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밤늦은 시각, 하늘이 무슨 슬픈 일을 당했는지 천둥과 번개로 심하게 울었다.
뒤숭숭한 가운데 설핏 잠이 들었다가 목이 말라 몸을 일으켰더니, 꿈인지 생시인지 옛 옷을 입은 웬 낯선 사내 하나, 무릎을 꿇고 앉아 슬피 울고 있더라. 놀란 마음을 짐짓 감추고는 태연을 가장하며 어인 일로 야밤에 남의 침실에 들어 울고 있소 물어보았더니, 그 낯선 사내 털어놓은 사연인즉슨...
저는 춘향전에 나오는 바로 그 방자이옵지요.
천계에도 여러 동아리 모임이 있사온즉, 제가 속한 동아리는 <고전 조연 동아리> 입지요. 세상이 모두 다 주인공에게만 관심이 있고, 조연이란 것이 주로 주인공을 빛내는 역할이다 보니 혹은 악역을 맡고, 혹은 좀 모자라거나 혹은 모사꾼 협잡꾼 등을 맡은 연고로 천계에서도 영 대접이 시원찮은지라,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밝혀 우리의 권익을 찾아보자 하는 뜻으로 하나 둘 모이다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동아리 입지요.
얼마 전 동아리 모임에서 방덕어멈을 만났습지요. 늘 오만상 찌푸린 얼굴로 천계를 좁다 하고 돌아다녔는데, 그날은 어찌 된 판인지 하도 얼굴이 화사하길래, 곁에 있던 놀부 영감과 같이 물어보았습지요.
원 풀었다더만요. 속이 시원하다고.
몇 백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고 보니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요즘 열심히 살 빼기에 힘쓰고 있다더만요. 눈꼬리 흘리면서 요즘 염라대왕이 자기를 쳐다볼 때마다 눈알이 땡그랗게 커져서 걱정이라두만요. 웬 걱정인고 허니 자기는 옥황상제에게 관심이 있다나 어쨌대나...
그 방덕어멈 통해서 여러 이야기 전해 듣고, 이제나저제나 하계로 내려올 틈만 노리다가 오늘 상제와 대왕이 대취하야 싸움이 붙은 틈을 타 번개 하나 날름 주워 타고 내려왔습지요.
"그렇다면 방자님도 가슴에 맺힌 그 무엇이 있단 말이요?"
"있다마다요. 기막히다 못해 절통하야 이승 하직할 적 눈도 못 감고 떠나왔습지요."
"그렇다면 내가 어찌해드리면 되겠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방덕어멈 때처럼 제 말 그대로 옮겨주기만 하면 됩지요."
그래서 귀 기울여 방자 말을 들었는데, 그 사연이 듣고 보니 하도 절절하여 시키지 않아도 손이 절로 나가 붓을 잡게 되더라.
때는 바야흐로 조선조 숙종 시대.
곡식 풍성히 결실 맺는 남원골의 가을, 성 참판댁 너른 들에 웬 아낙네 하나 쪼그리고 앉아 안간힘을 쓰더라. 잠시 후 응아~ 우렁찬 울음과 함께 태어난 이 있었으니 그 이름 들판에 떨어진 돌멩이 같다 하여 野石이 되었더라. 유복자로 태어났으니 기구한 팔자 이미 예견되었던 터, 핏덩이로 제 어미젖 더듬어 찾아 악착스럽게 빠는 모습이 하늘 높은 황금들판이어서 더 처연해 보였더라.
그 이듬해 봄, 남원부 기생 월매가 성 참판의 씨를 받아 드디어 고대하던 아이를 낳았으니 방에 향기 가득한 봄날에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춘향이라 지었더라.
비록 태평성대였다 하나 반상의 신분 엄연하던 시절에 유복자와 서녀로 태어난 이들, 가만히 두어도 서러울 그 삶들이 인연의 고리로 얽히고설키는 그 긴 이야기를 옮겨 적으려니 내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 가슴이 떨리고 손이 떨려 술 한잔 곁들이지 않을 수가 없더라.
내 술에 곯아떨어져 쉬 안 올지도 모르니 청컨대 듣는 이들은 너무 기다리지 말라.
