록 힘 드네요
그저 바람만 불어도 비가 넘 마니와도. 또 비가 안와도 걱정 걱정...
우리 농민들 심정 헤아려 주시는 님이 있어 든든 합니다
근데요,,, 여긴 거의 넥타이 색깔이 예쁜 분들만 글 올리는 곳 인가 봐요 ㅎ
저도 농촌 일기처럼 글 올리고 싶은데.. 그래도 될런지요?
요즘 거의매일 들러 보긴 하는데 아직은 쑥 스럽네요
아~ 옛친구 노래 정말 올만에 들어보는군요.. 옛 친구가 그리워 지는 밤 입니다..^^
마음의 글을 올려도 됩니다.
배향기님 글 올리실 자격 넘치십니다
시나브로 농촌의 일상 담아 주십시오
기대하겠습니다
네 감사 합니다 ^*^
요즘은 배 따 랴 포장 작업하랴.. 택배 보내랴.. 정말 정신 없이 바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