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해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은 자칫 자기 확신에 차 범하기 쉬운 오류를 조심해야 한다.
쓰나미가 몰아쳐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났을 때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남아시아를 휩쓴 지진과 해일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들에 대한 심판이라는 설교를 했다고 한다.
피해를 본 그 지역은 모슬렘과 불교도들이 주를 이루고, 기독교를 박해했던 지역이었으며, 세계적인 휴양지로 많은 사람들이 향락과 마약을 즐기는 곳이라서 하나님이 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정죄하는 말은 바른말이라고 할 수 없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무지와 완악함 앞에서는 설교를 하셨지만,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앞에서는 설교 대신 그들 곁에서 그들의 희망이 되어 주셨다. 아픔을 겪는 사람의 아픔을 덜어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이 겪는 아픔의 이유를 해석하는 것에 분주한 사람들의 말은 죽은 말입니다.
남아시아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큰 죄인이어서 그런 불행을 당했을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가 세계화되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재난에 더 취약하게 된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먹고살기 위해 산호초를 잘라내고, 망그로브 숲을 개간해 골프장을 만들고, 해안도로를 만들고 휴양시설을 만들었기에 해일이 밀려올 때 방파제 구실을 할 것이 없었던 것이다. 관광객들에게 싸구려 기념품을 팔거나 그들의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던 그곳 사람들은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재난을 당한 것이다. 우리도 그들의 죽음과 무관할 수 없다.
<김기석 저 (아! 욥) 중에서>