첫댓글
기다리지 말라 하시나
절로 기다려 지는 대목입니다.
ㅎㅎ
절창이라 아뢰옵나이다.
울 방장님 신났네~ ㅎ
판소리 한마당 보는 기분 ^^
술에 곯아 떨어질 줄 알았더니 ㅎㅎ 카카오가 먼저 떨어졌네요.
사설풀이로 쓴 글이 주풍방 분위기에 맞을 것 같아 올려 보았습니다. 요즘 평일엔 몸과 마음이 바빠 주말에나 주풍방 글 읽다보니 혹 정성스레 쓰신 글에 제 흔적이 없더라도 이해 바랍니다.
추임새 감사합니다~
@호 태 지난번에 올렸던 뺑덕어멈전은 판소리 버전으로 써보았고 지금 방자전은 사설풀이로 써보았던 것입니다.
어울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앗싸 !!
우선 제일 좋은 앞자리에 멍석깔고 탁배기 몇 동이 준비 하자 ~
명창 나으리 ~
목 마르면 한 잔 드시고 이어 갑시다 ~
얼쑤 ~^^
어제밤에 감기 테스트 하러
통닭 시켜놓고 이강주 반병
카스 한 캔 마셨어요 ㅋㅋ
@호 태 효과가 있습디까 ?
ㅋㅋㅋ
살아있는 걸 보니 ~^^*
쫌 더 삽시다 ㅋㅋㅋㅋ
제가 아주 좋아하는 오분전님이 맨 앞자리에 앉으시니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ㅎㅎ
목도 축였으니 술술 이어 가겠습니다.
방덕이 아니라 뺑덕아닌가요?
뺑덕이 맞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올린 뺑덕어멈전이란 글이 있었는데, 그 글에 방덕어멈이 뺑덕어멈으로 불리게 된 사연을 적어두었기로, 그 연관성으로 나온 방자전에 분위기 살려보고자 방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ㅎㅎ
ㅎ 사설 한편 걸져 보이니 다음편 기대합니다~
막걸리 패거리 호씨랑 오씨가 신났수다~
난 소주로
차미스리 ~ 퍼런걸루요
지조가 있지 ㅋㅋㅋ
단풍들것네님이 놀이판에 어울려주신다면 놀이판이 훨씬 더 다양한 채색으로 멋질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디지털치매....생각보다 파장이 엄청날거 같은
대란의 느낌도 장시
강제 휴식끝 읽어보는 조연동호회
회원들 얘기에 급 관심 땡겨집니다.
목 마르실 때...탁배기 한 잔 올릴 기회를....
다행히 열심히 수습중이라네요.
이젠 사이버도 사회의 한 축이다보니 그 파장이 큰 것 같습니다. 계기로 더 잘 보완 되기를 기대합니다.
탁배기 예약 접수 했습니다^^
카카오먹통이 의외로 갑갑증을 주는군요.
못먹는 탁배기라도 한잔 마시며 읽어야 될것 같은 조연들의 한 맺힌 사연들
벌써 기대가됩니다.
카카오먹통이 저에게는 탄이들이 있어서
심심치 않았어요.ㅎ
아...가설라무내~로 걸판지게 이야기를 시작하던 옛사람들이 생각납니다. ㅎㅎ
열심히 사설 풀겠습니다.
근데 '탄이'가 뭐지요?
@마음자리 ㅎ. 탄이들 요?
방탄소년단을 탄이들이라고. BTS입니다.
어제 부산 엑스포 유치 공연을 부산에서 여섯시에 했어요. jtbc에서 생중계해줘서 잘봣거든요.
제가 그 아이들 팬이라서요.
@리진 ㅎㅎ 답 감사합니다.
제가 요즘 말에 좀 약합니다.
꿈에 보인 건가요
상상의 글 잘 보고 갑니다
그냥 사설 푸는 마당놀이 같은 겁니다.^^
수필방이 한산하여 다른 방엔 무슨 글들이 있나
나와봤더니 여기에 이런 글이...^^
이공계 엔지니어가 담쟁이 잎사귀 덮인 문과 담벼락을 월담하시면
이런 글이 나오는군요. 다음 편을 읽으러 갑니다.
안전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